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21화

준호의 손에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낡은 사진 속 서연은 해맑게 웃고 있었지만, 준호의 심장은 웃음과 반대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사진 뒤편에 희미하게 적힌 주소, 그 하나의 단서가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북촌의 고즈넉한 한옥 골목, 마지막 흔적을 찾아 헤매다 도착한 곳은 ‘푸른 달’이라는 작은 공방이었다.

나지막한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래된 나무 향과 물감 냄새가 뒤섞인 독특한 공기가 준호를 감쌌다. 안뜰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화분들이 제멋대로 놓여 있었고, 삐걱이는 소리를 내는 마루 위로 희미한 햇살이 비쳤다. 준호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붓질 소리가 멈추고, 작업대 뒤편에서 흰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은 노부인이 고개를 들었다. 동그란 안경 너머로 준호를 응시하는 눈빛이 날카로웠다.

“누구신가요? 여긴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인데.”

준호는 주머니에서 서연의 사진을 꺼내 내밀었다. “이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신지…”

노부인의 시선이 사진 속 서연에게 머물렀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스치는 찰나의 표정 변화를 준호는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놀라움과 함께 아련한 그리움이 섞인 표정이었다.

“서연이…” 노부인의 입에서 마침내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준호의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했다. 그녀는 사진을 받아 들고는 손가락으로 서연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정말 오랜만이야.”

노부인은 자신을 공방 주인 한지윤이라 소개했다. 서연은 몇 년 전 이곳에 드나들며 도자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준호는 그녀의 말을 놓칠세라 귀 기울였다. “서연이가… 여기 다녔었군요. 그럼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한지윤 선생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가… 이곳에 올 때마다 항상 뭔가를 찾아 헤매는 눈빛이었어요. 밝고 활달했던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지. 밤샘 작업을 해도, 도자기를 빚다가 손을 베여도 아픈 줄 모르는 아이처럼 보였어요. 마치… 슬픔을 흙 속에 묻으려는 것처럼.”

준호는 가슴이 저려왔다. 자신이 기억하는 서연은 늘 빛나고 따뜻한 아이였다. 한지윤 선생의 말은 준호의 첫사랑이 겪었을 고통을 짐작하게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한지윤 선생은 잠시 망설이더니, 작업실 한편에 놓인 작은 상자를 가리켰다. “마지막으로 온 날, 이 아이가 급하게 떠나면서 미처 가져가지 못한 게 있어요. 꼭 찾으러 오겠다고 했는데… 오지 않았죠.”

상자 안에는 미완성된 도자기 화병과 빛바랜 스케치북, 그리고 찢어진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준호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집어 들었다. 서연의 필적이었다. 내용은 흐릿했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단어들이 있었다. ‘미안해’, ‘어쩔 수 없어’, 그리고 ‘그 사람’이라는 단어 옆에 쓰인 익숙한 듯 낯선 이름, ‘강우진’.

준호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강우진이라니? 서연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의 기억 속 서연과는 너무나 다른 그림이었다. 그녀의 슬픔, 그리고 ‘그 사람’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는 깊은 관계. 첫사랑을 찾아온 여정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한지윤 선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떠나기 전, 서연이는 이 도자기를 완성해 누군가에게 주려고 했어요. 아주 중요한 사람에게요. 그런데 완성하지 못하고 가버렸지.”

준호는 미완성 도자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섬세하지만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형태.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서연의 마지막 스케치북. 준호는 스케치북을 펼쳤다. 마지막 페이지에 붓으로 짙게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차가운 겨울 바다와 그 위를 맴도는 고독한 새 한 마리. 그리고 그림 아래에는 서연의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야.’

그곳.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준호는 스케치북을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한지윤 선생은 준호의 눈빛을 읽었는지 조용히 말했다. “서연이는 제주도로 떠났어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정리하기 위해… 아니면 그 모든 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제주도. 그리고 강우진. 준호의 가슴속에 새로운 단서들이 거친 파도처럼 밀려왔다. 서연은 그동안 자신과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슬픔과 비밀로 얼룩진 그녀의 삶. 과연 그는 그녀를 찾았을 때,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될까.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채, 준호는 제주를 향한 다음 걸음을 내디딜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