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247화

오래된 찻집, 달빛 마중

지훈은 조수석에 놓인 낡은 사진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바랜 컬러 사진 속에는 스무 살의 설아가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는 짙푸른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작은 한옥 찻집이 보였다. 사진 뒷면에 손으로 휘갈겨 쓴 주소는 수많은 오인과 좌절 끝에 그가 마침내 찾아낸 유일한 단서였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도시의 풍경은 끊임없이 변했지만, 사진 속 찻집은 기적처럼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달빛 마중’이라는 간판은 나무가 삭아 글씨가 희미해졌고, 담쟁이덩굴은 더욱 무성하게 찻집의 외벽을 집어삼킬 듯이 감싸고 있었다. 지훈은 차의 시동을 끄고 잠시 동안 손잡이를 잡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이 문을 열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설아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절망과 마주하게 될까?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헤매던 그의 발자취가 문득 아득하게 느껴졌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탐정이라는 아이러니한 타이틀을 짊어지고 살아온 세월. 그는 그저 하나의 존재를 찾고 싶었을 뿐이었다. 빛바랜 추억 속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처럼 남아있는 설아를.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차가운 금속 손잡이가 그의 손에 닿았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낡은 풍경 소리가 맑게 울렸다. 찻집 안은 예상보다 훨씬 아늑했다. 오래된 나무 향과 은은한 차 향이 섞여 공기 중에 떠다녔다. 창가로 스며드는 노을빛이 먼지 낀 공기 속을 유영하는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서 오세요.”

깊게 파인 눈가의 잔주름이 인상적인 할머니 한 분이 카운터 뒤에서 걸어 나왔다. 온화하면서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지훈은 사진을 내밀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혹시… 이 사진 속의 여인을 아십니까? 오래전에 이곳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할머니는 말없이 사진을 받아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사진 속 설아의 얼굴에 닿자, 순간 옅은 미소가 할머니의 입가에 스쳤다. 그러나 이내 그 미소는 스러지고, 할머니는 지훈을 다시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전 일이네요. 앳된 얼굴이 이젠… 기억이 희미합니다.”

지훈의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또다시 막다른 골목인가. 허망함이 밀려왔지만, 그는 애써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설아… 라고 합니다. 김설아. 혹시 조금이라도 기억이 나시면…”

할머니는 지훈의 간절한 눈빛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리고는 찻집 한편에 놓인 작은 좌식 테이블로 그를 안내했다.

“앉으세요. 목이 마르실 텐데. 따뜻한 차 한 잔 드릴게요.”

차는 국화차였다. 잔잔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자, 지훈은 조금이나마 진정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말없이 찻잔을 들었다 놓았다 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설아 아가씨는… 여기 자주 왔었어요. 저 뒤뜰에 핀 국화꽃을 가장 좋아했지. 그 아가씨가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러니까… 이 사진을 찍은 해일 거예요. 특별히 좋아하던 자리가 있었는데, 늘 저 창가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곤 했죠.”

할머니의 시선은 지훈이 앉아있는 자리, 바로 그 창가를 향했다. 지훈은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설아가 앉았던 그 자리에, 지금 자신이 앉아 있는 것이다.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더군요. 그러다 몇 년 전에… 다시 한 번 왔었어요. 아주 잠깐. 많이 변했지만, 눈빛만은 예전 그대로더군요.”

“왔었다고요? 언제요? 지금 어디에 계신지… 아시나요?”

지훈의 목소리가 급해졌다. 끓어오르는 희망에 목이 메었다.

할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를 다 들어드리고 싶지만, 아가씨가 남긴 말이 있어요. ‘혹여 제가 아닌 다른 이가 저를 찾는다면, 그저 기다리라고만 전해주세요’ 하고요. 그리고… 이 작은 상자를 제게 맡겼습니다.”

할머니는 카운터 뒤에서 손바닥만 한 낡은 나무 상자를 가지고 왔다. 오랜 세월을 견딘 듯 표면이 매끄럽게 닳아 있었다. 상자를 열자, 은은한 향이 풍겨 나왔다. 그 안에는 바싹 마른 물망초 꽃 한 송이와, 얇게 접힌 종이 한 장이 들어있었다.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설아의 글씨였다.

짧은 글이었다.

‘나를 찾아 헤맬 누군가에게. 오래된 약속을 기억하고 있나요? 별들이 가장 가까이 속삭이는 곳.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설아 올림.’

별들이 가장 가까이 속삭이는 곳. 지훈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한 장소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설아와 함께 밤하늘을 보며 별자리를 헤아리던 곳. 도시 외곽의 허름한 천문대. 그들이 언젠가 다시 함께 가자고 약속했던 곳이었다.

물망초. ‘나를 잊지 말아요.’ 꽃말처럼, 설아는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 또한 그녀를 잊지 않았다.

지훈은 상자와 종이를 소중히 쥐었다. 긴 여정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우며 그려왔던 그녀의 모습이, 이제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할머니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고 찻집을 나섰다.

어둑해진 골목길에는 어느새 둥근 달이 떠올라 ‘달빛 마중’ 간판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지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 그의 심장은 다시 한번 뜨겁게 타올랐다. 이제 그는 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찾아야 할지.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