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크툴루 신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저 망망한 심연의 한가운데서, 우주선 ‘해성호’는 미지(未知)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빛 한 줄기 없는 암흑은 가끔 멀리서 깜빡이는 이름 모를 성운의 잔광만이 존재를 알리는 침묵의 대지였다. 수십 광년을 가로지르는 여정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는 고독한 감옥과 같았지만, 해성호의 승무원들에게는 우주가 선사하는 경이로운 고요함이자, 때로는 숨 막히는 압박감이었다.

    “통신장교 김민준, 이상 없음. 모든 시스템 정상 작동 중입니다.”
    선실의 푸른빛 조명 아래, 통신장교 김민준이 습관적으로 보고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했지만, 깊은 우주가 주는 압도감 때문인지 미세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그는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홀로그램 패널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수천 가지 데이터를 확인했다. 이 광활한 어둠 속에서 인간의 흔적이란 해성호라는 작은 강철 덩어리뿐이었다.

    그때였다. 민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평소와 다른 그래프의 움직임이었다. 미약하지만 분명한, 그 어떤 패턴과도 일치하지 않는 에너지 파형.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데이터를 확대했다.

    “함장님, 박선우 대장님. 비상입니다. 설명 불가능한 에너지 파형이 감지되었습니다.”
    민준의 목소리에 일말의 당황이 섞였다. 그의 보고는 언제나 냉정했고, 비상이라는 단어를 쓰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뭐라고? 자세히 보고해.”
    함장 이지은의 침착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녀는 곧바로 상황실로 향했다. 해성호의 총책임자이자, 수많은 탐사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베테랑이었다.

    잠시 후, 상황실 문이 스르륵 열리며 이지은 함장과 박선우 탐사대장이 들어섰다. 선우는 해성호의 수석 과학자로, 늘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날카로운 눈빛의 소유자였다. 그의 백금발 머리카락은 언제나 단정하게 빗겨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미지의 것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민준, 상황.” 이지은 함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민준은 침을 한번 삼키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약 3AU 전방에서 감지된 파형입니다. 기존에 기록된 그 어떤 천체 물리적 현상이나 인공적인 에너지원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주파수는 불규칙하고, 강도는 매우 미약하지만, 지속적으로 발산되고 있습니다.”
    박선우는 민준이 가리키는 홀로그램 파형을 응시했다. 무질서하면서도 묘하게 질서 정연한 듯한, 모순적인 패턴이었다. “이건… 노이즈가 아니군요. 그렇다면 저 미약한 파형이 뭘 의미하는 거지? 함장님, 접근 허가해 주십시오.”
    이지은은 잠시 망설였다. 미지의 것에 대한 접근은 항상 위험을 동반했다. 하지만 인류는 미지를 탐험하며 여기까지 왔다. “최대 경계 태세. 모든 시스템 점검. 탐사선 ‘나래’ 출동 준비.”
    “예, 함장님!”

    해성호는 서서히 방향을 틀어 미지의 에너지원을 향해 나아갔다. 수천 톤에 달하는 거대한 함선이 검은 심해를 가르듯 나아가는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수 분, 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해성호의 전방 탐사 카메라에 한 점의 그림자가 잡혔다.

    “저게… 뭡니까?” 민준의 목소리에 숨 막히는 경외감이 섞여 있었다.
    홀로그램 스크린에 나타난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무언가였다. 거대한, 하지만 그 어떤 기하학적인 형태와도 일치하지 않는 덩어리. 마치 무수한 사면체가 불가능한 각도로 이어 붙여진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빛을 흡수하는 듯 검붉은 색조를 띠고 있었지만, 특정 각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색채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우주 공간에 부유하며, 마치 심연 자체가 응축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스캔해 봐. 재질, 크기, 모든 정보를.” 이지은 함장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경계심이 어렸다.
    선우의 얼굴은 이미 감탄과 공포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함장님, 계측기가 오작동합니다! 중력값은 허수(虛數)로 나오고, 에너지 방출량은… 존재하지 않는 주파수에서 감지됩니다. 이 물체는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무시한다고?” 이지은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오랜 경험으로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해성호는 물체로부터 500미터 떨어진 지점에 정지했다. 스크린을 통해 바라보는 그것은 더욱더 압도적이었다. 그것은 어떤 문명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존재 자체가 우주를 왜곡시키고 있는 듯했다.

    “민준, 무언가 들리지 않나?” 박선우가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만.” 민준은 헤드셋을 확인했다. 모든 통신 채널은 깨끗했다.
    “아니, 외부 소리가 아니야… 마치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저음의 진동.” 선우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누르며 눈을 감았다. “마치… 수억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거대한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소리 같아.”
    이지은은 선우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종종 과학적인 흥분에 심취해 이상한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 자신도, 아주 미약하게, 아니면 착각일지도 모르게, 어떤 불쾌한 저음을 느끼는 듯했다. 그것은 뼈를 울리고, 영혼의 밑바닥을 간지럽히는 듯한 불길한 진동이었다.

    “함장님, 물체에서 미세한… 아니, 강력한 정신파가 감지됩니다!” 민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정확히 어떤 메시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의식에 직접적으로… 뭔가를 주입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홀로그램 스크린 속의 거대한 유물이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히 꿈틀거렸다. 검붉은 표면을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물결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해성호 전체에 저음의 진동이 더욱 강하게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착각이 아니었다. 승무원들의 몸 전체가, 해성호의 강철 골격 전체가, 알 수 없는 공포의 떨림에 파르르 진동했다.

    박선우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그 소리는 그의 몸속에서, 그의 뇌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환영처럼, 광활한 심연의 바다와 그 속에 잠겨 있는 거대한 존재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것의 존재가, 유물을 통해 그들의 의식 속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함장님… 우리… 뭘 깨운 것 같습니다.” 선우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렸다.
    이지은은 굳어진 표정으로 스크린을 노려봤다. 유물은 이제 정지해 있지 않았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인이 기지개를 켜듯,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회전과 함께, 모든 승무원의 귓가에 섬뜩한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그 언어는 인류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명확했다.

    *깨어났다.*
    *이제… 보게 될 것이다.*

    그 순간, 해성호의 모든 계기판이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선실의 조명이 깜빡이며 꺼져 나갔고, 어둠 속에서 오직 유물의 검붉은 그림자만이, 더욱 거대하고, 더욱 불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심연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 크툴루 신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저 망망한 심연의 한가운데서, 우주선 ‘해성호’는 미지(未知)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빛 한 줄기 없는 암흑은 가끔 멀리서 깜빡이는 이름 모를 성운의 잔광만이 존재를 알리는 침묵의 대지였다. 수십 광년을 가로지르는 여정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는 고독한 감옥과 같았지만, 해성호의 승무원들에게는 우주가 선사하는 경이로운 고요함이자, 때로는 숨 막히는 압박감이었다.

    “통신장교 김민준, 이상 없음. 모든 시스템 정상 작동 중입니다.”
    선실의 푸른빛 조명 아래, 통신장교 김민준이 습관적으로 보고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했지만, 깊은 우주가 주는 압도감 때문인지 미세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그는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홀로그램 패널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수천 가지 데이터를 확인했다. 이 광활한 어둠 속에서 인간의 흔적이란 해성호라는 작은 강철 덩어리뿐이었다.

    그때였다. 민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평소와 다른 그래프의 움직임이었다. 미약하지만 분명한, 그 어떤 패턴과도 일치하지 않는 에너지 파형.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데이터를 확대했다.

