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104화

밤하늘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도화지 같았다. 어떤 날은 붓으로 휘갈긴 듯 먹구름으로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다가도, 어떤 날은 수억 개의 보석을 흩뿌려놓은 듯 눈부시게 빛나곤 했다. 오늘밤은 후자에 속했다. 스튜디오의 둥근 창밖으로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질 듯 빼곡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를 진행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배경은 없을 터였다.

“안녕하세요,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DJ 지아입니다.”

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전파를 실어 어둠 속을 헤매는 수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언제나처럼 익숙한 오프닝 멘트였지만, 오늘따라 내 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동이 일렁였다.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을 애써 감추며 대본을 잡았다. 매주 밤마다 이 자리에 앉아 수많은 사연과 노래를 소개했지만, 어떤 밤은 특별한 기운을 품고 찾아오곤 했다.

“창밖을 보세요, 여러분. 오늘은 정말이지, 별들이 숨 막힐 듯 아름다운 밤입니다. 마치 수천 개의 눈동자가 우리를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저마다의 비밀을 품은 채 반짝이는 고독한 섬들 같기도 해요. 여러분에게 별은 어떤 존재인가요? 저는 가끔 저 별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밝혀주는 존재라는 생각도 합니다.”

잔잔한 배경음악이 스튜디오를 감쌌다. 늘 그렇듯 첫 곡은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나는 오늘 도착한 수많은 사연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하나의 봉투를 집어 들었다. 평범한 흰색 봉투였지만, 봉투 모서리에 작게 그려진 별 모양 그림이 왠지 모르게 시선을 사로잡았다. 발신인 이름은 ‘별바라기’였다.

“오늘의 첫 번째 사연은 ‘별바라기’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한번 들어볼까요?”

숨을 고르고, 조심스럽게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DJ 지아님, 안녕하세요.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를 매주 듣는 청취자입니다. 사실 사연을 보낸 건 처음입니다. 펜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수십 번을 반복했어요.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서, 지금 와서 꺼내봤자 아무 소용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오늘처럼 별이 쏟아지는 밤을 맞이하니, 그 이야기가 다시 제 마음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멈출 수가 없네요.

저는 10년 전 오늘과 비슷한 밤을 기억합니다. 그때도 여름의 끝자락이었고, 하늘엔 은하수가 선명하게 흐르고 있었죠. 우리는 옥상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미래를 이야기했어요. 그날 밤, 유성우가 쏟아졌고, 우리는 동시에 한 가지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약속했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서로를 잊지 말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 별들 아래에서 다시 만나자.’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맹세했어요. 별이 그 증인이었죠.

하지만 어리석게도, 저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작은 오해와 제 어설픈 자존심 때문에, 저는 가장 소중했던 사람의 손을 놓아버렸고, 그 후로 단 한 번도 그 사람에게 연락할 용기를 내지 못했어요.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요? 아직도 그날 밤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아니, 어쩌면 저를 벌써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죠.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저는 아직도 그때의 제가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 그 별들 아래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아니, 만날 자격이라도 있을까요?

지아님, 혹시 제가 너무 늦은 걸까요? 이 별빛 아래에서, 저는 용기를 내고 싶습니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좋을까요?

편지를 다 읽자 스튜디오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별바라기’님의 사연은 낡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내 기억 속의 한 조각을 흔들었다. 유성우, 옥상, 캔맥주, 그리고 ‘절대로 서로를 잊지 말자’는 약속…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설마…?

나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별바라기님, 늦었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진심으로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건 결코 늦지 않습니다. 저는 별바라기님이 용기를 내시길 응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밤에는, 어쿠스틱 기타 선율이 잔잔하게 깔린 오래된 팝송이 어울릴 것 같아요. 첫눈처럼 맑고 투명한 진심이 담긴, 그런 노래를 들려드릴게요.”

선곡표에 적힌 다음 곡을 재생했다. 멜로디는 부드럽게 흘렀지만, 내 마음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처럼 요동쳤다. ‘별바라기’님의 사연에 담긴 디테일들이 자꾸만 나의 과거를 소환했다. 10년 전, 여름의 끝자락, 쏟아지는 유성우를 보며 누군가와 했던 약속. 내게도 그런 밤이 있었다. 그날 밤, 내가 함께 했던 사람은… 현우였다. 내 첫사랑이자, 가장 소중한 친구였던 현우.

