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289화

산산조각 난 마음을 위한 빵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는 언제나 구수한 온기가 감돌았다. 새벽부터 피어오른 빵 굽는 냄새는 굳게 닫혔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마저 말랑하게 녹이는 듯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오븐 앞에서 미숙 씨는 능숙한 손길로 갓 구운 식빵을 꺼내 식힘망에 올렸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식빵의 표면은 마치 따스한 햇살을 머금은 것처럼 윤기가 흘렀다.

하지만 오늘은 미숙 씨의 마음 한편에도 작은 서늘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빵집을 드나들던 수연 씨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수연 씨는 항상 기운이 넘치고 밝던 아가씨였는데, 언제부턴가 축 처진 어깨와 초점 없는 눈으로 빵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빵을 고르는 대신, 그저 진열된 빵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무것도 사지 않고 돌아가는 날이 잦아졌다.

오늘도 수연 씨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해 질 녘 어둑해진 빵집 문을 조용히 열었다. 앙상하게 마른 몸 위로 헐렁한 코트가 더욱 위태로워 보였다. 미숙 씨는 오븐 앞에서 바쁜 척하며 그녀를 살폈다. 수연 씨는 익숙하게 가게 안쪽 구석 자리,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빵집으로 들어서는 손님들이 대부분 빵을 사 가기 바쁜데, 수연 씨는 앉아서 빵 굽는 냄새만 맡고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숙 씨는 한 번도 그녀에게 빵을 권하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다만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조용히 가져다 놓을 뿐이었다.

“아름이가… 며칠째 죽 한 술도 뜨질 않아요.”

정적을 깬 건 수연 씨의 힘없는 목소리였다. 미숙 씨는 들고 있던 식빵 칼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수연 씨의 눈은 이미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름이는 수연 씨의 하나뿐인 딸이었다. 얼마 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수연 씨는 아이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며 지쳐갔다.

“밤새도록 보채고 열이 오르는데,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수연 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작은 어깨가 서럽게 들썩였다. 미숙 씨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투박하지만 따뜻한 미숙 씨의 손이 수연 씨의 떨리는 어깨를 감쌌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수연 씨는 미숙 씨의 손길에 기댄 채 한참을 울었다.

“아가씨, 이리 와 앉아 봐요. 엄마가 슬퍼하면 아가도 아는 법이야.”

미숙 씨는 수연 씨를 자신의 작업대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카운터 아래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보송보송한 천으로 감싼 작은 빵이 놓여 있었다. 겉보기엔 특별할 것 없는 빵이었지만, 은은하게 풍기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향기는 여느 빵과는 달랐다.

“이건… 제가 특별히 만드는 빵이에요. 새벽 이슬을 맞고 자란 밀로만 만들고, 설탕 대신 꿀을 조금 넣었지. 소화가 어렵거나 입맛이 없을 때, 이걸 잘게 찢어서 미지근한 우유에 불려 먹으면 목 넘김도 부드럽고 속도 편안해질 거예요.”

미숙 씨는 직접 작은 빵 조각을 뜯어 수연 씨의 손에 쥐여주었다. 수연 씨는 멍하니 그 빵을 바라봤다. 하얗고 보드라운 빵은 마치 구름 조각 같았다.

“아름이가… 먹을 수 있을까요?” 수연 씨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갈라졌다.

“그럼요. 이걸 먹고 기운 내서 엄마 손 꼭 잡고 빵집에 올 수 있도록, 제가 기도하며 만든 빵이니까.”

미숙 씨는 수연 씨의 손에 그 작은 빵을 온전히 들려주고, 따뜻한 우유 한 병과 함께 작은 보자기 주머니에 정성껏 담아주었다. 돈을 받지 않으려는 미숙 씨에게 수연 씨는 필사적으로 지갑을 꺼내려 했지만, 미숙 씨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아름이랑 같이 와서, 그때 맛있는 빵값으로 두 배 세 배로 치르면 돼요.”

빵집 문을 나서는 수연 씨의 발걸음은 아까와는 사뭇 달랐다.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듯했지만, 등은 조금 더 곧아졌고, 손에 들린 작은 보자기 주머니를 꽉 쥐고 있었다. 그 안에는 단순한 빵이 아니었다. 절망의 끝에서 겨우 잡은 한 가닥 희망, 그리고 이 세상에 그녀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위로가 담겨 있었다.

미숙 씨는 문밖으로 사라지는 수연 씨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빵집 한편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빵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었다. 어떤 빵은 슬픔을 위로하고, 어떤 빵은 희망을 꿈꾸게 하고, 또 어떤 빵은 사라진 온기를 다시 불어넣는 기적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어둠이 내린 산모퉁이 작은 빵집 안에는, 새로 구워진 빵들의 온기와 함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따뜻한 기운이 충만하게 차올랐다. 미숙 씨는 내일 아침, 아름이가 작은 빵 조각을 조금이라도 넘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시 오븐으로 향했다. 그녀의 손에서 또 다른 희망의 빵이 반죽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