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골목길의 우산 수리공 – 제81화

세상 모든 소음을 삼키듯, 빗소리가 골목길을 지배했다. 며칠째 이어지는 장마는 지쳐가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좁은 골목의 상점들은 일찍이 불을 켜고 흐릿한 간판 불빛으로 빗속을 헤매는 이들을 겨우 안내했다. 지훈의 작은 우산 수리점도 예외는 아니었다. 창밖은 온통 잿빛으로 물들었고, 빗물은 거침없이 처마를 때리며 고단한 생의 리듬을 연주하고 있었다.

지훈은 낡은 작업등 아래서 색이 바랜 양산을 수리하고 있었다. 섬세한 손길로 찢어진 비단 천을 꿰매고, 부러진 살을 잇는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잔잔한 물결만 일렁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의 눈빛은 빗방울처럼 묵직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듯했다. 작업대 한쪽에는 오래된 흑백 사진 한 장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젊은 시절의 지훈과 환하게 웃는 한 여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그는 무심코 그 사진에 시선을 주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작업에 집중했다. 망각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해도, 어떤 기억은 빗물처럼 스며들어 흔적을 남기곤 했다.

엇갈린 우산, 흔들리는 마음

“사장님, 계세요?”

덜컹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차가운 바람과 함께 빗물이 몇 방울 튀어 들어왔다. 수아였다. 평소 같으면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했을 그녀는 오늘은 어딘가 축 처진 어깨로 조용히 들어섰다. 젖은 머리카락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깨진 와인 병처럼 한쪽이 심하게 구부러진 우산이 들려 있었다.

“수아 씨, 이런 날씨에 무슨 일이에요? 우산이 완전히 망가졌네요.” 지훈은 수아의 우산을 받아들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우산을 볼 때보다 수아의 얼굴을 볼 때 더 깊은 걱정이 서려 있었다.

수아는 젖은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치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냥 길을 걷다가 갑자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요.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이렇게….” 그녀는 말을 흐리며 왠지 모를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녀의 시선은 지훈의 작업대 위를 맴돌다가, 문득 흑백 사진에서 멈췄다.

“이 사진은… 사장님 젊었을 때 사진인가 봐요? 옆에 분은 누구세요?” 수아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지훈에게 알 수 없는 깊은 사연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지훈은 순간 움찔했다. 애써 외면하려던 기억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듯했다. 그는 사진을 재빨리 뒤집어 작업대 서랍 안에 넣으며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아주 오래전 일이라서.”

수아는 지훈의 반응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에는 실망감보다는 어떤 연민이 깃들어 있었다. “사장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시죠. ‘별거 아니다’, ‘괜찮다’고요.” 그녀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저는 요즘, 별거 아닌 일들도 별거처럼 느껴져서 힘들어요. 그림도 예전처럼 그려지지 않고, 모든 게 불안하기만 해요.”

지훈은 수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아의 불안한 눈빛은 마치 빗속을 헤매는 어린 새와 같았다. 그는 묵묵히 그녀의 부러진 우산을 펴고 살피며 말했다. “어떤 우산도 처음부터 튼튼하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에요. 바람이 불면 꺾이고, 비를 맞으면 삭기도 하죠. 하지만 다시 고치면 예전보다 더 튼튼해질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꺾였다고 해서 버려버리지 않는 마음이겠죠.”

그의 말은 우산을 고치는 이야기인 동시에 수아에게 건네는 위로이기도 했다. 수아는 고개를 들고 지훈을 응시했다. 그의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길이 우산 살을 만지는 모습에서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어렴풋이 엿보는 듯했다.

어두운 골목을 가르는 그림자

“사장님 말씀 들으니까,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수아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저도 제 마음을 고쳐서, 다시 단단하게 세워야겠죠?”

지훈은 작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늘 그랬듯, 짧고 옅었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럼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그때였다.

갑자기 가게 문이 다시 열리며 차가운 바람과 함께 빗줄기가 더 강하게 밀려들어왔다. 누군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빗물에 젖어 어깨가 축 늘어진 그림자 같은 형체였다. 빗소리에 묻혀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던 탓에, 그 존재는 더욱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지훈은 고개를 들었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우산 수리 도구가 ‘챙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얼굴에서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 마치 수십 년 전의 시간이 다시 돌아온 듯, 핏기 없는 얼굴로 문가에 선 인물을 응시했다.

수아는 당황스러웠다. 지훈이 이토록 동요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가에 선 인물을 바라보았다. 우산을 들지 않은 채 온몸이 빗물에 젖은 중년의 남자였다. 남자는 흐릿한 가게 불빛 아래서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반가움보다는 알 수 없는 회한과 비장함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지훈아.”

남자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희미하게 섞였지만, 지훈의 귓가에는 천둥처럼 울렸다. 남자는 한 발짝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젖은 발자국이 나무 바닥에 선명하게 남았다. 남자의 시선은 오직 지훈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정우….” 지훈은 겨우 그 이름을 내뱉었다. 바닥에 떨어진 도구처럼, 그의 심장도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수아는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빗줄기는 여전히 골목길을 사정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과거의 그림자가 거친 비바람을 뚫고 지훈의 고요한 세상 속으로 다시 발을 들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