    “함장님, 박선우 대장님. 비상입니다. 설명 불가능한 에너지 파형이 감지되었습니다.”
    민준의 목소리에 일말의 당황이 섞였다. 그의 보고는 언제나 냉정했고, 비상이라는 단어를 쓰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뭐라고? 자세히 보고해.”
    함장 이지은의 침착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녀는 곧바로 상황실로 향했다. 해성호의 총책임자이자, 수많은 탐사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베테랑이었다.

    잠시 후, 상황실 문이 스르륵 열리며 이지은 함장과 박선우 탐사대장이 들어섰다. 선우는 해성호의 수석 과학자로, 늘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날카로운 눈빛의 소유자였다. 그의 백금발 머리카락은 언제나 단정하게 빗겨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미지의 것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민준, 상황.” 이지은 함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민준은 침을 한번 삼키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약 3AU 전방에서 감지된 파형입니다. 기존에 기록된 그 어떤 천체 물리적 현상이나 인공적인 에너지원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주파수는 불규칙하고, 강도는 매우 미약하지만, 지속적으로 발산되고 있습니다.”
    박선우는 민준이 가리키는 홀로그램 파형을 응시했다. 무질서하면서도 묘하게 질서 정연한 듯한, 모순적인 패턴이었다. “이건… 노이즈가 아니군요. 그렇다면 저 미약한 파형이 뭘 의미하는 거지? 함장님, 접근 허가해 주십시오.”
    이지은은 잠시 망설였다. 미지의 것에 대한 접근은 항상 위험을 동반했다. 하지만 인류는 미지를 탐험하며 여기까지 왔다. “최대 경계 태세. 모든 시스템 점검. 탐사선 ‘나래’ 출동 준비.”
    “예, 함장님!”

    해성호는 서서히 방향을 틀어 미지의 에너지원을 향해 나아갔다. 수천 톤에 달하는 거대한 함선이 검은 심해를 가르듯 나아가는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수 분, 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해성호의 전방 탐사 카메라에 한 점의 그림자가 잡혔다.

    “저게… 뭡니까?” 민준의 목소리에 숨 막히는 경외감이 섞여 있었다.
    홀로그램 스크린에 나타난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무언가였다. 거대한, 하지만 그 어떤 기하학적인 형태와도 일치하지 않는 덩어리. 마치 무수한 사면체가 불가능한 각도로 이어 붙여진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빛을 흡수하는 듯 검붉은 색조를 띠고 있었지만, 특정 각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색채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우주 공간에 부유하며, 마치 심연 자체가 응축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스캔해 봐. 재질, 크기, 모든 정보를.” 이지은 함장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경계심이 어렸다.
    선우의 얼굴은 이미 감탄과 공포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함장님, 계측기가 오작동합니다! 중력값은 허수(虛數)로 나오고, 에너지 방출량은… 존재하지 않는 주파수에서 감지됩니다. 이 물체는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무시한다고?” 이지은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오랜 경험으로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해성호는 물체로부터 500미터 떨어진 지점에 정지했다. 스크린을 통해 바라보는 그것은 더욱더 압도적이었다. 그것은 어떤 문명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존재 자체가 우주를 왜곡시키고 있는 듯했다.

    “민준, 무언가 들리지 않나?” 박선우가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만.” 민준은 헤드셋을 확인했다. 모든 통신 채널은 깨끗했다.
    “아니, 외부 소리가 아니야… 마치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저음의 진동.” 선우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누르며 눈을 감았다. “마치… 수억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거대한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소리 같아.”
    이지은은 선우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종종 과학적인 흥분에 심취해 이상한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 자신도, 아주 미약하게, 아니면 착각일지도 모르게, 어떤 불쾌한 저음을 느끼는 듯했다. 그것은 뼈를 울리고, 영혼의 밑바닥을 간지럽히는 듯한 불길한 진동이었다.

    “함장님, 물체에서 미세한… 아니, 강력한 정신파가 감지됩니다!” 민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정확히 어떤 메시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의식에 직접적으로… 뭔가를 주입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홀로그램 스크린 속의 거대한 유물이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히 꿈틀거렸다. 검붉은 표면을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물결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해성호 전체에 저음의 진동이 더욱 강하게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착각이 아니었다. 승무원들의 몸 전체가, 해성호의 강철 골격 전체가, 알 수 없는 공포의 떨림에 파르르 진동했다.

    박선우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그 소리는 그의 몸속에서, 그의 뇌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환영처럼, 광활한 심연의 바다와 그 속에 잠겨 있는 거대한 존재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것의 존재가, 유물을 통해 그들의 의식 속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함장님… 우리… 뭘 깨운 것 같습니다.” 선우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렸다.
    이지은은 굳어진 표정으로 스크린을 노려봤다. 유물은 이제 정지해 있지 않았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인이 기지개를 켜듯,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회전과 함께, 모든 승무원의 귓가에 섬뜩한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그 언어는 인류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명확했다.

    *깨어났다.*
    *이제… 보게 될 것이다.*

    그 순간, 해성호의 모든 계기판이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선실의 조명이 깜빡이며 꺼져 나갔고, 어둠 속에서 오직 유물의 검붉은 그림자만이, 더욱 거대하고, 더욱 불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심연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 크툴루 신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저 망망한 심연의 한가운데서, 우주선 ‘해성호’는 미지(未知)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빛 한 줄기 없는 암흑은 가끔 멀리서 깜빡이는 이름 모를 성운의 잔광만이 존재를 알리는 침묵의 대지였다. 수십 광년을 가로지르는 여정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는 고독한 감옥과 같았지만, 해성호의 승무원들에게는 우주가 선사하는 경이로운 고요함이자, 때로는 숨 막히는 압박감이었다.

    “통신장교 김민준, 이상 없음. 모든 시스템 정상 작동 중입니다.”
    선실의 푸른빛 조명 아래, 통신장교 김민준이 습관적으로 보고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했지만, 깊은 우주가 주는 압도감 때문인지 미세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그는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홀로그램 패널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수천 가지 데이터를 확인했다. 이 광활한 어둠 속에서 인간의 흔적이란 해성호라는 작은 강철 덩어리뿐이었다.

    그때였다. 민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평소와 다른 그래프의 움직임이었다. 미약하지만 분명한, 그 어떤 패턴과도 일치하지 않는 에너지 파형.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데이터를 확대했다.

    “함장님, 박선우 대장님. 비상입니다. 설명 불가능한 에너지 파형이 감지되었습니다.”
    민준의 목소리에 일말의 당황이 섞였다. 그의 보고는 언제나 냉정했고, 비상이라는 단어를 쓰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뭐라고? 자세히 보고해.”
    함장 이지은의 침착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녀는 곧바로 상황실로 향했다. 해성호의 총책임자이자, 수많은 탐사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베테랑이었다.

    잠시 후, 상황실 문이 스르륵 열리며 이지은 함장과 박선우 탐사대장이 들어섰다. 선우는 해성호의 수석 과학자로, 늘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날카로운 눈빛의 소유자였다. 그의 백금발 머리카락은 언제나 단정하게 빗겨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미지의 것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민준, 상황.” 이지은 함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민준은 침을 한번 삼키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약 3AU 전방에서 감지된 파형입니다. 기존에 기록된 그 어떤 천체 물리적 현상이나 인공적인 에너지원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주파수는 불규칙하고, 강도는 매우 미약하지만, 지속적으로 발산되고 있습니다.”
    박선우는 민준이 가리키는 홀로그램 파형을 응시했다. 무질서하면서도 묘하게 질서 정연한 듯한, 모순적인 패턴이었다. “이건… 노이즈가 아니군요. 그렇다면 저 미약한 파형이 뭘 의미하는 거지? 함장님, 접근 허가해 주십시오.”
    이지은은 잠시 망설였다. 미지의 것에 대한 접근은 항상 위험을 동반했다. 하지만 인류는 미지를 탐험하며 여기까지 왔다. “최대 경계 태세. 모든 시스템 점검. 탐사선 ‘나래’ 출동 준비.”
    “예, 함장님!”

