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상점 – 제254화

소연은 창밖을 응시했다. 밤은 깊었고, 유리창에는 희미한 제 모습이 비쳤다. 주름살이 깊어진 눈가에는 지울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거실 너머 아들의 방에서는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아들은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거머쥐었다. 유명 기업의 핵심 인재로, 탄탄한 미래가 보장된 삶. 누구에게나 자랑할 만한 아들이었다.

그러나 소연의 가슴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들은 언제나 차분하고 이성적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었다.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기뻐도 미소만 지을 뿐이고, 슬퍼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가끔 그의 눈을 들여다볼 때면,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눈빛 속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듯했다. 소연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녀를 한시도 편히 잠들 수 없게 만들었다.

오래된 꿈의 그림자

10년 전, 소연은 절망의 끝에 서 있었다. 남편과의 사별 후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며 겪어야 했던 가난과 설움은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아들은 또래 아이들과 달리 유난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였다. 작은 실패에도 쉽게 좌절하고, 늘 불안해했다. 소연은 아들이 자신처럼 힘든 삶을 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의 미래를 바꿔주고 싶었다. 성공하고, 행복하고,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때 그녀의 귀에 기묘한 소문이 들려왔다. 도시의 가장 오래된 골목, 낡은 붉은 벽돌 건물 2층에 자리한 ‘꿈을 파는 상점’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의 가장 깊은 소망을 꿈의 형태로 팔고, 그것이 현실이 되게 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반신반의하면서도 소연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곳을 찾아갔다.

상점 안은 시간마저 멈춘 듯 고요했다. 빛바랜 천막이 드리워진 창가, 오래된 나무 서가에는 이름 모를 병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병 안에는 마치 살아있는 듯 희미하게 빛나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 안은 듯한 묘한 향기. 은은하면서도 어딘가 아련한, 잊혀진 추억의 냄새 같기도 했다.

카운터 뒤에는 흰 머리카락을 단정히 빗어 넘긴 노인이 앉아 있었다. 김선생이라 불리는 그는 소연의 눈빛만으로 그녀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소연은 주저 없이 자신의 가장 절실한 꿈을 이야기했다. 아들의 성공과 행복. 어떠한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삶을 원한다고.

김선생은 아무 말 없이 수많은 병들 사이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투명한 유리병 속에는 아침 햇살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액체가 담겨 있었다. “이것은 어머니의 가장 깊은 소망이 담긴 꿈입니다. 아드님께 이 꿈을 주시면, 그의 앞길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모든 역경은 비켜가고, 성공은 저절로 따라올 것입니다.”

소연은 병을 건네받았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마치 그녀의 절박함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대신, 이 꿈이 현실이 되는 동안, 아드님은 아주 작은 것들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그 상실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김선생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말은 소연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그러나 그때의 소연은 그저 아들의 고통 없는 미래만을 갈망했다. 작은 상실쯤은 기꺼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는 ‘아들이’ 감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되찾고 싶은 것

그날 밤, 소연은 잠든 아들의 입술에 꿈의 액체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금빛 액체는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그 후 아들의 삶은 놀랍도록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내성적이지 않았다. 어떤 시험이든 최고의 성적을 받았고, 어떤 대회에서든 1등을 차지했다. 그의 앞길은 늘 탄탄대로였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고 부러워했다. 소연은 행복했다. 꿈을 판 상점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아들의 완벽함 뒤에 숨겨진 무언가를 직감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이제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았다. 기계적으로 반응할 뿐, 그 안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감정은 없었다. 어릴 적 넘어지면 무릎을 감싸 쥐고 엉엉 울던 그 아이의 순수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에도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타인의 아픔에도 공감하지 못했다. 소연은 깨달았다. 아들이 잃은 것은 단순한 ‘작은 상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감정’ 그 자체였다. 인간으로서 가장 소중한, 희로애락의 조각들이었다.

소연은 창밖의 어둠 속에서 상점의 붉은 벽돌 건물을 떠올렸다. 다시 그곳으로 가야 했다. 무엇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이 그녀를 이끌었다. 완벽하지만 텅 빈 아들을 바라보는 것은, 그녀 자신마저 텅 비어버리게 만드는 고통이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소연은 걷고 또 걸었다. 낡은 골목길은 여전히 음침했고, 상점의 붉은 벽돌은 어둠 속에서 더욱 짙게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10년 전과 똑같은 고요함과 잊혀진 추억의 향기가 그녀를 맞았다. 김선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흰 머리카락은 변함없었지만, 그의 눈빛은 10년 전보다 더욱 깊어진 듯했다.

“다시 오실 줄 알았습니다.” 김선생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소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마치 그녀가 다시 올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소연은 테이블에 손을 짚고 겨우 몸을 지탱했다. “제 아들이… 제 아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완벽하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 아이의 감정을 돌려받고 싶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주고 싶어요.”

김선생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슬픔을 머금은 듯했다. “어머님, 꿈은 씨앗과 같습니다. 일단 심고 나면, 그것은 스스로 자라납니다. 한번 뿌리내린 것을 되돌리려면,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지요. 아드님이 잃은 것은 어머님께서 원하셨던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대가였습니다. 꿈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감당할게요! 어떤 대가든 제가 치르겠습니다. 제 아들이 다시 웃고, 울고, 아파하고,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그 어떤 것도 상관없으니, 제발… 제발 아들을 돌려주세요.” 소연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눈가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낡은 서가 가장 위 칸, 먼지가 쌓인 병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다른 병들과 달리 아무런 빛도 발하지 않는, 그저 투명한 액체만이 담긴 병이었다. “이것은 ‘잃어버린 감정’을 되찾는 꿈입니다. 하지만 이 꿈은 어머님의 것입니다. 아드님이 아닌, 어머님의 꿈입니다. 아드님께 다시 감정을 주려면, 어머님께서 잃어버렸던, 혹은 잊고 지냈던 감정의 조각들을 다시 찾아내야만 합니다.”

소연은 병을 받아들었다. 차갑고 공허한 감촉이 마치 그녀 자신의 마음 같았다. “제 감정의 조각이요…?” 그녀는 중얼거렸다. 아들을 완벽하게 만들려 애쓰는 동안, 그녀는 과연 무엇을 잃어버리고 잊고 살았던가. 그녀의 희망, 그녀의 기쁨, 때로는 그녀의 슬픔까지도 아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스스로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김선생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 꿈은 매우 고통스러울 겁니다. 어머님께서 잊었던 모든 상처, 후회, 그리고 어쩌면 아드님을 위해 포기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마주해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것만이 아드님에게 진정한 감정을 돌려줄 유일한 길입니다. 어머님께서 먼저 온전해져야만, 아드님도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병은 소연의 손안에서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제 알았다. 아들을 위해 샀던 꿈의 진짜 대가는 아들의 감정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머니인 그녀 자신의 존재마저 갉아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것을 되돌리려는 대가는, 그녀 자신을 다시 찾아내는 고통스러운 여정이라는 것을. 소연은 병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김선생의 말처럼, 그동안 잊고 지냈던 뜨거운 슬픔이 비로소 그녀의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이 눈물이, 어쩌면 그녀가 되찾아야 할 감정의 첫 조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연은 아픔 속에서도 희미한 희망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