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가족 여행기 – 제169화

제주 해안도로는 그날따라 유난히 변덕스러웠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쨍하던 햇살이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고, 먹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이내 후두둑 빗방울을 떨구기 시작했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짙은 회색빛으로 물들고, 파도 소리는 더욱 격정적으로 바위에 부딪쳤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시끌벅적함은 그런 날씨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엄마, 저기 봐! 돌고래!”

여덟 살 지훈이의 외침에 아빠와 나는 동시에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어진 것은 지훈이의 천진난만한 웃음뿐. 그는 멀리 점처럼 보이는 작은 배를 가리키며 “돌고래가 배 타고 도망간다!”며 깔깔거렸다. 늘 그렇듯 장난기 가득한 막내아들의 허풍에 열다섯 살 수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지훈아. 그게 무슨 돌고래야. 그냥 배잖아.”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고 툭 던지는 수아의 말에 지훈이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누나는 재미없어! 캡틴 파워도 재미없대!” 그는 주머니에서 낡은 플라스틱 액션 피규어, ‘캡틴 파워’를 꺼내 수아에게 들이밀었다. 캡틴 파워는 지훈이의 오랜 여행 동반자이자 비밀 친구였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위태롭고 도색도 여기저기 벗겨졌지만, 지훈이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었다.

아빠는 지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우리 지훈이는 상상력이 아주 풍부하네. 그래, 돌고래가 배를 타고 떠나는 것도 재밌는 이야기지.”

나는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어느새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바람은 더 거세져 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 놓았다. 창밖으로 펼쳐진 검푸른 바다와 먹구름 낀 하늘은 마치 우리의 지난 여행을 닮아 있었다. 길고 긴 여정이었다. 햇살 쏟아지는 찬란한 날도 있었고, 폭우 속에서 길을 헤매던 날도 있었다. 낯선 곳에서 맛본 경이로움과 설렘,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겪었던 짜증과 불안.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 우리 가족의 169번째 페이지를 채워가고 있었다.

문득, 나는 가슴 한쪽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 이 여행을 시작했을 때, 지훈이는 겨우 여섯 살이었다. 수아는 틱톡 춤보다는 그림책에 더 몰두하던 아이였다. 아빠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여유로웠고, 나 역시 지금처럼 조바심 내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수많은 시간과 풍경을 함께 공유하며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변해갔다. 지훈이는 제법 의젓한 꼬마 숙녀를 꿈꾸는 개구쟁이가 되었고, 수아는 세상 모든 것에 시니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아빠는 가족의 짐을 짊어진 가장의 무게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고, 나는… 나는 여전히 가족의 중심에서 이 모든 것을 버텨내고 있었다.

“엄마, 왜 그래? 울어?”

지훈이의 눈동자가 걱정스럽게 나를 올려다봤다. 따뜻한 그의 손길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니, 지훈아. 엄마는 그냥… 바람이 너무 좋아서.”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토록 감성적인 순간에도 나의 대답은 늘 이렇게 현실적이어야만 했다. 그게 엄마의 역할이었다.

그때였다. 빗물이 촉촉하게 젖은 바닥에 캡틴 파워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캡틴 파워!” 지훈이의 절규에 가족 모두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캡틴 파워는 좁은 나무 데크 틈새로 미끄러져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으앙! 캡틴 파워! 내 캡틴 파워!”

지훈이의 울음소리가 거세졌다. 아빠는 당황하며 데크 틈새를 들여다봤지만, 어두컴컴한 아래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지훈아. 아빠가 찾아줄게. 금방 찾아줄게.” 아빠의 목소리에도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손이 닿지 않는 깊은 곳이었다.

나는 지훈이를 안고 달래려 했지만, 그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캡틴 파워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었다. 그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이자, 낯선 여행지에서 그에게 용기를 주었던 소중한 존재였다. 그에게는 잃어버린 친구와 다름없었다.

“진짜 한심하다. 좀 잘 챙기지.”

수아가 중얼거렸다. 나는 수아를 쏘아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스마트폰에 다시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겉으로는 무심해 보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수아의 입술이 살짝 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손가락은 초조하게 스마트폰 액정을 쓸고 있었다. 그녀 역시 동생의 울음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찾지? 데크를 뜯을 수도 없고…” 아빠는 난감한 표정으로 땀을 닦았다. 빗방울이 다시 굵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지훈이의 감기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바로 그때, 수아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더니 데크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잠깐만요. 제가 한번 해볼게요.”

그녀는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더니, 휴대폰의 플래시 기능을 켰다. 길게 늘어지는 이어폰 줄에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묶어 데크 틈새로 밀어 넣었다. 휴대폰의 밝은 불빛이 어두운 틈새를 비추자, 우리는 숨을 죽이고 화면을 응시했다.

“보인다! 보여!” 지훈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 소리쳤다. 작고 빨간 캡틴 파워가 데크 아래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수아는 신중하게 이어폰 줄을 움직였다. 마치 낚시를 하듯,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캡틴 파워의 주위로 옮겼다. 한참을 그렇게 시도하던 수아가 결국 한숨을 쉬었다. “아, 안 닿네… 조금만 더 길었으면…”

그때, 아빠가 자신의 벨트를 풀었다. “수아야, 이걸로 해봐. 더 길어.”

우리는 다시 한번 숨을 죽였다. 아빠의 벨트와 수아의 이어폰, 그리고 나의 긴 팔을 합쳐 캡틴 파워를 구출하기 위한 대작전이 펼쳐졌다. 지훈이는 눈을 반짝이며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한참의 시도 끝에, 드디어 캡틴 파워가 벨트에 걸려 올라왔다. 빗물에 젖어 축축했지만, 온전한 모습이었다.

“캡틴 파워!”

지훈이는 캡틴 파워를 품에 안고 활짝 웃었다. 그의 얼굴에는 언제 울었냐는 듯 해맑은 미소가 피어났다. 수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미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빠는 땀을 닦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 둘은 말없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모든 순간이 시끌벅적했지만, 그 안에는 늘 이렇게 가족의 온기가 있었다.

빗방울은 다시 거세졌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걱정스럽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라면 어떤 폭우도, 어떤 예측 불가능한 상황도 헤쳐나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니까. 젖은 옷을 털며 차에 오르는 길, 지훈이는 캡틴 파워를 들고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캡틴 파워가 말이야, 저 아래에서 괴물 문어를 만났대!”

수아가 투덜거렸다. “진짜 시끄러워.”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전에 없던 미소가 섞여 있었다. 아빠는 그런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차 시동을 걸었다. 나는 백미러에 비친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비록 여전히 시끄럽고,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서로에게 짜증을 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끌벅적한 여정 속에서 우리는 분명 더 깊은 사랑과 이해로 단단하게 묶여가고 있었다. 제169화,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