    해성호는 서서히 방향을 틀어 미지의 에너지원을 향해 나아갔다. 수천 톤에 달하는 거대한 함선이 검은 심해를 가르듯 나아가는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수 분, 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해성호의 전방 탐사 카메라에 한 점의 그림자가 잡혔다.

    “저게… 뭡니까?” 민준의 목소리에 숨 막히는 경외감이 섞여 있었다.
    홀로그램 스크린에 나타난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무언가였다. 거대한, 하지만 그 어떤 기하학적인 형태와도 일치하지 않는 덩어리. 마치 무수한 사면체가 불가능한 각도로 이어 붙여진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빛을 흡수하는 듯 검붉은 색조를 띠고 있었지만, 특정 각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색채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우주 공간에 부유하며, 마치 심연 자체가 응축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스캔해 봐. 재질, 크기, 모든 정보를.” 이지은 함장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경계심이 어렸다.
    선우의 얼굴은 이미 감탄과 공포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함장님, 계측기가 오작동합니다! 중력값은 허수(虛數)로 나오고, 에너지 방출량은… 존재하지 않는 주파수에서 감지됩니다. 이 물체는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무시한다고?” 이지은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오랜 경험으로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해성호는 물체로부터 500미터 떨어진 지점에 정지했다. 스크린을 통해 바라보는 그것은 더욱더 압도적이었다. 그것은 어떤 문명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존재 자체가 우주를 왜곡시키고 있는 듯했다.

    “민준, 무언가 들리지 않나?” 박선우가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만.” 민준은 헤드셋을 확인했다. 모든 통신 채널은 깨끗했다.
    “아니, 외부 소리가 아니야… 마치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저음의 진동.” 선우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누르며 눈을 감았다. “마치… 수억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거대한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소리 같아.”
    이지은은 선우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종종 과학적인 흥분에 심취해 이상한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 자신도, 아주 미약하게, 아니면 착각일지도 모르게, 어떤 불쾌한 저음을 느끼는 듯했다. 그것은 뼈를 울리고, 영혼의 밑바닥을 간지럽히는 듯한 불길한 진동이었다.

    “함장님, 물체에서 미세한… 아니, 강력한 정신파가 감지됩니다!” 민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정확히 어떤 메시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의식에 직접적으로… 뭔가를 주입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홀로그램 스크린 속의 거대한 유물이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히 꿈틀거렸다. 검붉은 표면을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물결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해성호 전체에 저음의 진동이 더욱 강하게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착각이 아니었다. 승무원들의 몸 전체가, 해성호의 강철 골격 전체가, 알 수 없는 공포의 떨림에 파르르 진동했다.

    박선우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그 소리는 그의 몸속에서, 그의 뇌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환영처럼, 광활한 심연의 바다와 그 속에 잠겨 있는 거대한 존재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것의 존재가, 유물을 통해 그들의 의식 속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함장님… 우리… 뭘 깨운 것 같습니다.” 선우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렸다.
    이지은은 굳어진 표정으로 스크린을 노려봤다. 유물은 이제 정지해 있지 않았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인이 기지개를 켜듯,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회전과 함께, 모든 승무원의 귓가에 섬뜩한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그 언어는 인류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명확했다.

    *깨어났다.*
    *이제… 보게 될 것이다.*

    그 순간, 해성호의 모든 계기판이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선실의 조명이 깜빡이며 꺼져 나갔고, 어둠 속에서 오직 유물의 검붉은 그림자만이, 더욱 거대하고, 더욱 불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심연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 크툴루 신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저 망망한 심연의 한가운데서, 우주선 ‘해성호’는 미지(未知)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빛 한 줄기 없는 암흑은 가끔 멀리서 깜빡이는 이름 모를 성운의 잔광만이 존재를 알리는 침묵의 대지였다. 수십 광년을 가로지르는 여정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는 고독한 감옥과 같았지만, 해성호의 승무원들에게는 우주가 선사하는 경이로운 고요함이자, 때로는 숨 막히는 압박감이었다.

    “통신장교 김민준, 이상 없음. 모든 시스템 정상 작동 중입니다.”
    선실의 푸른빛 조명 아래, 통신장교 김민준이 습관적으로 보고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했지만, 깊은 우주가 주는 압도감 때문인지 미세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그는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홀로그램 패널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수천 가지 데이터를 확인했다. 이 광활한 어둠 속에서 인간의 흔적이란 해성호라는 작은 강철 덩어리뿐이었다.

    그때였다. 민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평소와 다른 그래프의 움직임이었다. 미약하지만 분명한, 그 어떤 패턴과도 일치하지 않는 에너지 파형.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데이터를 확대했다.

    “함장님, 박선우 대장님. 비상입니다. 설명 불가능한 에너지 파형이 감지되었습니다.”
    민준의 목소리에 일말의 당황이 섞였다. 그의 보고는 언제나 냉정했고, 비상이라는 단어를 쓰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뭐라고? 자세히 보고해.”
    함장 이지은의 침착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녀는 곧바로 상황실로 향했다. 해성호의 총책임자이자, 수많은 탐사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베테랑이었다.

    잠시 후, 상황실 문이 스르륵 열리며 이지은 함장과 박선우 탐사대장이 들어섰다. 선우는 해성호의 수석 과학자로, 늘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날카로운 눈빛의 소유자였다. 그의 백금발 머리카락은 언제나 단정하게 빗겨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미지의 것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민준, 상황.” 이지은 함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민준은 침을 한번 삼키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약 3AU 전방에서 감지된 파형입니다. 기존에 기록된 그 어떤 천체 물리적 현상이나 인공적인 에너지원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주파수는 불규칙하고, 강도는 매우 미약하지만, 지속적으로 발산되고 있습니다.”
    박선우는 민준이 가리키는 홀로그램 파형을 응시했다. 무질서하면서도 묘하게 질서 정연한 듯한, 모순적인 패턴이었다. “이건… 노이즈가 아니군요. 그렇다면 저 미약한 파형이 뭘 의미하는 거지? 함장님, 접근 허가해 주십시오.”
    이지은은 잠시 망설였다. 미지의 것에 대한 접근은 항상 위험을 동반했다. 하지만 인류는 미지를 탐험하며 여기까지 왔다. “최대 경계 태세. 모든 시스템 점검. 탐사선 ‘나래’ 출동 준비.”
    “예, 함장님!”

    해성호는 서서히 방향을 틀어 미지의 에너지원을 향해 나아갔다. 수천 톤에 달하는 거대한 함선이 검은 심해를 가르듯 나아가는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수 분, 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해성호의 전방 탐사 카메라에 한 점의 그림자가 잡혔다.

    “저게… 뭡니까?” 민준의 목소리에 숨 막히는 경외감이 섞여 있었다.
    홀로그램 스크린에 나타난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무언가였다. 거대한, 하지만 그 어떤 기하학적인 형태와도 일치하지 않는 덩어리. 마치 무수한 사면체가 불가능한 각도로 이어 붙여진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빛을 흡수하는 듯 검붉은 색조를 띠고 있었지만, 특정 각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색채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우주 공간에 부유하며, 마치 심연 자체가 응축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스캔해 봐. 재질, 크기, 모든 정보를.” 이지은 함장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경계심이 어렸다.
    선우의 얼굴은 이미 감탄과 공포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함장님, 계측기가 오작동합니다! 중력값은 허수(虛數)로 나오고, 에너지 방출량은… 존재하지 않는 주파수에서 감지됩니다. 이 물체는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무시한다고?” 이지은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오랜 경험으로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해성호는 물체로부터 500미터 떨어진 지점에 정지했다. 스크린을 통해 바라보는 그것은 더욱더 압도적이었다. 그것은 어떤 문명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존재 자체가 우주를 왜곡시키고 있는 듯했다.

