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210화

별이 빛나는 밤의 서곡

안녕하세요,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진행자 지훈입니다.
밤이 깊어지고, 세상의 모든 소음이 별빛 아래 잠잠해지는 시간, 오늘도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납니다. 창밖에는 도시의 불빛이 아득하게 빛나지만, 그 위로는 언제나처럼 수많은 별들이 자신만의 속삭임을 쏟아내고 있겠죠. 오늘은 유난히 그 별들의 이야기가 더 선명하게 들리는 듯한 밤입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밤하늘의 별들은 때로는 길잡이가 되어주고, 때로는 잊혀진 추억의 파편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 밤, 여러분에게 전해드릴 이야기는 저에게도 오랜 시간 가슴 한편에 자리했던, 아주 특별한 별에 대한 기억입니다.

잃어버린 별의 좌표

가끔은 꿈을 꿉니다. 아주 어리고 푸르렀던 시절, 까만 밤하늘 아래 조그맣게 반짝이던 두 개의 별에 대한 꿈을요. 늦여름의 습한 공기, 풀벌레 소리가 배경처럼 깔리던 그 밤, 우리는 낡은 돗자리 위에 나란히 누워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겨우 열 살이었고, 옆에 있던 아이는 저보다 한 살 많았던 서연이었습니다.

서연이는 참 별을 좋아했어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손으로 밤하늘의 별자리들을 스케치북에 빼곡히 옮겨 그리곤 했죠. 그녀는 특히 밤하늘의 작은 쌍성을 좋아했습니다. 육안으로는 희미한 점 하나로 보이지만, 작은 망원경으로 보면 두 개의 별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춤추는 것처럼 보이는 별이었어요.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는 빌딩 불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참을 걸어 올라가던 뒷산 정상에서는 선명하게 빛나는 그 별을 찾을 수 있었죠.

“지훈아, 저 별들 보여? 꼭 우리가 서로를 지켜주는 것 같지 않아?”
서연이의 목소리는 별빛만큼이나 맑았습니다. 그녀는 작은 손가락으로 까만 하늘 한 지점을 가리켰고, 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필사적으로 응시했습니다. 희미하게 깜빡이던 그 별 두 개. 어린 저는 그 별들이 서연이와 저, 우리 둘만의 비밀스러운 증표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 별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우리도 절대 헤어지지 않고, 저 별들처럼 늘 함께할 거야.”
그 밤, 서연이는 제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마음에, 그 약속을 영원히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 별을 ‘우리 별’이라고 부르기로 했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저 별을 더 가까이 보러 우주선을 만들자고, 터무니없는 약속까지 했죠.

시간의 강물 위에서

하지만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갔습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세상의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서연이네 가족은 어느 날 갑자기 멀리 이사를 갔고, 우리는 그 흔한 연락처 하나 주고받지 못한 채 헤어졌습니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의 이별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거대한 공백과 같았습니다.

그 후로 수많은 밤을 보냈지만, 저는 여전히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그 쌍성을 찾곤 했습니다. 비록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지라도, 제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 별들이 같은 자리에서 서로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만의 그리움이었고, 잊지 못할 추억의 좌표였습니다.

가끔은 생각했습니다. 서연이도 저 별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녀도 밤하늘 어딘가에서, 문득 그날의 약속을 떠올리며 저 별을 찾고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별똥별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답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밤하늘에 기원할 뿐이었죠.

별빛 아래 메시지

지난주, 별밤 라디오 게시판에는 한 통의 사연이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에 꺼내본 옛 물건들 속에서 낡은 스케치북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죠. 보낸 분은 ‘별을 좋아하는 그림쟁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지훈님. 어릴 적 제가 그린 스케치북을 발견했어요. 빼곡히 별자리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중에 유독 눈에 띄는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작은 별 두 개가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인데, 옆에 ‘우리 별’이라고 적혀 있네요. 누구와 함께 그렸는지, 어떤 의미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하지만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아련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지훈님은 혹시, 이런 별을 아시나요?

사연을 읽는 순간, 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별’. 두 개의 별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그림. 그리고 그 아래 적힌 글귀. 이 모든 것이 마치 제 기억 속에서 튀어나온 듯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는 오직 한 사람의 이름만이 또렷하게 떠올랐습니다. 서연이.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이름도 얼굴도 희미해진 채 그저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서연이가, 어쩌면 저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는 손이 떨렸습니다. 이 사연이 정말 그녀가 보낸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요?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대한 필연의 조각인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요.

오늘 밤, 이 라디오를 듣고 계실 ‘별을 좋아하는 그림쟁이’님께 조심스럽게 묻고 싶습니다. 혹시, 그 스케치북의 그림 옆에, 다른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나요? 혹은… 저에게 들려주고 싶은 다른 이야기는 없으신가요?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는 잠시 광고 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밤하늘 어딘가에서, 아주 오래전 그날의 쌍성을 다시 찾아보고 있을 겁니다. 오늘은 유난히 저 별이 밝게 빛나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