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상점 – 제264화



꿈을 파는 상점 – 제264화

오래된 익숙함의 무게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창틈을 비집고 들어와 마른 나뭇가지처럼 메마른 준영의 뺨을 스쳤다. 그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습관처럼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해가 뜨기 한참 전, 세상이 가장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준영의 눈꺼풀은 이미 오랜 시간 휴식을 잊은 듯 퍽퍽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어젯밤, 아니 방금 전까지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상점에서 공들여 고른,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꿈이었다.

그 꿈속에서 수연은 여전히 스물여섯의 모습으로, 햇살 같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둘은 기억 속 오래된 골목을 거닐며 어깨를 나란히 했고, 낡은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에 맞춰 나지막이 흥얼거렸다. 수연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고, 그녀의 목소리는 세상의 어떤 멜로디보다 감미로웠다. 심지어 그녀가 매번 짓던 사랑스러운 투정마저도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너무나 완벽해서, 잠에서 깨는 순간의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현실의 벽은 차갑고 단단했으며, 꿈의 달콤함이 남긴 여운은 오히려 고통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준영은 얇은 잠옷 바람으로 거실로 나왔다. 어둠 속에서 가구들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텅 빈 공간, 텅 빈 마음. 그는 상점의 꿈에 중독된 지 오래였다. 처음에는 견딜 수 없는 상실감 때문이었다. 수연이 떠난 후의 세상은 색을 잃었고, 소리는 멀어졌으며, 모든 감각은 무뎌졌다. 우연히 듣게 된 ‘꿈을 파는 상점’에 대한 소문은 절박한 그에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처음으로 구매했던 꿈은 수연의 목소리만 담긴 짧은 조각이었다. 그 후로 그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그녀의 웃음, 그녀의 온기, 그녀와의 재회. 상점은 그 모든 것을 약속했고,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의 가장 소중한 기억들, 그의 젊음의 일부, 그의 미래에 대한 희망.

준영은 커피를 내렸다. 진하게 뽑아낸 커피 향이 씁쓸하게 코끝을 간지럽혔다. 컵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오늘 다시 상점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지난번 꿈은 너무 강렬했고, 그만큼 현실은 더 견디기 힘들었다. 마치 달콤한 독약 같았다.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유혹. 아마도 오늘은 좀 더 ‘현실적인’ 꿈을 고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지독한 갈증을 잠시라도 잊게 해줄 ‘무색무취’의 꿈이라도.

몽상가의 눈

상점의 문은 언제나 그랬듯 고요하게, 그러나 미세한 떨림을 품고 열렸다.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준영의 몸은 익숙한 공기에 감싸였다. 희미한 묵향과 오래된 서책 냄새,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꿈들이 엉켜 만들어내는 아련한 향기.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했고, 바깥세상의 번잡함과는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었다. 유리병 안에 담긴 색색의 꿈 조각들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떤 병에는 희망이, 어떤 병에는 용기가, 또 어떤 병에는 잊고 싶었던 과거의 조각들이 담겨 있었다. 준영은 이제 그 병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또 오셨군요, 준영 씨.”

깊은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상점 주인, 사람들은 그를 ‘몽상가’라고 불렀다. 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낡은 원목 의자에 앉아 한 손에는 고서적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낡은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했지만, 눈빛만은 시대를 초월한 듯 깊고 맑았다. 몽상가는 고개를 들어 준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준영의 영혼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이번 꿈은 어떠셨습니까?”

몽상가의 질문에 준영은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좋았느냐고? 지독히도 좋았다. 고통스러웠느냐고? 그만큼 더 고통스러웠다. 준영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완벽했습니다. 그래서 더 잔인했습니다.”

몽상가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에는 연민이 담겨 있었지만, 동시에 준영은 알 수 없는 일말의 체념도 엿볼 수 있었다. 마치 그가 이런 결말을 이미 수없이 보아왔다는 듯이.

“완벽한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에, 꿈으로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그 완벽함은 현실과의 괴리를 더욱 깊게 만들지요. 준영 씨는 이제 그 괴리를 견디기 힘들어하시는군요.”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은… 모르겠습니다. 계속 이렇게 꿈과 현실을 오가다가는, 언젠가 현실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지 않습니까?” 몽상가의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준영의 심장을 찔렀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두려워 하루하루를 버티고, 다시 꿈속으로 도피할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으십니까? 당신의 현실은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습니까?”

