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골목길의 우산 수리공 – 제531화

골목길은 오늘도 젖어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근심을 빨아들인 먹구름이 이 좁은 틈새에만 내려앉은 듯, 비는 멈출 줄 몰랐다. ‘우산 수리’라고 낡은 글씨가 희미하게 새겨진 작은 작업실 안에서도 빗소리는 명확했다. 툭, 툭, 타닥타닥. 낡은 함석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지훈의 망치질 소리와 어우러져 묘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지훈은 고개를 숙인 채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뼈대가 뒤틀린 낡은 우산 하나가 들려 있었다. 금속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오래된 천의 눅눅한 냄새가 섞여 작업실 가득 희미하게 감돌았다. 그의 손길은 능숙했다. 망가진 살을 펴고, 부러진 대를 잇고, 해진 천을 꿰매는 모든 과정은 마치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 장인의 그것과 같았다. 우산 하나하나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스며 있었다. 그는 그 사연들을 감히 짐작하려 들지 않았다. 다만, 그 사연들이 다시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의 몫이었다.

그때, 낡은 나무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빗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지훈의 고요한 작업에 균열을 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문가에 서 있는 이는 골목길 터줏대감인 김여사였다. 항상 온화한 미소를 띠던 그녀의 얼굴에는 오늘은 왠지 모를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손에는 우산이 아닌, 낡고 얇은 천 주머니 하나가 들려 있었다.

“지훈 씨, 바빴어요?” 김여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도 빗물처럼 촉촉한 슬픔이 배어 있는 듯했다.

지훈은 망치를 내려놓고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김여사님. 비가 많이 오는데, 여기까지 무슨 일이세요?”

김여사는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가슴에 안고 작업실 안으로 들어섰다. 눅진한 습기가 그녀와 함께 따라 들어오는 듯했다. 그녀의 눈길은 작업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수많은 우산들을 훑었다. 알록달록한 색깔과 다양한 크기의 우산들이 마치 골목길의 지나간 세월을 증언하는 유물처럼 보였다.

“우산 때문은 아니고요….” 김여사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은… 하나를 찾고 있어서요.”

지훈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우산 수리공에게 ‘우산 찾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맡긴 우산을 찾아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이렇게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말은 보통 사라진 기억이나 잃어버린 인연에 대한 그리움을 의미했다.

“어떤 우산을 찾으세요?” 지훈은 조용히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빗소리처럼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경청의 자세가 담겨 있었다.

김여사는 들고 있던 천 주머니를 작업대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주머니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텅 빈 천 조각일 뿐이었다. “한참 전 일이에요. 우리 막내딸, 은영이가 어렸을 때 쓰던 우산인데….”

그녀의 눈빛이 먼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때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었죠. 은영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새로 산 우산을 잃어버렸다고 울면서 왔어요. 그래서 제가 며칠 뒤에 시장에서 아주 예쁜 우산 하나를 사줬죠. 노란색 바탕에 작은 꽃무늬가 총총 박혀 있는….”

지훈은 아무 말 없이 김여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텅 빈 천 주머니와 그녀의 주름진 손을 오갔다.

“은영이가 그 우산을 정말 좋아했어요. 늘 자기 보물처럼 아꼈죠. 그런데 어느 날, 살이 부러지고 천이 찢어져서 저에게 가져왔어요. 울상이 되어서는 고쳐달라고….” 김여사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지만, 그 미소 속에는 아련한 슬픔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때 제가 은영이 손을 잡고 여기까지 왔었어요. 지훈 씨가 막 이 가게를 시작했을 무렵이었나….”

그때의 기억이 지훈의 뇌리에도 스쳤다. 아직은 앳된 얼굴의 수리공이 쭈그려 앉아 부러진 우산을 꼼꼼히 고치던 모습, 그리고 그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산을 바라보던 어린 소녀와 김여사의 얼굴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노란색 바탕에 작은 꽃무늬… 어렴풋하지만 선명한 잔상이었다.

