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강아지와의 비밀 – 제198화

새벽의 여명은 창백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지우는 늘 그렇듯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부터 눈을 떴다. 침대 발치에서 곤히 잠든 토리의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저 작은 생명이 제 세상의 전부가 된 지 벌써 몇 년인가. 그리고 그 세월만큼, 지우의 어깨에는 세상의 비밀 중 가장 무거운 것이 얹혀 있었다. 말하는 강아지, 토리. 그 존재 자체가 기적이자 동시에 평생을 짊어져야 할 족쇄였다.

지우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습관처럼 창밖을 내다봤다. 아파트 단지 주차장, 그리고 멀리 보이는 흐릿한 가로등 불빛.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였지만, 지우의 마음속은 늘 가느다란 실이 팽팽하게 당겨진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최근 들어 그 긴장감은 더욱 선명한 실체가 되어 그녀를 조여 왔다. 강민준 교수였다. 우연처럼 가장했지만,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예리했고, 그의 질문들은 언제나 토리를 향했다.

“누나, 벌써 일어났어?”

나른한 목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갈랐다. 토리였다. 작은 몸을 꼼지락거리며 잠에서 깨어난 토리가 지우를 올려다봤다. 말하는 강아지. 이 엄청난 비밀을 지우와 토리 단 둘이서만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이 비밀을 나눌 수 있다면, 그녀의 삶은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을까.

“응, 토리. 잘 잤어?” 지우는 애써 미소 지었다. 토리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자 부드러운 털이 손끝에 닿았다. 토리는 만족스럽다는 듯 눈을 감고 지우의 손길을 즐겼다.

“응. 누나가 옆에 있어서 항상 잘 자.” 토리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지우는 그 안에 숨겨진 불안을 읽어낼 수 있었다. 토리 역시 강 교수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우보다 더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강민준 교수는 몇 달 전부터 지우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역 동물 보호 단체의 연구원인 척 접근했고, 토리의 비범한 행동 특성을 칭찬하며 관찰하고 싶다고 했다. 지우는 간신히 거절했지만, 강 교수의 끈질김은 집요했다. 최근에는 아파트 관리 사무소를 통해 동의도 없이 지우의 동선을 파악하려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왔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한 연구원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토리의 특별함에 집착하는 그림자 같았다.

지우는 토리를 품에 안고 거실로 향했다. 토리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누나, 그 사람… 어제도 우리 집 앞을 서성였어. 밤늦게까지.”

지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토리는 늘 이런 식이었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을 들었다. 토리의 직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정말? 못 봤는데…”

“응. 어둠 속에 숨어 있었어. 이상한 기계 같은 걸 들고 있었어. 빛이 깜빡거리는 거였는데… 우리 집 쪽을 향하고 있었어.”

지우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도청 장치? 아니면 열화상 카메라? 어떤 종류의 감시 장치라도, 강 교수가 이미 그녀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는 증거였다. 숨 막히는 압박감에 지우는 눈앞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가는 토리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였다.

“누나, 나 때문에 힘들어? 나 때문에 이렇게…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거야?” 토리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슬픔과 자책감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지우의 눈가에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토리가 자신 때문에 아파한다는 사실이 지우의 심장을 도려내는 듯 아팠다.

지우는 토리를 꽉 안았다. “아니야, 토리. 절대 아니야. 너는 내게 온 가장 큰 선물이야. 힘들지 않아. 너만 안전하다면, 나는 괜찮아. 정말이야.”

그러나 그 말은 허공에 흩어지는 위선처럼 느껴졌다. 지우는 괜찮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밤 악몽을 꾸었고, 매일 아침 세상의 시선이 그녀와 토리를 향하는 것만 같아 불안에 떨었다. 토리의 존재가 주는 기쁨만큼, 그 비밀이 주는 고통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세상이 토리의 존재를 알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토리는 실험실의 흰쥐가 되거나, 혹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평생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 지우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날 오후, 예상치 못한 방문객이 찾아왔다. 강민준 교수였다. 그는 활짝 웃는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지우 씨,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요즘 토리가 좀 불안해 보인다는 제보가 있어서요.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가 해서요?”

“제보요?” 지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토리는 아주 건강하고 잘 지냅니다.”

“아,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제가 워낙 동물들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서요.” 강 교수는 손에 든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저희 연구소에서 개발한 간식인데, 혹시 토리에게 급여해보시겠어요? 행동 개선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우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간식? 정말 단순한 간식일까. 아니면 토리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한 어떤 약물이라도 들어있는 건 아닐까? 그녀는 간식을 주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고맙지만, 토리는 아무거나 먹지 않아서요. 직접 만든 간식만 먹입니다.”

강 교수의 미소가 일그러졌다. 그의 눈빛에 실망과 함께 묘한 적대감이 스쳤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는 아쉬운 듯 돌아서려 했지만, 문간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참, 지우 씨. 토리가 가끔 혼잣말을 한다는 이야기… 들으신 적 있으신가요?”

그 순간, 지우의 세상이 멈추는 듯했다.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애써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혼잣말이라니요? 개가 어떻게 혼잣말을 합니까? 교수님,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강 교수는 지우의 표정을 꿰뚫어 보려는 듯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글쎄요. 저도 그냥 듣는 소리라서요. 하하. 그럼 정말 가보겠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기고 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마자 지우는 주저앉을 뻔했다.

품에서 불안하게 낑낑거리는 토리를 안았다. 토리의 작은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누나… 들켰어. 그 사람이 다 알고 있어…” 토리의 목소리는 울음과 공포로 점철되어 있었다.

“아니야, 토리. 아니야. 아직 아니야. 우리가 조심하면 돼.” 지우는 토리를 달랬지만, 그녀 자신의 목소리도 갈라지고 있었다. 강 교수의 마지막 질문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혹은, 너무나 확신하고 있었다.

그날 밤, 지우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토리는 그녀의 품에 파고들어 있었다. 작은 심장이 불안하게 쿵쿵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뒤엉켰다. 어떻게 해야 토리를 지킬 수 있을까. 이대로 강 교수에게 토리를 넘겨줄 수는 없었다. 절대로. 그것은 토리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 일이었다. 자신에게 토리는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가족이었고,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토리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문득, 토리가 고개를 들어 지우를 올려다봤다. 토리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누나… 우리가… 떠나야 할 것 같아.”

지우는 토리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떠난다.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새로운 시작. 그러나 그 시작이 과연 이 끝없는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디를 가든, 토리의 비밀은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다닐 터였다. 하지만 이대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지우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토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세상의 끝이라도 갈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 결연한 의지가 서렸다. 그래, 떠나자. 이 모든 것을 버리고, 토리와 함께.

지우는 토리를 더욱 단단히 안았다. 창밖에서는 새벽의 어둠이 점차 물러나고 있었다. 새로운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지우와 토리의 삶에 있어 가장 큰 도전을 알리는 날이 될 터였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숨어있을 수 없었다. 도망치거나, 싸우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무게는, 너무나 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