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진은 낡은 비포장도로의 끝에 다다라 차를 세웠다. 엔진이 멎자, 그의 귀에는 오직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산새의 울음소리, 그리고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산골도예원’. 녹슨 철제 간판이 흔들거렸다. 그는 이 이름 하나를 찾아 헤매는 데 자그마치 십 년이 넘는 세월을 바쳤다.
그의 손은 운전대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수백 번의 헛된 발걸음, 수천 번의 실망스러운 순간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서연의 흐릿한 기억과 씨름하며 보냈다. 이제, 마침내, 이곳이었다. 그의 직감은 확신에 가까운 고동을 울리고 있었다. 이곳에 그녀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그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다.
차에서 내리자, 흙과 풀 내음, 그리고 희미하게 풍겨오는 젖은 흙과 유약 냄새가 그의 코를 간질였다. 그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오래된 목조 건물과 마당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와 도자기들이 놓여 있었다. 어떤 것들은 볕을 쬐고 있었고, 어떤 것들은 반쯤 채색된 채 바람을 맞고 있었다. 모든 것이 살아있는 듯, 이곳이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의 손길로 가꾸어져 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마당으로 발을 들였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듯했다. 그는 마치 성지에 발을 딛는 순례자와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금 같았다. 저 안에서, 저 문 너머에서, 서연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그의 기억 속에서 흐릿한 잔상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 세월 동안 그녀는 어떻게 변했을까? 여전히 환한 미소를 짓고 있을까? 아니면 지난 시간의 상처가 그녀의 눈가에 주름으로 새겨져 있을까?
흙먼지 쌓인 작업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 틈으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물레가 돌아가는 듯한 낮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음악. 나지막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 음악은 그가 서연과 함께 즐겨 듣던 곡이었다. 오래된 LP판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아련하고 서정적인 멜로디.
강우진은 숨을 멈췄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곤두섰다. 그는 문틈으로 살짝 안을 들여다보았다. 넓고 높은 천장의 작업실 안에는 수많은 도자기들이 정돈되어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흙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물레 앞에 앉아 집중한 듯한 뒷모습의 여인.
햇볕에 바래고 흙먼지가 앉아 얼룩덜룩한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흙먼지로 푸석해 보였지만, 그 어떤 흐트러짐도 그녀의 모습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섬세한 손길로 흙을 빚어 올리는 그 움직임. 완벽하게 집중된 그 뒷모습은 강우진의 기억 속에 있던 서연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했다. 아니, 그의 기억보다 더욱 생생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았다.
“누구세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강우진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작업실 옆 작은 쪽문에서 허리가 굽은 노인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곱게 빗어 넘긴 은발에 온화한 미소를 띤 얼굴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찻잔이 들려 있었다. 노인은 강우진을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이곳엔 웬일이시오? 길을 잃으신 건 아니고요?”
강우진은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노인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저 안의 총각을 찾아왔소?” 노인의 시선이 작업실 안을 가리켰다. 순간 강우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총각? 여인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의 심장이 차갑게 식는 듯했다.
“아, 저 젊은이는 제 손자입니다. 얼마 전에 이곳에 와서 도예를 배우고 있지요. 제가 힘이 부쳐서….” 노인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허허, 제가 나이를 먹어 눈이 침침해서… 누군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네요.”
그는 실망감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또다시, 또다시 착각이었다. 수많은 허상 속에서 그는 또다시 그녀를 찾아 헤맸던 것인가. 절망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의 눈은 이미 작업실 안의 뒷모습을 다시 확인할 용기가 없었다.
“서연… 서연을 찾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흐느낌에 가까웠다. 노인의 얼굴에 옅은 그림자가 스쳤다.
“서연이라… 그 이름, 참 오랜만에 듣는군요.” 노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젊은이, 대체 서연이랑은 어떤 사이기에 여기까지 찾아온게요?”
강우진은 굳게 다문 입술을 겨우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십 년이 넘도록, 단 하나의 희망을 좇아왔던 이야기. 그의 절절한 고백에 노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내어주었다. 따뜻한 차 한 잔이 그의 얼어붙었던 심장을 조금씩 녹이는 듯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노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작업실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그 아이는… 가끔 이곳에 들렀지. 그저… 숨쉬고 싶을 때마다 오는 곳이라고 했네.”
강우진의 심장이 다시금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가끔 이곳에 들렀지’. 과거형이지만, 그녀의 흔적이 분명 이곳에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지금은… 없습니까?” 그는 희미한 기대를 담아 물었다.
노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없지. 하지만… 이걸 봐봐.”
노인은 그를 작업실 안쪽 깊숙이 이끌었다. 선반 위에는 다른 도자기들과는 확연히 다른, 빛바랜 푸른색 유약이 입혀진 작은 찻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찻잔의 밑면에는 작은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나뭇가지에 앉은, 깃털이 풍성한 작은 새 한 마리.
강우진의 눈이 커졌다. 그는 그 그림을 알아봤다. 어린 시절, 서연이 즐겨 그리던 그림이었다. 그녀의 스케치북, 그녀가 쓰던 책 귀퉁이, 심지어 그의 시험지 여백에까지 그려져 있던 바로 그 새였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표식과 같았다.
“이건… 서연이 만든 겁니까?”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오르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 아이는 늘 이 새를 새겨 넣었어. 그리고….”
노인은 찻잔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 찻잔은 최근에 만든 것이네.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거야.”
강우진은 찻잔을 넘겨받았다. 그의 손에 닿는 차가운 도자기의 감촉,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익숙한 새의 형상. 그의 눈은 뜨거워졌고, 시야는 흐려졌다. 그녀가, 그녀가 살아있었고, 이곳에 왔었고, 여전히 이 표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증거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오랜 고독한 탐색에 대한, 그녀의 응답이었다. 그녀의 존재를 알리는 침묵의 외침이었다.
“그런데 왜… 왜 저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걸까요?” 그는 울음을 삼키며 물었다.
노인은 그의 어깨를 가만히 토닥였다. “젊은이,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사정이 있는 법이지. 그 아이도 그랬을 테고. 하지만….” 노인은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만든 작품은, 늘 자신을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법이네. 그것이 아무리 숨어있는 것이라도 말일세.”
“작품…” 강우진은 찻잔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이 찻잔이, 이 새가,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그가 발견해야 할 또 다른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노인은 강우진의 눈을 들여다보며 마지막 말을 건넸다.
“그 아이는… 조만간 다시 올 걸세. 늘 그랬던 것처럼. 아마도… 오늘 저녁이나, 내일쯤.”
강우진은 노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작업실 너머, 산 능선 위로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그의 십 년이 넘는 세월이, 마침내, 이 노을 속에서 그녀와 다시 만날 순간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그녀가 올 때까지, 아니, 그녀가 다시 떠나기 전에, 그는 반드시 그녀를 만나야만 했다. 그의 마지막 희망이, 바로 이 산골도예원에 걸려 있었다.
강우진은 찻잔을 두 손에 소중히 든 채,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오랜 기다림과 드디어 찾아온 희망,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서연, 그녀는 과연 무엇 때문에 사라졌고, 왜 그를 찾아오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지금, 이 찻잔이 그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해 질 녘의 산골도예원에는, 간절한 기다림의 숨결만이 가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