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Original Stories

  • 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챕터 1: 검은 태양의 노래**

    우주선 ‘청룡호’는 끝없는 심연을 가르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항성들의 희미한 빛만이 먼 옛날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수억 광년의 여정, 인류가 닿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광막한 우주에서 청룡호는 마치 거대한 심해어처럼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함교는 고요했다. 메인 스크린에 비치는 것은 오직 별들의 강물과, 간간이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성운의 잔해뿐이었다. 길고 지루한 탐사 항해 중 찾아온 일상적인 평화였다.

    “함장님, 6시 방향에 에너지 이상 감지.”

    정적을 깬 것은 과학 담당 부관 이수연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안경 너머로 푸른빛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크린 위, 기존의 물리 법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패턴의 에너지 파동이 명멸하고 있었다.

    김하준 함장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은 수연이 가리킨 지점에 고정되었다. “이상 패턴? 자세한 정보는?”

    “분석 중입니다만… 저희 데이터베이스에 일치하는 패턴은 없습니다. 자연 현상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규칙적입니다.” 수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흥분감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내뿜는 파장 같기도 합니다만, 그 규모가 행성급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박정식 기관장이 곁에서 중얼거렸다. “행성급 생명체라… 이번 임무, 생각보다 재미있어지겠는데.”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재미있어지기 전에 위험해질 수도 있지, 정식 씨.” 하준 함장은 냉철하게 말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존재. 어쩌면 전설 속에나 존재할 법한 외계의 신(神)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과학자로서의 본능이 샘솟았다.

    “접근 속도를 30%로 줄이고, 모든 센서를 최대 출력으로 가동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방어막을 올리고, 비상 탈출 준비를 완료하도록.” 하준 함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함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수연, 추가 분석을 서둘러. 정식 씨, 비상 상황 시 추진력 확보에 만전을 기해.”

    청룡호는 거대한 검은 바다 위를 조심스럽게 항해하는 작은 배처럼, 미지의 에너지원을 향해 나아갔다. 수연은 계속해서 데이터를 분석하며 스크린을 넘겼다. “함장님, 에너지 파동의 중심부에… 뭔가 있습니다. 물질로 이루어진 개체로 보입니다.”

    “형태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마치… 싹을 틔우는 것처럼요.”

    수연의 말에 하준 함장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확장한다?’ 그것은 단순한 잔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인 스크린에 희미한 그림자가 포착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우주 먼지나 소행성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하지만 청룡호가 가까워질수록, 그 형태는 명확해졌다.

    “맙소사…” 정식 기관장이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스크린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검은색 구조물이었다. 그것은 어떤 인공적인 건축물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태고의 자연이 빚어낸 결정처럼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육각형의 기둥들이 정교하게 엮여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었고, 그 표면은 빛을 흡수하는 듯 완벽한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그 검은색 안에는 미묘하게 붉은색, 푸른색, 보라색의 섬광이 마치 살아있는 혈관처럼 미세하게 파동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수연은 경외와 혼란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물질 구성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아니, 감지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저희 센서가 인식하는 물질이 아니에요. 기존의 어떤 원소 주기율표에도 없는…”

    그때, 검은 구조물에서 거대한 파동이 일었다. 마치 심장이 고동치는 듯한 진동이 청룡호의 함교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스크린 속 구조물의 중앙에서, 검은색 표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알이 깨지듯, 미세한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번져나갔다.

    “함장님! 에너지 파동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위험 수치입니다!” 수연이 다급하게 외쳤다.

    “비상 후퇴! 최대 속력으로 물러나!” 하준 함장은 망설임 없이 명령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구조물의 균열 사이에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한 줄기 찬란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너무나 강렬하여, 함교 내부의 모든 불빛을 압도하고 스크린마저 하얗게 물들였다.

    황금빛은 단순히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기운처럼, 우주 공간을 뚫고 청룡호를 향해 쇄도했다. 함교의 모든 승무원들은 숨을 멈췄다. 황금빛은 그들의 몸을 투과하는 듯한 기이한 감각을 선사했다. 피부에 닿는 순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러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듯한 알 수 없는 전율이 흘렀다.

    “이… 이 느낌은…” 수연은 황금빛 속에서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몸 안에서, 잊고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하준 함장 역시 눈을 감았다. 그는 빛 속에서 거대한 기운의 흐름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강물이 흐르듯, 아니, 온 우주의 생명이 한 점으로 모여드는 듯한 압도적인 감각이었다. 그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고동쳤다. 이 우주선에 타기 전,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옛이야기들이 뇌리를 스쳤다. 하늘을 날던 신선들, 기운을 모아 불을 뿜던 도사들… 단순한 전설이라고 치부했던 이야기들이, 지금 이 순간,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황금빛이 청룡호 전체를 뒤덮자, 우주선은 강력한 충격파에 휩싸였다. 정식 기관장이 비명을 지르며 제어판에 머리를 부딪쳤다.

    “정신 차려! 박 기관장!” 하준 함장이 소리쳤다. 그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황금빛이 걷히고, 메인 스크린에 다시 검은 구조물이 나타났을 때, 그것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균열은 더욱 커져 있었고, 그 안에서 거대한 황금색 결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무수히 많은 황금색 날개로 이루어진 거대한 누에고치 같기도 했고, 심장이 뛰는 신비로운 태양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한 줄기 빛이 마치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수연은 스크린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눈은 황금색 결정에 매료된 듯 빛나고 있었다. “함장님… 이게… 태고의 유물입니다. 차원이 다른 존재가 남긴… 신비로운….” 그녀의 손가락이 스크린 위를 맴돌았다. “제 몸속에서… 무언가 울리고 있어요. 마치… 이 유물이 저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하준 함장은 창백한 얼굴로 수연을 바라봤다. 그의 심장 속에서, 빛이 지나간 자리에 알 수 없는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공포였지만, 동시에 전례 없는 호기심과 알 수 없는 욕망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제 청룡호는 단순한 탐사선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이 미지의 유물 앞에서, 인류의 운명을 바꿀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수연, 자세한 분석을 시도해.” 하준 함장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저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알아내야만 해.”

    황금색 결정은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검은 태양 속에서 피어난 황금빛 심장처럼, 그것은 우주 전체를 주시하는 듯했다. 그리고 청룡호의 승무원들은 그 심장의 고동을 느끼고 있었다. 인류의 운명을 뒤바꿀 거대한 서사의 서막이, 칠흑 같은 심우주 속에서 막이 오르고 있었다.

  • 대체 역사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피와 흙의 서막

    북풍이 휩쓸고 간 지 오래인 흙먼지골에도 지독한 여름이 찾아왔다. 끓어오르는 대지는 쩍쩍 갈라져 허연 입을 벌렸고, 그 메마른 입새로 희망 대신 먼지만 뿜어냈다.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서, 사람들은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려 발버둥 쳤다. 천하제국이 지배하는 광대한 대륙의 변방, 이곳 흙먼지골 주민들에게는 제국의 위대함이나 황제의 덕이라는 말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그들의 현실은 매년 늘어나는 세금과 끝없이 이어지는 부역, 그리고 굶주림이었다.

    흙먼지골의 유일한 우물가에는 해 질 녘이면 어김없이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물을 긷기 위함이 아니었다. 땀에 절은 몸으로 하루 종일 밭을 매거나 나무를 하던 사내들은 축 늘어진 어깨로 웅성거렸고, 앙상한 팔로 아이를 안은 여인들은 불안한 눈으로 서로를 살폈다. 며칠 후면 제국의 조세관이 온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씨앗마저 다 털어갈 게 분명해.”

    툭 던지듯 내뱉는 김 노인의 말에 깊은 한숨이 우물가에 퍼졌다. 김 노인은 흙먼지골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자, 가장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허리띠에는 굶주림에 죽어간 자식들의 작은 신발이 매달려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분노 대신 체념만이 가득했다.

    “그럼 우리는 뭘 먹고살아요, 노인장?”

    갓 스무 살이 넘었을까 싶은 젊은 어미가 젖도 나오지 않는 가슴을 움켜쥐며 흐느꼈다. 품 안의 아이는 이미 눈물조차 메말랐는지, 창백한 얼굴로 쌔근거릴 뿐이었다. 그 처량한 모습에 모두 고개를 돌렸지만, 마음속으로는 제 부모, 제 자식의 모습이 겹쳐 보여 견딜 수 없었다.

    강휘는 그런 풍경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큼지막한 망치로 쇠를 두드려 농기구를 만드는 것이 그의 업이었다. 투박하지만 단단한 손은 평생 흙과 쇠를 만져온 흔적이었다. 그의 등은 여느 사내들처럼 굽어 있지 않았고, 눈빛은 흔들림 없이 우물가로 향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체념 끝에 내쉬는 한숨이나, 어린 어미의 애끓는 울음을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지난겨울, 굶주림에 지쳐 쓰러진 제 동생의 싸늘한 손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제국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왜 모든 것을 가져가려는 걸까?”

    나지막이 읊조리는 강휘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불꽃이 일렁였다. 그러나 그 불꽃은 이내 제국의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 다시 꺼지는 듯했다. 무력감, 그것은 이 땅의 모든 평민이 짊어진 굴레였다.

    사흘 뒤, 예상대로 조세관 일행이 흙먼지골에 당도했다. 흙먼지골이라 불리는 이 작은 마을조차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거대한 제국의 일부였다. 그들은 수십 명의 무장한 병사들을 이끌고 왔다. 병사들의 검은 철갑은 흙먼지골의 해묵은 평화에 난폭한 균열을 냈다. 그 선봉에는 마치 제국의 비대한 탐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사내, 감찰관 나대길이 서 있었다. 비단옷은 기름기로 번들거렸고, 그의 얼굴에는 흙먼지골 사람들을 향한 노골적인 경멸이 가득했다.

    “이 천하제국의 변방에서 게으름 피울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황제의 은혜로 살아가면서 납세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는 그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나대길의 우렁찬 목소리가 마을 전체를 울렸다. 그는 마치 신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렸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수레에 실어온, 겨우 한 끼 죽이라도 끓일 수 있을까 싶은 곡식 자루들을 그의 발밑에 내려놓았다. 그들의 눈은 이미 삶의 의지를 잃은 채 바닥만 응시하고 있었다.

