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가족 여행기 – 제184화

깊어가는 가을, 고즈넉한 한옥 마을의 붉은 노을이 기와지붕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주황빛 홍시들은 마치 그림처럼 정지되어 있었지만, 차 안은 여전히 멈출 줄 모르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바로 우리 가족의 시끌벅적함이었다. “아, 진짜! 여기 와이파이 안 터진다고! 나 과제해야 하는데!” 고3 민준이의 날카로운 투정이 운전대 잡은 아빠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오빠, 좀 조용히 해봐. 창밖 풍경 좀 보게.” 중학생 서연이는 이어폰을 꼈지만, 오빠의 짜증이 귀를 뚫고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다섯 살 지혜는 제 세상 만난 듯 연신 “우와! 저거 봐! 저거!” 하며 까르륵 웃어댔다. 엄마는 보조석에서 내비게이션과 씨름하며 연신 “여보, 거기 아니잖아! 좌회전! 좌회전!”을 외쳤다.

“아니, 분명 내비는 직진이라고…” 아빠의 목소리는 이미 포기 상태였다. 나는 이 모든 소란 속에서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이게 바로 우리 가족 여행의 정수지. ‘시끌벅적함’. 그 시끄러움이 없으면 오히려 낯설고 허전할 지경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한옥 스테이는 소박하지만 정갈했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흙냄새와 나무 향이 코끝을 스쳤다. 하지만 그 평화로움도 잠시, 짐을 내리자마자 전쟁이 시작됐다. “내가 저 방 쓸 거야!” 민준이가 재빨리 가장 넓은 방으로 뛰어들어갔고, 서연이는 그 모습을 보며 “치사해!”를 외쳤다. 지혜는 마당에 놓인 커다란 절구를 발견하고는 신이 나서 쿵쿵 두드려댔다. 엄마는 방을 배정하고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얘들아, 이 조용한 마을에서 너무 소란 피우면 안 된다.” 아빠가 한마디 했지만, 이미 아무도 듣지 않는 듯했다. 아빠는 결국 마당 한쪽에 놓인 툇마루에 앉아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아빠 옆에 앉아 저 멀리 보이는 낮은 산봉우리를 바라봤다. “아빠, 힘들지?”

“힘들긴 뭐가 힘들어. 다 이게 사는 맛이지.” 아빠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지친 기색과 함께 묘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저 녀석들이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고 싸우는 것도 이제 몇 년이나 남았을까 싶다. 다 크면 각자 자기 길 찾아가겠지.” 아빠의 목소리가 조금 아련해졌다.

해 질 녘,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가족 모두 마을 산책에 나섰다. 민준이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고, 서연이는 불평 섞인 걸음으로 뒤따랐다. 지혜는 신이 나서 앞서 뛰어가다 넘어질 뻔하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저기, 엄마! 저기 봐!” 지혜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허름하지만 고풍스러운 도예 공방이 있었다. 문틈으로 흙냄새와 함께 은은한 향이 새어 나왔다.

“뭐야, 저런 데 왜 가? 심심하게.” 민준이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서연이는 왠지 모르게 그 공방에 이끌린 듯했다. 그녀는 투덜거리는 오빠를 무시하고 공방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흙먼지 가득한 공간에는 할아버지 도예가가 묵묵히 물레를 돌리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무심한 흙덩이가 서서히 형태를 잡아가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서연이는 넋을 잃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평소 시크하고 무뚝뚝했던 서연이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표정이었다.

“서연아, 여기서 뭐 해? 빨리 와.” 엄마가 불렀지만, 서연이는 좀처럼 발길을 떼지 못했다. 아빠는 그런 서연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빙긋 웃었다. “우리 서연이, 저런 거 좋아했었지. 어릴 때 흙 만지는 거 좋아했잖아.”

“옛날이야기 하지 마!” 서연이는 퉁명스럽게 답했지만,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잠시 후 공방을 나오면서 서연이는 작은 흙으로 만든 풍경 하나를 들고 나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맑고 고운 소리가 나는 풍경이었다. “이거, 내가 직접 색칠할 거야.”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저녁은 한옥 마루에 앉아 먹는 평범한 백반이었다. 시골 밥상답게 소박했지만, 갓 지은 밥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찌개, 갖가지 나물 반찬들은 꿀맛이었다. 낮 동안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도 조용히 밥을 먹었다. 지혜는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비웠고, 민준이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서연이는 낮에 사온 풍경을 마루 기둥에 걸어놓고 맑은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음, 이 맛이야. 이렇게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 먹는 게 제일 좋지.” 아빠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는 “그러게. 이럴 때 보면 또 얼마나 예쁜데.” 하며 숟가락으로 아이들의 밥그릇 위에 반찬을 얹어줬다.

밤이 깊어지자, 한옥 마을에는 적막이 흘렀다. 도시의 불빛 하나 없는 밤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질 듯 총총 박혀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는 마루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쌀쌀한 가을밤 공기가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아빠, 우리 가족은 진짜 시끄럽지?” 내가 말했다. 아빠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그래, 시끄럽지. 너무 시끄러워서 가끔은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어.” 엄마도 옆에서 키득거렸다. “맞아. 하지만 그 시끄러움이 또 없으면 얼마나 허전하게. 우리 애들은 다들 자기 목소리가 너무나도 분명해서 말이야.”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나는 우리 가족의 시끄러움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때로는 불협화음을 내고, 때로는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교향곡. 그 소음은 불만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솔직한 표현이자, 삶의 활기였다. 그리고 그 활기가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바로 우리 가족을 묶어주는 끈이 아닐까. 어쩌면 이 시끌벅적한 가족 여행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결말이었다. 마루 끝에 매달린 서연이의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고요한 밤에 작은 은색 울림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