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327화

별 아래, 고독의 목소리

정각 12시 5분 전, 지훈은 마지막 사연을 읽어 내려갔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처럼 수많은 사연들이 그의 목소리를 타고 세상 밖으로 흘러나갔지만, 오늘따라 유독 한 사연이 그의 심장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홀로 남겨진 이의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익숙한 위로의 문구들이 입술을 맴돌았지만, 텅 빈 스튜디오의 공기처럼 그의 마음도 어딘가 비어있었다.

“네, 오늘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는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네요. 밤이 깊어질수록 별은 더 선명하게 빛나죠. 어둠이 짙어질수록 우리의 작은 희망도 더 또렷해질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DJ 지훈이었고요, 다음 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편안한 밤 되세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했지만, 마지막 ‘편안한 밤 되세요’라는 말 속에는 미세한 떨림이 스며있었다. 멘트를 마치고 엔딩 곡이 흘러나오자, 지훈은 헤드폰을 벗어 탁자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쨍한 붉은색 ‘ON AIR’ 불빛이 꺼지고, 스튜디오는 순식간에 차갑고 고요한 어둠 속으로 잠겼다. 마이크 앞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아픔을 이해하는 듯한 현명한 조언자였지만, 불이 꺼진 이 공간에서 그는 그저 외로운 남자일 뿐이었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이 기댔다. 천장 위의 희미한 비상등만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고독한 밤이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오늘이 바로 그녀가 떠난 지 정확히 5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떠났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런 예고 없이 그의 삶에서 사라져 버린 날.

그는 서랍을 열어 낡은 지갑을 꺼냈다. 지갑 속 가장 안쪽에 깊숙이 박아둔 빛바랜 사진 한 장. 그녀와 함께 처음으로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를 진행했던 날 찍은 사진이었다. 풋풋했던 그녀의 미소와 어색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대비되었다. 그 미소 속에는 별처럼 빛나는 꿈과 열정이 가득했었는데.

“별밤지기님, 오늘은 너무 슬픈 사연이 많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슬픔도 별처럼 반짝일 수 있거든요.”

사진 속 그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스치는 듯했다. 그녀는 늘 그렇게 별의 의미를, 삶의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려주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사라진 후, 지훈은 밤하늘의 별들이 예전만큼 빛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에게 별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닌,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다시 찾아온 고통의 선택

문득,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낮에 받은 문자 메시지 하나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망설임 끝에 휴대폰을 들어 잠금을 해제했다. 발신자는 오랜만에 연락 온 ‘수현’이었다. 그녀는 그녀와 함께 일했던 옛 동료였다.

[지훈 오빠, 잘 지내시죠? 다름이 아니라, 혹시 이번 주말에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5주년 기념 작은 모임이 있는데… 오빠도 오실 수 있으세요? 다들 오빠를 보고 싶어 해요. 그리고… (그녀의 이름)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마지막 문장이 지훈의 심장을 다시 한번 움켜쥐었다. ‘다시 만날 기회’. 5년 동안 지훈은 그녀의 흔적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다. 그녀가 왜 떠났는지, 어디로 갔는지,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나를 떠나기로 선택했다면, 그것은 그녀의 자유였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위로는 언제나 거짓된 평화였다. 그의 밤은 늘 그녀의 빈자리로 채워졌다.

수현의 메시지는 닫아두었던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여는 듯했다.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인 감정이 격렬하게 일렁였다.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그는 과연 무엇을 물어볼 수 있을까. 아니, 그는 그녀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을까?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아온 무관심이라는 갑옷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스튜디오 창밖을 내다봤다. 까만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문득, 오늘 읽었던 사연 속 한 문장이 떠올랐다. ‘때로는 마주하는 것이 가장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지훈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휴대폰 화면의 ‘답장’ 버튼을 향했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피하고 외면했던 선택의 순간이 코앞에 닥쳐왔다. 망설임은 잠시, 그러나 결심은 단호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짧은 문자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 문장이 그를 어떤 밤으로 이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별빛 속으로의 발걸음

작은 전송음과 함께 메시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훈은 다시 한번 헤드폰을 들었다. 엔딩 곡은 이미 끝나고, 다음 프로그램의 시그널이 잔잔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헤드폰을 쓰지 않고 그저 차가운 이어컵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마치 그의 결심처럼 단단했다.

그는 스튜디오를 나섰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고, 그의 발소리만이 고요를 깨뜨렸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도시의 불빛에도 가려지지 않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녀와 함께 올려다보던 별들이었다.

“별은 늘 그 자리에 있었어. 단지 내가 보려 하지 않았을 뿐.”

나지막이 중얼거린 말은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의 발걸음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별이 빛나는 밤, 그는 5년 만에 비로소 자신의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한 걸음 내디디는 중이었다. 그 걸음 끝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의 마음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밤하늘의 별들은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