    “이게 다냐? 작년보다도 못하구나! 이 버러지 같은 것들!”

    나대길은 퉁퉁한 발로 곡식 자루를 걷어찼다. 흙바닥에 뿌려지는 귀한 곡식들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움찔했지만, 그 누구도 감히 불평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병사들의 날카로운 검이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기 때문이다.

    “가뭄으로 수확이 형편없었습니다, 감찰관 나으리. 제발…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것마저 빼앗아가시면 우리는 정말 굶어 죽습니다.”

    김 노인이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나대길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체념이 아닌 절박함이 묻어났다.

    “자비? 네놈들 따위에게 자비는 사치다! 황제 폐하의 대업을 위해 너희들의 피와 땀은 기꺼이 바쳐져야 할 것이니라!”

    나대길은 김 노인을 발로 걷어차며 악을 썼다. 늙은 노인은 맥없이 옆으로 쓰러졌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겨우내 아끼던 작은 엽전 꾸러미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순간, 품에 아이를 안고 있던 젊은 어미가 뛰쳐나왔다.

    “이 돈은 안 됩니다! 이 돈은… 제 아이가 며칠 전부터 열이 끓어 겨우 모은 약값이었습니다!”

    어미는 나대길의 발밑에 엎드려 바닥에 떨어진 엽전 꾸러미를 필사적으로 움켜쥐려 했다. 그 모습은 마치 제 한 몸을 던져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 동물과 같았다.

    “건방진 계집 같으니!”

    나대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미의 머리채를 잡아챘고, 힘없이 딸려 올라간 여인은 아이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 순간, 아이의 목에서 컥,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터져 나왔다. 아이가 쓰러지면서 돌부리에 머리를 부딪힌 것이다. 핏물이 검은 흙 위로 작은 꽃잎처럼 번져 나갔다.

    “안 돼! 내 아이!”

    어미의 절규가 흙먼지골에 메아리쳤다. 마을 사람들은 경악에 질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병사들은 냉혹한 눈으로 그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그만하시오.”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강휘였다. 그는 망치를 든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붉게 물든 노을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그의 눈은 불타는 숯불처럼 이글거렸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무언가 단단한 결의가 그 속에 담겨 있었다.

    “이놈은 또 누구냐? 감히 황제의 명을 집행하는 자에게 대드느냐!”

    나대길이 강휘를 향해 코웃음을 쳤다. 병사 두 명이 이미 검을 빼 들고 강휘를 향해 다가섰다.

    “황제의 명이 아니라, 당신의 탐욕이다. 당신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어. 이제 더는 줄 것이 없어! 심지어 이 아이의 목숨까지도!”

    강휘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꺾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망치를 꽉 움켜쥐었다. 흙먼지골 사람들은 숨죽여 그들을 지켜봤다. 저 무모한 사내가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이런 반역자 같은 놈을 보았나! 당장 저놈의 목을 베어 효수하라!”

    나대길이 격분하여 소리쳤다. 병사들이 강휘를 향해 돌진했다. 첫 번째 병사가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강휘는 빠르게 몸을 숙여 칼날을 피하고는, 들고 있던 망치를 휘둘러 병사의 복부를 가격했다. 묵직한 둔탁음과 함께 병사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두 번째 병사가 놀라 잠시 주춤한 사이, 강휘는 쓰러진 병사의 손에서 검을 낚아챘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흙먼지골의 노을빛을 받아 핏빛으로 빛났다.

    강휘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주저함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굳건히 서서, 무수히 많은 병사들과 오만방자한 나대길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뒤에는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아이와 절규하는 어미, 그리고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강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속에는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와 같은 격렬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흙먼지골의 모든 주민들은 알 수 있었다.

    이제, 피가 뿌려질 차례라는 것을.

  • 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챕터 1: 검은 태양의 노래**

    우주선 ‘청룡호’는 끝없는 심연을 가르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항성들의 희미한 빛만이 먼 옛날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수억 광년의 여정, 인류가 닿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광막한 우주에서 청룡호는 마치 거대한 심해어처럼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함교는 고요했다. 메인 스크린에 비치는 것은 오직 별들의 강물과, 간간이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성운의 잔해뿐이었다. 길고 지루한 탐사 항해 중 찾아온 일상적인 평화였다.

    “함장님, 6시 방향에 에너지 이상 감지.”

    정적을 깬 것은 과학 담당 부관 이수연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안경 너머로 푸른빛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크린 위, 기존의 물리 법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패턴의 에너지 파동이 명멸하고 있었다.

    김하준 함장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은 수연이 가리킨 지점에 고정되었다. “이상 패턴? 자세한 정보는?”

    “분석 중입니다만… 저희 데이터베이스에 일치하는 패턴은 없습니다. 자연 현상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규칙적입니다.” 수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흥분감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내뿜는 파장 같기도 합니다만, 그 규모가 행성급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박정식 기관장이 곁에서 중얼거렸다. “행성급 생명체라… 이번 임무, 생각보다 재미있어지겠는데.”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재미있어지기 전에 위험해질 수도 있지, 정식 씨.” 하준 함장은 냉철하게 말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존재. 어쩌면 전설 속에나 존재할 법한 외계의 신(神)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과학자로서의 본능이 샘솟았다.

    “접근 속도를 30%로 줄이고, 모든 센서를 최대 출력으로 가동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방어막을 올리고, 비상 탈출 준비를 완료하도록.” 하준 함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함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수연, 추가 분석을 서둘러. 정식 씨, 비상 상황 시 추진력 확보에 만전을 기해.”

    청룡호는 거대한 검은 바다 위를 조심스럽게 항해하는 작은 배처럼, 미지의 에너지원을 향해 나아갔다. 수연은 계속해서 데이터를 분석하며 스크린을 넘겼다. “함장님, 에너지 파동의 중심부에… 뭔가 있습니다. 물질로 이루어진 개체로 보입니다.”

    “형태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마치… 싹을 틔우는 것처럼요.”

    수연의 말에 하준 함장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확장한다?’ 그것은 단순한 잔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인 스크린에 희미한 그림자가 포착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우주 먼지나 소행성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하지만 청룡호가 가까워질수록, 그 형태는 명확해졌다.

    “맙소사…” 정식 기관장이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스크린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검은색 구조물이었다. 그것은 어떤 인공적인 건축물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태고의 자연이 빚어낸 결정처럼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육각형의 기둥들이 정교하게 엮여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었고, 그 표면은 빛을 흡수하는 듯 완벽한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그 검은색 안에는 미묘하게 붉은색, 푸른색, 보라색의 섬광이 마치 살아있는 혈관처럼 미세하게 파동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수연은 경외와 혼란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물질 구성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아니, 감지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저희 센서가 인식하는 물질이 아니에요. 기존의 어떤 원소 주기율표에도 없는…”

    그때, 검은 구조물에서 거대한 파동이 일었다. 마치 심장이 고동치는 듯한 진동이 청룡호의 함교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스크린 속 구조물의 중앙에서, 검은색 표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알이 깨지듯, 미세한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번져나갔다.

    “함장님! 에너지 파동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위험 수치입니다!” 수연이 다급하게 외쳤다.

    “비상 후퇴! 최대 속력으로 물러나!” 하준 함장은 망설임 없이 명령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구조물의 균열 사이에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한 줄기 찬란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너무나 강렬하여, 함교 내부의 모든 불빛을 압도하고 스크린마저 하얗게 물들였다.

    황금빛은 단순히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기운처럼, 우주 공간을 뚫고 청룡호를 향해 쇄도했다. 함교의 모든 승무원들은 숨을 멈췄다. 황금빛은 그들의 몸을 투과하는 듯한 기이한 감각을 선사했다. 피부에 닿는 순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러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듯한 알 수 없는 전율이 흘렀다.

    “이… 이 느낌은…” 수연은 황금빛 속에서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몸 안에서, 잊고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하준 함장 역시 눈을 감았다. 그는 빛 속에서 거대한 기운의 흐름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강물이 흐르듯, 아니, 온 우주의 생명이 한 점으로 모여드는 듯한 압도적인 감각이었다. 그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고동쳤다. 이 우주선에 타기 전,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옛이야기들이 뇌리를 스쳤다. 하늘을 날던 신선들, 기운을 모아 불을 뿜던 도사들… 단순한 전설이라고 치부했던 이야기들이, 지금 이 순간,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황금빛이 청룡호 전체를 뒤덮자, 우주선은 강력한 충격파에 휩싸였다. 정식 기관장이 비명을 지르며 제어판에 머리를 부딪쳤다.

    “정신 차려! 박 기관장!” 하준 함장이 소리쳤다. 그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황금빛이 걷히고, 메인 스크린에 다시 검은 구조물이 나타났을 때, 그것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균열은 더욱 커져 있었고, 그 안에서 거대한 황금색 결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무수히 많은 황금색 날개로 이루어진 거대한 누에고치 같기도 했고, 심장이 뛰는 신비로운 태양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한 줄기 빛이 마치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수연은 스크린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눈은 황금색 결정에 매료된 듯 빛나고 있었다. “함장님… 이게… 태고의 유물입니다. 차원이 다른 존재가 남긴… 신비로운….” 그녀의 손가락이 스크린 위를 맴돌았다. “제 몸속에서… 무언가 울리고 있어요. 마치… 이 유물이 저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하준 함장은 창백한 얼굴로 수연을 바라봤다. 그의 심장 속에서, 빛이 지나간 자리에 알 수 없는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공포였지만, 동시에 전례 없는 호기심과 알 수 없는 욕망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제 청룡호는 단순한 탐사선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이 미지의 유물 앞에서, 인류의 운명을 바꿀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수연, 자세한 분석을 시도해.” 하준 함장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저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알아내야만 해.”

