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골동품 가게 – 제59화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의 한 귀퉁이, 시간이 멈춘 골동품 가게의 낡은 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희미한 램프 불빛 아래, 먼지 앉은 물건들이 각자의 이야기들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지우는 익숙한 듯 낯선 그 공간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고요하지만, 이곳은 세상의 모든 슬픔과 회한이 조용히 속삭이는 거대한 관처럼 느껴졌다.

점장님은 늘 그렇듯 카운터에 앉아 고서적을 읽고 있었다. 지우의 발소리에도 고개 한번 들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점장님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음을 알았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녀의 마음은 닳고 닳은 오래된 시계태엽처럼 삐걱거렸다. 멈추고 싶어도 멈춰지지 않는 죄책감의 톱니바퀴는 수년째 그녀의 가슴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그랬다. 동생의 생일날, 작은 말다툼. “누나는 맨날 바쁘다고만 해!” 하고 삐쳐서 뛰쳐나가버린 동생의 뒷모습. 그리고 그날 밤 찾아온 비극. 지우는 그 마지막 순간의 말들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웃으며 사과하고, 함께 축구공을 찰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까. 그녀는 수없이 그 가정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세웠다.

손끝으로 오래된 목각 인형의 머리를 쓸어보다가, 그녀의 시선은 한 구석에 놓인 낡은 나무 기차에 닿았다. 덜그럭거리는 바퀴, 색이 바랜 빨간색과 파란색의 조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동생이 가장 아끼던 장난감 기차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아니, 어쩌면… 똑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기차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나무의 감촉,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흠집들. 그 순간, 가게 안의 모든 소리가 아득해졌다. 째깍거리던 시계 소리도, 바람 소리도, 저 멀리 도시의 소음도, 모든 것이 마치 진공 상태에 놓인 것처럼 사라졌다. 오직 그녀의 귓가에는 오래된 필름처럼 지직거리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눈앞이 흐려지며 주변의 풍경이 물처럼 일렁였다. 낡은 골동품 가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푸른 잔디밭과 맑은 하늘, 그리고 그 아래 앙증맞은 기차 장난감을 들고 서 있는 어린 동생의 모습이 펼쳐졌다. “누나, 나 이거 새로 조립했어! 같이 놀자!”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지우는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그날의 자신이었다. “됐어, 나 숙제해야 해. 너 혼자 놀아.” 차갑게 내뱉었던 자신의 목소리. 동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실망한 표정, 그리고 이내 돌아서서 혼자 잔디밭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작은 뒷모습.

그녀는 그 장면을 수없이 재생했고, 그때마다 죄책감에 몸서리쳤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동생은 혼자 뛰어갔지만, 곧바로 멀리 떨어진 개울가 옆에서 피어있는 작은 꽃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혼자만의 놀이에 금세 몰입하며 행복해하는 모습. 지우는 그 모습을 처음 보았다. 동생은 자신 때문에 마냥 슬퍼했던 것이 아니었다. 실망했지만, 이내 자신만의 기쁨을 찾아낸 강인하고 순수한 아이였다.

“어리석은 상실감은 때로 진실을 가리기도 하지요.”
점장님의 목소리가 환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지우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여전히 그녀의 손에는 낡은 나무 기차가 쥐어져 있었다. 가게는 예전처럼 조용했고, 시계는 다시 째깍거렸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시간은 멈추지만, 기억은 흐르는 법입니다. 중요한 건 그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지요.”
점장님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지우는 한참 동안 나무 기차를 바라보았다. 동생의 웃음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동생은 그녀의 마지막 말 때문에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그 짧은 슬픔 뒤에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낼 줄 아는 아이였다. 어쩌면 그 아이는 그녀가 자신을 탓하며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

지우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혹은 스스로 외면해왔던 동생의 다른 모습이 비로소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얼마인가요?” 그녀는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애써 감추며 물었다.
점장님은 비로소 고개를 들고 온화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기차는 이미 당신의 것입니다. 진짜 주인을 찾아간 것이니.”
지우는 점장님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오랜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위로와 같았다. 그녀는 낡은 나무 기차를 품에 안고 가게 문을 나섰다. 밤하늘 아래, 골동품 가게의 희미한 불빛은 마치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작은 등대처럼 홀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