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35화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이었다. 스튜디오 안은 고요했고, 오직 지우의 숨소리와 마이크만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잠시 상념에 잠겼다.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이 작은 전파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에 닿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이 밤을 타고 흘러갈까.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입니다. DJ 지우입니다.”
나직하지만 따뜻한 목소리가 전파를 탔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녀의 마음이 복잡한 밤이었다. 언제나처럼 첫 사연을 소개하기 위해 엽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별똥별에게’라는 발신인이 적혀 있었다.
“지우 DJ님, 안녕하세요. 저는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한 사람입니다. 어릴 적 친구와 함께 카시오페아 자리 아래에서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다 결국 연락이 끊겼죠.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어떤 별을 보고 있을까요? 지우 DJ님은 약속이라는 게, 특히 별 아래서 맹세한 약속이라는 게, 시간이 흘러도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고 믿으시나요?”
사연을 읽어 내려가는 지우의 목소리는 점점 미세하게 떨렸다. 카시오페아. 그 단어가 가슴을 쿵 하고 내려앉게 만들었다. 잊고 지냈던 오랜 기억이 거친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 소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까맣고 커다란 눈, 장난기 가득한 미소. 민준. 그리고 그와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눴던 비밀스러운 약속.
그녀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손끝이 시려 왔다.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어쩌면 이 라디오를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그리고 그럴 리 없다는 현실이 뒤섞여 그녀를 흔들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그녀는 숨을 고르고, 겨우 입을 열었다.
“별똥별님,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고 있을 모든 분들께… 약속이라는 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빛을 잃었다가도 언젠가 다시 가장 밝게 빛날 때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별들은…”
그때였다. 눈앞의 모니터에 새로 도착한 문자 메시지 알림이 번개처럼 떴다. 익명의 발신인. 지우는 무심코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은 멈추는 듯했다. 손에 쥐고 있던 펜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지우야, 아직도 ‘새벽별’을 기억하니? 너의 라디오는 언제나 별처럼 빛나.”
‘새벽별’. 그건 민준이 그녀에게만 불러주던 별명이었다. 다른 누구도 알 수 없는, 오직 그와 그녀만의 암호 같은 이름. 그리고 ‘지우야’. 자신의 이름이 너무나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절대로.
마이크가 켜져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모든 떨림이 전파를 타고 흘러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수년의 시간, 잊었다고 생각했던 아픔, 그리고 다시 피어나는 믿을 수 없는 희망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겨우 정신을 차린 지우는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지만, 이내 단단한 결의가 실렸다. 그녀는 지금,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별들은, 길을 잃지 않는 한 언제든 다시 찾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한 박자 쉬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를 듣고 계신 모든 분들, 그리고… 새벽별을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밤하늘의 별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약속도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기다림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니까요.”
마지막 멘트와 함께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시그널이 울렸다. 지우는 헤드폰을 벗었다. 스튜디오는 다시 고요해졌다. 그녀는 멍하니 모니터 속 문자 메시지를 응시했다. ‘새벽별’. 그 세 글자가 온 밤하늘을 뒤덮고 그녀의 심장을 격렬하게 흔들었다. 그가 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꿈일까? 지우는 눈물을 흘리며, 밤하늘 어딘가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그 ‘새벽별’을 찾아 헤매듯 허공을 응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