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가족 여행기 – 제96화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 끝에 숨어있던 낡은 민박집의 아침은 안개와 함께 시작되었다. 어젯밤, 지후가 밤새 열에 시달려 온 가족이 뜬눈으로 보초를 서던 일은 꿈처럼 아득했다. 다행히 아침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열이 뚝 떨어져 팔팔해진 막내아들을 보며, 엄마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야, 지후야! 너 어제 아팠던 애 맞냐? 좀 쉬어!”

“괜찮아! 완전 멀쩡해! 나 저기 뒤에 계곡 가서 돌탑 쌓을 거야!”

밥상을 정리하기도 전에 훌쩍 뛰쳐나가는 지후의 뒷모습을 보며 아빠가 혀를 찼다. 할머니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창밖의 자욱한 안개를 바라보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오래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아침 뉴스를 한숨과 함께 듣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수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하는 내내 조용했던 딸아이가 방에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문을 열어보니 이불만 흐트러져 있었다.

“수아는 어디 갔지? 이 이른 아침에?” 엄마의 목소리에 미묘한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지후는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고, 가족들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유독 차분했던 수아가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글쎄다. 어제저녁에 책 읽다 잤으니 아직 자고 있겠지.” 아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엄마의 얼굴에는 이미 걱정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사춘기 딸아이는 가끔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곤 했다. 특히 이런 낯선 여행지에서는 더 그랬다. 엄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방을 확인하고, 마당으로 나갔다. 옅은 안개는 햇살에 서서히 걷히고 있었지만, 여전히 주변은 희뿌옇고 고요했다. 새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수아야! 최수아!”

엄마의 목소리가 산자락에 울려 퍼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제야 아빠도 심각성을 느꼈는지, 숟가락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어디 갔지, 정말? 이 시간에 혼자 움직일 애가 아닌데.”

지후는 어느새 계곡에서 첨벙거리는 소리를 내며 놀고 있었고, 할머니는 아침상을 말끔히 치우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뉴스를 끄고 안경을 고쳐 쓰며 마당으로 나왔다. 온 가족의 시선이 일제히 수아의 흔적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시각, 수아는 민박집 뒤편으로 이어진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굽이진 길을 조금 오르자 울창한 숲이 나타났고, 숲 속 깊숙이 숨겨진 작은 폭포 소리가 그녀를 이끌었다. 며칠간 이어진 가족 여행은 즐거웠지만, 동시에 그녀에게는 버겁기도 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 서로를 향한 잔소리, 활기찬 동생의 소란스러움… 수아는 그 모든 것에서 잠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했다. 어젯밤, 학교 친구들에게서 온 메시지들에 답장을 하지 못하고 뒤척이다 잠이 들었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친구들과의 미묘한 관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할 가족들로부터 오는 고립감이 그녀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 가득 들어왔다. 코끝을 스치는 흙냄새와 풀잎 향기가 머릿속을 맑게 했다. 폭포가 보이는 작은 바위에 앉아 스케치북을 펼쳤다. 거침없이 붓을 놀리던 손이 어느새 멈췄다. 캔버스에는 쏟아지는 물줄기가 아닌,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인 풍경이 그려지고 있었다. 어제저녁, 지후가 열에 시달릴 때 엄마가 밤새 손수건을 적셔 이마에 얹어주던 모습, 그리고 아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병원 응급실을 알아보고 있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순간이, 사실은 서로를 향한 걱정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때였다. 숲 속에서 나뭇가지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아야! 거기 있냐?!” 아빠의 목소리였다. 이어서 지후의 찢어질 듯한 외침이 들렸다. “누나! 찾았다!”

수아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온 가족이 그녀를 찾아 나선 모양이었다. 아빠는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지후는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그 뒤로 엄마의 걱정 가득한 얼굴이 보였다. “아이고, 얘 좀 봐! 엄마는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전화도 안 받고!” 엄마의 목소리에는 안도와 함께 서운함이 섞여 있었다.

수아는 미안함에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엄마. 그냥… 잠깐 혼자 있고 싶어서.”

아빠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만, 말이라도 하고 갔어야지. 걱정했잖아.” 아빠의 말은 잔소리 같았지만, 그 눈빛에는 따뜻한 온기가 깃들어 있었다. 지후는 옆에서 스케치북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와, 누나! 그림 잘 그렸네! 근데 이건 누구야? 엄마랑 아빠 같다!”

수아는 지후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그린 그림은 어느새 폭포가 아닌, 가족들이 왁자지껄하게 웃고 있는 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그 순간,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오솔길 끝에 모습을 드러냈다. 할머니는 수아를 보자마자 달려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어디 가는 줄 알고 엄마 아빠가 얼마나 찾았는지 아냐.”

할아버지도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사춘기 소녀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이치지. 다만, 그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세상이 걱정하는 법이란다.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따뜻한 가족의 품에 안기자, 수아는 그동안의 불안감과 외로움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시끄럽고 때로는 버겁게 느껴졌던 가족의 존재가, 사실은 그녀를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뿌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폭포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지만, 이제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민박집으로 돌아온 가족은 늦은 아침을 다시 준비했다. 할머니가 끓여준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지후는 여전히 재잘거리며 어젯밤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아빠는 뉴스를 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엄마는 수아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조용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수아는 더 이상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시끌벅적하고 정겨운 소음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이었다.

“다음에 혼자 걷고 싶으면, 엄마랑 같이 걷자. 응?” 엄마의 말에 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마.”

창밖으로 안개가 완전히 걷히고 따스한 햇살이 민박집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시원한 바람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의 소음이 어우러져, 이 평범한 산골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게 빛났다. 시끌벅적한 가족 여행은 그렇게, 또 한 겹의 추억과 이해를 쌓아가고 있었다. 아직 갈 길은 멀었고, 어떤 소동이 기다릴지 모르지만, 이 가족이라면 어떤 어려움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수아의 마음속에 따뜻하게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