    “민준, 무언가 들리지 않나?” 박선우가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만.” 민준은 헤드셋을 확인했다. 모든 통신 채널은 깨끗했다.
    “아니, 외부 소리가 아니야… 마치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저음의 진동.” 선우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누르며 눈을 감았다. “마치… 수억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거대한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소리 같아.”
    이지은은 선우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종종 과학적인 흥분에 심취해 이상한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 자신도, 아주 미약하게, 아니면 착각일지도 모르게, 어떤 불쾌한 저음을 느끼는 듯했다. 그것은 뼈를 울리고, 영혼의 밑바닥을 간지럽히는 듯한 불길한 진동이었다.

    “함장님, 물체에서 미세한… 아니, 강력한 정신파가 감지됩니다!” 민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정확히 어떤 메시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의식에 직접적으로… 뭔가를 주입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홀로그램 스크린 속의 거대한 유물이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히 꿈틀거렸다. 검붉은 표면을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물결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해성호 전체에 저음의 진동이 더욱 강하게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착각이 아니었다. 승무원들의 몸 전체가, 해성호의 강철 골격 전체가, 알 수 없는 공포의 떨림에 파르르 진동했다.

    박선우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그 소리는 그의 몸속에서, 그의 뇌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환영처럼, 광활한 심연의 바다와 그 속에 잠겨 있는 거대한 존재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것의 존재가, 유물을 통해 그들의 의식 속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함장님… 우리… 뭘 깨운 것 같습니다.” 선우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렸다.
    이지은은 굳어진 표정으로 스크린을 노려봤다. 유물은 이제 정지해 있지 않았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인이 기지개를 켜듯,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회전과 함께, 모든 승무원의 귓가에 섬뜩한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그 언어는 인류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명확했다.

    *깨어났다.*
    *이제… 보게 될 것이다.*

    그 순간, 해성호의 모든 계기판이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선실의 조명이 깜빡이며 꺼져 나갔고, 어둠 속에서 오직 유물의 검붉은 그림자만이, 더욱 거대하고, 더욱 불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심연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 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첫 번째 장: 낡은 시간의 파편

    김현우는 오늘따라 유난히 쾨쾨한 냄새가 진동하는 ‘만물상’의 지하실로 내려섰다. 낡고 삐걱이는 나무 계단을 밟을 때마다 먼지가 훅 끼쳐 올라 코를 간질였다. 코튼 마스크가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런 사치는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헐렁한 티셔츠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리는 게 전부였다.

    “현우야, 저 안쪽 구석에 잔뜩 쌓인 것들 좀 정리해라! 먼지 털고, 분류하고. 뭘 그렇게 꾸물거려!”

    2층에서 들려오는 가게 주인 박 씨의 우렁찬 목소리가 지하실의 습한 공기를 가르고 울렸다. 현우는 한숨을 삼켰다. 명색이 고고학을 전공한다고 자부했지만, 현실은 그저 낡은 물건들이 가득한 먼지 쌓인 지하실을 청소하는 알바생 신세였다. 그것도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박봉으로.

    어두운 지하실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낡은 가구들, 깨진 도자기 조각들,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고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이런 물건들 사이에서 한때 빛나던 역사의 조각을 찾아내려는 미련한 꿈을 꾸곤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저 버려진 쓰레기였다.

    손전등을 켜자 희미한 불빛이 춤추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현우는 가장 깊숙한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은 가게 주인이 ‘손대지 마라’고 몇 번이나 경고했던 곳이었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얼기설기 얽혀 마치 거대한 유적 더미 같았다.

    “어휴, 이건 또 뭐야.”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낡은 천 조각들을 치워내기 시작했다.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고, 오래된 나무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던 중, 그의 손끝에 단단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천 조각들을 헤치자, 빛바랜 검은색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나무 상자가 아니었다. 표면에는 미끈하고 차가운 돌이 박혀 있었고, 그 돌 위로는 기이한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현우는 순간 숨을 들이켰다. 흔히 보던 문양이 아니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하지만 묘하게 눈길을 끄는 이질적인 형태였다. 흡사 심해의 생물들이 꿈틀거리는 듯한, 혹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촉수가 뻗어 나오는 듯한 그런 문양이었다.

    호기심이 먼저였다. 그는 상자를 꺼내 들었다. 예상보다 묵직했다. 먼지를 닦아내자 문양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손끝으로 문양을 따라 쓸어보니, 이상하게도 오싹한 냉기가 손가락 끝에서부터 팔 전체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차가운 기운은 이내 심장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현우는 고개를 저으며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잠금장치는 따로 없었지만, 틈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맞물려 있었다. 그는 문양들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폈다. 유난히 눈에 띄는 하나의 문양이 있었다. 다른 문양들보다 약간 더 깊게 새겨져 있었고, 마치 눈처럼 생긴 형태였다.

    그가 무심코 그 눈 모양의 문양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순간, 상자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서 ‘딸깍’ 하는 작은 소리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울렸다. 상자 뚜껑이 아주 조금, 벌어진 것이다. 틈새로 미약한 어둠이 스며 나왔다. 그 어둠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끈적하고 깊은 무언가가 상자 안에서 일렁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현우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막연한 공포와 알 수 없는 매혹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는 손가락을 틈새에 넣어 뚜껑을 들어 올렸다.

    상자 안은 비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우의 시야는 이상하게 흐려졌다. 지하실의 어둠이 더욱 짙어진 것 같았다. 동시에 그의 귀에는 쉬익, 쉬익 하는 낮은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해변에서 파도가 모래를 긁는 소리 같기도 했고,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숨 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속삭임은 점점 커졌다.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불쾌한 진동이 느껴졌다. 눈앞의 공기가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희미하게, 상자 안쪽에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형체가 없었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이 농축된 액체 같기도 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안개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현우의 눈은 상자 안의 ‘무언가’와 마주쳤다.

    그것은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눈동자였다. 핏줄이 불거진 흰자위, 칠흑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공, 그리고 그 안에서 번개처럼 뻗어 나오는 수많은 촉수들… 아니, 촉수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기이했다. 그것들은 살아있는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정지된 그림처럼 느껴졌다. 현우의 뇌는 그 형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존재하는 것이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모순적인 이미지였다.

    압도적인 공포가 그의 전신을 얼어붙게 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뇌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이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본능적인 경고음이 울렸다. 그 형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이성은 한 조각씩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았다.

    쉬익, 쉬익. 속삭임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것은 더 이상 소리가 아니었다. 현우의 생각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박혀드는 목소리였다.

    *…느껴지는가…?*
    *…나의 힘이… 나의 존재가…?*

    현우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손에서 상자를 떨어뜨리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눈앞의 환영은 더욱 선명해졌다. 거대한 눈동자 안에서 우주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모습, 그리고 그 너머의 헤아릴 수 없는 공허함이 그의 정신을 좀먹는 듯했다.

    그리고 환영 속에서, 거대한 눈동자 너머로 알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가 아득하게 일렁였다. 형용할 수 없는 그 크기와 존재감에 현우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크윽!”

