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51화

별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스튜디오 안은 고요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은 우주가 숨 쉬는 소리를 대신 전해주는 듯했다. 별지기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잔잔하고도 깊은 울림을 가지고 전파를 탔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별은 어떤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나요? 어떤 약속을 기억하고, 어떤 희망을 품고 있는지요. 저는 별지기입니다.”

서울의 한 오래된 동네, 낡은 옥상 평상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던 지우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저절로 집중했다. 손안에 쥐어진 낡은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는, 앳된 얼굴의 하윤이 밤하늘을 가리키며 활짝 웃고 있었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었다.

그날 밤도 오늘처럼 별이 쏟아져 내릴 듯한 밤이었다. 하윤은 손가락으로 카시오페아 자리를 짚으며 말했다. “지우야, 저 별들은 영원히 저기 있을 거야. 우리도 저 별들처럼, 어디에 있든 서로를 기억하고 빛내주자.”

그때는 그 말이 영원히 함께하자는 로맨틱한 맹세로 들렸었다. 하지만 세월은 잔인하게도 그 의미를 변색시켰다. 각자의 길을 걷게 된 두 사람에게, 그 약속은 멀리 떨어진 별처럼 아득하고 슬픈 추억이 되어 버렸다. 지우는 매일 밤, 라디오를 들으며 하윤을 떠올렸다. 특히 별지기가 별과 추억에 대한 사연을 읽을 때면, 그의 마음은 과거의 잔해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오늘 밤은 유독 마음이 요동쳤다. 얼마 전, 지우는 우연히 하윤의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여전히 이 도시 어딘가에서, 아마도 자신과 같은 밤하늘을 보며 지내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용기를 내어 연락을 해볼까, 아니면 이대로 영원히 과거 속에 묻어둘까. 수많은 밤을 고민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그때, 별지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다음 곡은 ‘별의 노래’입니다. 이 곡을 신청해주신 익명의 사연자분은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를 찾으려는 별처럼, 저의 마음도 그런가 봅니다. 그 사람에게 닿을 수 있을까요’라고 적어주셨네요.”

지우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익명의 사연. ‘별의 노래’. 그리고 그 문장. 마치 누군가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아니면 하윤이 보낸 사연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노래가 시작되고, 지우는 눈을 감았다. 별빛이 부서지는 듯한 멜로디가 귓가를 채웠다. 하윤과 함께 들었던 그 노래였다.

노래가 끝났다. 별지기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때로는 별빛이 너무 희미해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별은 여전히 그곳에 존재합니다. 단지 우리가 더 가까이 다가가거나, 아니면 더 깊이 바라봐야 할 뿐이죠.”

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낡은 평상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오랫동안 저장만 해두고 단 한 번도 누르지 못했던 번호. 망설임이 다시 찾아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별지기의 마지막 말이 그의 등을 밀어주는 것 같았다. ‘더 가까이 다가가거나, 더 깊이 바라봐야 할 뿐.’

지우는 심호흡을 했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망설임 없이 화면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그의 심장은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잊었던 별을 향해 다시금 발광하기 시작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신호음이 마치 먼 우주에서 오는 응답처럼 느껴졌다. 그의 눈은 다시 한번, 사진 속 하윤이 가리켰던 카시오페아 자리를 향했다. 과연, 그 별은 지우의 용기에 응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