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505화

안녕하세요. 고요와 설렘이 공존하는 별이 빛나는 밤입니다. 진행을 맡은 한유성입니다.

창밖을 보세요. 도시의 불빛 너머로 저 멀리 점점이 박힌 은하수가 보이시나요? 오늘 밤은 유난히 별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밤입니다. 어떤 밤은 너무나 무거워 온 마음을 짓누르기도 하고, 어떤 밤은 너무나 가벼워 한없이 떠오르는 풍선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는 어떤 밤이든, 그 무게와 가벼움 사이에서 당신의 목소리가 되어드리려 노력합니다.

오늘은 며칠 전 도착한 한 통의 편지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사연을 보내주신 분은 ‘지나’님입니다.

밤하늘 아래, 잃어버린 약속

DJ 유성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수년째 별밤 라디오를 듣고 있는 지나라고 합니다.
오늘, 505번째 밤하늘을 수놓는 당신의 목소리를 빌려,
오랫동안 제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어서 펜을 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 자신에게 용기를 주려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아주 특별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강현’이었죠.
어릴 적, 강현이네 가족은 저희 옆집에 살았어요.
매일 밤, 작은 창문 너머로 서로의 방 불빛을 확인하고 잠이 들던 사이였습니다.
우리는 늘 함께였고, 그 시절의 모든 순간은 강현이와 저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여름, 강현이네는 아버지를 따라 먼 바다 건너의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헤어지기 전 마지막 날 밤, 우리는 작은 뒷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날 밤하늘은 정말이지, 제가 살면서 본 별 중에 가장 아름답고 눈부셨어요.
별들이 쏟아질 것 같다는 말이 정말 그날을 위해 존재한다고 느꼈을 정도였습니다.

강현이는 제게 말했어요. “지나야, 우리 헤어져 있어도 매일 밤 저 별들을 보자. 저 직녀성 알아? 반짝이는 저 별, 베가. 우리가 사는 곳이 아무리 멀어도 저 별은 늘 우리 머리 위에서 빛날 거야. 그러니까 우리, 매일 밤 저 베가를 보면서 서로를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는 작은 유리병에 서로에게 쓴 편지를 넣어 땅에 묻었습니다.
누가 먼저 이 땅을 다시 찾아 편지를 꺼내보는 사람이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어요.
그때 강현이가 흥얼거렸던 노래가 있었어요.
오래된 팝송인데, 제목이 뭐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가사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멜로디는 아직도 선명해요.
그 노래가 흐르면 그날의 밤공기, 풀벌레 소리, 그리고 강현이의 웃음소리까지 다시 들리는 것 같습니다.

시간은 흘러 벌써 십수 년이 지났습니다.
강현이와는 연락이 끊겼어요.
이사 간 뒤 몇 년은 편지도 주고받고 전화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학업에 치이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어느새 저는 강현이의 소식을 들을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더군요.
하지만 단 하루도 그 약속을 잊은 적이 없어요.
매일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베가를 찾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그 뒷산 근처를 지나게 되었어요.
개발로 인해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그때 우리가 약속했던 그 자리는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어요.
혹시 강현이가 와서 그 편지를 꺼내 보지 않았을까,
아니면 혹시 저처럼 매일 밤 그 별을 보며 저를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이 라디오는 세상 어딘가에 있을 강현이에게 제가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메시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현아, 혹시 이 방송을 듣고 있니?
우리의 약속, 아직 유효한 걸까?
네가 흥얼거렸던 그 노래를 다시 한번 듣고 싶어.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 자리에서 함께 베가를 바라보고 싶어.

유성님, 염치없지만 그날 밤 강현이가 흥얼거렸던 노래를 틀어주실 수 있을까요?
정확한 제목은 모르지만, ‘Starry, starry night’이라는 가사가 들어가는,
고흐의 그림처럼 아련한 느낌을 주는 곡이었습니다.
강현이가 혹시라도 이 방송을 듣고 있다면, 그 노래를 통해 우리의 추억을 떠올려 주기를 바라며…

오늘도 별이 빛나는 밤에, 지나가 드립니다.

지나님의 편지였습니다.

직녀성을 뜻하는 ‘베가’. 견우와 직녀의 전설처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서로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별이기도 하죠. 지나님의 사연을 들으며, 저 또한 어린 시절의 약속들이 떠올라 마음이 시큰거렸습니다. 어린 시절의 약속은 종종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큰 무게와 의미를 지니고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헤어짐이 무엇인지 채 알기도 전에 맺어진 순수한 약속은,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등대처럼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죠.

강현님, 혹시 지금 이 방송을 듣고 계신가요?

지나님의 마음이 강현님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지나님이 신청해주신 곡을 들려드리겠습니다. 고흐의 그림처럼 아련한 그 노래, Don McLean의 ‘Vincent (Starry, Starry Night)’입니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기타 선율이 흐르기 시작한다.)

“Starry, starry night~” 노래 가사가 밤공기를 타고 스튜디오를 채웁니다. 어릴 적의 약속, 별 아래서 주고받던 속삭임, 그리고 오랜 시간 헤어져 있었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 이 모든 감정들이 이 노래 한 곡에 담겨 흐르는 듯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집니다. 어떤 인연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어떤 인연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인연은,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졌을지라도 마음속 깊이, 마치 저 베가처럼 늘 빛나고 있죠. 지나님과 강현님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인연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친구와 연락이 끊기고, 가족과 멀어지는 일은 우리 삶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관계가 한때 우리의 삶에 얼마나 빛나는 순간을 선물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그들을 그리워하며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그리움 자체가 바로 우리 삶의 한 부분이며,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니까요.

밤하늘의 별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빛나지만, 그 빛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비춰주죠. 지나님의 사연이 강현님에게 닿기를, 그리고 두 분의 아름다운 약속이 언젠가 다시 빛을 발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 밤, 이 노래를 들으며 잠시 잊고 지냈던 소중한 인연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그 인연 또한 당신을 그리워하며 같은 별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망설이지 마세요. 작은 용기가 기적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전화 한 통, 짧은 메시지 한 줄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줄지도 모릅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는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도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 여러분의 소중한 사연들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지금까지 한유성이었습니다. 편안하고 따뜻한 밤 되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Don McLean의 ‘Vincent’가 페이드아웃 되며 방송이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