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낡고, 잊혀진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가파른 언덕 정상에 위태롭게 서 있는 둥근 지붕의 건축물. 빛바랜 돌들은 오랜 풍파에 깎여나갔고, 군데군데 무너진 벽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폐쇄된 천문대였다. 최근 그녀의 꿈을 지배했던 희미한 별자리 조각들과, 알 수 없는 끌림이 이 먼 곳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늘 그래왔듯이, 기억의 파편이 아닌 모호한 감정의 파고가 그녀의 안을 휘저었다. 이곳에 와야만 했다는 강렬한 확신과 함께, 어쩐지 깊은 슬픔이 밀려왔다. 이곳은 대체 누구의 눈물로 지어진 곳일까.
녹슨 철문을 조심스럽게 밀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묵직한 정적을 깨뜨렸다. 내부는 바깥보다 훨씬 더 어둡고 차가웠다. 먼지 낀 공기 속에서 희미하게 빛줄기가 새어 들어와, 거대한 망원경의 실루엣을 드러냈다. 녹슬고 낡았지만, 한때 밤하늘의 비밀을 탐구했을 그 위용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지아는 천천히 망원경에 다가갔다. 차가운 금속에 손을 대자, 손끝에서 전율이 일었다. 마치 죽은 기계가 다시 숨을 쉬려는 듯, 혹은 그녀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녀의 눈에 흐릿한 영상이 스쳤다. 어린아이의 손이 망원경을 만지고, 누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별자리를 설명해주던 장면. 그러나 소리도, 얼굴도, 심지어 그 따스한 온기도 온전히 붙잡을 수 없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는가.”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지아는 화들짝 놀라 돌아섰다. 어둠 속에 서 있는 것은 허리가 굽은 노인이었다. 깊게 팬 주름과 백발은 그의 삶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낡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맑고 깊었다. 마치 밤하늘의 모든 별들을 담고 있는 듯한 눈이었다.
“누구… 세요?” 지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경계심과 함께 알 수 없는 동질감이 그녀를 감쌌다. 이 노인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노인은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이 시간의 흐름을 지키는 자. 그리고 이곳에 기록된 별들의 이야기를 지키는 자이지.”
그는 지아에게로 한 발짝 다가섰다. 어둠 속에서 그의 손에 들린 작은 상자가 보였다. 낡은 나무 상자였지만, 왠지 모르게 빛을 머금고 있는 듯했다.
“너는 스스로를 잃어버린 별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너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다. 그저, 잠시 궤도를 벗어났을 뿐. 그리고 이제, 너의 궤도를 찾아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노인은 상자를 지아에게 건넸다. 차가운 나무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상자 위에는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이 있었다. 낯설면서도, 너무나 익숙한 그 문양을 보는 순간, 지아의 머릿속에서 폭풍이 휘몰아쳤다. 찰나의 순간, 수많은 이미지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시간의 문,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고대 문서들, 그리고… 그녀의 얼굴. 그러나 너무나 빨리 사라져 붙잡을 수 없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기억이 아닌, 존재의 핵심에서 우러나오는 서글픔이었다. 억울하고, 아프고, 외로운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녀는 상자를 꼭 쥐었다. 이 작은 나무 상자가,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향하는 마지막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것은… 무엇인가요?” 그녀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물었다.
노인은 지아의 젖은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너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한 첫 번째 실마리이자, 가장 위험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줄 이정표가 될 것이다. 상자 안에는 너의 별자리가 담겨 있다. 그 별자리를 따라가면, 너의 모든 것이 시작된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게다.”
그의 마지막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었다. 거대한 운명을 짊어진 자에게 던지는 엄숙한 예언처럼 들렸다. 지아는 상자를 품에 안았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그녀를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은 그녀의 과거였고, 현재였으며, 알 수 없는 미래이기도 했다. 이 상자가 그녀를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뒤돌아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제, 잃어버린 별자리를 따라가야만 했다.
어둠 속에서 노인의 그림자는 점점 희미해졌다. 지아는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왔다. 빛은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고,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방황하는 여행자의 것이 아니었다. 결의에 찬,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려는 별의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