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골목길의 우산 수리공 – 제620화

골목은 비를 머금고 있었다. 눅눅한 흙내음과 낡은 목재의 희미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빗물에 젖어 더욱 선명해진 도시의 찌든 기름 냄새가 뒤섞여, 정우의 작은 우산 수리점 안으로 스며들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낡은 양철 지붕 위로 리듬감 있게 부딪히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타이어의 물 튀기는 소리마저 정겨운 배경 음악처럼 느껴지는 그런 오후였다. 정우는 돋보기를 코끝에 걸고 닳아버린 우산살 하나를 섬세하게 다듬고 있었다. 그의 손은 세월의 흔적으로 거칠었지만, 그 움직임은 마치 오랜 명장이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정교하고도 망설임이 없었다.

“계세요?”

여리고 나직한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정우는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보았다. 낡은 유리문 너머로 한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검은색 코트 차림의 그녀는 품에 무언가를 소중히 안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빗물에 젖은 골목처럼 깊고 촉촉해 보였다. 정우는 나지막이 “들어오세요.”라고 말했다.

여인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빗방울이 그녀의 코트 어깨에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실내로 들어서자마자 희미한 비 냄새가 함께 퍼졌다. 그녀가 품에 안고 있던 것을 탁자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정우의 시선이 그곳에 닿았다. 그것은 우산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우산이 아니었다. 한때는 화려했을 법한 무늬는 색이 바래고 헤져서 알아보기도 힘들었고, 손잡이는 나무가 닳아 반들거렸다. 천은 군데군데 찢겨 있었고, 살대는 녹슬어 뒤틀려 있었다. 버려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고 망가진 우산이었다. 그러나 그 망가진 우산 속에서 정우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 우산을… 고칠 수 있을까요?” 여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실낱같은 희망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정우는 말이 없었다. 그는 돋보기를 벗어 탁자에 놓고, 낡은 우산을 손에 들었다. 묵직하고도 어딘가 익숙한 감촉. 그는 우산살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그리고 우산대 안쪽, 손잡이와 연결되는 금속 부분에서 아주 희미하게 새겨진 작은 문양을 발견했다. 세 개의 작은 점과 그 주위를 감싸는 곡선. 이 문양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50년 전, 이 골목 어귀에서 처음으로 열었던 정우의 수리점에서, 그가 직접 고친 모든 우산에 몰래 새겨 넣던 자신만의 흔적이었다. 이 문양은 그가 젊은 날,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여인, 수연에게만 보여주었던 약속의 표식이기도 했다.

“이 우산… 아주 오래되었군요.” 정우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낮아졌다. “어디서 난 우산입니까?”

“할머니의 유품입니다. 다른 물건들은 다 처분했지만, 이 우산만은 차마 버릴 수가 없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늘 이 우산을 아끼셨거든요. 비 오는 날이 아니어도 항상 손이 닿는 곳에 두셨어요.”

여인의 말에 정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할머니… 수연… 그녀는 정우의 곁을 떠나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렸고, 그는 평생 이 골목에서 우산만을 고치며 살아왔다. 이 우산은 수연이 결혼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에게 맡겨 수리했던 우산이었다. 그때 수연은 이 우산이 마치 자신의 부서진 마음 같다고 했었다. 그리고 정우는 이 우산을 고치며, 그녀가 언제든 비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어주겠다는, 혼자만의 맹세를 했었다. 그 우산이 50년의 세월을 넘어, 수연의 손녀를 통해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나다니.

“수리공 아저씨… 할머니께선 가끔 이 우산이 자신을 처음 만났던 곳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의미인지 아세요?” 여인이 궁금하다는 듯 정우를 올려다보았다.

정우는 그 질문에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는 ‘처음 만났던 곳’이, 사실은 자신과 수연의 첫 만남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우산이 새로운 삶을 얻은 순간, 즉 정우가 처음 수리했던 그 순간을 의미하는 것일까. 진실은 그의 가슴 속에 먹먹하게 응어리져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라오.” 정우가 겨우 입을 열었다. “이 골목은 말이지…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지. 우산 하나에도 수십 년의 기억이 담길 수 있는 법이니.”

그는 망가진 우산을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찢어진 천, 휘어진 살대, 녹슨 부품들… 보통 같으면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우산은 그에게 단순한 수리 대상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시간과의 재회이자, 아직 답하지 못한 약속의 증거였다.

“고치겠습니다.” 정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다시금 옛 젊은 날의 뜨거운 열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오. 그리고 완전히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닐 것이오. 하지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다시 당신의 할머니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도록 고치겠소.”

여인은 정우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얼굴에 서서히 희망의 빛이 번졌다. “정말요? 정말 고쳐주실 수 있으세요?”

“암, 고쳐야지.” 정우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낡은 우산이 짊어진 수십 년의 세월이, 비로소 새로운 실과 바늘을 만나 매듭을 지으려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우산을 고치는 것은, 단순히 천을 꿰매고 살대를 잇는 작업이 아니라, 그 자신과 수연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다시 쓰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골목은 회색빛 장막에 갇힌 듯 아늑했다. 이제 막 시작된 이야기가, 빗소리에 실려 어디까지 흘러갈지 정우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손끝에는 낡은 우산의 무거운 존재감이, 그리고 마음속에는 잃어버렸던 기억의 온기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 비가 그치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는 조용히 작업등을 켰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