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287화

차디찬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한은 낡은 코트 깃을 바싹 올려세우며 멈춰 선 폐공장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의 불빛마저 닿지 않는 외곽, 한때는 요란한 기계 소리로 가득했을 이곳은 이제 거대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익명으로 도착한 한 장의 사진과 짧은 문자 메시지, 그것이 이한을 이 허름한 철문 앞으로 이끌었다.

수백 번을 되뇌었던 효린의 얼굴이 귓가에 맴도는 바람 소리에 겹쳐졌다. 그녀를 찾아 헤맨 지난 세월, 찰나의 희망과 길고 긴 좌절이 반복되는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러나 이한은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미소,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온기가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한,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 녹슨 철문은 마치 그의 오랜 고독을 대변하는 듯 음침하게 서 있었다.

녹슨 철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퀴퀴한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헤드램프의 불빛이 닿는 곳마다 거미줄과 낡은 기계들이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한은 어둠 속을 헤치며 사진 속 건물의 특징을 따라 안쪽으로 향했다. 폐쇄된 지 오래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긴장감이 공장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바닥에 깔린 부스러진 벽돌 조각들이 그의 걸음마다 자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낡은 방직기들이 늘어선 통로 끝,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오는 듯한 문틈이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어쩌면… 어쩌면 이곳에. 그의 손이 차가운 문고리에 닿았다. 망설일 새도 없이,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문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각보다 작은 방이 나타났다. 작업실이었던 듯, 낡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한쪽 벽에 걸린 닳아빠진 달력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방안은 공장 외부보다 훨씬 정돈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적막감에 싸여 있었다. 이한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책상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작은 나무 상자가 있었다.

손끝으로 상자의 뚜껑을 열자, 그의 숨이 턱 막혔다. 상자 안에는 빛바랜 자수 손수건 하나가 놓여 있었다. 가장자리에 수놓인 작은 꽃무늬, 그리고 한쪽 귀퉁이에 새겨진 익숙한 이니셜. ‘H.R.’

효린이었다. 분명 그녀의 것이었다. 오래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녀가 직접 수를 놓아 선물했던 바로 그 손수건이었다. 손수건을 쥐자, 천 조각 사이로 그녀의 따뜻한 온기가 스며드는 듯했다. 눈물이 차올랐다. 수백, 수천 개의 단어보다 더 강렬하게, 이 작은 손수건이 그녀가 이곳에 있었음을, 그리고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손수건 아래에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접혀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펼치자, 앳된 모습의 효린의 얼굴이 나타났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지쳐 보이고, 슬픔이 서려 있는 듯했다. 사진 뒷면에는 잉크가 번진 희미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사라지지 않아. 기억은… 항상…”

그 순간, 등골을 타고 한기가 스쳤다. 누군가의 인기척. 공장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 그리고 규칙적으로 다가오는 발소리. 이한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폐기된 기계 더미 뒤, 먼지 쌓인 틈새로 그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심장이 귀청이 찢어질 듯 울렸지만, 그는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효린의 손수건을 품에 꼭 쥐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 그리고 이윽고 작업실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램프 불빛에 비친 남자의 실루엣은 건장했으며, 그의 손에는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들려 있는 듯했다. 남자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한이 숨어 있는 기계 더미 쪽으로 그의 시선이 잠시 머무는 듯했다.

“나와. 알고 있어.” 낮은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이한은 숨을 멈췄다. 자신을 향한 말인가? 아니면… 효린을 향한 말인가?

남자는 천천히 책상으로 다가가 손수건이 놓여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무언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그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났다. 그리고는 주위를 훑으며 경고하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애는 네가 찾을 수 없어. 아니, 찾아선 안 돼.”

이한의 심장이 다시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왜 효린을 찾아선 안 된다는 것인가? 효린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모든 질문보다 더 강렬하게, 이한은 깨달았다. 효린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를 가로막는 어둠의 그림자가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어둠 속에서 이한은 손수건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희미한 잉크 자국 속 ‘사라지지 않아. 기억은… 항상…’이라는 메시지가 그의 뇌리에 박혔다. 그의 첫사랑을 향한 오랜 추적은 이제, 더 큰 위험과 마주하게 되었다. 폐공장의 찬 바람이 그의 뺨을 스쳤다. 그는 다음 수를 생각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