    황금색 결정은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검은 태양 속에서 피어난 황금빛 심장처럼, 그것은 우주 전체를 주시하는 듯했다. 그리고 청룡호의 승무원들은 그 심장의 고동을 느끼고 있었다. 인류의 운명을 뒤바꿀 거대한 서사의 서막이, 칠흑 같은 심우주 속에서 막이 오르고 있었다.

  • 대체 역사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피와 흙의 서막

    북풍이 휩쓸고 간 지 오래인 흙먼지골에도 지독한 여름이 찾아왔다. 끓어오르는 대지는 쩍쩍 갈라져 허연 입을 벌렸고, 그 메마른 입새로 희망 대신 먼지만 뿜어냈다.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서, 사람들은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려 발버둥 쳤다. 천하제국이 지배하는 광대한 대륙의 변방, 이곳 흙먼지골 주민들에게는 제국의 위대함이나 황제의 덕이라는 말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그들의 현실은 매년 늘어나는 세금과 끝없이 이어지는 부역, 그리고 굶주림이었다.

    흙먼지골의 유일한 우물가에는 해 질 녘이면 어김없이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물을 긷기 위함이 아니었다. 땀에 절은 몸으로 하루 종일 밭을 매거나 나무를 하던 사내들은 축 늘어진 어깨로 웅성거렸고, 앙상한 팔로 아이를 안은 여인들은 불안한 눈으로 서로를 살폈다. 며칠 후면 제국의 조세관이 온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씨앗마저 다 털어갈 게 분명해.”

    툭 던지듯 내뱉는 김 노인의 말에 깊은 한숨이 우물가에 퍼졌다. 김 노인은 흙먼지골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자, 가장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허리띠에는 굶주림에 죽어간 자식들의 작은 신발이 매달려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분노 대신 체념만이 가득했다.

    “그럼 우리는 뭘 먹고살아요, 노인장?”

    갓 스무 살이 넘었을까 싶은 젊은 어미가 젖도 나오지 않는 가슴을 움켜쥐며 흐느꼈다. 품 안의 아이는 이미 눈물조차 메말랐는지, 창백한 얼굴로 쌔근거릴 뿐이었다. 그 처량한 모습에 모두 고개를 돌렸지만, 마음속으로는 제 부모, 제 자식의 모습이 겹쳐 보여 견딜 수 없었다.

    강휘는 그런 풍경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큼지막한 망치로 쇠를 두드려 농기구를 만드는 것이 그의 업이었다. 투박하지만 단단한 손은 평생 흙과 쇠를 만져온 흔적이었다. 그의 등은 여느 사내들처럼 굽어 있지 않았고, 눈빛은 흔들림 없이 우물가로 향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체념 끝에 내쉬는 한숨이나, 어린 어미의 애끓는 울음을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지난겨울, 굶주림에 지쳐 쓰러진 제 동생의 싸늘한 손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제국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왜 모든 것을 가져가려는 걸까?”

    나지막이 읊조리는 강휘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불꽃이 일렁였다. 그러나 그 불꽃은 이내 제국의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 다시 꺼지는 듯했다. 무력감, 그것은 이 땅의 모든 평민이 짊어진 굴레였다.

    사흘 뒤, 예상대로 조세관 일행이 흙먼지골에 당도했다. 흙먼지골이라 불리는 이 작은 마을조차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거대한 제국의 일부였다. 그들은 수십 명의 무장한 병사들을 이끌고 왔다. 병사들의 검은 철갑은 흙먼지골의 해묵은 평화에 난폭한 균열을 냈다. 그 선봉에는 마치 제국의 비대한 탐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사내, 감찰관 나대길이 서 있었다. 비단옷은 기름기로 번들거렸고, 그의 얼굴에는 흙먼지골 사람들을 향한 노골적인 경멸이 가득했다.

    “이 천하제국의 변방에서 게으름 피울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황제의 은혜로 살아가면서 납세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는 그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나대길의 우렁찬 목소리가 마을 전체를 울렸다. 그는 마치 신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렸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수레에 실어온, 겨우 한 끼 죽이라도 끓일 수 있을까 싶은 곡식 자루들을 그의 발밑에 내려놓았다. 그들의 눈은 이미 삶의 의지를 잃은 채 바닥만 응시하고 있었다.

    “이게 다냐? 작년보다도 못하구나! 이 버러지 같은 것들!”

    나대길은 퉁퉁한 발로 곡식 자루를 걷어찼다. 흙바닥에 뿌려지는 귀한 곡식들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움찔했지만, 그 누구도 감히 불평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병사들의 날카로운 검이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기 때문이다.

    “가뭄으로 수확이 형편없었습니다, 감찰관 나으리. 제발…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것마저 빼앗아가시면 우리는 정말 굶어 죽습니다.”

    김 노인이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나대길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체념이 아닌 절박함이 묻어났다.

    “자비? 네놈들 따위에게 자비는 사치다! 황제 폐하의 대업을 위해 너희들의 피와 땀은 기꺼이 바쳐져야 할 것이니라!”

    나대길은 김 노인을 발로 걷어차며 악을 썼다. 늙은 노인은 맥없이 옆으로 쓰러졌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겨우내 아끼던 작은 엽전 꾸러미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순간, 품에 아이를 안고 있던 젊은 어미가 뛰쳐나왔다.

    “이 돈은 안 됩니다! 이 돈은… 제 아이가 며칠 전부터 열이 끓어 겨우 모은 약값이었습니다!”

    어미는 나대길의 발밑에 엎드려 바닥에 떨어진 엽전 꾸러미를 필사적으로 움켜쥐려 했다. 그 모습은 마치 제 한 몸을 던져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 동물과 같았다.

    “건방진 계집 같으니!”

    나대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미의 머리채를 잡아챘고, 힘없이 딸려 올라간 여인은 아이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 순간, 아이의 목에서 컥,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터져 나왔다. 아이가 쓰러지면서 돌부리에 머리를 부딪힌 것이다. 핏물이 검은 흙 위로 작은 꽃잎처럼 번져 나갔다.

    “안 돼! 내 아이!”

    어미의 절규가 흙먼지골에 메아리쳤다. 마을 사람들은 경악에 질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병사들은 냉혹한 눈으로 그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그만하시오.”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강휘였다. 그는 망치를 든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붉게 물든 노을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그의 눈은 불타는 숯불처럼 이글거렸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무언가 단단한 결의가 그 속에 담겨 있었다.

    “이놈은 또 누구냐? 감히 황제의 명을 집행하는 자에게 대드느냐!”

    나대길이 강휘를 향해 코웃음을 쳤다. 병사 두 명이 이미 검을 빼 들고 강휘를 향해 다가섰다.

    “황제의 명이 아니라, 당신의 탐욕이다. 당신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어. 이제 더는 줄 것이 없어! 심지어 이 아이의 목숨까지도!”

    강휘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꺾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망치를 꽉 움켜쥐었다. 흙먼지골 사람들은 숨죽여 그들을 지켜봤다. 저 무모한 사내가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이런 반역자 같은 놈을 보았나! 당장 저놈의 목을 베어 효수하라!”

    나대길이 격분하여 소리쳤다. 병사들이 강휘를 향해 돌진했다. 첫 번째 병사가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강휘는 빠르게 몸을 숙여 칼날을 피하고는, 들고 있던 망치를 휘둘러 병사의 복부를 가격했다. 묵직한 둔탁음과 함께 병사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두 번째 병사가 놀라 잠시 주춤한 사이, 강휘는 쓰러진 병사의 손에서 검을 낚아챘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흙먼지골의 노을빛을 받아 핏빛으로 빛났다.

    강휘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주저함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굳건히 서서, 무수히 많은 병사들과 오만방자한 나대길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뒤에는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아이와 절규하는 어미, 그리고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강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속에는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와 같은 격렬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흙먼지골의 모든 주민들은 알 수 있었다.

    이제, 피가 뿌려질 차례라는 것을.

  • 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챕터 1: 검은 태양의 노래**

    우주선 ‘청룡호’는 끝없는 심연을 가르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항성들의 희미한 빛만이 먼 옛날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수억 광년의 여정, 인류가 닿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광막한 우주에서 청룡호는 마치 거대한 심해어처럼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함교는 고요했다. 메인 스크린에 비치는 것은 오직 별들의 강물과, 간간이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성운의 잔해뿐이었다. 길고 지루한 탐사 항해 중 찾아온 일상적인 평화였다.

    “함장님, 6시 방향에 에너지 이상 감지.”

    정적을 깬 것은 과학 담당 부관 이수연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안경 너머로 푸른빛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크린 위, 기존의 물리 법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패턴의 에너지 파동이 명멸하고 있었다.

    김하준 함장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은 수연이 가리킨 지점에 고정되었다. “이상 패턴? 자세한 정보는?”

    “분석 중입니다만… 저희 데이터베이스에 일치하는 패턴은 없습니다. 자연 현상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규칙적입니다.” 수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흥분감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내뿜는 파장 같기도 합니다만, 그 규모가 행성급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박정식 기관장이 곁에서 중얼거렸다. “행성급 생명체라… 이번 임무, 생각보다 재미있어지겠는데.”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재미있어지기 전에 위험해질 수도 있지, 정식 씨.” 하준 함장은 냉철하게 말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존재. 어쩌면 전설 속에나 존재할 법한 외계의 신(神)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과학자로서의 본능이 샘솟았다.

    “접근 속도를 30%로 줄이고, 모든 센서를 최대 출력으로 가동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방어막을 올리고, 비상 탈출 준비를 완료하도록.” 하준 함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함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수연, 추가 분석을 서둘러. 정식 씨, 비상 상황 시 추진력 확보에 만전을 기해.”

    청룡호는 거대한 검은 바다 위를 조심스럽게 항해하는 작은 배처럼, 미지의 에너지원을 향해 나아갔다. 수연은 계속해서 데이터를 분석하며 스크린을 넘겼다. “함장님, 에너지 파동의 중심부에… 뭔가 있습니다. 물질로 이루어진 개체로 보입니다.”

    “형태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마치… 싹을 틔우는 것처럼요.”

    수연의 말에 하준 함장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확장한다?’ 그것은 단순한 잔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인 스크린에 희미한 그림자가 포착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우주 먼지나 소행성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하지만 청룡호가 가까워질수록, 그 형태는 명확해졌다.

