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지훈입니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리는 깊은 밤입니다. 창밖을 내다보면 서울의 밤하늘은 언제나 뿌옇지만, 상상 속에서는 저 멀리 어느 한적한 곳의 밤하늘처럼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드네요. 어둠 속에서 오직 별빛만이 길을 밝히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때로는 막막한 어둠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작은 빛줄기 같은 추억 하나에 기대어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별밤 사연함: 윤희 님의 이야기
오늘은 그런 별빛 같은 추억 하나를 들려주신 윤희 님의 사연을 소개할까 합니다. 윤희 님은 잊고 지냈던 한여름 밤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내주셨네요. 잠시, 그 기억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볼까요?
그 밤의 별들, 그리고 오래된 라디오
“지훈 DJ님, 안녕하세요. 저는 서른 중반의 윤희라고 합니다. 이 밤에 제가 어릴 적 겪었던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 사연을 보냅니다. 벌써 이십 년도 더 된 이야기네요.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였어요. 여름 방학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강원도로 휴가를 떠나던 길이었죠. 아버지는 운전을 하시면서 늘 그렇듯 라디오를 켜두셨고, 어머니는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계셨어요. 저는 뒷좌석에서 창밖을 보며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고요. 한참을 달리던 중, 갑자기 차가 덜컹하더니 시동이 꺼져버렸습니다. 어두운 밤길 한복판에서 차는 움직임을 멈췄고, 저희 가족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휴대폰도 잘 터지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아버지는 보닛을 열고 한참을 씨름하셨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차 안에서 구조를 기다려야 했어요. 처음엔 좀 무섭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했는데, 아버지는 제 손을 잡고 차 밖으로 나오자고 하셨죠. 주유소도, 가로등도 없는 정말 깜깜한 시골길이었어요. 그렇게 차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저는 숨을 멎는 줄 알았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밤하늘 가득 수를 놓고 있었거든요. 마치 검은 벨벳 위에 다이아몬드를 흩뿌려 놓은 것 같았어요.”
“아버지는 고장 난 차에서 조심스럽게 건전지로 작동하는 작은 휴대용 라디오를 꺼내 오셨어요. 그리고는 제 옆에 앉아 라디오를 켜셨죠. 그날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에서는 어떤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제게 별자리를 가르쳐주기 시작하셨어요. ‘저기 밝게 빛나는 세 개의 별이 보이니? 저게 오리온자리의 허리띠란다. 그리고 그 옆에 희미한 별들이 겨울의 대삼각형을 이루는 거야.’ 아버지의 목소리는 밤하 공기에 스며들어 나지막했지만, 제 귀에는 그 어떤 노래보다도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그 밤, 저는 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누워 끝없이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습니다. 고장 난 차 안에서의 불안감도, 내일의 걱정도 모두 잊은 채, 그저 아버지와 저, 그리고 별과 라디오만이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갈수록 추워진 공기 속에서 아버지는 당신의 얇은 겉옷을 벗어 제게 덮어주셨고, 라디오는 계속해서 감미로운 음악을 속삭였죠. 이른 새벽, 지나가던 트럭 운전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겨우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 밤의 기억은 제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특별한 순간으로 남아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어른이 되었고, 아버지는 이제 머리가 희끗하신 노인이 되셨습니다. 한때 세상의 전부였던 아버지와도 세월의 강물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오해와 서운함으로 거리가 생기기도 했죠. 요즘 저는 가끔, 그날 밤처럼 별이 쏟아지는 풍경을 보거나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때면, 문득 아버지와 함께했던 그 순간을 떠올립니다. 고장 난 차, 깜깜한 밤, 그리고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 그 모든 것이 저에게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가장 소중한 추억입니다. 아버지는 그날 밤의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계실까요? 이 라디오를 듣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아버지께 전하고 싶습니다. 저를 그렇게 큰 사랑으로 길러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그 밤의 별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거라고요. 제게는 아버지와의 그 별밤이 평생을 살아갈 따스한 온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지훈 DJ님, 제 사연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훈 DJ의 생각
윤희 님의 사연, 잘 들었습니다. 고장 난 차 안에서의 불편함과 걱정마저도, 아버지의 사랑과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모했다는 이야기가 참 감동적이네요. 문득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 순간을 함께하는 이의 따뜻한 손길과 마음이 있다면 어떤 절망도 희망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요.
어쩌면 윤희 님에게 라디오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을 겁니다. 고장 난 차 안에서 불안해하는 어린 딸에게 아버지가 건네준 작은 위안이자, 그 밤의 모든 풍경과 감정을 담아내는 소리 상자였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윤희 님과 아버지 사이의 말없이 흐르는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는 배경음악이 되어주었겠죠.
세월이 흐르면서 부모님과의 관계가 이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어릴 적에는 세상의 전부였던 부모님이 때로는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 한마디가 어려워지기도 하죠. 하지만 윤희 님의 사연처럼, 마음 깊이 새겨진 따뜻한 추억 하나는 그 어떤 시간과 거리도 뛰어넘어 우리를 다시 연결시켜주는 끈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단절을 느끼고 계신 분이 있다면, 윤희 님처럼 오래된 사진을 보거나, 함께 들었던 노래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그 속에서 잊고 지냈던 따뜻한 온기를 다시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이에게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우리는 종종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거나 라디오에 기대어봅니다. 물리적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의 거리는 좁힐 수 있는 것이 바로 추억의 힘이고, 밤의 라디오가 아닐까 싶습니다. 윤희 님의 아버지께서 이 방송을 듣고 계신다면, 분명 그 밤의 별들을, 그리고 어린 딸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별자리를 가르쳐주던 그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딸의 깊은 마음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의 선곡
오늘 윤희 님의 사연에 어울리는 곡으로, 김광석 씨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띄워드립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이 노래가, 오늘 밤 여러분에게도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지훈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