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리는 시계 – 제80화

지우는 심해 속을 걷는 듯했다. 발걸음마다 무게가 실리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물이 폐를 채우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 익숙한 방, 익숙한 가구,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 그러나 모든 것이 한 겹의 투명한 막에 덮여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어제의 기억이 오늘의 현실과 미묘하게 어긋나는 순간마다, 심장은 얼음 조각에 꿰뚫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탁자 위, 낡은 오르골 옆에 놓인 시계가 느릿하게 태엽을 감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 그녀의 구원이자, 동시에 그녀를 심연으로 끌어내린 저주. 미나를 구하기 위해, 단 한 번의 올바른 순간을 찾기 위해, 지우는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마다 세상은 아주 미세하게, 때로는 너무나 처절하게 뒤틀렸다.

최근 들어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친구들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고, 어제 함께 나눴던 대화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거리의 풍경은 마치 누군가 임시방편으로 붙여놓은 세트장처럼 어색했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때때로 존재하지 않는 색이 번져 보였다. 모든 것이 그녀의 시계가 만들어낸 균열이었다.

“이러다간 정말… 세상이 무너질 거야.”

지우는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은 시계를 향해 뻗어 있었지만, 차마 움켜쥘 수는 없었다. 이제는 두려웠다. 이 시계를 다시 한 번 돌렸을 때, 과연 어떤 지옥이 그녀를 기다릴지.

기억의 파편, 균열의 징조

그날 저녁, 지우는 낯선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한 교수였다.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의 존재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그리고 그 위험성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해왔던 인물.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가라앉아 있었다.

“지우 씨, 지금 당장 만납시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요.”

어딘가 불안한 예감에 휩싸인 지우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낡은 도서관의 구석진 열람실. 한 교수는 피곤한 얼굴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켜진 노트북과 함께, 복잡한 수식이 적힌 종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지우 씨가 시계를 돌릴 때마다, 세상은 새로운 평행우주를 만들어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기존의 우주에 억지로 다른 기억과 사건을 덧씌우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이 바로 지금 당신이 느끼는 세상의 균열입니다.”

한 교수의 말은 지우가 어렴풋이 짐작했던 공포를 확신으로 바꾸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미나를 구하려면….”

“구원이라 생각하나요? 지우 씨가 시간을 되돌릴 때마다, 미나는 그 시간을 온전히 겪습니다. 그녀는 죽음의 순간을 수십 번, 수백 번 경험했어요. 단지 지우 씨의 기억 속에서만 과거가 지워질 뿐이죠.”

지우의 눈앞이 아찔해졌다.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영상들. 그녀가 미나를 구하려 했던 수많은 순간, 그때마다 미나는 자신을 보며 절규했었다. 언니, 그만해. 제발 그만해! 그 목소리들은 늘 절박했고, 늘 좌절로 끝났었다.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죄책감이 만들어낸 환영이라고만 생각했다.

“미나의 영혼은… 무수한 시간의 파편 속에 갇혀 고통받고 있습니다. 지우 씨의 시도가 계속될수록, 미나는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빠져드는 거예요. 구원이 아니라… 더 큰 지옥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미나의 절규, 무수한 죽음의 그림자

한 교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열람실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지우의 눈앞에 흐릿한 형상이 나타났다. 미나였다. 여전히 열여섯 살의 모습으로,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얼굴이었다. 생기 넘치던 미소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깊은 슬픔과 피로가 대신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수천 년의 고통을 담은 듯이 공허했다.

“언니…”

미나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것은 환청이 아니었다. 분명히, 그녀의 영혼이 지우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었다.

“언니는 나를 구하려고 했지만… 나는 수없이 죽고 또 죽었어. 강물에 휩쓸려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화재 속에서 재가 되고… 그때마다 언니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하지만 나는 원망했어. 왜 나를 이 고통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않느냐고.”

미나는 지우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투명한 손이 지우의 뺨을 스쳤다. 얼음장 같은 차가움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나는 이제… 잠들고 싶어. 단 한 번이라도, 온전한 죽음 속에서 평화를 찾고 싶어, 언니. 언니가 나를 사랑한다면… 이제는 놔줘.”

미나의 형상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지우의 심장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자신이 사랑이라 믿었던 모든 행동이, 미나에게는 끝없는 고통의 반복이었다니. 구원이 아니라, 학대였다.

최후의 선택, 멈춰선 시간

지우는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녀의 손은 주머니 속 시계를 찾아 헤맸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가락에 닿았다. 더 이상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돌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미나를 구할 수 있죠, 교수님?”

쉰 목소리로 지우가 물었다. 한 교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계는 시간을 되돌리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시간의 파편을 한곳에 모아, 본래의 줄기로 돌려놓는 기능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그 과정에서 지우 씨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 시계를 사용한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사라져 갔죠. 이 시계는,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정리’하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지우는 교수님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사라진다 해도 좋았다. 미나의 고통을 멈출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시계를 꽉 움켜쥐었다. 차가웠던 시계는 그녀의 손안에서 미미하게 떨리는 듯했다.

“미나를 구하는 방법은… 미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이 시계가 만들어낸 모든 시간의 상흔을 지우는 것.”

지우는 결심했다. 그녀는 시계의 태엽을 끝까지 감았다. 그리고 익숙한 조작으로, 시계를 시간을 되돌리는 기능이 아닌,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즉 ‘시간을 봉합’하는 모드로 전환했다. 시계가 윙-하는 낮은 진동음을 내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앞에 미나의 환영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마워, 언니…”

미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해방의 목소리였다. 지우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존재가, 이 시계로 인해 뒤틀렸던 모든 시간의 조각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대가로 소멸되고 있었다. 세상의 균열이 닫히고, 기억의 파편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한없이 평화로웠다.

마지막 순간, 지우의 눈에 비친 것은 깨끗하고 명확한 세상이었다. 더 이상 어긋나지 않는 하늘, 흔들림 없는 나무들, 그리고… 한 교수님의 흐릿한 얼굴. 그리고 미나의 미소.

그녀는 비로소 알았다. 진정한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임을.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는 그녀를 수많은 지옥으로 이끌었지만, 결국 그녀는 시계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냈다. 미나를 위한 마지막이자 유일한 구원.

지우의 손에서 시계가 떨어져 나갔다. 텅 빈 공간에, 시계만이 홀로 윙-하는 소리를 내며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우는… 모든 시간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