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는 낡고 허름한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릿한 하수구 냄새와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그의 손에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지난 밤, 우연히 발견된 그 사진은 수아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20년 전, 수아와 수아의 어머니가 다정하게 찍힌 사진. 뒷면에는 잉크가 번진 글씨로 ‘청춘 사진관, 1999년 봄’이라는 메모가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수백 번의 헛된 발걸음, 수많은 실망 뒤에도 그의 심장은 여전히 터질 듯 두근거렸다. 이 골목 끝에, 어쩌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약한 희망 때문이었다.
사진관은 예상보다 더 낡아 있었다. 나무로 된 문은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고, 유리창은 먼지로 뿌옇게 흐려져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청춘 사진관’이라고 쓰인 간판은 한쪽이 떨어져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문을 열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낡은 카메라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여 후각을 자극했다. 내부에는 흑백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는데, 대부분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들이나 이름 모를 인물들의 초상화였다. 먼지가 내려앉은 진열장에는 빛바랜 액자들이 무심하게 놓여 있었다.
“계세요?”
정우의 목소리는 낯선 공간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한참 뒤, 안쪽 커튼이 스르륵 젖혀지며 허리 굽은 노인이 나타났다. 돋보기 너머로 보이는 눈빛은 세월의 고단함이 역력했다.
“누구신가요? 요즘은 이렇게 발걸음 해주는 손님도 귀한데…”
노인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기침 소리가 섞여 있었다.
정우는 조심스럽게 사진을 내밀었다. “사장님, 혹시 이 사진 기억하시나요? 이 사진관에서 찍은 거라고 해서요.”
노인은 돋보기를 고쳐 쓰고 사진을 들여다봤다. 주름진 손가락이 사진 위를 더듬었다. 한참을 그렇게 응시하던 노인의 눈빛에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아이고… 이 모녀는… 기억하고 말고 할 것이 있나. 참 아름다웠지. 늘 웃음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이던 분들이었어. 이 아이는… 수아라고 했던가? 유독 눈빛이 깊어서 기억에 남았지.”
정우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수아’.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이름은 메마른 대지에 내린 단비처럼 그의 마음을 적셨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네, 맞아요. 수아입니다. 제가… 제가 그 아이를 찾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정우는 간절함을 담아 말했다. 목소리에는 떨림이 역력했다.
노인은 사진을 내려놓고 정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눈에 비친 정우의 모습에서 오랜 기다림과 절실함이 읽혔던 것일까. 노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애… 그랬지. 어여쁜 아이였는데… 어머니랑 같이 와서 사진을 자주 찍어갔어. 늘 어머니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던 아이였는데…”
노인의 시선은 먼 과거를 회상하는 듯 아득해졌다. 정우는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녀가 남긴 흔적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말이지… 그러니까, 사진에 찍힌 이듬해였나. 수아가 혼자 이 사진관을 찾아왔었어.”
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혼자? 왜? 그의 머릿속은 수많은 질문으로 가득 찼다.
“그때는… 얼굴에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어. 눈가는 촉촉했고,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지. 마치 세상의 모든 슬픔을 혼자 짊어진 아이처럼 보였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짐이 있었던 게 분명해.” 노인은 기억을 더듬으며 씁쓸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었는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그저… 어머니와 찍었던 사진 한 장을 더 현상해달라고 했지. 그리고… 이 사진을 ‘아주 소중한 사람’에게만 전해달라고 부탁했어. 만약 그 사람이 자신을 찾아오거든, 꼭 이 사진을 건네달라고… 혹시 모를 일이라며, 아주 오랫동안 보관해달라고 했어.”
정우의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소중한 사람? 자신을 찾아오거든? 이 모든 세월 동안, 수아 역시 어쩌면 자신을 기다렸던 것일까? 아니, 자신을 찾아올 누군가를 위해 준비해 둔 것이었을까?
“그럼… 그 사진은… 지금도 있나요?” 정우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세월 동안 주인을 기다렸지. 어쩌면 그 주인이 바로 당신인 것 같군.”
노인은 삐걱거리는 나무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서는 낡은 서류철과 먼지 쌓인 필름 조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참을 뒤지던 노인의 손에 낡은 갈색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봉투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지만, 조심스럽게 다뤄진 듯 훼손되지 않았다.
“여기 있네. 이 아이가 그랬어. 언젠가… 언젠가 꼭 찾아올 거라고. 그리고… 이걸 보면… 알 거라고.”
정우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봉투의 표면은 거칠었지만, 그 안에 담긴 희망의 무게는 그 무엇보다도 무거웠다. 정우는 봉투를 조심스럽게 찢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던 것을 꺼냈다.
사진 한 장이었다. 조금 더 가까이서 찍은 수아의 독사진. 그 사진 속 수아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슬픈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 뒤에는 희미한 연필 글씨로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그의 눈이 글씨를 따라 움직였다.
‘정우 오빠, 기억해? 우리만의 비밀 장소. 그곳에서 다시 만나길.’
그리고 사진 한쪽 구석에, 작은 마른 잎이 테이프로 조심스럽게 붙어 있었다. 잎사귀는 이미 갈색으로 변색되었지만, 정우는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숲에서 함께 주웠던, 조약돌처럼 생긴 독특한 모양의 잎사귀였다. 그들만의 언어로 ‘별똥별 잎’이라 불렀던 것.
정우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강렬한 전율이 그를 휘감았다. 2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그녀는 그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
사진관을 나서는 정우의 발걸음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곳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들만의 비밀 장소. 처음 만났던 숲 속 깊은 곳에 있던, 거대한 참나무 아래 작은 동굴. 유년 시절, 그들은 그곳을 ‘시간의 은신처’라고 불렀다. 서로의 꿈과 비밀을 나누던, 세상으로부터 숨겨진 아지트였다.
마른 잎을 꽉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잎사귀의 거친 질감이 그의 손바닥에 생생히 느껴졌다. 오랜 시간 동안 잊었던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수아의 흐릿했던 얼굴이, 이제는 선명한 기억 속에서 웃고 있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참나무 아래, 수줍게 웃으며 작은 돌멩이를 건네주던 수아의 모습. 그 순간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정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택시를 잡아탔다. 목적지를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신에 차 있었다. 차창 밖으로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정우의 눈에는 오직 숲으로 향하는 길이 보였다. 잃어버린 첫사랑을 찾아 헤매던 557번의 밤과 낮이, 드디어 하나의 결론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과연 그곳에서 그는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 희미한 추억 속의 그녀를, 아니면 세월의 흔적을 담은 다른 누군가를… 정우는 손에 쥔 사진과 잎사귀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드디어, 시간이 멈췄던 그곳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