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301화

깊어가는 밤, 시계는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유리 너머로 희미하게 빛나는 도시의 불빛들이 스튜디오 안의 아늑함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DJ 지수는 헤드셋을 고쳐 쓰고 스크립트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오늘 밤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별처럼 쏟아져 들어왔고, 그 속에서 그녀는 길을 잃은 이들에게 작은 등대가 되어주려 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지수입니다.”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전파를 탔다. 도시의 빌딩 숲 어디쯤, 혹은 고요한 시골길을 달리는 차 안, 잠 못 이루는 침대 위, 수많은 공간에 스며들었을 그 목소리.

“오늘 밤, 저희에게 도착한 수많은 사연들 중, 유독 제 마음을 붙잡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익명으로 보내주신 ‘별의 조각’님 사연인데요.”

지수는 스크립트 대신, 손글씨로 빽빽하게 채워진 낡은 편지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사연은 디지털 시대에 보기 드물게 펜촉으로 눌러 쓴 것이었다. 종이 위에는 시간의 흔적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눈물 흔적인지 모를 희미한 얼룩이 보였다.

어느 여름밤의 약속

“‘지수 DJ님께. 저는 어릴 적,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작은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밤하늘의 무수한 점들을 세곤 했죠. 제 옆에는 늘 경민이가 있었습니다. 저와 동갑내기, 옆집에 살던 단짝 친구였어요.’”

지수는 잠시 숨을 고르며 편지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도록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부드럽게 변했다.

“‘경민이는 저보다 훨씬 용감하고 영리했습니다. 저는 겁이 많아서 어두운 밤하늘이 가끔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경민이는 제 손을 잡고 항상 말했어요. ‘괜찮아, 저 별들이 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별자리를 찾아 헤매곤 했죠. 사자자리,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어느 해 여름, 유난히 별이 쏟아지던 밤이었습니다. 우리는 늦게까지 잠 못 이루고 마당에 누워 있었죠. 그때 경민이가 제게 속삭였어요. ‘저기, 저 별들 사이에 숨어있는 작은 별자리를 찾았어. 이름은 아직 없지만, 꼭 우리 둘만 아는 별자리로 만들자.’ 저는 경민이의 손가락을 따라 밤하늘을 헤맸지만, 아무리 봐도 그 별자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경민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언젠가 꼭 함께 찾아내자고 약속했죠.’”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여름이 끝나기도 전에 경민이네 가족은 갑작스럽게 도시를 떠났고, 저는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홀로 남겨졌어요. 그 후로 저는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그 별자리를 찾곤 했습니다. 저와 경민이 둘만의 비밀스러운 별자리. 하지만 한 번도 찾을 수 없었죠. 어쩌면 경민이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저는 그 별자리가 여전히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어쩌면 경민이도 저처럼 밤하늘을 보며 그 별자리를 떠올릴까요? 지금쯤 경민이는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저는 가끔 밤하늘을 보며 경민이에게 말합니다. ‘어디에 있든, 항상 너만의 별자리를 잊지 마. 그리고 언젠가 우리 둘만의 별자리 아래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게 제가 이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이유입니다. 혹시, 경민이가 이 방송을 듣고 있을까 해서요.’”

지수는 조용히 편지를 내려놓았다. 스튜디오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녀의 눈빛은 사연 속 아이들의 순수한 약속과 이루어지지 못한 만남에 대한 아련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별의 조각’님의 사연, 잘 들었습니다.” 지수의 목소리는 더욱 촉촉해졌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 사연에 공감하실 거예요. 어린 시절의 소중한 약속,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가슴 한편에 남아있는 그리움.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마음속에 자신만의 ‘숨겨진 별자리’를 품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별자리가 설령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 약속이 현실이 되지 못했더라도, 그 아름다운 기억은 우리를 붙잡아 주는 소중한 빛이 됩니다. ‘별의 조각’님, 그리고 경민님. 두 분만의 특별한 별자리는 분명히,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을 거예요.”

“혹시 이 방송을 듣고 계신 경민님이 계시다면, ‘별의 조각’님이 당신을 기억하고, 여전히 같은 밤하늘 아래에서 당신만의 별자리를 찾아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지수는 가슴 한편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다음 곡을 소개했다.

“오늘 ‘별의 조각’님과 경민님, 그리고 밤하늘의 숨겨진 별자리를 기억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 이 곡을 띄웁니다. 김동률의 ‘오래된 노래’입니다. 노래를 들으며 잠시, 여러분의 마음에 숨어있는 별자리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음악이 스튜디오를 감쌌다. 김동률의 담담하면서도 깊은 목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흘렀다. 지수는 헤드셋을 벗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도, 누군가와 함께 보았던 별들이 있었을까? 어쩌면 그녀의 마음속에도, ‘숨겨진 별자리’가 조용히 빛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다시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오늘도 말없이,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은 채,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