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363화



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363화

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아침은 언제나 같은 듯 달랐다. 갓 구운 빵 냄새가 온종일 빵집을 감싸고돌았지만, 그날그날의 냄새는 왠지 모르게 달랐다. 때로는 고소한 호두 향이 더 진했고, 때로는 달콤한 커스터드 향이 공기를 채웠다. 오늘은 은은한 시나몬과 따뜻한 우유 식빵의 냄새가 포근하게 퍼져 있었다. 이 모든 향기의 조화는 빵집 주인 미영 씨의 부지런한 손끝에서 시작되었다.

창밖으로는 옅은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테이블 위를 비췄다. 아직 손님은 없었지만, 미영 씨는 이미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을 맺은 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븐에서 막 꺼낸 식빵은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식힘망 위에서 위용을 뽐냈고, 진열대에는 갖가지 색깔과 모양의 빵들이 정갈하게 놓여 손님을 기다렸다. 이곳은 단순히 빵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작은 고민과 기쁨이 함께 익어가는 따뜻한 아지트였다.

그늘진 소녀의 눈빛

오전 열 시, 빵집 문이 ‘딸랑’ 소리를 내며 열렸다. 평소 같으면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했을 단골손님 지수였다. 그러나 오늘 지수의 걸음은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미영 씨는 쟁반에 갓 구운 소금빵을 담다 말고,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수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안으로 들어섰다. 며칠 전부터 지수의 표정에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늘 밝고 명랑하던 아이였는데, 근래 들어 눈빛이 흐리고 웃음기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수야, 어서 와. 오늘 날씨가 좀 쌀쌀하지?” 미영 씨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지수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그녀의 눈은 진열된 빵들을 훑는 듯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듯 멍했다. 미영 씨는 그런 지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지수는 한 달 전 할머니를 여의었다. 늘 손을 잡고 빵집을 찾아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할머니는 언제나 지수에게 빵을 고르게 하고는, 자신은 그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손녀딸의 웃는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오늘은 뭘로 줄까? 새로 나온 에그타르트도 맛있는데.” 미영 씨는 지수의 기분을 풀어주려 애썼다.

“음… 오늘은 그냥 플레인 스콘 하나만 주세요.” 지수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늘 이것저것 구경하며 신나게 빵을 고르던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미영 씨는 지수가 내민 카드를 받아 결제를 하면서도, 그녀의 눈빛에서 슬픔이 가득하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마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도 가슴속 깊이 남아 있을 터였다. 빵집에 들어올 때마다, 빵 냄새를 맡을 때마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지수를 더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이 담긴 따뜻한 한 조각

지수가 스콘이 담긴 봉투를 들고 돌아서려 할 때였다. 미영 씨는 갑자기 지수를 불렀다.

“지수야, 잠깐만.”

지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미영 씨는 진열대 안쪽 깊숙한 곳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고작 두어 개밖에 남지 않은, 작고 투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견과류 쿠키가 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이 빵집에서 가장 좋아했던 것이 바로 이 견과류 쿠키였다. 너무 달지도, 너무 싱겁지도 않은, 씹을수록 고소하고 깊은 맛이 나는, 미영 씨가 특별히 할머니를 위해 개발했던 쿠키였다.

“이거….” 지수가 눈을 크게 떴다.

“할머니께서 제일 좋아하시던 쿠키잖아. 매번 오실 때마다 두세 개씩 꼭 사 가셨지.” 미영 씨는 그 중 가장 예쁜 쿠키 하나를 집어, 작은 종이봉투에 담아 지수에게 내밀었다. “이건 내가 지수 너에게 주는 거야. 할머니 생각날 때, 따뜻한 우유랑 같이 먹어 보렴.”

지수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따뜻한 쿠키의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 순간, 지수의 눈가에 촉촉하게 이슬이 맺혔다. 꾹 참았던 감정이 터져 나오려는 듯, 입술을 앙다물었지만, 이내 작은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미영 씨는 아무 말 없이 지수 앞에 서서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빵집 안에는 따뜻한 빵 냄새와 함께 지수의 흐느낌만이 가득 찼다.

“할머니가… 할머니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저 몰래 오셔서 이 쿠키만 드시고 가시기도 했대요. 저번에 미영 이모가 그러셔서 알았어요.” 지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빵집에 오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할머니랑 같이 오던 길이고… 빵 냄새만 맡아도 할머니가 옆에 계신 것 같아서….”

미영 씨는 지수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 안았다. 소녀의 여린 어깨는 미영 씨의 따뜻한 품속에서 더욱 작게 느껴졌다. “그랬구나, 지수야. 많이 힘들었지? 할머니가 얼마나 지수를 사랑했는지, 이모는 다 알아. 할머니는 하늘에서도 지수를 지켜보고 계실 거야. 이모가 만든 이 쿠키처럼,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작은 위로, 다시 피어나는 미소

한참을 울던 지수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었지만, 조금 전보다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슬펐지만, 그 속에 작은 빛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손에 들린 쿠키 봉투를 꽉 쥔 채, 지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미영 이모.”

그것은 단순한 감사의 인사가 아니었다. 슬픔에 잠겨 있던 소녀가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작은 구원의 한 마디였다. 미영 씨는 지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빵집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그 안의 공기는 더 이상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갓 구운 빵 냄새처럼 따스하고 포근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수는 스콘과 쿠키 봉투를 들고 빵집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딸랑’ 소리와 함께, 그녀의 뒷모습은 여전히 쓸쓸해 보였지만, 어깨는 조금 더 펴진 듯했다. 미영 씨는 유리창 너머로 사라지는 지수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서는 오늘도, 따뜻한 빵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기적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삶의 작은 그늘을 밝히는 햇살처럼 잔잔하고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내일은 지수의 얼굴에 조금 더 환한 미소가 피어나기를, 미영 씨는 조용히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