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364화

밤은 깊어지고, 도시의 불빛들은 하나둘 잠에 잠겼다. 하지만 소라의 작은 방은 여전히 희미한 달빛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온기 어린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눈은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저 멀리 과거의 어느 별빛 아래를 헤매고 있었다. 혜원우 DJ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부드럽게 감쌌다.

별에게 말을 거는 소녀에게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혜원우입니다. 오늘 밤도 많은 분들이 소중한 사연을 보내주셨네요. 그중에서도 유독 제 마음에 와닿은 편지가 한 통 있습니다. 익명으로 보내주신 ‘별에게 말을 거는 소녀’님의 사연입니다.”

소라는 숨을 헙 들이켰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분명 그녀가 보낸 편지였다. 몇 번이고 고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겨우 완성했던,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었던 옛 이야기가 담긴 편지였다.

“안녕하세요, DJ님. 저는 어릴 적부터 별을 좋아했어요. 외로울 때나 기쁠 때나 늘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곤 했죠. 제게는 소중한 친구이자, 첫사랑이었던 아이가 있었어요. 우리는 매일 밤 동네 뒷산 언덕에 올라가 별을 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죠.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혜원우 DJ의 목소리는 마치 그녀의 마음을 읽어주는 듯 편지를 이어나갔다. 소라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으로 어린 시절의 지훈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 별을 가리키던 가는 손가락, 그리고 늘 자신을 지켜주던 따뜻한 눈빛… 모든 것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 애는 제게 약속했어요. ‘우리가 어떤 별이 되어 사라지더라도, 서로를 찾을 수 있도록 이 라디오처럼 늘 반짝이며 길을 알려줄게.’라고요. 그 약속을 한 날도 이렇게 별이 쏟아지는 밤이었죠. 하지만 어느 날, 그 아이는 아무런 말없이 제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단 한마디의 작별 인사도 없이요. 그 후로 저는 밤하늘의 별들을 볼 때마다 그 아이가 약속을 잊고 어딘가에서 홀로 빛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저처럼 길을 잃은 건 아닌지 늘 궁금하고 아픕니다.”

별 아래의 약속

소라의 손이 낡은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 편지의 내용이 혜원우 DJ의 목소리를 통해 공기 중에 울려 퍼지자, 그녀는 마치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때는 열여섯 살이었다. 아직 꿈이 현실보다 더 크게 느껴지던 시절. 소라와 지훈은 동네 뒷산의 작은 언덕배기에 숨겨진 아지트에서 수많은 밤을 함께 보냈다. 낡은 돗자리를 깔고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도시의 희뿌연 불빛 속에서도 은하수의 흔적이 어렴풋이 보였다.

“소라야, 저기 봐. 저게 다 우리들이야.”

지훈이 손가락으로 밤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사이로 유독 밝게 빛나는 두 개의 별을 가리키며 그는 웃었다.

“어? 어떤 게 나고 어떤 게 너야?” 소라가 까르르 웃으며 물었다.

“음… 저기 가장 반짝이는 건 너, 그리고 그 옆에서 널 지켜주는 건 나.”

지훈의 말에 소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늘 그렇게 엉뚱하면서도 따뜻한 말을 건네곤 했다. 그날 밤, 지훈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라야, 있잖아… 만약 우리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더라도… 약속 하나만 해줄래?”

소라는 지훈의 눈을 바라봤다. 별빛이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흔들렸다.

“응, 무슨 약속인데?”

“우리가 어떤 별이 되어 사라지더라도, 서로를 찾을 수 있도록 이 라디오처럼 늘 반짝이며 길을 알려줄게. 그러니까 너도 혹시 길을 잃거나 외로우면, 밤하늘을 봐. 그럼 내가 보일 거야. 그리고 너도 나한테 너만의 빛을 보내줘. 그럼 내가 널 찾으러 갈게.”

그의 말은 어린 소라에게는 마치 영원히 변치 않을 주문처럼 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지훈은 흐뭇하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그 순간, 밤하늘의 별들은 그들의 약속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듯 더욱 강렬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남겨진 별, 길 잃은 빛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모든 것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지훈은 여름방학이 끝난 후, 개학 날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가족이 밤사이에 갑자기 이사를 갔다는 소문만이 떠돌 뿐이었다. 소라는 그의 집 앞에서 밤새 기다렸지만, 굳게 닫힌 대문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의 휴대폰 번호는 불통이었고, 남겨진 메시지나 쪽지도 없었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지훈은 소라의 삶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후로 소라는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그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어떤 별이 되어 사라지더라도…’ 그는 사라진 걸까? 어떤 별이 되어버린 걸까? 아니면 그 약속을 잊고 다른 길을 찾아 떠나버린 걸까? 소라는 매일 밤 그의 별을 찾으려 했지만, 수많은 별들 속에서 어떤 별이 지훈의 별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길을 잃은 채 홀로 밤하늘을 헤매는 작은 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 소라는 어른이 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지훈과의 추억은 점차 희미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가끔, 불현듯 찾아오는 밤하늘의 고요함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지훈을 그리워했다. 그가 남긴 약속은 가슴 한구석에 깊이 박힌 채 작은 상처처럼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상처를 어루만지듯, 라디오에 짧은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길을 비추는 별

“별에게 말을 거는 소녀님, 당신의 사연 잘 들었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네요. 하지만 제가 믿는 한 가지는, 진심이 담긴 약속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설령 상대방이 길을 잃었다 해도, 당신의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그를 위한 등대가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혜원우 DJ의 목소리가 다시 현재로 소라를 이끌었다. 그녀의 뺨에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마치 그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듯, 조용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곡이었다.

“밤하늘의 별은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어쩌면 그 아이도 당신처럼 밤하늘을 보며 당신을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우리가 먼저 빛을 보내야 할 때도 있어요. 더 강렬하고, 더 간절하게요. 당신의 이야기가, 당신의 빛이, 언젠가 그에게 닿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 밤, ‘별에게 말을 거는 소녀’님께 이 곡을 바칩니다. 이 곡이 당신의 밤을 밝혀주는 작은 별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사가 없었지만, 멜로디 하나하나에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담겨 있는 듯했다. 소라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울고 있었지만, 그 눈물 속에는 이전과는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막연한 슬픔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작은 불꽃 같은 것이었다.

지훈의 별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의 별을 기다리기만 하는 작은 별이 아니었다. 그녀도 빛을 낼 수 있었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그녀의 이야기가, 그녀의 빛이 그를 찾을 수 있는 지도가 될 수도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다.

소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밤하늘은 여전히 수많은 별들로 가득했다. 그녀는 그 별들 중 어떤 하나가 지훈의 별이기를 바라며, 그리고 또 다른 어떤 별이 그녀의 빛을 받아주기를 바라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밤은 깊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작은 희망의 별 하나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약속의 별이자, 길을 밝히는 별이었다. 이 밤, 소라의 빛은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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