    “맙소사…” 정식 기관장이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스크린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검은색 구조물이었다. 그것은 어떤 인공적인 건축물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태고의 자연이 빚어낸 결정처럼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육각형의 기둥들이 정교하게 엮여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었고, 그 표면은 빛을 흡수하는 듯 완벽한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그 검은색 안에는 미묘하게 붉은색, 푸른색, 보라색의 섬광이 마치 살아있는 혈관처럼 미세하게 파동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수연은 경외와 혼란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물질 구성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아니, 감지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저희 센서가 인식하는 물질이 아니에요. 기존의 어떤 원소 주기율표에도 없는…”

    그때, 검은 구조물에서 거대한 파동이 일었다. 마치 심장이 고동치는 듯한 진동이 청룡호의 함교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스크린 속 구조물의 중앙에서, 검은색 표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알이 깨지듯, 미세한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번져나갔다.

    “함장님! 에너지 파동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위험 수치입니다!” 수연이 다급하게 외쳤다.

    “비상 후퇴! 최대 속력으로 물러나!” 하준 함장은 망설임 없이 명령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구조물의 균열 사이에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한 줄기 찬란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너무나 강렬하여, 함교 내부의 모든 불빛을 압도하고 스크린마저 하얗게 물들였다.

    황금빛은 단순히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기운처럼, 우주 공간을 뚫고 청룡호를 향해 쇄도했다. 함교의 모든 승무원들은 숨을 멈췄다. 황금빛은 그들의 몸을 투과하는 듯한 기이한 감각을 선사했다. 피부에 닿는 순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러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듯한 알 수 없는 전율이 흘렀다.

    “이… 이 느낌은…” 수연은 황금빛 속에서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몸 안에서, 잊고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하준 함장 역시 눈을 감았다. 그는 빛 속에서 거대한 기운의 흐름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강물이 흐르듯, 아니, 온 우주의 생명이 한 점으로 모여드는 듯한 압도적인 감각이었다. 그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고동쳤다. 이 우주선에 타기 전,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옛이야기들이 뇌리를 스쳤다. 하늘을 날던 신선들, 기운을 모아 불을 뿜던 도사들… 단순한 전설이라고 치부했던 이야기들이, 지금 이 순간,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황금빛이 청룡호 전체를 뒤덮자, 우주선은 강력한 충격파에 휩싸였다. 정식 기관장이 비명을 지르며 제어판에 머리를 부딪쳤다.

    “정신 차려! 박 기관장!” 하준 함장이 소리쳤다. 그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황금빛이 걷히고, 메인 스크린에 다시 검은 구조물이 나타났을 때, 그것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균열은 더욱 커져 있었고, 그 안에서 거대한 황금색 결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무수히 많은 황금색 날개로 이루어진 거대한 누에고치 같기도 했고, 심장이 뛰는 신비로운 태양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한 줄기 빛이 마치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수연은 스크린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눈은 황금색 결정에 매료된 듯 빛나고 있었다. “함장님… 이게… 태고의 유물입니다. 차원이 다른 존재가 남긴… 신비로운….” 그녀의 손가락이 스크린 위를 맴돌았다. “제 몸속에서… 무언가 울리고 있어요. 마치… 이 유물이 저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하준 함장은 창백한 얼굴로 수연을 바라봤다. 그의 심장 속에서, 빛이 지나간 자리에 알 수 없는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공포였지만, 동시에 전례 없는 호기심과 알 수 없는 욕망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제 청룡호는 단순한 탐사선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이 미지의 유물 앞에서, 인류의 운명을 바꿀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수연, 자세한 분석을 시도해.” 하준 함장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저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알아내야만 해.”

    황금색 결정은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검은 태양 속에서 피어난 황금빛 심장처럼, 그것은 우주 전체를 주시하는 듯했다. 그리고 청룡호의 승무원들은 그 심장의 고동을 느끼고 있었다. 인류의 운명을 뒤바꿀 거대한 서사의 서막이, 칠흑 같은 심우주 속에서 막이 오르고 있었다.

  • 스페이스 오페라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은하의 심연: 제논의 속삭임

    **장르:** 스페이스 오페라
    **에피소드 제목:** 잊혀진 심장, 깨어나다

    **등장인물:**

    * **이안 (Ian):** 타고난 유물 사냥꾼. 호기심 많고 직관적이며,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대담함을 지녔다. 고대 문명의 흔적에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보인다.
    * **카론 (Karon):** 이안의 함선 ‘카이론 호’의 파일럿이자 유일한 승무원. 쾌활하고 현실적인 성격으로, 이안의 무모함을 적절히 제어하려 하지만 결국은 함께 돌진하는 동료애 넘치는 인물. 기계와 공간 지각 능력에 탁월하다.
    * **시리 (Siri):** 인공지능 탐사 시스템. ‘카이론 호’의 두뇌이며, 분석 및 정보 처리 능력이 뛰어나다. 차분하고 논리적인 목소리로 이안과 카론을 보조한다.

    **[1컷]**
    광활한 우주의 심연, 수많은 별들이 차가운 빛을 뿌리는 가운데, 낡았지만 견고해 보이는 소형 탐사선 한 척이 유유히 떠 있다. 함선 ‘카이론 호’의 선체에는 수많은 소행성 파편과 미세 운석에 긁힌 자국들이 훈장처럼 새겨져 있다. 먼 은하의 고대 문명 흔적을 찾아 헤매는 이안과 카론의 오랜 여정을 증명하듯.
    창밖으로는 붉고 거대한 가스 행성이 위압적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주변을 도는 작은 위성 ‘제논-7’이 화면에 잡힌다. 거칠고 황량한 표면이 돋보이는 행성이다.

    **카론:** (조종석에 앉아 홀로그램 지도를 확대하며) 자, 이안. 여기야. 수많은 ‘발굴 허가’ 서류를 위조하고, 은하계 변방의 깡패들에게 뒷돈까지 먹여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번에도 빈손이면 내 항해사의 명예에 흠집이 생길 거야.

    **[2컷]**
    이안은 조종석 뒤편의 개인 공간에서 고대의 문양으로 보이는 무늬가 새겨진 오래된 석판 조각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의 눈빛은 석판 너머의 미지의 세계를 탐하는 듯 깊다. 그는 카론의 말에 무심한 듯 대답한다.

    **이안:** 명예 같은 고루한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 카론. 우리가 찾는 건 그저 낡은 뼈대나 깨진 도자기가 아니야. 잊혀진 문명의 숨결, 그 심장부에 감춰진 지식이지. 그리고… (석판을 살짝 쥐며) 이 석판이 틀리지 않았다면, 제논-7은 그 심장이 잠들어 있는 곳일 테고.

    **[3컷]**
    카론이 피식 웃는다.

    **카론:** 네 ‘촉’은 엉뚱한 길로 인도할 때도 많았지.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긴 해. 시리, 현재 행성 스캔 결과는?

    **시리 (목소리):** (차분하고 기계적인 여성의 목소리) 탐사 위성 ‘제논-7’의 전반적인 환경 스캔 완료. 대기 조성은 탐사에 지장 없으나, 전반적으로 높은 방사능 수치가 감지됩니다. 이안의 가설대로, 행성 심부에서 비정상적인 에너지 패턴이 지속적으로 관측됩니다.

    **[4컷]**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종석으로 다가온다. 그의 눈이 빛난다.

    **이안:** 비정상적인 에너지 패턴이라… 시리, 구체적인 위치 추적 가능해?

    **시리 (목소리):** 미약하지만, 행성 북반구, ‘섀도우 캐니언’으로 명명된 거대 협곡 지대 아래에서 감지됩니다. 일반적인 지질 활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공적인 패턴입니다.

    **카론:** 인공적이라고? 그럼 드디어 뭔가 건지는 건가! 좋아! 섀도우 캐니언으로 직행이다! 이안, 출격 준비!

    **이안:** (이미 조종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며) 준비 끝.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이 행성이 우리를 부르는군.

    **[5컷]**
    ‘카이론 호’가 행성 ‘제논-7’의 붉은 대기권으로 진입한다. 대기 마찰로 인해 선체가 붉게 달아오른다. 고요한 우주와는 달리, 행성 내부는 거친 바람과 모래 폭풍이 몰아치는 황량한 풍경이다.

    **[6컷]**
    거대한 협곡 ‘섀도우 캐니언’ 위를 비행하는 ‘카이론 호’. 협곡의 깊이는 아득하여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굉음처럼 들린다.

    **카론:**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능숙하게 조종간을 잡으며) 시리, 목표 지점까지 얼마나 남았지? 이 바람이 장난 아닌데.

    **시리 (목소리):** 목표 지점까지 1200미터. 고도 500미터 유지 바랍니다. 지표면 아래에서 강력한 전파 방해가 감지됩니다. 시각 탐지 불가능.

    **이안:** (홀로그램 지도를 응시하며) 전파 방해? 뭔가 감추려는 흔적이군. 카론, 고도 내려. 착륙 지점은 내가 정한다.

    **[7컷]**
    ‘카이론 호’가 바람에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서서히 고도를 낮춘다. 협곡 바닥으로 향할수록 어둠이 짙어진다.
    **카론:** (미간을 찌푸리며) 이안, 너무 낮은데? 기체 손상 위험이 있어!

    **이안:** (날카로운 눈으로 바닥을 훑는다) 저기… 저 균열.

    **[8컷]**
    확대된 화면에 협곡 바닥의 거대한 암반에 난 미세한 균열이 보인다. 평범한 균열 같아 보이지만, 이안의 눈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포착된 듯하다.

