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80화

고요가 내려앉은 스튜디오 안, 지우는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늦가을 밤의 별들은 제각기 다른 빛깔로 흩뿌려져 있었고, 그 빛들은 마치 그녀의 마음속 이야기를 대변하는 듯 반짝였다. 헤드폰 속에서는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귓가에는 수없이 많은 사연들이 맴돌았다. 벌써 여든 번째 밤이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이 자리에서 그녀가 흘려보낸 시간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 음악이 흐르는 동안, 지우는 책상 위 사연들을 정리했다. 그중에는 늘 같은 필체로 도착하는 엽서 한 장이 있었다. 발신인의 이름은 없었지만, 언제나 마지막 문장은 같았다. ‘이 밤의 끝에서, 당신의 목소리가 닿기를.’

“오늘 밤은 유난히 더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것 같네요. 이 빛나는 밤 아래,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계신가요? 제게 도착한 사연 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잊혀진 줄 알았던 멜로디가 문득 떠올라요. 오래된 레코드판처럼, 마음속 깊이 새겨진 그 음들을 다시 한번 듣고 싶습니다.’”

지우는 마이크를 향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잊혀진 멜로디. 그녀에게도 그런 멜로디가 있었다. 아니, 잊혀진 것이 아니라 애써 외면했던 멜로디였다. 그리고 그 멜로디는 언제나 별이 가장 선명하게 빛나던 밤에 시작되었다. 낡은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던 투박한 음정, 그리고 그 옆에서 함께 별을 헤아리던 누군가의 그림자.

“이 사연을 보내주신 분께, 그리고 이 밤 어딘가에서 같은 추억을 떠올리고 있을지 모를 모든 분들께 이 곡을 바칩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음 곡 버튼을 눌렀다. 스튜디오 안은 옅은 노이즈와 함께 익숙하면서도 가슴 저릿한 피아노 선율로 채워졌다. 아주 오래전, 그와 함께 들었던 곡이었다. 처음 이 라디오를 시작할 때, 다시는 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곡. 하지만 여든 번째 밤, 그녀의 손은 망설임 없이 그 곡을 선택했다.

선율이 흐르는 동안, 지우는 눈을 감았다. 밤하늘을 수놓았던 수많은 별들 아래, 두 손을 마주 잡고 걷던 길. 그때의 온기, 그때의 약속, 그리고 지켜지지 못한 채 흩어져버린 시간들. 모든 것이 노래 가사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녀는 그가 지금 어디에서 이 라디오를 듣고 있을지, 아니, 아예 듣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아릿했다.

노래가 끝나고, 지우는 마이크를 다시 켰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부드럽고, 왠지 모르게 애틋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여러분은 혹시, 다시 한번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나요? 어쩌면 이 라디오를 통해 그 목소리가 닿을지도 모르죠. 저는 이 밤의 수많은 별들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서로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문득, 엽서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이 밤의 끝에서, 당신의 목소리가 닿기를.’

“…그리고 제가 그 목소리가 되어, 당신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우는 방송을 마무리하며 헤드폰을 벗었다. 스튜디오의 불빛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처럼 깊고 아련했다. 그녀는 창밖의 별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 별들 중 하나가, 어쩌면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같은 별을 보고 있을 그에게 그녀의 마음을 전해줄 수 있을 거라고, 아주 희미하게나마 믿고 있었다. 다음 화요일 밤, 그녀는 또 다시 이 자리에 앉을 것이다. 어떤 멜로디가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될지,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그녀의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