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618화

강태준은 낡은 코트 깃을 올리고 빗줄기가 훑고 지나가는 창밖을 응시했다. ‘숲속의 조각상’이라는 소박한 이름의 작은 공방 갤러리는 고요했다. 평소 같으면 이런 곳에 발을 들일 일도 없었을 터. 하지만 그는 미세한 실마리라도 있다면, 설령 그것이 닿을 수 없는 허상일지라도 기어이 쫓아가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갤러리 안내 브로슈어에 인쇄된 희미한 목각 작품 사진 한 장. 그 속에 새겨진 새 한 마리가 그의 오랜 심장을 건드렸다.

갤러리 안은 은은한 나무 향과 함께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정갈하게 진열된 목공예품들 사이를 조심스레 걷던 태준의 시선이 한 작품에 멈췄다. 작은 유리 케이스 안에 담긴,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나무 브로치였다. 섬세하게 조각된 겨울 제비딱새 한 마리. 날갯짓 하나하나, 작은 눈망울의 표현까지 살아 숨 쉬는 듯했다. 그의 숨이 턱 막혔다. 20년 전, 풋내기 강태준이 서툰 솜씨로 깎아 윤서하에게 선물했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아니, 닮은 것을 넘어 완벽하게 그녀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 작품은… 누가 만드신 건가요?”

그의 목소리는 제법 차분하려 애썼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갤러리를 지키던 젊은 여인이 다가왔다. 맑은 눈을 가진, 태준보다는 스무 살은 족히 어려 보이는 아가씨였다.

“아, 이 작은 새요? 이건 할머니께서 저에게 처음 목각을 가르쳐주실 때 만드신 거예요. 제가 새긴 건 아직 이 정도로 섬세하지 못하죠.”

할머니. 그 단어가 태준의 뇌리를 스쳤다. “할머니요? 그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윤 선생님이요. 워낙 시골에 계셔서 작품을 많이 만들지는 않으세요. 가끔 이렇게 손주들 가져다주려고 만드실 때가 있는데… 워낙 손재주가 좋으세요. 특히 작은 새들을 참 좋아하시고요.”

‘윤 선생님’. ‘작은 새’. ‘시골’. 조각난 퍼즐 조각들이 단숨에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가슴이 격렬하게 울렸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애써 진정하려 노력했다. 젊은 여인은 태준의 이상하리만치 격앙된 표정을 보며 의아한 듯 눈을 깜빡였다.

“할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거라면… 혹시 옛날 사진 같은 건 없을까요? 어릴 적 모습이라도…” 태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차마 ‘윤서하’라는 이름을 직접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희미한 실낱 같은 희망마저 끊어질까 봐 두려웠다.

“음… 오래된 사진첩에 몇 장 있으실 거예요. 저희 할머니가 원래는 아주 고우셨거든요. 지금은 연세가 드셔서… 잠시만요.”

여인은 갤러리 안쪽 방으로 들어가더니 낡은 앨범 한 권을 들고 나왔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다 한 페이지에서 멈췄다. 빛바랜 흑백 사진 속, 앳된 얼굴의 여인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가느다란 목에 펜던트처럼 작은 목각 새 브로치를 하고서. 서하. 틀림없는 서하였다.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사진 속 그녀는 여전히 눈부셨다. 태준의 시야가 흐려졌다.

그 순간, 빗줄기 소리가 멀어지고, 갤러리 안의 잔잔한 음악도 사라졌다. 태준의 뇌리 속에는 20년 전의 여름 소나기가 거세게 쏟아져 내렸다.

“태준아, 나 이거 진짜 아껴줄 거야. 네가 만들어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비딱새잖아.”

작은 개울가 옆, 오래된 나무 아래.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나기 속에서 서하는 손수건으로 대충 비를 피하며 웃었다. 젖은 앞머리가 얼굴에 착 달라붙었지만, 그녀의 눈은 별처럼 반짝였다. 군 입대를 코앞에 둔 태준은 불안한 마음에 손으로 흙바닥을 헤집고 있었다.

“너 없으면… 나 혼자 어떻게 해, 서하야.”

“무슨 소리야. 우리 헤어지는 거 아니잖아. 꼭 여기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잖아, 2년 뒤에. 태준이 너 전역하고 바로 와서 나 데려가는 거야. 알았지?”

그녀는 젖은 손으로 태준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차가운 빗물과 서하의 따뜻한 손길이 혼재했다.

“응, 약속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올게. 너도 꼭… 여기 있어 줘.”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물방울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태준은 그 약속이 산산이 부서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전역 후, 그는 약속 장소에 서하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의 끝없는 탐정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왜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까.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저기… 괜찮으세요?”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자 태준은 현실로 돌아왔다. 그의 뺨에는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닦아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옛 생각에 잠겨서.”

여인은 태준의 얼굴에서 어떤 깊은 슬픔을 읽었는지, 조용히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저희 할머니께서 지내시는 곳 주소예요. 어딘가 많이 아파 보이셔서… 혹시 할머니께 여쭤볼 이야기가 있으시면 찾아가 보세요. 외진 곳이라 찾아가기 쉽지 않으실 거예요.”

태준은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그 안에는 정성껏 쓰인 손글씨 주소가 있었다. ‘OO시 OO동 OO마을 숲속 작은 집.’

마침내. 마침내 617개의 허망한 발걸음 끝에 도달한 지점이었다. 20년, 7300일, 175200시간. 그 모든 시간을 헤매다 그는 이제 그녀의 문턱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끓어오르는 두려움에 심장이 죄어들었다. 그녀는 그를 기억할까? 그녀는 그 오랜 세월 동안 행복했을까? 그의 불쑥 나타남이 그녀에게 평화를 깨뜨리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

태준은 갤러리를 나와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차가운 빗방울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그것은 마치 20년 전의 소나기처럼 느껴졌다. 그의 손에 들린 주소지가 희미하게 젖어 들었다. 그는 이제 잃어버린 첫사랑을 찾아 떠나는 마지막 여정의 입구에 서 있었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