    **이안:** 저기야! 저 균열 아래로 에너지가 흐르고 있어. 착륙해!

    **카론:** (고개를 젓지만 이미 조종간을 움직인다) 말도 안 되는 곳에 착륙하라고? 알았어, 네 ‘촉’을 믿어본다. 하지만 기체 망가지면 네가 고쳐!

    **[9컷]**
    ‘카이론 호’가 거친 바람을 뚫고 아슬아슬하게 협곡 바닥의 균열 근처에 착륙한다. 착륙 충격으로 기체가 크게 흔들린다.
    **콰앙!**
    **카론:** (한숨) 하아… 무사 착륙. 휴…

    **이안:** (벌써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서며) 그럼 이제 파티 시간이지.

    **[10컷]**
    이안과 카론이 중무장한 탐사복을 착용하고 ‘카이론 호’의 램프를 통해 협곡 바닥으로 내려선다. 거대한 암반과 모래, 그리고 거친 바람만이 그들을 맞이한다. 랜턴 불빛이 어둠 속을 헤집는다.

    **카론:** (주위를 둘러보며) 그래, 그래서 뭐가 어디 있다는 건데? 균열이라곤 너덜너덜한 바위틈밖에 안 보이는데.

    **이안:**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균열 틈새를 유심히 살핀다) 기다려봐. 에너지가 가장 강하게 흐르는 곳을 찾아야 해. 시리, 이 부분의 지층 스캔.

    **시리 (목소리):** 스캔 중… (잠시 후) 지하 20미터 지점에서 인공 구조물로 추정되는 거대한 물체가 감지됩니다. 현재 위치에서 수직으로 15미터.

    **[11컷]**
    이안이 손에 든 소형 탐지기로 균열의 특정 부분을 가리키자, 탐지기가 붉은빛을 내며 강하게 진동한다.

    **이안:** 여기군! 카론, 드릴 준비해! 고대 유적이 우리를 초대하고 있어.

    **카론:** (이마를 짚으며) 그래, 네 초대는 늘 골치 아프더라. 알았어, 미녀 파일럿이 직접 땅을 파드리지!

    **[12컷]**
    카론이 ‘카이론 호’에서 휴대용 드릴을 꺼내와 이안이 지목한 균열 지점에 설치한다. 드릴이 굉음을 내며 암반을 뚫기 시작한다.
    **위이이잉- 쾅! 쾅!**
    암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진동이 땅을 울린다.

    **[13컷]**
    수십 분 후, 드릴이 뚫어낸 구멍 아래로 어둡고 깊은 틈새가 드러난다. 이안이 랜턴을 비추자, 틈새 너머로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듯한 매끄러운 벽면의 일부가 어렴풋이 보인다. 벽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이안:** (환희에 찬 목소리로) 역시! 내 촉은 틀리지 않았어! 카론, 입구 확장!

    **카론:** (땀을 닦으며) 이야, 네 촉은 이럴 때만 귀신같이 맞춘다니까. 좋아, 한 번 더 간다!

    **[14컷]**
    입구가 충분히 넓어지자, 이안이 먼저 어두운 통로 속으로 몸을 던진다. 카론이 그 뒤를 따른다. 둘의 랜턴 불빛이 어둠을 가른다.
    통로는 매끄러운 금속 재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천장과 벽면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고대 문양들이 규칙적으로 새겨져 있다. 먼지와 침묵이 통로를 지배한다.

    **이안:** (벽면의 문양을 손으로 쓸어보며) 이 감촉… 수만 년은 된 것 같아. 하지만 마치 어제 만들어진 것처럼 매끄러워. 어떤 기술로 만들어진 거지?

    **카론:** (무장된 팔을 휘두르며) 흠… 뭔가 섬뜩하군. 마치 살아있는 문명 속에 들어온 것 같아. 숨소리라도 들릴 것 같잖아.

    **[15컷]**
    통로가 끝나는 지점, 거대한 원형의 공간이 나타난다. 공간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제단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긴, 손상되지 않은 듯 보이는 수정 덩어리가 박혀 있다. 주변 벽면에는 고대 문자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이안:** (숨을 헐떡이며) 이게… 이게 대체…

    **카론:** (경계하며 무기를 겨눈다) 시리, 스캔! 이 안에 뭐가 숨어있는지 알아내!

    **시리 (목소리):** 스캔 중… (잠시 후, 목소리에 미약한 떨림이 느껴진다) 분석 불가… 이 구조물은… 이 행성에서 발견된 적 없는, 미지의 물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앙의 수정체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에너지가 감지됩니다.

    **[16컷]**
    이안은 홀린 듯 제단으로 다가간다. 수정체 주변에 새겨진 고대 문양들을 손가락으로 더듬는다.

    **이안:** (중얼거리듯) 이건… 생명의 문양이야. 그리고… 이 에너지. 단순히 기계적인 힘이 아니야.

    **카론:** (이안의 뒤를 따르며) 이안, 너무 가까이 가지 마! 위험할 수도 있어! 우리가 뭘 건드리는지 알 수 없잖아!

    **이안:** (카론의 경고를 무시하고, 한 손을 수정체에 가져다 댄다) 이 에너지는… 마치 오래된 심장이 다시 뛰는 것 같아…

    **[17컷]**
    이안의 손이 수정체에 닿는 순간, 칠흑 같던 수정체에서 푸른빛이 번쩍인다! 공간 전체를 채우던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벽면의 고대 문자들이 눈부신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18컷]**
    강렬한 빛에 눈을 가리는 이안과 카론.

    **카론:**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 젠장! 이안! 대체 뭘 건드린 거야!

    **이안:** (빛 속에서 수정체를 응시하며) 빛… 이 모든 걸 밝혀주는 빛…

    **[19컷]**
    수정체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이 원형 공간의 천장을 뚫고 위로 솟구친다. 빛은 마치 살아있는 신경망처럼 통로를 타고 ‘카이론 호’가 착륙한 협곡 바닥까지 이어진다.

    **[20컷]**
    협곡 바닥, ‘카이론 호’ 주변의 대지를 뚫고 푸른빛의 거대한 기둥이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그 빛은 제논-7의 붉은 대기권을 뚫고 어두운 우주 공간까지 닿는다.

    **[21컷]**
    제논-7 상공에 떠 있던 ‘카이론 호’가 빛의 기둥을 발견하고 경고음을 울린다.

    **시리 (목소리):** 경고! 경고! 미확인 에너지 반응! 행성 외부로 강력한 신호가 전송되고 있습니다! 신호의 출처는… 이안과 카론의 현재 위치입니다!

    **[22컷]**
    이안과 카론은 빛으로 가득 찬 고대 공간 속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이안의 얼굴에는 경이로움과 깨달음이, 카론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불안감이 교차한다. 수정체는 계속해서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다.

    **이안:** (감격에 찬 목소리로) 이 빛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야. 이건… 오래전 잊혔던 문명의 외침이야. 저 빛은… 우주를 향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거야.

    **카론:** (더듬거리며) 존재를… 알린다고? 누구에게? 설마… (주변을 둘러보며) 우리가 깨워버린 거야? 뭔가… 뭔가 더 있다는 뜻인가?

    **[23컷]**
    빛의 기둥이 우주를 향해 뻗어 나가는 모습 위로, 고대 문명의 문자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효과와 함께 이안의 마지막 독백이 이어진다.

    **이안 (독백):**
    우리는 고작 문명의 흔적을 찾아 헤맸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흔적은 살아있는 심장이 되어 우리를 넘어 우주 전체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경고일까, 아니면 초대일까?
    이 잊혀진 행성, 제논-7의 심장이 깨어난 지금, 은하는 과연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 앞에서, 다음 발자국을 내딛어야 한다.
    (수정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이 더욱 강렬해진다.)
    다음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다.

    **[24컷]**
    어둠 속에서 푸른빛이 강렬하게 폭발하며 끝.

  • 스팀펑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강철 도시의 밤은 언제나 끈적했다. 매연과 증기의 냄새, 금속의 비린내가 뒤섞인 공기는 폐부를 찌르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무수한 비행선들의 엔진 소리는 잠 못 드는 영혼들의 불면을 부추겼다. 김현우는 낡은 태엽식 손목시계가 가리키는 자정을 확인하며,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시계탑 아파트 7층, 703호 문을 열었다.

    “하아…”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현우의 아파트는 겉보기엔 강철 도시의 여느 아파트와 다를 바 없었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지어진,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한 격자형 건축물. 하지만 내부는 달랐다. 현우는 오래된 것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그 결과 그의 작은 공간은 온갖 앤티크 기계 장치와 구리 파이프, 황동 기어들로 채워져 있었다. 거실 한쪽 벽면에는 증기압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오르골 시계가 묵직한 톱니바퀴 소리를 내며 시간을 새기고 있었고, 천장에서는 가스등이 흔들리는 노란 불빛을 드리웠다.

    현우는 현관에 놓인 태엽식 통신기, 즉 휴대용 전화기를 거친 숨을 내쉬며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짤랑, 하는 금속음과 함께 바닥에 굴러떨어지는 소리에 그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피로가 모든 신경을 마비시킨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따금 이런 식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었고, 그는 늘 제 자신을 탓했다. ‘피곤해서 그래. 집중력이 없으니.’

    차가운 증기 압축 냉장고에서 식은 맥주 한 병을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탄산의 따끔거림이 잠시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불을 끄지 않은 거실의 가스등 아래, 그는 늘 앉는 낡은 가죽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그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지만, 습관적으로 시선을 돌려 벽 한쪽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그가 아끼는, 섬세하게 제작된 태엽식 비행선 모형이 진열되어 있었다. 황동 선체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 가느다란 구리 파이프가 얽혀 동력을 전달하는 듯한 모습, 그리고 아주 작은 증기 배출구가 그것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귓가에 낯선 소리가 들렸다. *스르륵.*

    현우는 감겨 있던 눈을 번쩍 떴다. 피곤함 때문일까, 헛것을 들은 건가? 그는 다시금 눈을 감고 소파에 깊이 기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스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좀 더 선명했다. 현우는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은 바닥으로 향했다.

    조금 전 그가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태엽식 통신기. 그것은 현관에서 몇 뼘 떨어진 복도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위치보다 훨씬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는 눈을 비볐다. 분명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굴러떨어진 게 아니라 어딘가에 살짝 기댔는데, 미끄러져 내려온 것일 수도 있었다.

    “피곤해서… 망상까지 하는군.”

    현우는 중얼거리며 통신기를 다시 현관 신발장 위로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방으로 향했다. 잠이 먼저였다.