    현우는 무심코 상자를 떨어뜨렸다. 낡은 나무 바닥에 부딪히며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속삭임과 섬뜩한 환영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하실은 다시 쾨쾨한 냄새와 어둠으로 가득했다. 방금 전까지 눈앞에 펼쳐졌던 광경은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현우는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손발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뭐였지? 대체 뭐였지 방금…?’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주워 들었다. 뚜껑은 다시 완벽하게 닫혀 있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그저 오래된 상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상자의 검은 돌에 새겨진 눈 모양의 문양에 고정되었다. 그 문양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현우는 상자를 품에 안았다.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의 끔찍한 환영이 잔상처럼 아른거렸다. 이성을 거부하는 비논리적인 공포. 동시에,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대한 감각이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상자가, 그 지하실의 끔찍한 경험이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현우야! 다 했으면 올라와라! 손님 왔다!”

    박 씨의 목소리가 다시 지하실을 울렸다. 현우는 상자를 품에 꼭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라면 대충 마무리하고 올라갔겠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는 상자를 품에 숨긴 채, 닫히지 않는 궁금증과 함께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지하실의 어둠을 벗어나자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만물상은 이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낡은 물건들이 마치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현우는 알 수 없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이 상자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알 수 없는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설령 그 끝이 그의 이성과 영혼을 파멸로 이끌지라도. 그는 이미, 금지된 지식의 첫 조각을 삼켜버린 뒤였다.

  • 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첫 번째 장: 낡은 시간의 파편

    김현우는 오늘따라 유난히 쾨쾨한 냄새가 진동하는 ‘만물상’의 지하실로 내려섰다. 낡고 삐걱이는 나무 계단을 밟을 때마다 먼지가 훅 끼쳐 올라 코를 간질였다. 코튼 마스크가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런 사치는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헐렁한 티셔츠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리는 게 전부였다.

    “현우야, 저 안쪽 구석에 잔뜩 쌓인 것들 좀 정리해라! 먼지 털고, 분류하고. 뭘 그렇게 꾸물거려!”

    2층에서 들려오는 가게 주인 박 씨의 우렁찬 목소리가 지하실의 습한 공기를 가르고 울렸다. 현우는 한숨을 삼켰다. 명색이 고고학을 전공한다고 자부했지만, 현실은 그저 낡은 물건들이 가득한 먼지 쌓인 지하실을 청소하는 알바생 신세였다. 그것도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박봉으로.

    어두운 지하실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낡은 가구들, 깨진 도자기 조각들,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고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이런 물건들 사이에서 한때 빛나던 역사의 조각을 찾아내려는 미련한 꿈을 꾸곤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저 버려진 쓰레기였다.

    손전등을 켜자 희미한 불빛이 춤추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현우는 가장 깊숙한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은 가게 주인이 ‘손대지 마라’고 몇 번이나 경고했던 곳이었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얼기설기 얽혀 마치 거대한 유적 더미 같았다.

    “어휴, 이건 또 뭐야.”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낡은 천 조각들을 치워내기 시작했다.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고, 오래된 나무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던 중, 그의 손끝에 단단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천 조각들을 헤치자, 빛바랜 검은색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나무 상자가 아니었다. 표면에는 미끈하고 차가운 돌이 박혀 있었고, 그 돌 위로는 기이한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현우는 순간 숨을 들이켰다. 흔히 보던 문양이 아니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하지만 묘하게 눈길을 끄는 이질적인 형태였다. 흡사 심해의 생물들이 꿈틀거리는 듯한, 혹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촉수가 뻗어 나오는 듯한 그런 문양이었다.

    호기심이 먼저였다. 그는 상자를 꺼내 들었다. 예상보다 묵직했다. 먼지를 닦아내자 문양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손끝으로 문양을 따라 쓸어보니, 이상하게도 오싹한 냉기가 손가락 끝에서부터 팔 전체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차가운 기운은 이내 심장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현우는 고개를 저으며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잠금장치는 따로 없었지만, 틈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맞물려 있었다. 그는 문양들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폈다. 유난히 눈에 띄는 하나의 문양이 있었다. 다른 문양들보다 약간 더 깊게 새겨져 있었고, 마치 눈처럼 생긴 형태였다.

    그가 무심코 그 눈 모양의 문양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순간, 상자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서 ‘딸깍’ 하는 작은 소리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울렸다. 상자 뚜껑이 아주 조금, 벌어진 것이다. 틈새로 미약한 어둠이 스며 나왔다. 그 어둠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끈적하고 깊은 무언가가 상자 안에서 일렁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현우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막연한 공포와 알 수 없는 매혹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는 손가락을 틈새에 넣어 뚜껑을 들어 올렸다.

    상자 안은 비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우의 시야는 이상하게 흐려졌다. 지하실의 어둠이 더욱 짙어진 것 같았다. 동시에 그의 귀에는 쉬익, 쉬익 하는 낮은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해변에서 파도가 모래를 긁는 소리 같기도 했고,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숨 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속삭임은 점점 커졌다.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불쾌한 진동이 느껴졌다. 눈앞의 공기가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희미하게, 상자 안쪽에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형체가 없었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이 농축된 액체 같기도 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안개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현우의 눈은 상자 안의 ‘무언가’와 마주쳤다.

    그것은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눈동자였다. 핏줄이 불거진 흰자위, 칠흑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공, 그리고 그 안에서 번개처럼 뻗어 나오는 수많은 촉수들… 아니, 촉수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기이했다. 그것들은 살아있는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정지된 그림처럼 느껴졌다. 현우의 뇌는 그 형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존재하는 것이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모순적인 이미지였다.

    압도적인 공포가 그의 전신을 얼어붙게 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뇌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이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본능적인 경고음이 울렸다. 그 형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이성은 한 조각씩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았다.

    쉬익, 쉬익. 속삭임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것은 더 이상 소리가 아니었다. 현우의 생각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박혀드는 목소리였다.

    *…느껴지는가…?*
    *…나의 힘이… 나의 존재가…?*

    현우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손에서 상자를 떨어뜨리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눈앞의 환영은 더욱 선명해졌다. 거대한 눈동자 안에서 우주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모습, 그리고 그 너머의 헤아릴 수 없는 공허함이 그의 정신을 좀먹는 듯했다.

    그리고 환영 속에서, 거대한 눈동자 너머로 알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가 아득하게 일렁였다. 형용할 수 없는 그 크기와 존재감에 현우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크윽!”

    현우는 무심코 상자를 떨어뜨렸다. 낡은 나무 바닥에 부딪히며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속삭임과 섬뜩한 환영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하실은 다시 쾨쾨한 냄새와 어둠으로 가득했다. 방금 전까지 눈앞에 펼쳐졌던 광경은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현우는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손발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뭐였지? 대체 뭐였지 방금…?’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주워 들었다. 뚜껑은 다시 완벽하게 닫혀 있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그저 오래된 상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상자의 검은 돌에 새겨진 눈 모양의 문양에 고정되었다. 그 문양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현우는 상자를 품에 안았다.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의 끔찍한 환영이 잔상처럼 아른거렸다. 이성을 거부하는 비논리적인 공포. 동시에,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대한 감각이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상자가, 그 지하실의 끔찍한 경험이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현우야! 다 했으면 올라와라! 손님 왔다!”

    박 씨의 목소리가 다시 지하실을 울렸다. 현우는 상자를 품에 꼭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라면 대충 마무리하고 올라갔겠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는 상자를 품에 숨긴 채, 닫히지 않는 궁금증과 함께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지하실의 어둠을 벗어나자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만물상은 이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낡은 물건들이 마치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현우는 알 수 없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이 상자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알 수 없는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설령 그 끝이 그의 이성과 영혼을 파멸로 이끌지라도. 그는 이미, 금지된 지식의 첫 조각을 삼켜버린 뒤였다.

