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상점 – 제649화

도시의 가장 오래된 골목, 시간조차 비켜선 듯한 적막 속에 꿈을 파는 상점이 있었다. 간판 하나 없이 낡은 나무 문만이 굳게 닫혀 있을 뿐, 오가는 이들조차 그곳의 존재를 모르는 듯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그곳이 마지막 희망의 빛이자, 가장 깊은 절망의 그림자였다.

오늘, 그 문 앞에 한 여인이 섰다. 지은이었다. 낡은 코트 자락을 여미며 찬바람에 떨리는 손으로 겨우 문고리를 잡았다. 지난 몇 년간 그녀를 짓눌러온 슬픔의 무게는 어깨를 굽게 만들었고, 눈가는 메마른 호수처럼 공허했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망설였고, 수없이 많은 아침을 후회했다. 과연 이곳에서,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잠시라도 되돌릴 수 있을까.

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은 예상대로 어둠과 빛의 경계에 있는 듯했다. 온갖 빛깔의 유리병들이 벽면 가득 선반을 채우고 있었고, 그 안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연기, 혹은 몽환적인 그림자들이 갇혀 있었다. 꿈의 조각들, 혹은 영혼의 잔해들. 익숙한 향, 낯선 향들이 뒤섞여 묘한 평온함을 주었다. 상점의 주인장은 낡은 계산대 뒤에 앉아 있었다. 백발의 노인이었으나 그 눈빛은 한없이 깊고 오래된 강물 같았다. 그는 지은을 말없이 응시했다.

“오셨군요.” 주인장의 목소리는 닳고 닳은 종잇장처럼 바스락거렸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지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도 오랜만에 내는 목소리라 쉬어 있었다. “…꿈을, 사고 싶습니다.”

“어떤 꿈을 원하십니까? 잊고 싶은 악몽입니까, 아니면 잃어버린 희망입니까?”

“기억… 입니다.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한번.” 지은의 눈이 촉촉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 한번, 그 순간을 느끼고 싶습니다. 내 딸, 예은이의 마지막 생일… 그날의 기억을요.”

주인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놀라움도, 판단도 없었다. 오직 깊은 이해만이 스쳐 가는 듯했다. “가장 비싼 꿈이지요.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시간은 멈출 수 없으니. 그저, 그 순간을 당신의 영혼에 잠시 빌려주는 것뿐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지은은 주머니 속 낡은 손수건을 꽉 쥐었다.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나요?”

주인장은 계산대 아래에서 낡은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서 아주 작고 투명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병 안에는 푸른빛을 띠는 옅은 안개가 담겨 있었다. “이것은 ‘후회의 조각’입니다. 당신의 가장 깊은 후회. 그것을 대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그 꿈을 꾸는 동안, 당신은 그 후회에서 잠시 해방될 것이나… 꿈에서 깨어나면, 후회는 더 짙은 그림자가 되어 당신을 따라다닐 것입니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지은은 병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후회. 예은의 마지막 생일날, 자신은 조금 지쳐 있었고,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예은의 작은 속삭임을 온전히 듣지 못했다.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을 듣고도 ‘나중에, 엄마 바빠’라고 답했던 그 순간의 후회. 그것은 그녀의 심장을 갉아먹는 독이었다. 지은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감당하겠습니다.”

주인장은 유리병을 건네받아 다시 서랍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조금 더 큰 유리병을 꺼냈다. 투명한 병 안에 붉은빛이 감도는 액체가 출렁였다. “이것을 마시면 됩니다. 당신의 기억 속으로 당신을 인도할 것입니다.”

지은은 떨리는 손으로 병을 받아 들었다. 액체에서 희미한 꽃향기가 풍겼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망설임 없이 병 안의 액체를 단숨에 들이켰다.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순간, 온몸의 감각이 사라지는 듯했다. 시야가 흐려지고, 상점의 모습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녀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지은은 낯선 듯 익숙한 공간에 서 있었다.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주방. 조리대 위에는 밀가루 반죽이 놓여 있었고, 오븐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었다. 작은 앞치마를 두른 채 밀가루 범벅이 된 얼굴로 꺄르르 웃고 있는 예은이.

“엄마! 빨리 와봐! 케이크 다 됐어!”

지은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꿈,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도 생생해서 현실과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었다. 예은의 목소리, 그 맑고 티 없는 웃음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울렸다. 죽은 지 몇 년이 지났건만, 아이의 모습은 그날 그대로였다. 반짝이는 눈동자, 천진난만한 표정, 조그만 손으로 밀가루를 만지는 모습까지.