    ***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현우는 어제보다 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피곤한 기분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부엌으로 향했다. 증기압으로 작동하는 커피 메이커에 물을 붓고 원두를 넣었다. 구리 파이프를 통해 증기가 ‘쉬이익’ 소리를 내며 끓어오르는 동안, 그는 식탁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강철 도시의 아침 신문은 언제나 기계적인 소음과 공해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오늘은 한 기사에 그의 시선이 멈췄다.

    [밤새 작동한 구형 증기 압축기, 시민들의 숙면 방해]

    ‘어제도 분명 그 소리였겠지.’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밤새 기계 소리가 유독 시끄러웠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의 아파트 안에서 나는 소리처럼 가까이 느껴졌지만, 늘 그랬듯 외부 소음이 심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커피가 다 되어가는 소리에 맞춰, 현우는 잠시 신문에서 눈을 떼었다. 그때였다. 거실 벽에 걸린 거대한 오르골 시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평소 묵직하게 움직이던 톱니바퀴 소리가 아니라, ‘드르륵, 틱, 틱, 드르륵!’ 하고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소리였다. 마치 시계 내부의 어떤 부품이 갑자기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젠장, 또 고장인가.”

    현우는 짜증을 내며 오르골 시계로 다가갔다. 어제 분명 태엽을 감아두었지만, 가끔씩 오작동을 일으키는 낡은 시계였다. 그가 시계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시계의 분침과 시침이 맹렬한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손으로 잡고 돌리는 것처럼, 그러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두 개의 바늘이 ‘우우웅’ 하는 가느다란 마찰음을 내며 시계판 위를 질주했다. 이내 바늘은 멈췄다. 엉뚱하게도 새벽 3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 적은 없었다. 태엽이 풀리거나, 시간이 멈추거나, 혹은 아예 작동을 멈추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제멋대로 시간이 돌아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는 시계에 귀를 기울였다. 미세하게 ‘쉬이익’ 하는, 마치 증기가 새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묘하게 비릿하고 차가운, 금속성 냄새가 콧속을 스쳤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 오래된 아파트에서 종종 기이한 일이 일어나곤 했지만, 어쩐지 이번엔 그 느낌이 달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시계에서 손을 떼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커피는 이미 식어 있었다.

    ***

    그날 밤, 현우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 맡 협탁 위에는 그가 읽던 ‘증기 역학의 이해’라는 두툼한 책이 놓여 있었다. 그는 가스등을 끄고 어둠 속에 몸을 맡겼다. 밖에서는 강철 도시의 불빛과 희미한 엔진 소리가 스며들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낮에 겪었던 오르골 시계의 기이한 움직임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혹시 건너편 아파트에서 울리는 기계음이 시계에 영향을 준 건 아닐까? 아니면, 이 낡은 아파트의 지반이 불안정한 걸까? 온갖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 애써 불안감을 잠재우려 했다.

    그때였다.

    *털썩!*

    침대 맡 협탁 위에서 들린 소리였다. 현우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는 손을 뻗어 벽에 붙은 가스등 스위치를 더듬었다. 가스등이 ‘쉬익’ 소리를 내며 불을 밝혔다.

    바닥을 내려다본 현우는 얼어붙었다.

    그의 책, ‘증기 역학의 이해’가 협탁 아래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강하게 밀어 떨어뜨린 것처럼, 바닥에 펼쳐진 채 놓여 있었다. 그는 협탁을 살폈다. 책이 떨어질 만한 어떠한 진동도, 경사도 없었다. 그는 책을 주워 들었다. 차가웠다. 마치 금속 덩어리를 만지는 듯한 차가움이 느껴졌다.

    현우는 책을 다시 협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침대에 앉아 방 안을 샅샅이 살폈다. 그의 눈이 닿는 곳마다 낡은 기계장치들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벽에 걸린 태엽식 지구본, 책상 위의 작은 나침반, 창가에 놓인 구리 망원경. 모든 것이 고요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 고요함이 편안하지 않았다.

    ‘이건… 실수로 떨어뜨린 게 아니야.’

    그는 굳은 얼굴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목이 말랐다. 부엌으로 가 물이라도 한 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방문을 나섰다.

    그리고, 거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의 눈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거실 중앙, 허공에 그것이 떠 있었다.

    현우가 가장 아끼는, 섬세하게 제작된 태엽식 비행선 모형. 평소 벽 선반 위에 고이 모셔두었던 그것이었다. 불빛이 미약한 가스등 아래, 비행선 모형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린 것처럼 공중에 정지해 있었다.

    더욱 기괴한 것은, 모형의 작은 프로펠러들이 아주 느리게, 하지만 분명하게 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쉬이익… 쉬이익…’ 하는 작은 증기 배출음이 희미하게 들려왔고, 모형의 구리 파이프 끝에서는 아주 작은 증기 입자들이 연기처럼 피어 오르고 있었다.

    현우는 숨을 멈췄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의 모형은 스스로 동력을 발생시킬 수 없었다. 그저 장식용이었을 뿐이었다.

    그때, 허공에 떠 있던 비행선 모형이 *덜컥!* 하고 요동쳤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것을 거칠게 쥔 듯했다. 프로펠러의 회전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더니, 모형은 ‘부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거실 한 바퀴를 맹렬히 선회했다.

    현우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비행선 모형은 마치 사나운 벌처럼 거실을 마구 날아다녔다. 낡은 오르골 시계의 톱니바퀴를 스치고, 천장의 가스등 주변을 맴돌았다. 그 움직임은 분노에 찬 것처럼 거칠었다.

    그리고 이내, 비행선 모형은 엄청난 속도로 현우가 서 있는 방향의 벽으로 돌진했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모형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황동 선체가 찌그러지고, 구리 파이프가 꺾였으며, 수많은 작은 톱니바퀴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지지직, 툭, 팅!’ 하는 금속이 부서지는 소리가 적막한 거실을 채웠다. 파편들 사이로 희미하게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현우는 그 자리에 굳어 선 채, 떨리는 눈으로 바닥을 응시했다. 차가운 금속 냄새, 비릿한 증기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그의 아파트에서, 그의 물건들이, 그의 눈앞에서 스스로 움직이고 파괴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오작동이 아니었다.

    그의 아파트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기계적인 힘을 빌려 현우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일까. 현우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강철 도시의 어떤 기계 소음도 현우의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오직 파괴된 모형에서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증기 소리만이, 그의 정신을 갉아먹는 듯했다.

  • 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어두운 밤, 도시의 숨통이 꺼진 듯 고요해질 무렵, 제국의 감시망을 피해 살아가는 이들의 보금자리에는 비로소 낮은 온기가 피어났다. 바깥의 차가운 돌바닥과는 다르게, 눅눅한 흙벽 안쪽은 낡은 직물로 덧대어져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등불은 짐승의 기름을 태우며 주황빛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이곳은 제국의 눈이 닿지 않는, 평민들의 작은 안식처이자 동시에 마지막 희망이 움트는 곳이었다.

    오래된 나무 탁자 주위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낮 동안 제국의 노동에 시달린 피로가 역력했지만, 등불 아래 마주 앉은 이웃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어딘가 알 수 없는 온기와 희망이 번졌다. 탁자 위에는 방금 끓여낸 콩스프가 담긴 나무 그릇들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감자 몇 조각과 말린 고기가 전부인 투박한 음식이지만, 이들에게는 어떤 진수성찬보다 귀한 한 끼였다.

    “휴우…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군.”

    턱수염이 성성한 노인이 땀 맺힌 이마를 훔치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이름은 갈고리, 낮에는 제국의 광산에서 쉼 없이 곡괭이를 휘두르다 밤이 되면 이 별무리 공동체의 든든한 일원이 되는 남자였다. 그의 등 뒤에는 오늘 광산에서 캐 온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할머니, 스프 정말 맛있어요! 제국군 막사보다 훨씬 맛있어요!”

    탁자 한 귀퉁이에 앉아 스프를 후루룩 마시던 샛별이라는 이름의 어린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샛별은 일곱 살배기 소녀로, 제국의 징집령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든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제국군 막사 이야기가 나온 것은, 얼마 전 몰래 숨어들어 남은 빵 부스러기를 훔쳐 왔을 때 맛본 제국군의 건빵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맛은 형편없었지만, 샛별에게는 그래도 귀한 경험이었다.

    “호호, 그래, 우리 샛별이가 맛있다고 해주니 할미는 기쁘구나.”

    백발의 할머니가 샛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할머니의 손은 거칠었지만, 그 온기는 세상 어떤 위로보다 따뜻했다. 그녀는 이곳 별무리 공동체의 가장 연장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아무리 고된 날에도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지혜로운 한 마디는 모두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곤 했다.

    하지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도 긴장감은 공기처럼 희박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오늘 밤은 단순한 저녁 식사 자리가 아니었다. 탁자 한가운데 놓인, 제국이 금지한 고대 언어로 쓰인 낡은 지도 한 장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도는 낡고 헤졌지만, 제국의 수도 ‘크라센폴리스’ 외곽에 있는 거대한 보급창고를 붉은 펜으로 큼지막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리안, 준비는 끝났나?”

    갈고리 노인이 샛별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청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리안은 스무 살 남짓의 젊은 나이였지만, 이 별무리 공동체의 실질적인 리더였다. 그의 눈빛은 짙은 밤하늘처럼 깊고, 흔들림 없는 강인함이 깃들어 있었다. 낮에는 제국의 관청에서 서류를 나르는 하급 관리로 일하며 정보를 캐냈고, 밤에는 동료들과 함께 제국에 맞설 방법을 모색했다.

    리안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갈고리 님. 어둠조가 보급창고 내부 구조를 확인했습니다. 순찰 주기는 기존보다 짧아졌지만, 아직 허점이 있습니다. 오늘 밤, 크라센 제3 보급창고에서 식량 수송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걸 노릴 겁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모여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제국 보급창고 습격은 그들의 가장 큰 계획 중 하나였다. 단순히 식량을 훔치는 것을 넘어, 제국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평민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상징적인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장날 수도 있었다.

