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쫓는 아이들 – 제79화

잿빛 먼지로 가득 찬 창밖을 하진은 멍하니 응시했다. 무한히 펼쳐진 우주의 고요함은 때로 위로가 되었지만, 지금은 그저 막막한 절망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수십 년간 쫓아온 별의 흔적은 이제 희미한 잔상처럼 아득했고, 그들의 유일한 보금자리이자 희망이었던 탐사선 ‘별지기호’는 삐걱거리는 경고음을 토해내며 서서히 속도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진아, 엔진 출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비상 동력도 얼마 남지 않았어.” 유나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침착하려 애쓰는 말투였지만, 그 속에 배어 있는 피로와 불안을 하진은 모를 리 없었다. 그들 모두가 이 오랜 여정 속에서 닳고 닳아 있었다. 어린 시절,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보며 언젠가 저 너머에 인류의 새로운 낙원이 존재하리라 믿었던 ‘별을 쫓는 아이들’은 이제 지쳐버린 어른이 되어 있었다.

잃어버린 약속의 무게

하진은 차가운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금속의 냉기가 뼈를 파고드는 듯했다. 기억 저편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선우 선생님의 목소리. “얘들아, 별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단다. 너희가 길을 잃을 때, 별은 언제나 길잡이가 되어줄 거야.” 그 약속은 한때는 그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격렬한 불꽃이었지만, 이제는 재만 남은 화로처럼 공허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동료를 잃었다. 거대한 우주의 장막 속에서 길을 잃고 사라진 자들, 식량과 물이 부족해 고통 속에 쓰러진 자들, 그리고 알 수 없는 외계 환경에 희생된 자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진의 어깨 위에는 이 모든 희생에 대한 죄책감이 무거운 돌덩이처럼 얹혀 있었다. 정말 이 길의 끝에 선우 선생님이 말했던 ‘별의 요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아니면 그저 존재하지 않는 이상을 쫓아 달려온 어리석은 행위였을까?

“하진아, 더 이상은… 이렇게 가다간 모든 게 끝이야. 이제 돌아가야 해. 돌아갈 곳이 설령 폐허뿐이라 해도, 여기서 죽는 것보단…” 유나가 제어실로 직접 찾아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의 눈가에도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유나 역시 오랜 시간 하진과 함께 이 길을 걸어온 동지이자, 때로는 그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하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돌아갈 곳이 없어, 유나.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왔어. 우리가 포기하는 순간, 선우 선생님의 꿈도, 그리고 이 별지기호에 잠든 모두의 희생도… 아무 의미가 없어져.”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먼지 속에서 피어난 희망

그때였다. ‘삐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오래된 통신 패널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누군가 수십 년 전 설정해 둔 비상 주파수였다. 유나가 급히 패널을 조작했다.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메시지를 듣고 있다면… 분명 절망의 순간에 있을 너희들일 테지. 별은 때로 너무 멀어 보이고,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일 거야. 하지만 잊지 마라, 아이들아. 별을 쫓는다는 것은 단순히 도착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여정 자체가 별의 일부가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선우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젊고 활기찼던 그의 목소리는 이 먼 우주에서도 생생하게 하진의 귓가를 울렸다.

“너희가 가진 것은 믿음이다. 그리고 희망이다. 너희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믿는다면, 어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별지기호의 설계도를 다시 봐라. 가장 깊은 곳, 너희가 가장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곳에… 마지막 열쇠가 숨겨져 있을 테니.”

메시지는 거기서 끊겼다. 하진과 유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꺼져가던 불씨가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했다. 선우 선생님은 항상 그렇게 예기치 못한 곳에 가장 중요한 지혜를 남겨두곤 했다.

“설계도… 가장 깊은 곳…” 하진은 별지기호의 설계도를 다시 펼쳤다. 수백 번도 더 들여다본 익숙한 도면이었다. 그러나 선우 선생님의 메시지를 듣고 나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버려진 구식 통신실 아래, 에너지 코어와 연결된 비상 보조 전력 회로.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 방치되었던 곳이었다.

“유나, 저쪽이야! 제5 보조 코어! 거기로 연결된 회로에 뭔가 이상해!” 하진이 외쳤다.

별에게 닿는 한 걸음

그들은 즉시 움직였다. 낡고 먼지 쌓인 통로를 지나, 거의 잊혀진 제5 보조 코어실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핵심 부품 하나가 거의 완전히 부식되어 있었다. 그것을 교체하지 않으면 비상 동력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남은 예비 부품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젠장, 어떻게 이런 곳에… 예비 부품도 없어.” 유나가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하진은 부식된 부품을 응시했다. 그리고 문득, 어릴 적 선우 선생님이 망가진 장난감을 고쳐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상에 완전히 버려지는 것은 없단다. 모든 것엔 용도가 있고, 새로운 쓰임새를 찾을 수 있지.”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버려진 통신 패널, 고장 난 제어 장치, 녹슨 금속 조각들… 순간 그의 눈에 빛이 스쳤다. 버려진 옛 통신 패널의 내부 회로 기판에서 작은 콘덴서 하나를 떼어냈다. 크기는 얼추 맞았지만, 기능이 다를 터였다.

“이걸로…?” 유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기능은 다르지만, 회로를 조정하면 임시로 동력을 공급할 수 있을지도 몰라. 최소한 우리가 목적지에 더 가까이 갈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하진은 고도로 집중하며 낡은 도구를 이용해 섬세하게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은 떨렸지만,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수십 년간 잊고 지냈던 손놀림이었다. 어릴 적 선우 선생님 옆에서 부품을 조립하고 작은 장치를 만들었던 그 ‘별을 쫓는 아이’의 모습이 하진에게서 다시 피어났다. 유나는 그의 곁에서 불안한 시선으로 상황을 지켜보다가, 이내 하진의 손놀림을 돕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손이 얽히고설키며, 희망의 불씨가 작은 기판 위에서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하진이 조립을 마쳤다. 긴장 속에 메인 시스템에 연결하자, 잠시 후 별지기호 전체를 감싸고 있던 경고음이 잦아들었다. 엔진 출력이 미미하게나마 회복되고, 비상 동력 시스템에 녹색 불이 들어왔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됐다… 우리가 해냈어, 하진아!” 유나가 감격에 겨워 그의 손을 잡았다.

하진은 고개를 들어 잿빛 창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멀리, 아주 멀리, 육안으로는 겨우 점으로 보이는 희미한 별들이 그들을 응시하는 듯했다. 그 별들이 선우 선생님이 말했던 ‘별의 요람’일지, 혹은 그저 끝없는 우주의 일부일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들은 여전히 별을 쫓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길 위에서, 그들은 여전히 ‘아이들’이었다. 새로운 희망을 품고, 다시 한번 미지의 우주 속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별지기호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잊혀진 줄 알았던 그들의 여정은, 다시금 별빛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