준영은 고개를 숙였다. 몽상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의 현실은 오직 다음 꿈을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 수연이 없는 세상은 이미 그에게 죽은 세상과 다름없었다.

잊혀진 꿈의 조각

몽상가는 서서히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우아하고 절도 있었다. 그는 진열된 꿈 병들을 천천히 지나쳐갔다. 준영은 그의 뒤를 따랐다. 몽상가의 손이 닿는 곳마다 병들이 희미하게 빛났다. 꿈의 흔적들이었다.

“준영 씨에게는 여전히 팔지 않은 꿈이 남아 있습니다.”

몽상가의 말에 준영은 고개를 들었다. “제가 아직 팔지 않은 꿈이요? 저는 이미 수없이 많은 것을 내어주었습니다. 수연과의 첫 만남, 그녀와 함께 했던 여행의 기억, 심지어 제가 언젠가 이루고 싶었던 작가로서의 꿈까지도…”

“그것들은 당신이 기억하는 꿈의 조각들이지요. 하지만 당신의 깊은 곳에는 아직 당신만의, 오직 당신만의 꿈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가장 순수한 꿈.”

몽상가는 상점의 가장 깊은 곳,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어두운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다른 꿈 병들과는 확연히 다른, 아무런 빛도 발하지 않는 투명한 작은 유리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지만, 몽상가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들어 올렸다.

“이것은 당신이 아주 어렸을 적 꾸었던 꿈입니다. 아무런 목적도, 아무런 의도도 없이,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세상의 조각. 당신의 이름으로 태어난 첫 번째 꿈이지요.”

준영은 그 병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너무 오래되어 잊어버린, 자신에게 그런 꿈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는 꿈이었다. 병 속은 아무것도 없는 듯 투명했다. 그러나 몽상가의 손에 들리자 아주 미세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 꿈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당신의 것입니다.” 몽상가는 병을 준영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이 꿈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껏 도피해왔던 현실보다 더 무거운 진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준영은 망설였다. 그동안 그는 상점에서 구매한 달콤한 환상에만 의존해왔다. 자신의 진짜 꿈, 자신의 진짜 삶은 외면한 채. 저 투명한 병 속에는 과연 무엇이 담겨 있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동시에 알 수 없는 끌림에 사로잡혔다. 그는 조심스럽게 병을 받아들었다. 차가운 유리병이었지만, 손바닥에 닿자마자 미약한 온기가 퍼져나갔다.

현실의 무게, 삶의 가치

준영은 상점을 나왔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동쪽 하늘 끝에서는 희미하게 새벽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손에 든 투명한 병은 여전히 아무런 색도, 빛도 발하지 않았다. 다른 꿈들처럼 즉각적인 위안이나 행복을 약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기대감과 함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존재감이 조금씩 살아나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온 준영은 침대 옆 협탁에 그 병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 앉아 동이 트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주황색과 분홍색이 뒤섞인 아름다운 새벽빛이 서서히 세상을 채워나갔다. 그는 그동안 이런 풍경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아니, 몇 번이나 진심으로 바라보았을까? 항상 꿈속에 갇혀 지냈던 그는 현실의 이런 작은 아름다움조차 놓치고 있었다.

수연의 부재는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어떤 꿈으로도 완전히 채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그 고통 속에서라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점에서 산 꿈은 그에게 잠시의 위안을 주었지만, 동시에 그의 현실을 갉아먹었다. 그 모든 완벽함은 결국 거짓이었고, 그 거짓은 준영 자신을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었다.

손목시계의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째깍, 째깍.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수연이 없는 세상에서도, 그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었다. 몽상가가 말한,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은 ‘순수한 꿈’. 그것은 아마도 그가 스스로 찾아내야 할, 현실 속에서의 의미 있는 삶의 조각들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기억에만 갇히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용기. 비록 그 길이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할지라도, 그것이 진짜 ‘준영’의 삶일 터였다.

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폐부 깊숙이 시원하게 스며들었다. 멀리서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손에 든 커피잔을 비웠다. 그리고 빈 컵을 내려놓는 대신, 협탁 위에 놓인 투명한 유리병을 다시 집어 들었다. 아직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병 속의 꿈은 상점에서 구매했던 어떤 환상보다도 강한 이끌림으로 그를 붙잡고 있었다. 이제 그는 다시 현실을 마주할 준비를 해야 했다. 어쩌면 이 잊혀진 꿈의 조각이, 그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는 작은 등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