지은은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예은에게 다가갔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직 꿈 속에서만 존재하는 순간이었다.

“예은아…”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떨렸다. 마치 유리조각처럼 부서질 것만 같았다.

“응, 엄마! 봐봐, 내가 케이크 위에 딸기 올렸어!” 예은은 해맑게 웃으며 조그만 손가락으로 딸기를 가리켰다. 그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지은이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 순간. 그녀는 무릎을 꿇고 예은의 눈높이에 맞춰 앉았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예은아… 엄마가… 엄마가 그때 너무 미안했어.”

예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엄마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네가 엄마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엄마가 바쁘다고 했잖아. 그거, 미안했어.” 지은은 흐느꼈다. 아이의 작고 따뜻한 온기가 손에 느껴졌다. 살아있는 온기. 꿈 속이라도 좋았다.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모든 후회와 슬픔이 사라지는 듯했다.

예은은 엄마의 눈물을 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지은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괜찮아, 엄마. 예은이는 엄마가 예은이 사랑하는 거 다 알아! 엄마가 제일 바쁠 때도 예은이 케이크 만들어줬잖아.”

그 순간, 지은은 깨달았다. 예은은 단 한 번도 그녀의 사랑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녀 혼자 후회하고, 그녀 혼자 죄책감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아이의 순수한 눈망울 속에서 그녀는 용서를 보았다. 그리고 변치 않는 사랑을 보았다.

지은은 예은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이의 체취, 부드러운 머리카락, 작고 따뜻한 몸. 모든 것이 완벽하게 그날과 같았다. “사랑해, 예은아. 엄마 딸로 와줘서 정말 고마워. 영원히, 영원히 사랑해.”

예은은 엄마의 품에 안겨 등을 토닥였다. “나도 엄마 사랑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그 순간, 주방의 햇살이 흔들리는 것을 지은은 느꼈다. 몽롱함이 다시 찾아왔다. 꿈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예은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아이의 몸은 점차 희미해지는 연기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안 돼… 안 돼…!”

예은은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으며 지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다음에 또 놀자, 엄마! 그때는 더 맛있는 케이크 만들자!”

그리고 아이는 햇살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지은은 허공에 팔을 뻗은 채 울부짖었다. 그녀의 눈물은 뜨거웠고, 심장은 갈기갈기 찢기는 듯했다. 다시 한번, 그녀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 * *

눈을 떴을 때, 지은은 다시 꿈을 파는 상점의 낡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햇살이 아닌, 상점 특유의 어둑하고 신비로운 빛이 그녀를 감쌌다. 주인장은 여전히 계산대 뒤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뺨에는 뜨거운 눈물 자국이 선명했고, 온몸이 꿈의 여운으로 떨리고 있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주인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심한 듯 따뜻했다.

지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지만, 동시에 한없는 평온함이 찾아왔다. 후회의 조각을 지불하고 얻은 꿈. 그것은 짙은 슬픔을 다시 안겨주었으나, 동시에 그녀를 짓누르던 가장 큰 짐 하나를 덜어주었다.

“꿈은 현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바꿀 수 있지요.” 주인장은 지은의 앞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놓아주었다. “이제 당신의 후회는 더 짙은 그림자가 되어 당신을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 그림자 속에서 당신은, 이전보다 조금 더 강해졌을 겁니다.”

지은은 차를 마셨다. 차의 온기가 차가워진 몸속으로 퍼져 나갔다. 그녀는 여전히 슬펐지만, 이전처럼 공허하지는 않았다. 예은의 마지막 미소와 사랑한다는 속삭임이 그녀의 마음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과거가 아닌,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소중한 보석이 되었다.

지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장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상점 문을 나서자, 차가운 바람이 그녀를 감쌌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작은 온기가 남아 있었다. 꿈을 파는 상점. 그곳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주는 곳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지은은 발걸음을 옮겼다. 이전보다 조금 가벼워진 걸음으로, 짙어진 후회와 함께 살아갈 새로운 날들을 향해.

상점의 문은 다시 닫혔고, 골목은 다시 적막에 잠겼다. 수많은 꿈들이 여전히 유리병 속에 갇혀 다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또 다른 이가, 그 문을 두드릴 날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꿈을 파는 상점은 그렇게, 도시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영원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