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할아버지 댁에서의 모험 – 제521화

햇살이 뜨겁게 쏟아지는 한낮이었지만, 할아버지 댁 다락방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오래된 나무 바닥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 대신 먼지 섞인 공기만이 가만히 내려앉았다. 지호는 희미한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빛을 등지고 무릎을 꿇은 채, 낡은 나무 상자 속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물건들을 응시했다. 옆에는 그의 단짝 친구 수아가 같은 자세로 앉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뭘까?”

수아가 속삭였다. 그들의 눈앞에는 낡은 황동 나침반 하나와,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종이는 얇고 바스락거렸으며, 가장자리에는 세월의 흔적으로 보이는 미세한 찢김이 있었다. 나침반은 손때 묻은 황동 케이스 안에 갇힌 채, 바늘이 불안하게 떨고 있었다.

오래된 나침반과 잊힌 글자

지호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먹으로 쓰인 듯한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현대의 한글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였다. 붓글씨 특유의 유려함 속에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 같은 기호들이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어쩐지 할아버지가 예전에 보여주셨던 오래된 족보의 글씨체와 비슷해 보였지만, 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할아버지 글씨는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이건 한자도 아닌 것 같고.”

수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종이 위를 훑었다. 그녀는 지호보다 사물을 관찰하는 데 더 뛰어났다. “지호야, 이 종이, 어쩐지 두 겹 같지 않아?”

수아의 말에 지호는 종이를 빛에 비춰 보았다. 과연, 미세하게 비치는 그림자 아래 또 다른 얇은 종이가 덧대어져 있는 듯한 흔적이 보였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 중요한 정보를 숨기기 위해 두 장의 종이를 정교하게 붙인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분리하지?” 지호는 섣불리 만지다가는 귀한 종이가 찢어질까 봐 걱정했다.

“우선 나침반을 봐봐. 보통 나침반이랑은 뭔가 달라.” 수아가 나침반을 가리켰다. 나침반의 바늘은 제멋대로 흔들리다가, 이내 어느 한 방향을 집요하게 가리키는 듯했다. 그것은 북쪽이 아니었다. 다락방의 낡은 나무 벽, 한때 지호가 할아버지의 숨겨진 간식 창고라고 생각했던 텅 빈 벽을 향해 멈춰 서 있었다.

그때였다. 1층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다락방까지 울려 퍼졌다.

“지호야! 수아야! 간식 먹으러 내려와! 할아버지가 밭에서 따온 참외다!”

지호와 수아는 화들짝 놀라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들은 재빨리 종이와 나침반을 나무 상자에 도로 넣고, 낡은 천 조각으로 덮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이 물건들을 발견하면 분명 놀랄 것이고, 어쩌면 그들의 모험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 오래된 다락방의 비밀은 오직 그들만의 것이어야 했다.

할아버지의 그림자

1층으로 내려오자 시원한 마루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할아버지 앞에는 갓 씻어낸 노란 참외가 소반 위에 놓여 있었고, 할머니는 시원한 보리차를 따르고 계셨다. 지호는 얼른 할아버지 곁에 앉아 참외를 한 조각 받아들었다. 달콤하고 아삭한 참외의 맛이 입안 가득 퍼졌지만, 그의 마음속은 다락방의 비밀로 가득 차 있었다.

지호는 슬쩍 할아버지를 곁눈질했다. 주름진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있었지만, 어쩐지 그의 눈빛 깊은 곳에는 늘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의 눈빛을 볼 때마다 지호는 가슴 한쪽이 아릿했다. 그 그림자는 할아버지가 살아온 긴 세월의 흔적인지, 아니면 아직 풀어내지 못한 어떤 이야기의 흔적인지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 옛날에 혹시… 이런 이상한 글씨가 쓰인 종이나, 아니면… 북쪽을 가리키지 않는 나침반 같은 거 보신 적 있어요?”