“그 우산은 제가 정말 열심히 고쳐드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훈이 나지막이 말했다. “워낙 천이 얇고 약해서, 한 땀 한 땀 조심스럽게 꿰맸었죠.”

“맞아요, 맞아요!” 김여사의 눈이 반짝였다. “지훈 씨가 고쳐준 뒤로 은영이가 그 우산을 더 소중히 여겼어요. 마치 새 생명을 얻은 것처럼요. 고장 나면 또 지훈 씨에게 고쳐달라고 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곤 했었죠….”

김여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젖은 눈으로 천 주머니를 쓰다듬었다. “은영이가… 몇 년 전에 집을 나갔어요. 연락도 잘 안 되고….”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늘, 이렇게 비가 오는데, 문득 그 우산 생각이 났어요. 은영이가 항상 그 우산 아래에서 비를 피했었는데….”

“그 우산이 혹시 이 주머니 안에 들어있었나요?” 지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김여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 주머니는… 은영이가 그 우산을 처음 가져왔을 때 싸왔던 주머니에요. 그때 지훈 씨가 ‘이건 제가 고칠 동안 보관해주세요.’ 하고 돌려줬던 것 같아. 그래서 제가 고이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주머니를 펼쳐 보였다. 주머니 안쪽에는 닳아 희미해진, 작은 노란색 꽃무늬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우산의 천 조각을 오려 만든 것이리라.

“혹시… 지훈 씨 작업실 어딘가에, 제가 그 우산을 다시 찾으러 오지 않아서 남아있는 건 없을까 해서요.” 김여사는 마지막 희망을 걸 듯 간절한 눈빛으로 지훈을 바라보았다. “은영이가 그 우산을 여기 맡겨 놓고는, 고쳐진 우산을 찾으러 왔던 날, 아주 크게 싸우고 집을 나섰었거든요. 아마 우산을 가지고 가지 않았을 거예요….”

지훈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우산을 고쳤고, 또 수없이 많은 우산들이 주인을 기다리다 결국 돌아가지 못하고 그의 작업실 한편에 쌓이곤 했다. 노란색 바탕에 작은 꽃무늬… 분명 기억 속에 존재하는 우산이었다. 하지만 수백, 수천 개의 우산 중 하나를 특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작업실의 구석구석을 더듬었다.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한 우산들을 모아둔 선반, 망가진 채로 보관된 우산들, 혹은 너무 오래되어 버려진 우산들…. 그 우산 하나하나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기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우산들이 그의 삶의 시간을 구성하는 조각들이었다.

“노란색에 꽃무늬….” 지훈은 중얼거렸다. “오래 전의 우산이라….”

그는 망설였다. 없다고 단정 지을 수도,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김여사의 눈빛에 담긴 간절함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우산이 단지 비를 피하는 도구가 아니라, 잃어버린 딸과의 연결고리라는 것을 그는 직감했다.

“확답은 드릴 수 없지만….” 지훈은 김여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김여사님,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모릅니다.”

김여사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다시 피어났다. 그 미소는 빗물에 젖은 꽃잎처럼 연약했지만, 그 어떤 햇살보다 따스했다. “괜찮아요, 지훈 씨. 찾아만 주신다면, 아무리 오래 걸려도 기다릴게요.”

그녀는 다시 천 주머니를 소중히 가슴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를 피하는 우산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그 우산이 추억을 품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 주세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제 은영이에게는… 그 우산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산이었을 거예요.”

김여사는 문을 열고 다시 빗속으로 걸어 나갔다. 빗소리는 여전히 골목길을 채우고 있었지만, 지훈의 귀에는 김여사의 마지막 말이 빗소리보다 더 선명하게 울렸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산.’

지훈은 작업대 위에 놓인 텅 빈 천 주머니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낡은 작업등을 켰다. 오랜 시간 동안 손길이 닿지 않았던 작업실 깊숙한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먼지 쌓인 선반을 하나하나 살피고, 낡은 상자들을 열어보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도, 잊힌 기억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어쩌면 그 노란 우산을 찾는 일은, 그 자신에게도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골목길의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지훈의 새로운 수색도 이제 막 시작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