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상점 – 제358화

환상곡의 문은 언제나 그랬듯 미묘한 몽환으로 아른거렸다. 낡은 금속과 세월의 더께가 앉은 나무가 어우러진 가게 안은 고요했지만, 고요함 속에 수많은 꿈의 속삭임이 숨 쉬고 있었다. 진열장에는 빛을 잃은 보석처럼, 혹은 영원히 잠든 나비처럼 봉인된 꿈의 조각들이 유리병 속에 잠들어 있었고, 공기 중에는 라벤더와 오래된 종이, 그리고 희미한 그리움이 섞인 향이 맴돌았다.

서윤은 꿈의 조각들을 정리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 같으면 익숙한 평화로움이었을 공간이 오늘은 묘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거울 속 풍경이 물결에 일렁이듯, 그녀의 감각은 미세한 파동을 감지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달라진 것이 분명했다. 꿈의 흐름이, 이 상점의 심장이 평소와 다른 박동을 내고 있었다.

“오늘따라 기류가 심상치 않군.”

지배인 강은 언제나처럼 앤티크한 서류 작업대 뒤에 앉아, 손목시계처럼 생긴 작은 기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계의 유리 덮개 아래에서는 가느다란 은빛 바늘이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긴장이 서려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지배인님?”

서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배인 강은 고개를 들어 서윤을 보았다. 그의 깊은 눈은 오래된 연못처럼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세상의 모든 꿈과 그 이면을 꿰뚫어 보는 듯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꿈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과 같지.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거칠게 범람하기도 해. 지금은… 예측할 수 없는 지류가 본류를 거스르려는 조짐을 보이는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점 문이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스무 살 남짓의 젊은 여성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들어섰다. 그녀의 눈은 불안과 피로로 얼룩져 있었고, 손은 무언가를 애써 붙잡으려는 듯 공중에서 가늘게 떨렸다.

“저… 여기가… 꿈을 파는 상점… 맞죠?”

그녀는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서윤은 그녀를 진정시키며 의자에 앉도록 안내했다. 지민이라는 이름의 그 여성은 테이블에 놓인 따뜻한 차 한 잔에도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매일 밤 같은 꿈을 꿔요. 처음에는 평화로웠는데… 갈수록 너무 슬퍼요. 그 꿈 때문에 잠드는 게 무서워요.”

지민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서윤의 심장이 불길하게 쿵, 하고 내려앉았다. 지민은 눈을 감고 꿈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지만, 꿈의 내용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고요한 아침이에요. 창가에 앉아 있어요.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따뜻한 차를 마시는데… 잔 모양이 좀 특이해요. 손잡이가 잎사귀처럼 생겼고, 잔 전체에는 미세한 금빛 무늬가 있어요. 그리고 창밖 나뭇가지에는 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날개 끝이 보랏빛인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 지저귀고 있어요. 그 순간 느껴지는 평화로움은… 세상의 어떤 고통도 잊게 할 만큼 완벽해요.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완벽한 평화의 순간, 갑자기 가슴이 찢어질 듯한 슬픔이 밀려와요. 이유도 없이… 그냥 눈물이 쏟아져요. 깨어나면 한동안 그 슬픔에 갇혀 버려요…”

지민의 이야기가 끝나자 서윤은 자신이 숨쉬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귓가에 윙윙거리는 소리가 맴돌았다. 눈앞의 풍경이 흔들렸다. 지민이 묘사한 꿈은… 서윤의 뇌리 깊숙이 봉인되어 있던, 오래전 그녀가 이 상점에 팔아버린 바로 그 꿈이었다. 잎사귀 모양의 손잡이와 금빛 무늬가 새겨진 특이한 찻잔, 보랏빛 날개를 가진 작은 새, 그리고 세상의 어떤 고통도 잊게 할 평화. 그리고 그 평화 끝에 찾아오는 이유 모를 깊은 슬픔까지. 모든 것이 일치했다.