  • 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첫 번째 장: 낡은 시간의 파편

    김현우는 오늘따라 유난히 쾨쾨한 냄새가 진동하는 ‘만물상’의 지하실로 내려섰다. 낡고 삐걱이는 나무 계단을 밟을 때마다 먼지가 훅 끼쳐 올라 코를 간질였다. 코튼 마스크가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런 사치는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헐렁한 티셔츠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리는 게 전부였다.

    “현우야, 저 안쪽 구석에 잔뜩 쌓인 것들 좀 정리해라! 먼지 털고, 분류하고. 뭘 그렇게 꾸물거려!”

    2층에서 들려오는 가게 주인 박 씨의 우렁찬 목소리가 지하실의 습한 공기를 가르고 울렸다. 현우는 한숨을 삼켰다. 명색이 고고학을 전공한다고 자부했지만, 현실은 그저 낡은 물건들이 가득한 먼지 쌓인 지하실을 청소하는 알바생 신세였다. 그것도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박봉으로.

    어두운 지하실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낡은 가구들, 깨진 도자기 조각들,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고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이런 물건들 사이에서 한때 빛나던 역사의 조각을 찾아내려는 미련한 꿈을 꾸곤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저 버려진 쓰레기였다.

    손전등을 켜자 희미한 불빛이 춤추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현우는 가장 깊숙한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은 가게 주인이 ‘손대지 마라’고 몇 번이나 경고했던 곳이었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얼기설기 얽혀 마치 거대한 유적 더미 같았다.

    “어휴, 이건 또 뭐야.”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낡은 천 조각들을 치워내기 시작했다.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고, 오래된 나무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던 중, 그의 손끝에 단단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천 조각들을 헤치자, 빛바랜 검은색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나무 상자가 아니었다. 표면에는 미끈하고 차가운 돌이 박혀 있었고, 그 돌 위로는 기이한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현우는 순간 숨을 들이켰다. 흔히 보던 문양이 아니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하지만 묘하게 눈길을 끄는 이질적인 형태였다. 흡사 심해의 생물들이 꿈틀거리는 듯한, 혹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촉수가 뻗어 나오는 듯한 그런 문양이었다.

    호기심이 먼저였다. 그는 상자를 꺼내 들었다. 예상보다 묵직했다. 먼지를 닦아내자 문양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손끝으로 문양을 따라 쓸어보니, 이상하게도 오싹한 냉기가 손가락 끝에서부터 팔 전체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차가운 기운은 이내 심장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현우는 고개를 저으며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잠금장치는 따로 없었지만, 틈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맞물려 있었다. 그는 문양들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폈다. 유난히 눈에 띄는 하나의 문양이 있었다. 다른 문양들보다 약간 더 깊게 새겨져 있었고, 마치 눈처럼 생긴 형태였다.

    그가 무심코 그 눈 모양의 문양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순간, 상자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서 ‘딸깍’ 하는 작은 소리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울렸다. 상자 뚜껑이 아주 조금, 벌어진 것이다. 틈새로 미약한 어둠이 스며 나왔다. 그 어둠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끈적하고 깊은 무언가가 상자 안에서 일렁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현우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막연한 공포와 알 수 없는 매혹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는 손가락을 틈새에 넣어 뚜껑을 들어 올렸다.

    상자 안은 비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우의 시야는 이상하게 흐려졌다. 지하실의 어둠이 더욱 짙어진 것 같았다. 동시에 그의 귀에는 쉬익, 쉬익 하는 낮은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해변에서 파도가 모래를 긁는 소리 같기도 했고,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숨 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속삭임은 점점 커졌다.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불쾌한 진동이 느껴졌다. 눈앞의 공기가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희미하게, 상자 안쪽에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형체가 없었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이 농축된 액체 같기도 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안개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현우의 눈은 상자 안의 ‘무언가’와 마주쳤다.

    그것은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눈동자였다. 핏줄이 불거진 흰자위, 칠흑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공, 그리고 그 안에서 번개처럼 뻗어 나오는 수많은 촉수들… 아니, 촉수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기이했다. 그것들은 살아있는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정지된 그림처럼 느껴졌다. 현우의 뇌는 그 형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존재하는 것이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모순적인 이미지였다.

    압도적인 공포가 그의 전신을 얼어붙게 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뇌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이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본능적인 경고음이 울렸다. 그 형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이성은 한 조각씩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았다.

    쉬익, 쉬익. 속삭임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것은 더 이상 소리가 아니었다. 현우의 생각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박혀드는 목소리였다.

    *…느껴지는가…?*
    *…나의 힘이… 나의 존재가…?*

    현우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손에서 상자를 떨어뜨리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눈앞의 환영은 더욱 선명해졌다. 거대한 눈동자 안에서 우주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모습, 그리고 그 너머의 헤아릴 수 없는 공허함이 그의 정신을 좀먹는 듯했다.

    그리고 환영 속에서, 거대한 눈동자 너머로 알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가 아득하게 일렁였다. 형용할 수 없는 그 크기와 존재감에 현우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크윽!”

    현우는 무심코 상자를 떨어뜨렸다. 낡은 나무 바닥에 부딪히며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속삭임과 섬뜩한 환영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하실은 다시 쾨쾨한 냄새와 어둠으로 가득했다. 방금 전까지 눈앞에 펼쳐졌던 광경은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현우는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손발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뭐였지? 대체 뭐였지 방금…?’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주워 들었다. 뚜껑은 다시 완벽하게 닫혀 있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그저 오래된 상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상자의 검은 돌에 새겨진 눈 모양의 문양에 고정되었다. 그 문양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현우는 상자를 품에 안았다.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의 끔찍한 환영이 잔상처럼 아른거렸다. 이성을 거부하는 비논리적인 공포. 동시에,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대한 감각이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상자가, 그 지하실의 끔찍한 경험이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현우야! 다 했으면 올라와라! 손님 왔다!”

    박 씨의 목소리가 다시 지하실을 울렸다. 현우는 상자를 품에 꼭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라면 대충 마무리하고 올라갔겠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는 상자를 품에 숨긴 채, 닫히지 않는 궁금증과 함께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지하실의 어둠을 벗어나자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만물상은 이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낡은 물건들이 마치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현우는 알 수 없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이 상자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알 수 없는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설령 그 끝이 그의 이성과 영혼을 파멸로 이끌지라도. 그는 이미, 금지된 지식의 첫 조각을 삼켜버린 뒤였다.

  • 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첫 번째 장: 낡은 시간의 파편

    김현우는 오늘따라 유난히 쾨쾨한 냄새가 진동하는 ‘만물상’의 지하실로 내려섰다. 낡고 삐걱이는 나무 계단을 밟을 때마다 먼지가 훅 끼쳐 올라 코를 간질였다. 코튼 마스크가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런 사치는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헐렁한 티셔츠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리는 게 전부였다.

    “현우야, 저 안쪽 구석에 잔뜩 쌓인 것들 좀 정리해라! 먼지 털고, 분류하고. 뭘 그렇게 꾸물거려!”

    2층에서 들려오는 가게 주인 박 씨의 우렁찬 목소리가 지하실의 습한 공기를 가르고 울렸다. 현우는 한숨을 삼켰다. 명색이 고고학을 전공한다고 자부했지만, 현실은 그저 낡은 물건들이 가득한 먼지 쌓인 지하실을 청소하는 알바생 신세였다. 그것도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박봉으로.

    어두운 지하실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낡은 가구들, 깨진 도자기 조각들,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고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이런 물건들 사이에서 한때 빛나던 역사의 조각을 찾아내려는 미련한 꿈을 꾸곤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저 버려진 쓰레기였다.

    손전등을 켜자 희미한 불빛이 춤추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현우는 가장 깊숙한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은 가게 주인이 ‘손대지 마라’고 몇 번이나 경고했던 곳이었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얼기설기 얽혀 마치 거대한 유적 더미 같았다.

