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할아버지 댁에서의 모험 – 제593화

어둠 속에서 피어난 소리

한여름의 열기는 대지를 녹여내릴 듯 뜨거웠다. 할아버지 댁 마당의 오래된 감나무조차 축 늘어진 가지 끝으로 옅은 그림자를 드리울 뿐, 잠자리가 맴도는 오후의 공기는 숨쉬기 버거울 지경이었다. 매미들은 찢어질 듯 울어대며 숲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진동으로 만들었다. 준우는 선풍기 바람이 닿지 않는 마루 끝에 엎드려 만화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굳이 움직여 씻을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나른한 시간이었다.

그때였다. 쨍한 매미 소리 너머로, 희미하지만 분명한 무언가가 준우의 귓가를 스쳤다. 마치 오래된 기계가 삐걱거리는 듯한 소리, 혹은 낡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둔탁한 마찰음. 처음에는 그저 바람이거나, 저 멀리 밭일을 하는 이웃의 기계 소리려니 했다. 하지만 곧 그 소리가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끼이이익, 쿵. 끼이이익, 쿵.

준우는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마루 평상에 기대어 신문을 보다가 이내 깜빡 잠이 드신 모양이었다. 돋보기안경이 코끝에 걸린 채 곤히 주무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평화로웠지만, 준우의 호기심은 이미 매미 소리를 뚫고 나온 그 소리의 진원지를 향하고 있었다. 소리는 집 뒤뜰,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잡동사니 창고’라고 부르며 좀처럼 발길을 허락하지 않던 그곳에서 나는 것 같았다.

창고의 비밀

준우는 조심스럽게 마루를 벗어나 뒤뜰로 향했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작은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자, 낡은 나무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붕은 군데군데 썩어 있었고, 벽은 회색빛으로 바래 있었다. 작은 창문은 깨진 지 오래인 듯 거미줄로 가득했고, 녹슨 자물쇠가 달린 문은 마치 영원히 닫혀 있을 것만 같았다.

끼이이익, 쿵. 소리는 분명 그 창고 안에서 나고 있었다. 준우는 조심스럽게 창고 문에 귀를 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길 잃은 고양이일까? 아니면 바람에 떨어진 나뭇가지라도? 그러나 소리는 너무나 규칙적이고 묵직했다. 마치 누군가가 안에서 무언가를 밀고 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준우는 창고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창고는 할아버지 댁 담장과 붙어 있었고, 담장에는 오래된 감나무 뿌리가 엉겨 있었다. 뿌리를 밟고 올라서니 창고의 깨진 창문 틈으로 안을 엿볼 수 있었다. 먼지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낡은 흔들의자였다. 그리고 그 흔들의자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대체 누가, 무엇이 저 흔들의자를 움직이는 걸까? 준우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유령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할아버지가 몰래 무언가를 숨겨두신 걸까? 그는 창문 틈에 얼굴을 더 바싹 대고 어둠을 응시했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흔들의자 옆 작은 탁자 위에 놓인 낡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숨겨진 추억

결국 준우는 할아버지를 깨우기로 결심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으음? 준우야, 무슨 일이냐.” 할아버지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창고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요! 그리고 안에 뭔가… 이상해요.”

할아버지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복잡한 그림자가 스쳤다. 그는 한숨을 쉬더니 천천히 일어섰다. “그곳은… 할애비가 옛날에 아끼던 물건들을 넣어둔 곳인데. 무슨 소리가 난다는 거냐?”

준우는 창고에서 들렸던 소리와, 깨진 창문으로 보았던 흔들의자, 그리고 사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할아버지는 준우의 말을 묵묵히 듣더니 창고 쪽으로 향했다. 녹슨 자물쇠를 만지작거리던 할아버지는 이내 허리춤에서 낡은 열쇠 꾸러미를 꺼내 들었다. 열쇠 하나를 고르고 자물쇠에 넣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오래된 문이 열렸다.

창고 안은 습하고 곰팡이 냄새가 났다. 하지만 희미한 빛이 들어오자 먼지 쌓인 가구들과 짐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낡은 상자들 사이로 흔들의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흔들의자는 아주 천천히, 미세하게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이 들어오는군.” 할아버지가 말했다. 창고 벽에 난 작은 틈새로 바람이 스며들어 흔들의자를 미세하게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준우는 안도와 동시에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 유령도, 숨겨진 보물도 아니었다. 그저 바람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흔들의자 옆 작은 탁자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낡은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흑백 사진 속에는 젊은 할아버지와, 환하게 웃고 있는 한 여인이 흔들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인의 손에는 갓난아이가 안겨 있었다.

시간의 흔적

“이건… 할머니와 너희 아버지가 아주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이다.”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렸다. 준우는 사진 속 여인이 돌아가신 할머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할머니는 준우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에, 사진으로만 보던 존재였다.

“할머니는 이 흔들의자에 앉아 너희 아버지를 재우곤 했지. 나는 항상 저 옆에 앉아서 할머니가 노래 부르는 것을 들었고.” 할아버지의 눈빛은 먼 과거를 회상하는 듯 아련했다. “이 창고는… 할머니가 쓰시던 물건들을 차마 버리지 못해 모아둔 곳이다. 언젠가 다시 꺼내 볼 날이 오겠지 하고 말이야.”

준우는 흔들의자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그저 낡은 나무 조각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젊은 아버지의 추억이 깃든 소중한 유물이 되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흔들의자의 삐걱거리는 소리는 더 이상 섬뜩하지 않았다. 마치 할머니의 자장가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여름이면 이 창고 문틈으로 바람이 더 많이 들어와서 그런지, 가끔 저렇게 스스로 움직이곤 했지.” 할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치 할머니가 아직도 저곳에서 쉬고 계신 것처럼 말이야.”

준우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뜨거웠던 여름 햇살 아래, 창고 안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할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이슬 같은 그리움은 준우의 가슴에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 낡은 창고는 보물이 가득한 동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그 어떤 보물보다 값진, 시간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할아버지 댁에서의 모험은 늘 이렇게, 예기치 않은 곳에서 가장 소중한 발견을 안겨주곤 했다. 이 여름의 한 페이지에, 할머니의 미소가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