서윤은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과거의 그림자가 발끝에서부터 기어올라와 심장을 휘감는 듯했다. 그녀는 그 꿈을 팔았다. 너무나도 간절히, 너무나도 처절하게. 삶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던 시절, 그 꿈은 그녀에게 조롱이자 고통이었다. 결코 가질 수 없는 평화를 꿈꾸는 것은 그녀에게 사치였고, 그 꿈이 주는 고요함은 현실의 아비규환을 더욱 극명하게 부각시켰다. 그래서 그녀는 그 꿈을 팔아버렸다. 기억조차 사라지기를 바라며, 환상곡에 영원히 봉인되기를 바라며.

하지만 지금, 그 꿈이 다른 이에게 나타났다. 그것도 정확히 그녀가 경험했던 그 감정선까지 고스란히 담겨서.

“지배인님… 이건…”

서윤은 겨우 목소리를 냈다. 지배인 강은 그녀의 떨리는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팔아넘긴 꿈이라도, 그 본질이 너무 강렬하거나 감정의 무게가 깊으면 완전히 소멸하지 않아. 강물에 돌을 던지면 파동이 생기듯, 꿈 역시 그 파동을 타고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돌지. 지민 양의 꿈은… 네가 흘려보낸 그 꿈의 조각 중 하나일 거야.”

지민은 지배인 강과 서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불안하게 둘을 번갈아 보았다. 서윤은 자신의 과거가 이렇게 불쑥 튀어나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 꿈을 팔면서, 그 꿈이 품었던 상실감과 아픔까지 함께 지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 지워지지 않은 아픔이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어,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럼… 이 꿈은 제가 버린… 제 슬픔인 건가요?”

서윤은 목이 메어왔다. 지배인 강은 고개를 저었다. “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맡겨두었던 것이겠지. 혹은… 너의 슬픔이 지민 양의 마음에 닿아, 그 꿈의 평화 속에 스며든 것일 수도 있고. 중요한 건, 꿈은 감정의 거울이라는 거야. 너의 과거가 지민 양의 현재에 투영되어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

지민의 얼굴은 점차 창백해졌다. “제 꿈이… 다른 사람의 슬픔이라고요? 저는…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서윤은 지민의 떨리는 손을 잡았다. 그 손은 과거의 자신을 붙잡는 듯한 기시감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그 꿈을 팔았다. 하지만 그 꿈의 평화와 그 뒤에 숨겨진 슬픔은 여전히 그녀의 일부였다. 어쩌면 그 꿈은, 완전히 버려지지 못한 채 그녀에게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배인 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열장 속 가장 오래된 유리병 하나를 가리켰다. 병 속에는 은은한 빛을 내는 투명한 결정 하나가 잠들어 있었다. “환상곡에서 꿈은 단순히 팔리고 구매되는 상품이 아니야. 그것은 살아있는 기억이고, 감정의 조각이며, 때로는 미래의 씨앗이기도 하지. 특히 너처럼 강렬한 감정을 담아 보낸 꿈은, 제 스스로 완전해지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

그의 시선이 다시 서윤에게로 향했다. “이제 그 꿈은 너에게 다시 말을 걸고 있는 거야. 그 평화의 의미를, 그리고 그 평화 속에 숨겨진 슬픔의 원인을 네가 다시 찾아내기를 바라고 있지. 그래야만 지민 양도 그 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너도 비로소 과거와 화해할 수 있을 테니.”

서윤은 눈을 감았다. 그녀의 꿈이었다. 완벽한 평화, 그리고 그 평화를 집어삼키는 설명할 수 없는 슬픔. 그 꿈은 그녀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던 걸까? 그녀는 무엇을 잊고 싶었고, 무엇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찻잔의 금빛 무늬가, 보랏빛 새의 날개가, 창밖의 고요한 아침이… 그녀의 뇌리에서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 꿈은 더 이상 지민만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처음부터 온전히 지민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서윤의 과거에서 비롯된, 아직 풀리지 않은 실타래였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거울 속 자신의 눈빛에, 잎사귀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찻잔이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그 꿈은 그녀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서윤은 직감했다. 이 꿈의 비밀을 풀어내지 못하면, 그녀 자신도, 그리고 지민도, 이 기묘하고 슬픈 평화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잊었던 꿈을, 이제 다시 마주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