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의 골동품 가게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해지는 듯한 공간, 낡은 나무와 희미한 향초, 그리고 수천 가지 이야기들이 응축된 먼지의 냄새가 공기 중에 맴돌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멈춰있던 시간이 아주 미세하게, 듣는 사람만이 알아챌 수 있는 음률로 떨리고 있었다. 가게 안을 가득 채운 골동품들은 저마다 잠들어 있는 듯 보였지만, 그들의 침묵 속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맥동하고 있었다.
수아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낡은 풍경이 ‘쨍그랑’ 하는 대신, 끈적이는 침묵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고동쳤다. 늘 이곳에 오면 얻었던 묘한 안정감 대신, 오늘은 알 수 없는 위협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가게 안은 평소보다 어두웠고, 그림자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유리 진열장 위로 먼지 한 줄기가 햇빛에 반사되어 춤을 추듯 흩날리다가, 이내 제자리를 잃고 표류하는 작은 영혼처럼 떠돌았다.
“오셨군요, 수아 양.”
가게 안쪽, 겹겹이 쌓인 골동품 더미 사이에서 고재 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주름진 얼굴은 평소와 달리 깊은 우려로 얼룩져 있었다. 그의 손에는 은은한 빛을 뿜는 작은 회중시계가 들려 있었는데, 초침은 멈춰 있었으나 그 안의 태엽들은 팽팽하게 긴장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숨을 멈춘 심장 같았다. 그의 눈빛은 짙은 안개 속에서도 길을 찾는 등대처럼 흔들림이 없었으나, 그 깊은 곳에는 쉽게 드러내지 않는 불안이 서려 있었다.
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어머니가… 갈수록 이상하세요. 기억이 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변하고 있어요. 마치… 누가 어머니의 시간을 훔쳐 가는 것 같아요.” 그녀의 눈가에 맺힌 물기는 절박한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어머니의 따뜻한 미소, 함께 나눈 즐거운 순간들이 마치 물결에 씻겨 내려가는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고재 할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가게 중앙에 자리한 낡은 유리 진열장으로 향했다. 진열장 안에는 다른 보물들 사이에서 유독 기묘한 존재감을 발하는 물건이 있었다. 작고, 닳아 해진 은빛 로켓 목걸이였다. 세월의 흔적으로 검게 변색된 부분도 있었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중심부는 기묘한 윤기를 띠고 있었다. 로켓에서는 아주 희미하게, 마치 존재하지 않는 심장이 뛰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 진동은 가게를 감싸고 있던 멈춰진 시간의 장막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것 같았다.
“그것 때문입니다.” 고재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어머니께서 한 달 전쯤, 이 로켓을 보고 잠시 만지셨지요?”
수아는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로켓을 발견하고는 어린아이처럼 들떠했던 그 순간을. “네… 그때 어머니께서, 이 로켓이 너무나 익숙하다고, 오래전 잃어버린 자신의 조각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저 어머니의 치매 증상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후회와 자책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간절한 눈빛을 왜 그때 더 깊이 헤아리지 못했을까.
“이것은 단순한 로켓이 아닙니다, 수아 양.” 고재 할아버지는 진열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묵직하고 신중했다. “이것은 ‘시간 도둑의 로켓’이라 불립니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지우고 싶었던 어느 마법사의 작품이라고 전해지죠. 하지만 그 힘은 너무나 강력하고, 잔인했습니다. 자신만의 기억을 지우려다, 주변 사람들의 중요한 기억까지도 서서히 갉아먹기 시작했으니까요.” 그의 눈빛은 로켓을 향한 경고와 연민으로 가득했다.
그의 손이 로켓 가까이 다가갔다. 로켓은 얇은 은실에 매달려 있었는데, 그 은실마저도 마치 고대의 마법에 얽매인 듯 고요하게 진동했다. 고재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이 로켓은 닿는 자의 기억 조각을 흡수하고, 그 빈자리를 망각으로 채워버립니다. 그리고 충분한 기억을 모으면… 그 기억을 지워버린 존재 자체를 과거에서부터 소멸시켜 버릴 수도 있지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가게 안의 공기를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수아의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소멸이라뇨…? 그럼 어머니가…?” 그녀의 눈동자가 공포에 질려 흔들렸다. 어머니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로켓의 힘이 깨어나면서, 어머니의 시간은 빠르게 지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재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로켓을 집어 들었다. 그의 손에 닿자 로켓은 더욱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희미한 푸른빛과 은색이 뒤섞인 오묘한 빛이 가게의 어둠을 잠시나마 밝혔다. “…어머니는 이 로켓의 본래 주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이 로켓이 본래 어머니의 존재 일부였을지도.”
로켓은 고재 할아버지의 손에서 튀어 오르듯 빠져나와, 마치 살아있는 작은 새처럼 수아의 손에 안착했다. 차가운 금속이 그녀의 손바닥에 닿는 순간, 수아의 눈앞에 거대한 폭풍처럼 기억의 파편들이 몰아쳤다. 그것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뒤섞인, 찰나의 순간들이었다.
환영이 스쳐 지나갔다. 낡은 피아노 건반 위를 오가던 어린 소녀의 손. 쏟아지는 햇살 아래 서로를 마주 보며 웃고 있는 젊은 연인의 얼굴. 세상의 모든 평화가 담긴 듯한 아기의 옹알이.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 로켓을 건네주며 울부짖는 어머니의 모습. 하지만 그 얼굴은 순간, 흰색의 공허함으로 지워졌다. 마치 그 순간의 감정까지도 함께 사라진 듯. 거대한 망각의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한 차가운 공포가 수아를 덮쳤다.
수아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로켓이 그녀의 손아귀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눈에 비친 가게의 풍경이 일그러졌다. 멈춰있던 먼지들은 춤을 추듯 흩날렸고, 낡은 시계들의 톱니바퀴가 드르륵거리며 회전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유리 진열장 안의 모든 물건들이 저마다의 미세한 진동을 시작했다. 시간이, 이 가게 안에서 비로소 흐르기 시작하는 듯했다. 아니, 흐르는 것을 넘어 격렬하게 역행하거나 폭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멈춰 있던 시간의 골동품 가게는 이제, 거대한 기억의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놓아라, 수아 양! 어서!” 고재 할아버지의 다급한 외침이 귀에 박혔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것이 너의 존재까지 삼키기 전에!”
수아는 로켓을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금속이 그녀의 손바닥을 불태우는 듯했다. 환영 속에서 사라진 어머니의 얼굴, 비어버린 공간. 이 로켓이 어머니의 기억을 훔쳐 가는 도둑이라면, 그녀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놓아버리면 어머니의 모든 것이 사라질까? 아니면, 이 로켓을 붙잡아야만 어머니를 되찾을 수 있을까? 로켓은 그녀의 손안에서 더욱 격렬하게 진동하며, 그녀의 의식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이 서서히 흐려지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눈에 비친 로켓의 표면이 번뜩였다. 그 안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녀를 향해 손짓하는 듯했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혹은 가장 치명적인 유혹처럼. 수아는 온몸을 조여오는 공포 속에서도, 어머니의 희미해져 가는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녀의 손은 로켓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멈춰 있던 시간의 골동품 가게는 이제, 기억과 망각의 경계가 무너지는 거대한 폭풍의 눈이 되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