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질수록 내 방의 공기는 미나의 한숨으로 더욱 무거워졌다. 책상 위에는 수없이 긁어지고 다시 쓰인 원고 더미가 마치 오랜 싸움의 잔해처럼 쌓여 있었다. 마지막 문장을 지우개로 문지르다 찢어버린 종이 조각이 미나의 손에 허망하게 들려 있었다. 벌써 몇 년째 매달리고 있는 소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재능의 한계인가, 아니면 그저 게으름인가. 그 답을 찾지 못해 미나는 텅 빈 눈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그때였다. 털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침대 발치에 앉아 있던 달이가 가늘고 긴 눈을 들어 미나를 바라보았다. 푸른 달빛 아래 더욱 신비롭게 빛나는 회색 털, 그리고 세상의 모든 근심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은 눈동자. 달이는 마치 미나가 내뱉은 모든 한숨을 전부 삼켜버릴 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달아…” 미나는 찢어진 종이를 내려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 더 이상 못 하겠어. 아무리 애써도, 아무리 생각해도… 내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달이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미나에게 다가왔다. 차가운 마룻바닥을 딛는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부드러운 걸음. 달이는 미나의 무릎에 앞발을 짚고는, 녀석의 부드러운 머리를 미나의 볼에 비볐다. 그 섬세한 움직임 속에서 미나는 작은 온기를 느꼈다.
“이젠 정말 끝내야 할까 봐. 수많은 밤을 새웠는데… 내 시간들이 전부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 같아.” 미나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버린 탓인지 눈시울만 뜨거워질 뿐이었다.
달이는 미나의 뺨에서 머리를 떼어내고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미나의 눈을 응시했다. 그 투명한 눈동자 속에는 질책도, 위로도 아닌, 오직 깊은 이해와 침묵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미나는 녀석의 눈빛 속에서 아련한 기억 하나를 읽어냈다.
아주 오래전, 달이가 처음 미나의 집에 왔을 때였다. 녀석은 다리를 다쳐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비쩍 마른 몸으로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때도 미나는 녀석을 포기할까 고민했었다. 제대로 보살필 자신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달이는 매일 미나의 문 앞에서 기다렸고, 결국 미나는 녀석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길고 긴 치료와 보살핌 끝에, 녀석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미나의 곁을 지키게 되었다.
달이의 눈빛은 그 기억을 다시 한번 미나의 마음속에 새기는 듯했다. ‘포기하지 않았잖아. 지쳐도, 힘들어도, 결국 해냈잖아.’
달이는 미나의 손을 자신의 앞발로 살포시 감쌌다. 부드럽고 따뜻한 털이 손등을 간질였다. 그 순간, 미나는 잊고 있었던 감각을 다시 찾았다. 끈기, 인내, 그리고 작은 희망의 불씨.
“달아… 네 말이 들리는 것 같아.” 미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 그랬었지.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 이야기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라고…”
미나가 달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녀석은 작게 ‘갸르릉’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고요한 밤에 울려 퍼지는 작은 응원가 같았다. 완벽한 문장을 찾지 못해도 괜찮았다. 당장 소설을 끝내지 못해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이 작은 온기를 잊지 않는 것이었다.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미나의 마음속에는 작은 빛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달이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미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는 다시 펜을 들 힘이 생길 것 같았다. 비록 한두 문장일지라도, 오늘 밤은 다시 나의 이야기를 찾아 나설 수 있을 것 같았다.
달이는 미나의 품에 기대어 가만히 눈을 감았다. 따뜻한 숨결이 미나의 심장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