    “식량이라… 잘만 하면 우리 아이들 몇 달은 배불리 먹일 수 있겠군.”

    갈고리 노인이 흐릿한 눈으로 샛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에는 희망과 함께 깊은 우려가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3 보급창고는 경비가 삼엄합니다. 지난번 외곽 마차 전복과는 다를 겁니다, 리안.”

    한 여인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에르나, 전직 제국군 소속의 정비공이었다. 제국의 폭정 속에서 가족을 잃고 이곳에 합류한 그녀는 기계에 대한 비상한 재능과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에르나 님. 그래서 전면 습격은 불가능합니다. 계획은 이렇습니다.”

    리안은 낡은 지도를 펼쳐 탁자 중앙에 놓았다. 그의 손가락이 지도의 특정 지점을 짚었다.

    “제3 보급창고 외곽에는 오래된 배수관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아 감시도 소홀하죠. 어둠조가 그곳을 통해 잠입하여 주요 식량창고의 문을 열고, 외부 대기조가 신속하게 식량을 회수할 겁니다. 모든 과정은 30분 안에 끝내야 합니다.”

    그의 설명을 듣는 동안, 사람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더욱 선명해졌다. 30분. 제국의 심장부에서 그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벌여야 한다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만약 발각된다면…?”

    다른 청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 질문은 모두가 마음속으로 품고 있었지만, 감히 꺼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리안은 잠시 침묵했다. 등불이 흔들리며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발각된다면… 전원 후퇴합니다. 그리고… 저항조가 시간을 벌 겁니다.”

    저항조. 그것은 별무리 공동체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의 이름이었다. 도망치는 이들을 위해, 제국군과 직접 대치하며 시간을 버는 역할. 그것은 사실상 죽음을 의미했다. 리안의 말에 몇몇은 고개를 떨구었고, 몇몇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할머니가 샛별의 작은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리안아, 너의 어깨가 참으로 무겁구나.”

    할머니의 목소리는 슬픔에 젖어 있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한 깊은 울림이 있었다. 리안은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눈빛은 아련한 슬픔과 함께, 젊은 리더를 향한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했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리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젊은 나이에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동료들의 생명, 그리고 빼앗긴 평민들의 미래가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무엇이 죄송하단 말이냐. 너는 옳고, 우리는 너를 믿는다. 다만… 명심하거라. 우리의 싸움은 복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지… 우리 아이들이 오늘 밤 이 스프처럼 따뜻하고 배부른 잠을 잘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서… 그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할머니의 말은 차가운 얼음처럼 굳었던 리안의 마음을 녹이는 작은 불씨 같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았다.

    “네, 할머니. 명심하겠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흙벽 너머, 바깥에서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불규칙적이지만, 빠르게 가까워지는 발소리.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젠장! 제국군 순찰대다!”

    출입구 쪽에서 망을 보던 청년이 급하게 외쳤다. 모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제국군 순찰대는 이 시간, 이곳까지 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리안은 망설일 틈도 없이 일어섰다.

    “모두 흩어져! 샛별이와 아이들은 할머니와 함께 비상통로로!”

    “하지만… 리안!” 에르나가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계획대로 진행한다! 어둠조는 지금 바로 보급창고로 이동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리안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어쩌면 제국군 순찰대의 등장은 예상치 못한 위기였지만, 동시에 경계가 느슨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혼란 속에서 그들은 움직여야 했다.

    갈고리 노인이 쇠붙이처럼 굳은 얼굴로 갈고리를 쥐었다. 그는 리안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저항조를 이끌겠다. 너는… 반드시 성공해야 해.”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눈빛 속에서 굳건한 결의가 오고 갔다. 모두의 가슴 속에서 두려움과 함께 알 수 없는 열정이 피어났다. 비록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의 존재로 인해 빛을 찾을 수 있었다.

    샛별은 할머니의 품에 안겨 흔들리는 등불 너머 리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리안의 어깨는 유난히 넓고 굳건해 보였다. 샛별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부디, 모두가 따뜻하고 배부른 잠을 잘 수 있는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바깥의 발걸음 소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흙벽 너머로 제국군 병사들의 거친 외침이 들려왔다.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이 구역을 수색하라!”

    리안은 마지막으로 콩스프가 담긴 나무 그릇을 바라보았다. 식어버린 스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희망과 간절함은 식지 않았다. 그는 문을 박차고 어둠 속으로 나섰다. 평범한 이들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반격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 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어두운 밤, 도시의 숨통이 꺼진 듯 고요해질 무렵, 제국의 감시망을 피해 살아가는 이들의 보금자리에는 비로소 낮은 온기가 피어났다. 바깥의 차가운 돌바닥과는 다르게, 눅눅한 흙벽 안쪽은 낡은 직물로 덧대어져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등불은 짐승의 기름을 태우며 주황빛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이곳은 제국의 눈이 닿지 않는, 평민들의 작은 안식처이자 동시에 마지막 희망이 움트는 곳이었다.

    오래된 나무 탁자 주위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낮 동안 제국의 노동에 시달린 피로가 역력했지만, 등불 아래 마주 앉은 이웃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어딘가 알 수 없는 온기와 희망이 번졌다. 탁자 위에는 방금 끓여낸 콩스프가 담긴 나무 그릇들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감자 몇 조각과 말린 고기가 전부인 투박한 음식이지만, 이들에게는 어떤 진수성찬보다 귀한 한 끼였다.

    “휴우…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군.”

    턱수염이 성성한 노인이 땀 맺힌 이마를 훔치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이름은 갈고리, 낮에는 제국의 광산에서 쉼 없이 곡괭이를 휘두르다 밤이 되면 이 별무리 공동체의 든든한 일원이 되는 남자였다. 그의 등 뒤에는 오늘 광산에서 캐 온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할머니, 스프 정말 맛있어요! 제국군 막사보다 훨씬 맛있어요!”

    탁자 한 귀퉁이에 앉아 스프를 후루룩 마시던 샛별이라는 이름의 어린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샛별은 일곱 살배기 소녀로, 제국의 징집령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든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제국군 막사 이야기가 나온 것은, 얼마 전 몰래 숨어들어 남은 빵 부스러기를 훔쳐 왔을 때 맛본 제국군의 건빵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맛은 형편없었지만, 샛별에게는 그래도 귀한 경험이었다.

    “호호, 그래, 우리 샛별이가 맛있다고 해주니 할미는 기쁘구나.”

    백발의 할머니가 샛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할머니의 손은 거칠었지만, 그 온기는 세상 어떤 위로보다 따뜻했다. 그녀는 이곳 별무리 공동체의 가장 연장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아무리 고된 날에도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지혜로운 한 마디는 모두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곤 했다.

    하지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도 긴장감은 공기처럼 희박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오늘 밤은 단순한 저녁 식사 자리가 아니었다. 탁자 한가운데 놓인, 제국이 금지한 고대 언어로 쓰인 낡은 지도 한 장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도는 낡고 헤졌지만, 제국의 수도 ‘크라센폴리스’ 외곽에 있는 거대한 보급창고를 붉은 펜으로 큼지막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리안, 준비는 끝났나?”

    갈고리 노인이 샛별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청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리안은 스무 살 남짓의 젊은 나이였지만, 이 별무리 공동체의 실질적인 리더였다. 그의 눈빛은 짙은 밤하늘처럼 깊고, 흔들림 없는 강인함이 깃들어 있었다. 낮에는 제국의 관청에서 서류를 나르는 하급 관리로 일하며 정보를 캐냈고, 밤에는 동료들과 함께 제국에 맞설 방법을 모색했다.

    리안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갈고리 님. 어둠조가 보급창고 내부 구조를 확인했습니다. 순찰 주기는 기존보다 짧아졌지만, 아직 허점이 있습니다. 오늘 밤, 크라센 제3 보급창고에서 식량 수송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걸 노릴 겁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모여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제국 보급창고 습격은 그들의 가장 큰 계획 중 하나였다. 단순히 식량을 훔치는 것을 넘어, 제국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평민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상징적인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장날 수도 있었다.

    “식량이라… 잘만 하면 우리 아이들 몇 달은 배불리 먹일 수 있겠군.”

    갈고리 노인이 흐릿한 눈으로 샛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에는 희망과 함께 깊은 우려가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3 보급창고는 경비가 삼엄합니다. 지난번 외곽 마차 전복과는 다를 겁니다, 리안.”

    한 여인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에르나, 전직 제국군 소속의 정비공이었다. 제국의 폭정 속에서 가족을 잃고 이곳에 합류한 그녀는 기계에 대한 비상한 재능과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에르나 님. 그래서 전면 습격은 불가능합니다. 계획은 이렇습니다.”

    리안은 낡은 지도를 펼쳐 탁자 중앙에 놓았다. 그의 손가락이 지도의 특정 지점을 짚었다.

    “제3 보급창고 외곽에는 오래된 배수관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아 감시도 소홀하죠. 어둠조가 그곳을 통해 잠입하여 주요 식량창고의 문을 열고, 외부 대기조가 신속하게 식량을 회수할 겁니다. 모든 과정은 30분 안에 끝내야 합니다.”

    그의 설명을 듣는 동안, 사람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더욱 선명해졌다. 30분. 제국의 심장부에서 그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벌여야 한다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만약 발각된다면…?”

    다른 청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 질문은 모두가 마음속으로 품고 있었지만, 감히 꺼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리안은 잠시 침묵했다. 등불이 흔들리며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발각된다면… 전원 후퇴합니다. 그리고… 저항조가 시간을 벌 겁니다.”

    저항조. 그것은 별무리 공동체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의 이름이었다. 도망치는 이들을 위해, 제국군과 직접 대치하며 시간을 버는 역할. 그것은 사실상 죽음을 의미했다. 리안의 말에 몇몇은 고개를 떨구었고, 몇몇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할머니가 샛별의 작은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리안아, 너의 어깨가 참으로 무겁구나.”

