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잔해가 뒤섞인 바람이 불었다. 이안의 망토 자락이 거칠게 펄럭였고, 낡은 사암 건축물의 비명 같은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사방은 붉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붕괴 직전의 기둥들이 간신히 천장을 지탱하는 폐허의 심장이었다. 시간의 흐름이 불규칙하게 뒤틀린 이곳, ‘영원의 묘지’라 불리는 곳이었다. 이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왜곡된 풍경을 응시했다. 지난 수백 화 동안 쫓아왔던 흐릿한 기억의 조각, 그 파편들이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이안, 이 이상은 위험해. 이곳은 차원의 균열이 너무 심해.”
세라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울렸다. 그녀의 손목에 감긴 시간 추적기가 미친 듯이 경고음을 내뿜고 있었다. 이안은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심장은 마치 잃어버린 고향을 찾은 이처럼 격렬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셀 수 없는 시간대를 헤매고, 무수한 위험을 넘었으며, 존재하지도 않는 기억의 그림자를 쫓아다녔다. 이제 겨우 끝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난 느껴, 세라. 내 기억의 핵심이 이곳에 있어. 아니, 어쩌면 나라는 존재의 핵심일지도 몰라.”
그는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낡은 유적의 문턱을 넘어서자, 밖과는 완전히 다른 정적이 그들을 감쌌다. 공기마저 멈춰버린 듯한, 시간의 흐름이 박제된 공간이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제단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빛을 잃은 채 새겨져 있었다. 먼지 덮인 홀 중앙으로 빛 한 줄기가 천장의 구멍을 뚫고 떨어져 내렸다.
“이것 봐, 이안. 저 문양…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어.” 세라가 바닥에 새겨진 문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안은 문양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섬뜩할 정도로 익숙한 기시감. 그의 머릿속에서 희미한 이미지들이 파편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통스러운 두통이 밀려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바로 이거였다. 그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운명의 끈이었다.
그는 제단을 향해 걸어갔다. 차가운 돌의 표면을 만지자, 문양들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중앙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에서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거대한 홀 전체를 비추는 그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시간의 에너지, 기억의 파편들이 응축된 듯한 영롱하고도 불안정한 빛이었다.
빛의 기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 중심에서 형체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선명하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인 존재. 이안은 숨을 멈췄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눈빛에는 확고한 의지와, 동시에 깊은 고통이 서려 있었고, 얼굴은 피곤함과 결연함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다른 이안’은 어떤 거대한 콘솔 앞에 서 있었다. 그 콘솔은 이안이 지금껏 보아왔던 어떤 시간 장치보다도 복잡하고 거대했다.
“이건… 과거의 나?” 이안의 목소리가 떨렸다. 세라는 경악한 얼굴로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홀로그램 속의 ‘과거의 이안’은 손을 들어 콘솔의 거대한 레버에 올려놓았다. 망설임 없는 듯 보였지만, 그의 표정은 고뇌로 가득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이안은 본능적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선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너무나도 거대한 것이었다.
순간, 빛의 기둥 안에서 과거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비록 희미했지만, 그 비통함과 절박함은 온몸을 관통했다.
— 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 되돌려선 안 돼. 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유일한 방법은…
그리고 이안은, 자신의 과거가 레버를 거칠게 잡아당기는 것을 보았다. 거대한 기계음이 홀로그램을 넘어 현실의 귀청을 때리는 듯했다. 레버가 완전히 내려가자, 콘솔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과거의 이안은 그 섬광에 휩싸였다. 그는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그의 육체가 산산조각 나는 것처럼, 빛의 입자로 흩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동시에, 이안의 머릿속에 폭풍 같은 기억의 파편들이 밀려들었다. 압도적인 정보, 감정의 홍수. 그는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자신의 과거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정체성이, 이토록 끔찍한 진실과 연결되어 있었단 말인가? 그는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깨달았다. 과거의 자신이, 특정한 시간선의 모든 기록을, 모든 존재를,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는’ 행위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시간적 부작용으로 인해, 스스로의 기억마저 소실되어 버린 것이었다.
— 널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다시는… 다시는 잃지 않을 거야…
파편적인 목소리가 그의 뇌리에 박혔다. ‘널 위해서’… 누구를 위한 희생이었을까? 그가 지워버린 시간선에 대체 무엇이 있었던 걸까? 그 질문과 함께, 하나의 얼굴이 섬광처럼 그의 눈앞에 스쳤다.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여인의 얼굴. 너무나도 익숙하고, 너무나도 그리운 얼굴이었다.
“안 돼… 내가… 내가 이런 짓을…?”
이안의 목소리에는 절망과 자기혐오가 가득했다. 그는 자신이 시간의 수호자가 아니라, 파괴자였음을 깨달았다. 기억을 잃은 방랑자가 아니라, 과거의 끔찍한 죄를 짊어진 망령이었던 것이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실이, 이렇게 잔혹한 칼날이 되어 자신의 심장을 꿰뚫을 줄이야.
홀로그램은 점차 희미해졌다. 과거의 이안은 사라지고, 오직 제단의 빛만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 빛 속에서, 이안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동시에, 모든 것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 기억을 되찾아야 했던 걸까? 그저 고통과 후회를 다시 짊어지기 위해서?
“이안! 정신 차려! 이안!”
세라가 달려와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걱정과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그 순간, 제단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했다. 홀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했고, 낡은 사암 건축물이 붕괴될 듯한 소리를 냈다. 바닥의 균열에서 시공간 에너지가 분출되어 나왔다.
“이안, 이곳이 불안정해지고 있어! 어서 나가야 해!” 세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이안은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과거에 지웠던 시간선, 그 사라진 모든 것들이 마치 망령처럼 홀의 벽면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는 그 거대한 파멸의 잔해 속에서 자신이 서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홀의 가장 깊은 곳, 제단 뒤편의 어둠 속에서 희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빛의 폭풍 속에서도 고요하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그림자. 이안의 망각을 설계하고, 그를 조종해 온 존재.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동시에 두려워했던 존재였다.
“너무 늦었어, 이안.”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빛과 그림자 사이, 모호한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얼굴은… 그가 꿈속에서 보아왔던, 미지의 적대자의 얼굴이었다.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익숙함. 이안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시간 여행 장치를 움켜쥐었다.
“이제야, 네가 누구인지 기억해냈군. 이제야, 네가 무엇을 저질렀는지 깨달았어.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을 끝낼 때가 왔다.”
그림자는 한 걸음씩 다가왔다. 홀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시간의 균열은 더욱 커졌다. 이안은 눈앞의 적과, 자신의 끔찍한 과거, 그리고 무너져가는 현실 사이에서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시간 장치가 희미하게 진동했다. 하지만 그는 도망칠 수 없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진 지금, 그는 싸워야만 했다. 자신의 죄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존재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