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상점 – 제346화

메마른 설화(雪花)의 끝에서

꿈을 파는 상점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손님들이 드나들었다. 어떤 이는 잊고 싶지 않은 단 한 순간을 위해, 어떤 이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미래를 엿보기 위해, 또 어떤 이는 그저 잠시나마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이곳의 문턱을 넘었다. 주인장은 그들의 갈망을 읽고, 그에 맞는 꿈을 조제하여 건네는 자였다. 그의 이름은 달무리. 그러나 그에게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면서도 결코 판단하지 않는, 깊고 고요한 호수 같은 눈빛.

그러나 최근 그의 시선은 한 노인에게 자주 머물렀다. 김선우 노인. 그는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상점을 찾아왔다. 그의 손에 들린 지폐는 항상 구겨져 있었고, 그의 발걸음은 늘 힘없이 휘청거렸다. 그의 눈에는 무언가 갈망하는 빛이 있었으나, 동시에 깊은 피로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찾는 꿈은 늘 하나였다. ‘첫눈 오는 날의 포옹’.

달무리는 김선우 노인에게 수십 번도 더 이 꿈을 건네주었다. 투명한 유리병 속에 담긴 꿈은 은은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첫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겨울날, 사랑하는 아내와 따뜻하게 끌어안았던 그 순간의 기억. 달무리는 그 꿈의 향기를 알고 있었다. 설렘과 포근함, 그리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행복의 향기. 처음 노인이 이 꿈을 사갔을 때, 그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피어난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점점 옅어졌고, 이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또 오셨군요, 노인장.” 달무리가 나지막이 말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그의 손은 조용히 지폐를 내밀었고, 달무리 역시 익숙하게 ‘첫눈 오는 날의 포옹’이 담긴 병을 건넸다.

노인이 병을 받아들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달무리의 목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노인장. 이 꿈이… 더 이상 노인장을 위로하지 못하는 것 같군요.”

노인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함께 숨길 수 없는 슬픔이 비쳤다. “무슨… 말씀이시오?”

“꿈은 도피처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기억이라 한들, 그것을 반복해서 되새기는 것은 결국 메마른 씨앗을 계속 심는 것과 같습니다.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하고, 땅은 황폐해질 뿐이지요.” 달무리의 목소리에는 차분한 연민이 담겨 있었다. “노인장의 영혼이 점점 시들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첫눈처럼 아름다웠던 그 꿈이 이제는 노인장의 마음을 갉아먹는 듯하여, 마음이 아픕니다.”

노인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그의 굳게 닫혔던 입술이 떨렸다. “아니… 아니오. 나는… 나는 그저… 그 꿈이…”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달무리는 상점의 오래된 나무 의자를 가리켰다. “잠시 앉으시겠습니까? 노인장께서는 어쩌면… 다른 종류의 꿈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노인은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그의 손에 들린 꿈 병이 마치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달무리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밀었다. 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노인의 눈가를 더 촉촉하게 만들었다.

“그때… 그날이었소.” 노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메말라 있었다. “아내와 내가 처음으로 함께 맞이했던 첫눈이었지. 우리는 그저 어렸고, 철없었고… 너무나 행복했소. 마치 세상에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노인의 시선은 먼 과거를 향하는 듯 허공을 헤맸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소. 몇 달 후, 아내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 그리고 그 후의 시간들은… 지옥이었소.”

달무리는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꿈을 파는 상점의 주인으로서, 그는 수많은 이들의 비극과 회한을 들어왔다.

“나는… 나는 그 기억을 지우고 싶었소. 아니, 차라리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전부 잊고, 그 첫눈 오던 날의 행복 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었소.” 노인의 주름진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래서… 그래서 계속해서 그 꿈을 샀지. 매번 조금씩 더 선명하게, 더 완벽하게 그 순간을 붙잡고 싶었소. 마치 내가 그 시간을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알 수 있었소. 아무리 꿈을 되새겨도, 그 끝에는 결국 그녀의 고통과 나의 죄책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나는 그녀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소.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 그 첫눈 오던 날의 행복이… 그녀에게 마지막 기쁨을 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소.” 노인의 목소리는 흐느낌으로 변해갔다. “나는 그저… 그 꿈 속에서 내가 그녀를 더 사랑하고, 더 잘 보살필 수 있었던 ‘나’를 찾고 싶었던 거요. 하지만 그 꿈은… 그저 나를 과거의 환상 속에 가두어 둘 뿐이었소.”

달무리는 노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노인장. 꿈은 과거를 바꾸지 못합니다. 그리고 현실의 고통을 영원히 지워주지도 못하지요. 그러나 꿈은… 때로 과거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그는 진열장 안쪽에 놓인, 다른 어떤 꿈보다도 은은하고 투명한 빛을 내는 작은 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병에는 아무런 라벨도 붙어 있지 않았다. 마치 아직 이름이 없는 꿈처럼.

“이 꿈은… ‘마지막 포옹의 온기’입니다.” 달무리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아내분께서 세상을 떠나시던 순간, 당신이 느꼈을 무력감과 죄책감이 아닌, 그녀의 마지막 평화로운 숨결, 당신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눈빛, 그리고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던 그녀의 마지막 소망을 담은 꿈입니다. 이는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그렇다고 고통을 외면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평안을 위해 당신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꿈입니다.”

노인의 눈은 병에 고정되었다. 그의 눈빛 속에서 오랜 갈등과 절망의 흔적이 스치더니, 이내 희미한 빛이 피어났다. “그런… 꿈도 있소?”

“네. 가장 어려운 꿈이지요. 과거의 영광이나 환상이 아닌, 현실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진실과 용기를 담는 꿈이니까요.” 달무리는 병을 노인에게 건넸다. “이 꿈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오직 노인장의 진정한 용기와 결심으로만 얻을 수 있지요.”

김선우 노인은 조용히 병을 받아들었다. 차가운 유리병 속에서 미약하지만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듯했다. 그는 병을 가슴에 품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속에는 오랜 응어리가 풀어지는 듯한 해방감이 깃들어 있었다.

“고맙소… 주인장.” 그의 목소리는 이제 메마르지 않았다. 희미하게 젖어 있었으나, 그 속에는 이제 막 피어날 작은 희망의 씨앗이 담겨 있는 듯했다. “나는… 나는 이제… 그 첫눈 오던 날의 환상 속에서 벗어나야겠구려. 그녀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을 살아야겠지.”

노인은 상점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더 이상 휘청거리지 않았다. 그의 등은 이전보다 약간 더 곧게 펴져 있었다. 달무리는 그런 노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꿈을 파는 상점. 이곳은 때로 사람들에게 달콤한 망각을 선사했지만, 진정한 용기를 찾는 이들에게는 가장 가혹하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현실을 마주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창밖으로는 해 질 녘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곧 밤이 찾아오고, 또 다른 누군가가 잊혀진 꿈을 찾거나, 새로운 꿈을 찾아 이곳의 문을 두드릴 터였다. 달무리는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찻잔 속에서 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마치 아직 형체를 갖추지 못한, 수많은 이들의 소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