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금속 바닥에 주저앉은 이안은, 시간 탐사선의 낡은 잔해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싸늘한 공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조용한 선실, 외부에서 스며든 바람이 텅 빈 공간을 휘감으며 마치 누군가의 슬픈 울음처럼 기괴한 소리를 토해냈다. 막 되찾은 기억의 파편은 이안의 뇌리를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찢어발기는 듯했다. 그것은 한때 세상의 모든 빛이자 온기였던 사랑하는 이의 얼굴, 그리고 그 얼굴에 새겨진 절망적인 마지막 순간의 표정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파편, 비명 소리, 그리고 손을 뻗었지만 결코 닿을 수 없었던 그 순간의 무력감.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섬뜩한 이미지로 이안의 정신을 잠식했다.
고통스러웠다. 매번 기억의 조각을 맞출 때마다,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숨겨진 끔찍한 진실을 파헤치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했는지, 그 모든 것이 거대한 악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안은 자신이 선한 존재였는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른 파괴자였는지 혼란스러웠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과거의 죄책감에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잃게 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 이안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안?”
나직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들어왔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온기에 이안은 겨우 고개를 들었다. 서진이었다. 그녀는 이안의 곁으로 조용히 다가와, 흙먼지가 쌓인 바닥에 주저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이안의 텅 비어버린 눈동자를 마주한 서진의 얼굴에는 깊은 걱정이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괜찮아?” 서진의 목소리에는 꾸밈없는 위로가 담겨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는 이안의 세계를 붙잡아 줄 굳건한 닻 같았다.
이안은 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내가 뭘 한 거지, 서진아? 그 기억… 너무나 생생해. 내 손에서 모든 것이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아. 내가… 내가 그 모든 비극의 원인이었을까?”
서진은 이안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따뜻한 체온이 차가운 이안의 피부를 타고 스며들었다. “아직 다 알 수 없어. 파편화된 기억만으로는 전체를 판단할 수 없어, 이안. 하지만 네가 어떤 사람이었든,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든… 지금의 너는 달라. 지금의 너는… 고통스러워하고, 진실을 찾으려 애쓰고 있어.”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부서진 조각들만 남은 채, 도망치듯 과거를 헤매는 유령일 뿐이야.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혼란 그 자체야.” 이안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거대한 오류인 것만 같았다.
서진은 이안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아니, 넌 지금도 우리에게 희망이야. 잃어버린 과거 때문에 현재의 너를 부정하지 마. 네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망쳤다고 생각하든… 우리가 함께 할 거야. 네가 진실을 마주할 수 있도록.”
서진의 말은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 같았다. 이안은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그 속에는 흔들림 없는 믿음과 연대가 담겨 있었다. 혼자서 짊어지려 했던 거대한 고통이 잠시나마 옅어지는 느낌이었다. 서진은 이안의 존재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과거의 죄가 무엇이든, 지금의 이안을 믿고 있었다.
그 순간, 이안의 뇌리에서 새로운 파편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막 되찾은 절망적인 기억 속에서, 한 가지 장소가, 한 가지 이름이, 그리고 고대 유물의 형상이 마치 빛처럼 스쳐 지나갔다. 폐허가 된 도시의 이름, 그리고 그곳을 지키던 신비로운 유물. 그것은 단순한 기억의 잔재가 아니었다. 분명, 다음 단서를 가리키는 이정표였다. 고통 속에 숨겨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실마리였다.
“서진아,” 이안이 겨우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절망에 가라앉았던 눈빛에 아주 희미하게나마 새로운 결의가 피어오르는 것을 서진은 놓치지 않았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있어. 내 기억이… 나에게 다른 길을 가리키고 있어. 이 모든 비극의 시작점일지도 모르는 곳.”
서진은 이안의 눈빛에서 다시금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보았다. 절망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진실을 향한 집념의 불꽃을.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어디를 가든, 어떤 진실을 마주하든, 서진은 그의 곁을 지킬 것이다.
그때였다. 침묵하던 탐사선의 낡은 통신기가 갑자기 찌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이 들어왔다. 잡음으로 가득 찬 주파수 속에서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마치 오래된 기록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그 목소리는 차갑고 무감각했다.
‘…너를 찾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방해한 자… 너의 존재는… 오류다…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곧… 너의 모든 것이… 삭제될 것이다…’
이안과 서진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의 절망과 연대감은 새로운 위협 앞에서 더욱 단단한 결속으로 변하는 듯했다. 그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는 것만 같았다. 과거의 망령이 이안을 옭아매려 하는 동안, 미지의 존재는 그들의 발자취를 추적하며 시간의 질서를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이안은 다시금,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발을 내디딜 준비를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