우리는 사소한 오해로 멀어졌고,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상처받은 마음에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현우는 잘 지내고 있을까? 나를 잊었을까? 아니면, 혹시…?

음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스튜디오 안의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매니저의 얼굴이 인터폰 화면에 나타났다. 손가락으로 전화를 가리키며 무언가 다급하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브 방송 중 걸려온 전화는 보통 사전에 조율된 전화연결이 아니면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 이 전화는 받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기술적인 문제로 전화연결이 지연되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잠시 광고 듣고 오시겠습니다.”

광고가 나가는 동안, 매니저가 스튜디오 문을 열고 급히 들어왔다. “지아 씨, 방금 걸려온 전화… 뭔가 이상해요. 익명인데, ‘별바라기’라고 자기를 소개하고는 꼭 지아 씨가 받아야만 한다고…”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별바라기’… 내 안의 직감이 경고음처럼 울렸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손을 들어 매니저를 제지했다. “괜찮아요. 제가 받을게요.”

광고 음악이 끝나고, 다시 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청취자 여러분, 갑작스러운 전화연결 시도에 놀라셨죠? 하지만 저에게는 꼭 받아야 할 것 같은 전화였습니다. 익명으로 걸려온 전화인데요… ‘별바라기’님이시라고 합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낯설면서도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떨리는 그 목소리는 마치 10년 전의 내가 듣던 현우의 목소리를 기억해낸 듯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듯 낮고 깊어진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떨림은 잊을 수 없었다.

“지아… 지아야, 듣고 있니?”

내 이름이 그 목소리에서 흘러나오자, 숨이 턱 막혔다. 방송 중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나는 그저 그 목소리에 홀린 듯 입을 열었다. “현… 현우…?”

“그래, 나야. 네가 내 사연을 읽어주는 걸 듣고, 용기를 냈어. 정말 오랜만이다, 지아야.” 현우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그 안에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네가… 네가 ‘별바라기’였어? 나는…”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놀라움, 그리움, 미안함, 그리고 10년의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알 수 없는 희망까지.

“그래. 사실… 너에게 닿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이 방송을 진행하는 걸 알고 있었거든. 그날 밤, 우리가 약속했던 그 별들 아래에서… 널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네가 날 기억할까, 아니면… 날 미워하고 있을까 두려웠어.”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나는 눈물이 차올랐다. 미워했다니. 단 한 번도 그를 미워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나의 어리석음과 자존심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을 뿐이었다.

나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 “현우야… 나도… 나도 그날 밤의 약속을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잊을 수가 없었어.”

현우는 잠시 침묵했다. 라디오를 듣는 수많은 청취자들은 우리가 나누는 이 대화가 단순한 DJ와 청취자의 대화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 리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저 익명의 ‘별바라기’가 DJ 지아에게 전하는 솔직한 마음일 뿐일 터였다.

“지아야…” 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떨림과 함께 조심스러운 희망이 섞여 있었다. “네가 아직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때 옥상에서, 떨어지는 유성우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뭔지 기억해?”

그 질문에 나는 모든 의심을 거둘 수 있었다. 10년 전 그날 밤, 유성우가 마지막으로 떨어지던 순간,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웃으며 속삭였다.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암호였다. 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이크를 통해 나의 흐느낌이 전해질까 두려워, 나는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기억해… 우리가 언젠가 다시 만나면, 그때는 절대… 절대 놓지 말자고…”

스튜디오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수화기 너머에서도 현우의 숨소리만이 거칠게 들려왔다. 창밖의 별들은 여전히 말없이 빛나고 있었다. 10년의 시간이, 수억 개의 별빛이 응축된 침묵 속에서, 마침내 우리 둘 사이의 끊어졌던 인연이 다시 이어지는 듯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10년의 벽을 넘어, 이 밤의 끝에서 우리는 과연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현우야…” 나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그럼… 그 별들 아래에서… 다시 만나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