    “어휴, 이건 또 뭐야.”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낡은 천 조각들을 치워내기 시작했다.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고, 오래된 나무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던 중, 그의 손끝에 단단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천 조각들을 헤치자, 빛바랜 검은색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나무 상자가 아니었다. 표면에는 미끈하고 차가운 돌이 박혀 있었고, 그 돌 위로는 기이한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현우는 순간 숨을 들이켰다. 흔히 보던 문양이 아니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하지만 묘하게 눈길을 끄는 이질적인 형태였다. 흡사 심해의 생물들이 꿈틀거리는 듯한, 혹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촉수가 뻗어 나오는 듯한 그런 문양이었다.

    호기심이 먼저였다. 그는 상자를 꺼내 들었다. 예상보다 묵직했다. 먼지를 닦아내자 문양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손끝으로 문양을 따라 쓸어보니, 이상하게도 오싹한 냉기가 손가락 끝에서부터 팔 전체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차가운 기운은 이내 심장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현우는 고개를 저으며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잠금장치는 따로 없었지만, 틈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맞물려 있었다. 그는 문양들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폈다. 유난히 눈에 띄는 하나의 문양이 있었다. 다른 문양들보다 약간 더 깊게 새겨져 있었고, 마치 눈처럼 생긴 형태였다.

    그가 무심코 그 눈 모양의 문양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순간, 상자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서 ‘딸깍’ 하는 작은 소리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울렸다. 상자 뚜껑이 아주 조금, 벌어진 것이다. 틈새로 미약한 어둠이 스며 나왔다. 그 어둠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끈적하고 깊은 무언가가 상자 안에서 일렁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현우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막연한 공포와 알 수 없는 매혹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는 손가락을 틈새에 넣어 뚜껑을 들어 올렸다.

    상자 안은 비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우의 시야는 이상하게 흐려졌다. 지하실의 어둠이 더욱 짙어진 것 같았다. 동시에 그의 귀에는 쉬익, 쉬익 하는 낮은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해변에서 파도가 모래를 긁는 소리 같기도 했고,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숨 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속삭임은 점점 커졌다.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불쾌한 진동이 느껴졌다. 눈앞의 공기가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희미하게, 상자 안쪽에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형체가 없었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이 농축된 액체 같기도 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안개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현우의 눈은 상자 안의 ‘무언가’와 마주쳤다.

    그것은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눈동자였다. 핏줄이 불거진 흰자위, 칠흑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공, 그리고 그 안에서 번개처럼 뻗어 나오는 수많은 촉수들… 아니, 촉수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기이했다. 그것들은 살아있는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정지된 그림처럼 느껴졌다. 현우의 뇌는 그 형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존재하는 것이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모순적인 이미지였다.

    압도적인 공포가 그의 전신을 얼어붙게 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뇌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이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본능적인 경고음이 울렸다. 그 형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이성은 한 조각씩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았다.

    쉬익, 쉬익. 속삭임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것은 더 이상 소리가 아니었다. 현우의 생각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박혀드는 목소리였다.

    *…느껴지는가…?*
    *…나의 힘이… 나의 존재가…?*

    현우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손에서 상자를 떨어뜨리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눈앞의 환영은 더욱 선명해졌다. 거대한 눈동자 안에서 우주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모습, 그리고 그 너머의 헤아릴 수 없는 공허함이 그의 정신을 좀먹는 듯했다.

    그리고 환영 속에서, 거대한 눈동자 너머로 알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가 아득하게 일렁였다. 형용할 수 없는 그 크기와 존재감에 현우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크윽!”

    현우는 무심코 상자를 떨어뜨렸다. 낡은 나무 바닥에 부딪히며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속삭임과 섬뜩한 환영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하실은 다시 쾨쾨한 냄새와 어둠으로 가득했다. 방금 전까지 눈앞에 펼쳐졌던 광경은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현우는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손발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뭐였지? 대체 뭐였지 방금…?’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주워 들었다. 뚜껑은 다시 완벽하게 닫혀 있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그저 오래된 상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상자의 검은 돌에 새겨진 눈 모양의 문양에 고정되었다. 그 문양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현우는 상자를 품에 안았다.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의 끔찍한 환영이 잔상처럼 아른거렸다. 이성을 거부하는 비논리적인 공포. 동시에,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대한 감각이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상자가, 그 지하실의 끔찍한 경험이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현우야! 다 했으면 올라와라! 손님 왔다!”

    박 씨의 목소리가 다시 지하실을 울렸다. 현우는 상자를 품에 꼭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라면 대충 마무리하고 올라갔겠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는 상자를 품에 숨긴 채, 닫히지 않는 궁금증과 함께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지하실의 어둠을 벗어나자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만물상은 이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낡은 물건들이 마치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현우는 알 수 없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이 상자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알 수 없는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설령 그 끝이 그의 이성과 영혼을 파멸로 이끌지라도. 그는 이미, 금지된 지식의 첫 조각을 삼켜버린 뒤였다.

  • 스팀펑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자욱한 증기와 기계 기름 냄새가 강철심장 도시의 허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금속음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합창은 이곳의 모든 존재에게 심장 박동과도 같았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굴뚝들은 끊임없이 검은 연기를 뿜어냈고, 햇빛은 그 연기에 가려져 늘 희뿌연 색이었다. 공중을 가로지르는 비행선들의 그림자가 지혁의 작업실 창문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혁은 낡은 방진안경을 고쳐 쓰고, 콧잔등에 묻은 기름때를 소매로 쓱 닦아냈다. 그의 손끝은 언제나 기름과 납땜 자국으로 거칠었다. 테이블 위에는 온갖 종류의 부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녹슨 스프링, 금이 간 렌즈, 크기가 제각각인 황동 너트와 볼트, 그리고 정체불명의 회로 기판 조각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지혁에게는 보물이었다.

    오늘 그의 목표는 폐기 직전의 고물상에서 겨우 얻어온 ‘유물’이었다. ‘유물’이라고 불린 이유는 아무도 그 기계의 용도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시계의 잔해 같기도 했고, 복잡한 항해 장비 같기도 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황동과 흑철이 뒤섞인 외관은 아름다웠지만, 내부의 동력원은 완전히 멈춰 있었다.

    “흐음… 이놈은 대체 뭘까.”

    지혁은 작은 확대경을 눈에 대고 기계의 가장 깊숙한 곳을 들여다봤다. 겉으로 보이는 복잡한 기계장치들은 꽤나 익숙한 방식이었지만, 내부로 들어갈수록 알 수 없는 구조가 나타났다. 특히 그의 시선을 끈 것은, 중앙을 지탱하는 거대한 축 주변에 위치한 미지의 공간이었다. 설계도에도 없는,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듯한 빈 공간.

    “이게… 빈 공간은 아닐 텐데.”

    얇고 긴 기계 팔을 조심스럽게 밀어 넣어 틈새를 탐색했다. 손끝에 금속과는 다른,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감촉이 닿았다. 뭔가에 걸린 듯 기계 팔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지혁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그는 작업대에서 가장 정교한 만능 드라이버를 집어 들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외관의 나사 몇 개가 풀리고, 고정 장치 하나가 툭하고 떨어져 나갔다. 묵직한 황동 덮개 하나가 마침내 제자리를 이탈하며 안쪽의 검은 심연을 드러냈다.

    먼지가 자욱한 그 공간 속에서, 지혁은 손전등을 비췄다. 그리고 그 순간, 숨을 들이켰다.

