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303화

밤하늘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검푸른 벨벳 같았다. 그 위로 은가루를 흩뿌린 듯 수많은 별들이 숨 쉬는 듯 반짝였다. 스튜디오 안은 고요했고, 오직 따뜻한 불빛과 내 목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시계는 열한 시를 알리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윤서입니다.”

내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잔잔하게 흘러나갔다. 이 시간, 라디오에 귀 기울이는 당신의 외로운 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늘 그랬듯이 오늘의 사연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배경으로 깔렸다. 오늘은 ‘별무리’라는 이름으로 보내온 사연이었다. 별무리, 얼마나 아름다운 필명인가. 밤하늘의 조각들을 모아둔 듯한.

오래된 약속

“안녕하세요, 윤서 DJ님. 매일 밤 별밤 라디오와 함께합니다. 오늘은 제 가슴속에 오래도록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서 펜을 들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한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또렷하게 글자를 따라 읽어 내려갔다. 사연은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어느 작은 동네의 뒷산, 그곳에는 도시의 불빛을 피해 별을 보기 좋은 작은 언덕이 있었다고 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그 언덕에서 늘 혼자였다고 했다. 세상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던 작은 아이였다고. 그러다 어느 날, 한 아이를 만났다고 했다.

“그 아이는 저와 같은 또래였습니다. 수줍음 많던 저와 달리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었죠. 별을 정말 좋아했어요. 매일 밤 저를 이끌고 언덕에 올라가 별자리를 찾아 헤매던 아이였습니다. ‘별은 저마다의 이름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대. 우리도 언젠가 저 별들처럼 빛나는 이야기를 만들자!’라고 말했던 아이였습니다.”

별무리님의 글을 읽는 동안, 내 가슴 한켠에서 잊고 있던 희미한 기억의 조각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아련한 기분.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문단을 이어 읽었다.

“그 아이는 저에게 ‘길잡이별’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길을 잃은 별이 있다면, 가장 밝게 빛나는 길잡이별이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올 길을 알려준다는 이야기였죠. 아이는 제 손을 잡고 밤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네가 혹시 길을 잃어도, 저 별을 보면 돼. 언젠가 우리가 아주아주 어른이 되어서도, 저 별이 다시 떠오르면 이 언덕에서 꼭 다시 만나자!’ 어린 시절의 어설픈 약속이었지만, 제 마음속엔 영원히 새겨졌습니다.”

내 눈은 스크롤 되는 활자 위를 좇고 있었지만, 사실은 글자가 아닌 그 너머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어둑한 언덕, 반짝이는 별들, 그리고 작은 두 아이의 실루엣. 아릿한 통증이 가슴을 스쳤다. 이건 그냥 보통의 사연이 아니었다. 너무나 생생하고, 너무나 구체적인 묘사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나 자신이 그 아이 중 한 명이었던 것처럼.

길을 잃지 않는 별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이사로 그 아이와 헤어지게 되었죠. 아무런 작별 인사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 후로도 한참을 그 언덕에 올라가 약속했던 별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혹시라도 그 아이가 다시 돌아와 약속을 지킬까 봐. 혹시라도 그 아이가 저를 잊었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내 목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방송 중에는 어떤 개인적인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나의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 사연은 그 원칙을 흔들고 있었다. 별무리님은 긴 침묵 끝에 다음 문장을 이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지만, 여전히 밤하늘을 보면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저와 그 아이에게는 수많은 추억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한 건 ‘길잡이별’ 이야기와 그 언덕에서 나누었던 약속입니다. 혹시… 이 방송을 듣고 계신가요? 혹시 제가 말하는 ‘길잡이별’과 ‘오래된 언덕’을 기억하시나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입술이 바싹 말랐다. 나는 순간적으로 방송을 멈춰야 하나 하는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수많은 청취자들이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길잡이별’을 기억하시나요? 그 별은 언제나 길을 잃지 않는다고 말했던 너의 목소리… 저는 아직 그 언덕에 있습니다. 혹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해서요. 당신을 너무나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가 부디 제 작은 희망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마치 목구멍에 커다란 덩어리가 걸린 듯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돌아온 길잡이별’. 그 단어는 내 오랜 꿈속에, 어린 시절의 일기장 속에, 그리고 내 심장의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비밀스러운 암호와 같았다. 그 언덕, 그 별 이야기, 그리고 그 길잡이별… 모든 것이 일치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내가 찾던, 혹은 나를 찾고 있던 누군가.

“네, 별무리님의 사연 잘 받았습니다.”

겨우 입을 열었지만, 내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한없이 옅고 떨렸다.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잠시 침묵했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질문과 기억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 아이가 정말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간절한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길을 잃지 않는 별처럼, 그 소중한 인연도 언젠가 다시 제자리를 찾을 거라 믿습니다.”

나는 겨우 평정심을 가장하며 일반적인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내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위로이자, 동시에 그 사연을 보낸 ‘별무리’에게 보내는 희미한 답장이기도 했다. 스튜디오의 붉은 불빛이 여전히 나를 비추고 있었다. 방송은 계속되어야 했다. 하지만 내 밤은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았다. 흩어진 별무리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단 하나의 별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이.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윤서였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방송을 마치는 마지막 멘트가 겨우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음악이 흐르고, 마이크를 끄는 손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스튜디오의 어둠 속에서, 먼 옛날의 언덕 위 반짝이던 ‘돌아온 길잡이별’을 가만히 응시하는 듯했다. 내 심장은 밤하늘의 별들처럼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