    할머니의 목소리는 슬픔에 젖어 있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한 깊은 울림이 있었다. 리안은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눈빛은 아련한 슬픔과 함께, 젊은 리더를 향한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했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리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젊은 나이에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동료들의 생명, 그리고 빼앗긴 평민들의 미래가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무엇이 죄송하단 말이냐. 너는 옳고, 우리는 너를 믿는다. 다만… 명심하거라. 우리의 싸움은 복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지… 우리 아이들이 오늘 밤 이 스프처럼 따뜻하고 배부른 잠을 잘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서… 그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할머니의 말은 차가운 얼음처럼 굳었던 리안의 마음을 녹이는 작은 불씨 같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았다.

    “네, 할머니. 명심하겠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흙벽 너머, 바깥에서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불규칙적이지만, 빠르게 가까워지는 발소리.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젠장! 제국군 순찰대다!”

    출입구 쪽에서 망을 보던 청년이 급하게 외쳤다. 모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제국군 순찰대는 이 시간, 이곳까지 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리안은 망설일 틈도 없이 일어섰다.

    “모두 흩어져! 샛별이와 아이들은 할머니와 함께 비상통로로!”

    “하지만… 리안!” 에르나가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계획대로 진행한다! 어둠조는 지금 바로 보급창고로 이동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리안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어쩌면 제국군 순찰대의 등장은 예상치 못한 위기였지만, 동시에 경계가 느슨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혼란 속에서 그들은 움직여야 했다.

    갈고리 노인이 쇠붙이처럼 굳은 얼굴로 갈고리를 쥐었다. 그는 리안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저항조를 이끌겠다. 너는… 반드시 성공해야 해.”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눈빛 속에서 굳건한 결의가 오고 갔다. 모두의 가슴 속에서 두려움과 함께 알 수 없는 열정이 피어났다. 비록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의 존재로 인해 빛을 찾을 수 있었다.

    샛별은 할머니의 품에 안겨 흔들리는 등불 너머 리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리안의 어깨는 유난히 넓고 굳건해 보였다. 샛별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부디, 모두가 따뜻하고 배부른 잠을 잘 수 있는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바깥의 발걸음 소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흙벽 너머로 제국군 병사들의 거친 외침이 들려왔다.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이 구역을 수색하라!”

    리안은 마지막으로 콩스프가 담긴 나무 그릇을 바라보았다. 식어버린 스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희망과 간절함은 식지 않았다. 그는 문을 박차고 어둠 속으로 나섰다. 평범한 이들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반격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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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은 짙은 먹물을 흩뿌린 듯 산골짜기마다 그림자를 드리웠다. 거대한 제국의 심장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 비록 이름 없는 마을일지라도 제국군의 눈을 피해 숨 죽이고 있는 반란의 숨결을 품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날카롭게 뺨을 스치는 시각, 강우는 오래된 초가지붕 위에서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우 형님, 괜찮으십니까?”

    옆에서 기다리던 소리가 나직이 물었다. 열여덟 남짓한 어린 소리는 밤의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고된 삶이 어린 나이의 얼굴에 일찍이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그 그림자 아래에는 결코 꺾이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가 숨 쉬고 있었다.

    “괜찮다. 그저… 오늘 밤은 유독 차갑구나.”

    강우는 허리춤에 찬 낡은 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쥐었다. 녹슬고 닳아빠진 검이었지만, 그에게는 수없이 많은 밤을 지켜준 생명줄과 같았다. 아래로는 제국의 거대한 양곡창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수백 리 밖에서도 그 위압적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백성들의 피땀으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이었다. 그 안에는 백성들의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을 수많은 곡식이 썩어가고 있을 터였다.

    “묵호는 준비되었나?”

    강우의 시선은 양곡창의 견고한 담벼락을 훑었다. 담벼락 위에는 삼엄한 경비가 이어지고 있었다. 제국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순찰을 돌았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그들의 갑옷은 제국의 서늘한 위용을 대변하는 듯했다.

    “예, 형님. 묵호 형님은 동문 쪽 후미에서 대기 중입니다.”

    묵호는 이들의 셋 중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사내였다. 말수는 적지만, 한 번 주먹을 내지르면 제국 병사 세넷은 거뜬히 쓰러뜨릴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였다. 오늘 밤 이 임무에서 그의 힘은 결정적일 터였다.

    “좋다. 소리, 네가 먼저 움직여라. 최대한 은밀하게.”

    “알겠습니다!”

    소리는 고양이처럼 가볍게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흐릿한 달빛 아래, 그녀의 몸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처럼 보였다. 사뿐히 담벼락 위로 내려선 소리는 재빠르게 몸을 낮춰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망루 위에 선 병사들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강우는 소리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한순간이라도 발각되면 이 밤의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될 터였다. 이들이 훔쳐야 할 것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었다.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가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한 줄기 희망이자, 제국에 맞서는 반란의 불씨를 지필 마지막 기회였다.

    소리가 미리 표시해둔 지점에 도달하자,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들어 작게 흔들었다. 성공적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신호였다. 강우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자신 역시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소리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몸이었지만, 그의 움직임 또한 숙련된 암살자처럼 날렵하고 정확했다.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익힌 생존의 기술이었다.

    양곡창 내부로 진입하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제국의 병사들은 겉으로 보이는 위용에 비해 내부 경비는 허술한 편이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견고한 담벼락과 병사들의 숫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오만함이 바로 이들의 약점이었다.

    “강우 형님, 이쪽입니다.”

    내부에 진입한 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속삭였다. 그녀는 이미 가장 취약한 지점을 찾아낸 듯했다. 거대한 곡식 창고 문은 두꺼운 나무판자로 덧대어져 있었으나, 낡은 자물쇠는 그리 단단해 보이지 않았다.

    강우는 주위를 살폈다. 복도 끝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순찰병이었다. 그는 재빨리 소리에게 손짓하여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게 했다. 자신 또한 기둥 뒤로 몸을 감췄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덜컹, 덜컹. 제국 병사의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 전체를 울렸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바로 코앞을 지나가는 병사의 숨소리까지 들릴 듯했다. 강우는 검자루를 더욱 단단히 쥐었다. 언제라도 뛰쳐나가 저 목숨을 거둬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병사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쳐갔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강우는 조용히 기둥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소리 또한 그림자에서 스르륵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눈빛은 여전히 침착했다.

    “묵호는 아직…”

    그때였다. 창고 문 틈새로 손가락 하나가 끼워지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낡은 자물쇠가 부서져 떨어졌다. 묵호였다. 그는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도착해 자신의 역할을 해낸 것이다.

    묵호는 거대한 나무 문을 통째로 밀어 열었다. 안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묵직한 곡식의 냄새가 진동했다.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쌓여있는 곡식 더미의 형체가 보였다. 그것은 산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 백성들이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제국은 이렇게 엄청난 양의 곡식을 창고에 썩히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강우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는 검을 휘둘러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묵호와 소리도 그의 뒤를 따랐다.

    “최대한 많이 챙겨라! 서둘러!”

    묵호는 미리 준비해온 커다란 자루를 펼쳤다. 그의 거대한 손이 곡식을 퍼 담기 시작했다. 소리 또한 작은 몸으로 열심히 곡식을 날랐다. 강우는 문밖을 경계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곡식 자루가 절반쯤 채워졌을 때였다.

    **쾅!**

    갑작스러운 충격과 함께 창고 문이 박살 났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수많은 횃불과 함께 제국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수는 스무 명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번쩍이는 금빛 갑옷을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허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검이 매달려 있었고,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쥐새끼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군. 양곡창에 숨어든 반란군이라니… 꽤나 대담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먹이를 찾아 기어나오는 비루한 짐승들에 불과했군.”

    제국 장교의 목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그의 비웃음은 강우의 핏대를 세웠다.

    “개 같은 놈들! 백성들의 피땀으로 쌓아 올린 곡식을 썩히면서, 굶주린 이들을 짐승 취급해? 네놈들이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다!”

    강우가 맹렬한 기세로 검을 뽑아 들었다. 녹슨 검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났다.

    “건방진 것! 당장 저 놈들의 목을 베어라!”

    장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제국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강우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낡은 검은 기적처럼 병사들의 갑옷을 뚫고 들어가 피를 흩뿌렸다.

    “소리! 묵호! 곡식은 다 필요 없다!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강우의 외침에 묵호는 미처 채우지 못한 곡식 자루를 내던지고 거대한 몸으로 병사들을 밀쳐냈다. 소리는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병사들의 틈을 파고들었다.

    “크아악!”
    “감히! 감히 이 몸을 건드려!”

    묵호의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병사들이 나가떨어졌다. 소리는 몸을 비틀며 병사들의 검을 피하고, 얇은 단검으로 그들의 약점을 찔렀다. 하지만 병사들의 수는 너무나 많았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과 창이 이들을 조여왔다.

    강우는 필사적으로 길을 열었다. 그의 검은 춤추듯 움직였다. 제국 병사들이 쓰러져나갔지만, 그만큼 새로운 병사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점점 숨이 가빠왔다.

    “형님! 조심하세요!”

    소리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강우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황급히 몸을 비틀었지만, 날아온 창날이 그의 옆구리를 스쳤다. 쓰라린 통증과 함께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강우 형님!”

    묵호가 소리쳤지만, 그는 이미 여러 명의 병사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장교는 멀찍이서 이들을 비웃으며 상황을 관전하고 있었다.

    “겨우 셋이서 대단하군. 하지만 결국은 이럴 뿐이지.”

    강우는 옆구리의 통증을 무시하고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마을의 굶주린 아이들, 제국의 폭정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아…!”

    강우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포효했다. 그때였다. 양곡창의 굳건한 문밖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앙!**

    새벽의 정적을 깨는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양곡창의 단단한 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먼지와 함께 쏟아져 들어오는 찬 공기 속에서, 수십 개의 횃불이 일렁였다.

    “제국 놈들! 더러운 손으로 백성들의 양식을 훔치지 마라!”

    수많은 함성 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들려왔다. 강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새로운 반란군 무리가, 어둠을 뚫고 양곡창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 또한 강우만큼이나 뜨거운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제국 장교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사라지고, 당혹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강우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피식 웃었다. 이제는, 싸움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진정한 싸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