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318화

낡은 지도 위에 덧그려진 희미한 선들을 따라, 현우의 발걸음은 서울의 가장 오래된 골목 중 하나로 접어들었다. 회색빛 벽돌과 낮은 지붕들이 촘촘히 붙어선 길은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듯했다. 한낮인데도 햇빛 한 줄기 비집고 들어오기 힘든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지난밤, 낡은 오르골의 이중 바닥에서 발견된 주소는 잊힌 과거의 조각처럼 그렇게 현우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정희 양장점…” 현우는 주소와 간판을 번갈아 확인했다. 녹슨 철문과 삭아버린 나무 간판이 세월의 흔적을 웅변하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는 먼지 쌓인 마네킹과 빛바랜 천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영업을 하는 곳인지조차 의심스러웠지만, 현우의 심장은 묘한 예감에 거칠게 울렁거렸다. 수아가 이곳에 있었다는, 어쩌면 그녀의 손길이 닿았던 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그를 이끌었다.

조심스럽게 철문을 밀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낡은 종소리가 울렸다. 내부는 바깥보다 더 깊은 시간 속에 잠겨 있는 듯했다. 오래된 천과 실, 재단 가위들이 켜켜이 쌓인 먼지 속에 잠들어 있었다. 현우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시선은 허공을 헤매는 유령처럼 수아의 흔적을 쫓았다. 그때,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희미한 돋보기 너머로 실을 꿰매던 노파가 고개를 들었다.

“누구세요? 길을 잃으셨나요?”

노파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또렷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녀는 현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현우는 자신을 탐정이라고 소개하고, 주소에 대해 물었다. “혹시, 오래전에 이곳에 머물렀던 젊은 여성을 아시는지 해서요. 이름은 수아라고 합니다.”

노파는 실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눈가에 깊게 파인 주름들이 더 깊어지는 듯했다. “수아라… 그 이름은 기억에 없네요. 여기는 워낙 많은 사람이 들락거려서…”

현우는 실망감을 감추려 애썼다. 수많은 헛수고에 익숙했지만, 매번 찾아오는 실망은 그의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는 듯했다. 그는 수아의 사진을 꺼내 노파에게 보여주었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도 수아의 미소는 여전히 밝았다. 노파는 사진을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미묘하게 변했다. 혼란스러움과 함께, 어렴풋한 인지의 빛이 스치는 듯했다.

“이 아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네요. 눈매가… 그래, 그 아이였어. ‘별이’라고 불렀지. 이름은 다른데… 늘 별을 수놓은 옷을 입고 다니던 아이. 맞아요, 그 아이가 여기 잠시 있었어요.”

현우의 심장이 다시금 요동쳤다. 별이. 수아는 사라진 후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별을 수놓은 옷이라니. 수아는 어릴 적부터 별을 유난히 좋아했다. 현우는 노파의 손을 붙잡을 뻔했다. “별이요? 언제쯤이었나요? 여기서 무얼 했죠?”

“한… 15년쯤 됐나? 아니, 그보다 더 됐을지도 몰라. 아주 마른 몸으로 찾아왔었지. 눈빛은 슬펐지만, 손재주가 좋았어. 옷 수선도 돕고, 가끔은 자기만의 그림도 그렸어. 별을 그리는 걸 유난히 좋아했지.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한숨 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노파는 먼지 쌓인 작업대 구석을 가리켰다. “그 아이가 떠날 때, 이걸 두고 갔어. 별을 수놓다가 멈춘 건데…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현우의 눈길이 닿은 곳에는 작은 천 조각이 있었다.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감색 천 위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은빛 별들이 드문드문 수놓여 있었다. 현우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들어 올렸다. 천의 감촉은 부드러웠고, 수놓인 별들은 섬세했다. 그는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 마치 수아의 온기가 전해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잊고 있던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이 파편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린 수아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언젠가 자신만의 별을 만들겠다고 웃음 짓던 모습, 그의 옷깃에 작은 별 모양 브로치를 달아주던 따뜻한 손길… 현우는 목이 메어왔다.

천 조각을 더 자세히 살펴보던 현우는, 한쪽 귀퉁이에 아주 작게 접혀 있는 종이 조각을 발견했다. 낡고 얇아져서 자칫 그냥 지나칠 뻔한 종이였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펴보니, 희미한 연필 글씨가 보였다. 수아의 필체였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곳에서 잠시 숨 쉬어. 모든 별이 사라진 밤, 달빛마저 숨어버린 곳에서 진짜 별을 찾으러.’

그 아래에는 낯선 산봉우리의 스케치와 함께 ‘청월사’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청월사. 푸른 달의 절. 현우는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읊조렸다. 노파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아이가 청월사 이야기를 가끔 했지. 모든 걸 내려놓고 잠시 숨고 싶을 때 가는 곳이라고.”

현우는 천 조각과 작은 종이를 가슴에 품었다. 수아의 흔적이자, 그녀의 고뇌가 담긴 메시지였다. 그녀는 왜 모든 별이 사라진 밤에 진짜 별을 찾으려 했을까. 무슨 일이 그녀를 그렇게 깊은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을까.

정희 양장점을 나서며, 현우는 멀리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하늘에는 아직 별 하나 뜨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별이 더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아가 남긴 새로운 단서.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차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청월사. 그곳에서 또 다른 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길고 긴 여정의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현우는 멈출 수 없었다. 그의 첫사랑이 그 별빛 아래에서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이 그를 계속 나아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