한지한은 낡은 책상 위에 놓인 종이 조각을 멍하니 응시했다. 밤은 깊었고, 사무실 창밖으로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어둠을 겨우 걷어내고 있었다. 며칠 전, 잊혀진 듯한 시골 마을의 허름한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사진첩 속에서 툭 떨어진 이 종이 조각은, 그에게 새로운 실마리이자 끝없는 미로의 또 다른 입구처럼 느껴졌다.
종이에는 어설픈 펜화로 별자리가 그려져 있었다.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순수했지만, 한지한은 단번에 그것이 특정 계절에만 희미하게 보이는 ‘어린 양자리’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아래, 갈색 잉크로 쓴 필체는 너무도 익숙해 심장이 아려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별을 쫓던 그 언덕, 가장 높은 곳에서 다시 만나자.”
수연의 글씨였다. 아니, 적어도 수연이 아끼던 누군가의 글씨이거나, 수연에게서 영향을 받은 글씨일 터였다. ‘별을 쫓던 그 언덕’… 지한의 머릿속에는 즉시 낡은 천문대가 떠올랐다. 어릴 적 수연과 함께 몰래 드나들며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이제는 버려진 채 스산한 기운만 감도는 그곳. 과연 그곳에 수연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지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많은 허탕과 절망 속에서도, 이 작은 종이 조각은 그의 심장에 다시금 꺼져가던 불씨를 지폈다. 희망은 때로 지독한 독과 같아서, 그의 영혼을 갉아먹는 동시에 유일한 생명줄이 되어주었다. 그는 낡은 야상을 걸치고, 손전등을 챙겼다. 밤늦게 떠나는 여정은 익숙했다. 그의 삶 자체가 거대한 어둠 속을 헤매는 여정이었으므로.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자, 가로등조차 없는 길은 더욱 짙은 어둠 속에 잠겼다. 낡은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좁은 시야를 밝힐 뿐이었다. 지한은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길고 긴 시간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수십 년의 세월을, 그는 오직 한 사람을 찾아 헤매는 데 바쳤다. 가끔은 자신이 미쳐가는 것이 아닐까 자문하기도 했다. 주변의 친구들은 이제 그에게 ‘탐정’이라는 직업 대신 ‘미련한 사랑꾼’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수연은 그의 첫사랑이자,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일한 사랑이었다. 그녀가 사라진 그날 이후, 그의 세상은 흑백으로 변했고, 수연을 찾아내는 것만이 다시 색을 되찾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올라가자, 마침내 익숙한 실루엣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버려진 천문대. 낡은 돔은 별을 향해 열린 입처럼 위태롭게 서 있었고, 주변은 잡초와 덩굴로 뒤덮여 있었다. 으스스한 침묵만이 그곳을 지배했다.
지한은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 인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손전등을 켜고 천문대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삐걱거리는 철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먼지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폐부로 스며들었다. 내부 역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부서진 망원경 조각들, 거미줄, 그리고 바닥을 수북이 덮은 먼지가 지한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여기에 앉아서 매일 밤 별을 봤었지?”
과거의 수연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지한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어두운 공간을 손전등으로 비췄다. 낡은 의자, 벽에 새겨진 낙서들… 모든 것이 그와 수연의 추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돔 아래의 둥근 공간, 거대한 망원경이 서 있던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때였다. 발아래의 먼지 더미 속에서, 희미한 무언가가 빛을 반사하는 것을 발견했다. 지한은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손을 뻗었다. 손안에 잡힌 것은 작고 투박한 나무 조각이었다. 어린 양 모양으로 깎인 그것은, 그들이 어릴 적 함께 만들었던 숲 속의 동물 친구들 중 하나였다. 수연은 특히 이 어린 양을 좋아했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조각이 여기에, 이렇게 다시 나타나다니.
지한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나무 어린 양을 쥐어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어린 양이 놓여있던 바로 그 자리, 먼지 위에 희미하게 남은 발자국이었다. 흙먼지가 조금 묻어있는 작은 발자국. 낡은 운동화 자국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발자국 옆으로, 흙먼지가 아주 미세하게 흩뿌려진 흔적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 급하게 뛰어간 듯한.
이건…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었다. 누군가 최근에 이곳에 다녀갔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어린 양 조각을 여기에 남겼을 수도 있었다. 수연일까? 아니면, 수연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누군가일까?
지한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윤하야, 나 지한이야. 지금 오래된 천문대에 와 있어. 여기서… 이걸 찾았어.”
그는 어린 양 조각을 찍어 전송했다. 잠시 후, 윤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드디어 뭔가 찾으신 거예요? 그게 뭐예요?”
“어릴 적 수연이랑 같이 만들었던 나무 조각이야. 그리고 여기에…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있어. 아주 최근에. 먼지 위에 희미한 발자국도 있고, 뭔가 급하게 움직인 듯한 자국도 남아있어.”
윤하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이 묻어났다. “발자국요? 혹시 수연 언니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
“모르겠어. 그런데 느낌이…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누군가 이 메시지를 나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아.”
“주변에 CCTV나 다른 단서는 없어요? 혹시라도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선배.”
“여기는 그런 게 있을 리 없지. 한참 버려진 곳이라.” 지한은 전화를 끊고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어둠 속에서, 그는 문득 미세한 소리를 들은 듯했다. 바람 소리 같기도 했고, 낙엽 밟는 소리 같기도 했다. 심장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뛰었다. 그는 손전등을 들어 천문대 내부를 천천히 비췄다. 그리고 곧이어, 창문 너머의 어둠 속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움직이는 그림자를 포착했다.
누군가 보고 있었다.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수연일까? 아니면 그녀를 쫓는 또 다른 그림자일까? 지한은 어린 양 조각을 꽉 쥐었다. 그 그림자는 마치 자신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한은 망설임 없이 그림자가 사라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잃어버린 첫사랑을 향한 그의 탐색은, 이제 또 다른 미스터리의 문을 열고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도, 그리고 그가 쫓는 그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