    그곳에는 아무런 설명도 붙어 있지 않은, 오직 검은색 돌 조각 하나가 박혀 있었다. 돌이라고 하기엔 표면이 너무나 매끄러웠고, 그 위에 새겨진 문양은 기계적이라기보다는 생명체 같았다. 엉켜 있는 실타래처럼, 혹은 오래된 넝쿨처럼 보이는 문양들이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반짝였다. 마치 우주를 담아낸 듯한 깊이를 가진, 알 수 없는 검은 각인석이었다. 주변의 모든 기계 부품과는 이질적인 존재감을 내뿜으며, 수천 년 된 비밀을 간직한 채 그곳에 박혀 있는 듯했다.

    지혁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끝이 각인석의 차가운 표면에 닿는 순간, 작업실 안의 모든 것이 잠시 멈춘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귓가에 울리던 톱니바퀴 소리가 아득해지고, 창밖의 비행선 엔진 소리마저 희미해졌다. 정전이라도 된 듯, 지혁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던 가스등이 푸르스름하게 깜빡이더니, 이내 강렬한 섬광과 함께 터질 듯 밝아졌다. 동시에 그의 손안에 있던 검은 각인석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콰아앙!

    멀리서 천둥이라도 친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작업실 한편에 세워져 있던, 아직 미완성인 자동 인형의 팔이 뚝 떨어져 나가는 소리였다. 지혁은 놀라서 손을 떼었다. 각인석의 푸른빛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가스등은 다시 희뿌연 본래의 밝기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듯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각인석을 다시 만져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방금 자신이 경험한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게… 대체….”

    지혁의 눈은 검은 각인석에 고정되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한 질문들로 가득 찼다. 이 돌은 무엇인가? 이 기계는 왜 이것을 숨겨두었는가? 그리고 방금 일어난 현상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는 각인석을 떼어내기 위해 다시 조심스럽게 도구를 사용했다. 마침내 녀석이 고정 장치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순간, 각인석은 그의 손바닥 위에서 예상치 못한 무게감으로 존재를 드러냈다. 따뜻하고, 미세하게 진동하는 듯한 느낌. 마치 살아있는 심장을 쥐고 있는 것 같았다.

    창밖의 연기는 더욱 짙어졌고, 강철심장 도시의 소음은 다시금 귓가를 채웠다. 하지만 지혁에게는 이제 이 모든 기계 소음조차 다르게 들렸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각인석이, 그 모든 것들을 초월하는 고대의 비밀을 속삭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거대한 미지의 문을 열었음을, 그리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음을 직감했다.

    어쩌면 이 작은 돌 하나가, 강철과 증기로 이루어진 이 세상의 질서를 뒤흔들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 스팀펑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자욱한 증기와 기계 기름 냄새가 강철심장 도시의 허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금속음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합창은 이곳의 모든 존재에게 심장 박동과도 같았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굴뚝들은 끊임없이 검은 연기를 뿜어냈고, 햇빛은 그 연기에 가려져 늘 희뿌연 색이었다. 공중을 가로지르는 비행선들의 그림자가 지혁의 작업실 창문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혁은 낡은 방진안경을 고쳐 쓰고, 콧잔등에 묻은 기름때를 소매로 쓱 닦아냈다. 그의 손끝은 언제나 기름과 납땜 자국으로 거칠었다. 테이블 위에는 온갖 종류의 부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녹슨 스프링, 금이 간 렌즈, 크기가 제각각인 황동 너트와 볼트, 그리고 정체불명의 회로 기판 조각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지혁에게는 보물이었다.

    오늘 그의 목표는 폐기 직전의 고물상에서 겨우 얻어온 ‘유물’이었다. ‘유물’이라고 불린 이유는 아무도 그 기계의 용도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시계의 잔해 같기도 했고, 복잡한 항해 장비 같기도 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황동과 흑철이 뒤섞인 외관은 아름다웠지만, 내부의 동력원은 완전히 멈춰 있었다.

    “흐음… 이놈은 대체 뭘까.”

    지혁은 작은 확대경을 눈에 대고 기계의 가장 깊숙한 곳을 들여다봤다. 겉으로 보이는 복잡한 기계장치들은 꽤나 익숙한 방식이었지만, 내부로 들어갈수록 알 수 없는 구조가 나타났다. 특히 그의 시선을 끈 것은, 중앙을 지탱하는 거대한 축 주변에 위치한 미지의 공간이었다. 설계도에도 없는,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듯한 빈 공간.

    “이게… 빈 공간은 아닐 텐데.”

    얇고 긴 기계 팔을 조심스럽게 밀어 넣어 틈새를 탐색했다. 손끝에 금속과는 다른,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감촉이 닿았다. 뭔가에 걸린 듯 기계 팔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지혁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그는 작업대에서 가장 정교한 만능 드라이버를 집어 들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외관의 나사 몇 개가 풀리고, 고정 장치 하나가 툭하고 떨어져 나갔다. 묵직한 황동 덮개 하나가 마침내 제자리를 이탈하며 안쪽의 검은 심연을 드러냈다.

    먼지가 자욱한 그 공간 속에서, 지혁은 손전등을 비췄다. 그리고 그 순간, 숨을 들이켰다.

    그곳에는 아무런 설명도 붙어 있지 않은, 오직 검은색 돌 조각 하나가 박혀 있었다. 돌이라고 하기엔 표면이 너무나 매끄러웠고, 그 위에 새겨진 문양은 기계적이라기보다는 생명체 같았다. 엉켜 있는 실타래처럼, 혹은 오래된 넝쿨처럼 보이는 문양들이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반짝였다. 마치 우주를 담아낸 듯한 깊이를 가진, 알 수 없는 검은 각인석이었다. 주변의 모든 기계 부품과는 이질적인 존재감을 내뿜으며, 수천 년 된 비밀을 간직한 채 그곳에 박혀 있는 듯했다.

    지혁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끝이 각인석의 차가운 표면에 닿는 순간, 작업실 안의 모든 것이 잠시 멈춘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귓가에 울리던 톱니바퀴 소리가 아득해지고, 창밖의 비행선 엔진 소리마저 희미해졌다. 정전이라도 된 듯, 지혁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던 가스등이 푸르스름하게 깜빡이더니, 이내 강렬한 섬광과 함께 터질 듯 밝아졌다. 동시에 그의 손안에 있던 검은 각인석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콰아앙!

    멀리서 천둥이라도 친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작업실 한편에 세워져 있던, 아직 미완성인 자동 인형의 팔이 뚝 떨어져 나가는 소리였다. 지혁은 놀라서 손을 떼었다. 각인석의 푸른빛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가스등은 다시 희뿌연 본래의 밝기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듯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각인석을 다시 만져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방금 자신이 경험한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게… 대체….”

    지혁의 눈은 검은 각인석에 고정되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한 질문들로 가득 찼다. 이 돌은 무엇인가? 이 기계는 왜 이것을 숨겨두었는가? 그리고 방금 일어난 현상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는 각인석을 떼어내기 위해 다시 조심스럽게 도구를 사용했다. 마침내 녀석이 고정 장치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순간, 각인석은 그의 손바닥 위에서 예상치 못한 무게감으로 존재를 드러냈다. 따뜻하고, 미세하게 진동하는 듯한 느낌. 마치 살아있는 심장을 쥐고 있는 것 같았다.

    창밖의 연기는 더욱 짙어졌고, 강철심장 도시의 소음은 다시금 귓가를 채웠다. 하지만 지혁에게는 이제 이 모든 기계 소음조차 다르게 들렸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각인석이, 그 모든 것들을 초월하는 고대의 비밀을 속삭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거대한 미지의 문을 열었음을, 그리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음을 직감했다.

    어쩌면 이 작은 돌 하나가, 강철과 증기로 이루어진 이 세상의 질서를 뒤흔들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