지호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물었다. 할아버지는 참외를 드시다 말고 잠시 멈칫했다. 그의 눈빛이 지호의 질문에 반응하듯 흔들리는 것을 지호는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이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다, 지호야. 할아버지는 그런 신기한 물건은 본 적이 없는데. 네가 또 무슨 책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읽었구나?”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했지만, 지호는 할아버지의 시선이 아주 잠깐, 마루 끝에 놓인 낡은 궤짝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 궤짝은 할머니가 쓰지 않는 이불들을 넣어두는 용도였지만, 지호는 한 번도 그 안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혹시… 저 궤짝 안에도 할아버지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수아는 눈치 빠르게 지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더 이상 캐물으면 할아버지의 의심을 살 것이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그냥 제가 꿈을 꿨나 봐요.” 지호는 얼른 둘러댔다. 할아버지는 다시 웃으며 참외를 드셨지만, 지호의 마음속에는 또 하나의 의문이 피어올랐다. 할아버지는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숨기고 있는 걸까?

할아버지의 깊은 눈빛 속에 담긴 그림자는 이제 지호의 모험과 뗄 수 없는 연결고리가 된 것만 같았다.

빛이 드리운 곳

간식을 마치고 할머니가 잠시 낮잠을 주무시러 방으로 들어가시고, 할아버지가 밭으로 가신 후, 지호와 수아는 다시 다락방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더 조심스럽게, 그리고 더 결연한 태도로.

수아는 아까 봐두었던 작은 돋보기를 들고 왔다. 다락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아래, 그녀는 조심스럽게 낡은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돋보기로 종이의 이음새 부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거… 어쩐지 물기가 닿으면 벌어질 것 같은데.”

지호는 문득 어릴 적 할머니가 종이공예를 하실 때 쓰던 방법을 떠올렸다. 풀로 붙인 종이를 조심스럽게 분리하기 위해 끓는 물의 수증기를 이용했던 기억이. “수증기! 조심스럽게 수증기를 쬐면 되지 않을까?”

그들은 조심스럽게 물을 끓여 작은 주전자를 다락방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끓는 물에서 피어나는 수증기에 종이를 조심스럽게 가져다 댔다. 뜨거운 수증기가 종이에 닿자, 놀랍게도 종이의 이음새 부분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장의 종이가 완전히 분리되었다.

안쪽에 숨겨져 있던 종이에는 아까와는 다른, 훨씬 선명하고 익숙한 글자들이 쓰여 있었다. 그것은 한글이었고, 비록 옛날 방식의 표기법이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수아가 먼저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오래된 감나무 그림자가 가장 길게 드리우는 때, 북이 아닌 곳을 향하는 나침반이 흔들림 없이 가리키는 곳에, 잊힌 이의 슬픈 눈물이 잠들어 있으리라…’”

지호는 숨을 들이켰다. 잊힌 이의 슬픈 눈물? 그게 대체 무슨 뜻일까? 그리고 ‘오래된 감나무’라면… 할아버지 댁 마당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그 감나무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나침반…” 지호는 황동 나침반을 다시 들었다. 나침반 바늘은 여전히 다락방의 벽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종이의 문구는 ‘북이 아닌 곳을 향하는 나침반이 흔들림 없이 가리키는 곳’이라고 했다. 지금 다락방의 벽을 가리키는 것은 흔들림 없는 방향이었지만, 그 벽이 감나무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때, 수아가 나침반 케이스 가장자리에 새겨진 작은 문양을 발견했다. 돋보기로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달빛 아래 흐르는 물결을 형상화한 듯한 섬세한 무늬였다. 그리고 그 무늬 아래, 아주 희미하게 새겨진 글자가 있었다.

‘달 그림자, 물에 비추어질 때…’

“달 그림자? 물에 비추어질 때?” 지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나침반은 낮이 아니라 밤에, 그것도 달 그림자가 물에 비칠 때 작동하는 건가?”

그들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할아버지 댁 뒤뜰에 있는 낡은 우물. 한때는 마을의 식수원이었으나,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아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오래된 우물. 밤이면 달빛이 그 우물물에 비칠 것이고, 그 그림자가 가장 길게 드리우는 순간, 나침반은 흔들림 없이 비밀의 장소를 가리킬 터였다.

“오늘 밤이야, 지호야!” 수아가 흥분하여 속삭였다. “오늘 밤 달이 뜨면, 우리는 우물로 가는 거야!”

지호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할아버지의 그림자, 잊힌 이의 슬픈 눈물, 그리고 오래된 나침반이 가리키는 비밀스러운 장소. 이 모든 것이 오늘 밤,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의 모험은 이제 또 다른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