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104화

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제104화

산모퉁이 작은 빵집은 오늘도 따스한 온기로 가득했다. 노릇하게 구워지는 빵들의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가 굽이진 산길을 타고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지수는 오븐에서 갓 나온 밤 식빵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식힘망에 올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식빵 덩어리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만족감과 함께 늘 그랬듯 잔잔한 애정이 어려 있었다.

이 빵집이 이곳에 자리 잡은 지도 어언 십 년. 수많은 계절이 바뀌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이 문을 드나들었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왔다가, 빵 한 조각에, 따뜻한 차 한 잔에, 혹은 지수의 무언의 위로에 작은 치유를 얻고 돌아가곤 했다. 지수는 그 모든 순간을 조용히 지켜보며, 빵집이 그저 빵을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잇는 다리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맑은 풍경 소리가 울렸다. 익숙한 얼굴이 아닌 낯선 손님이었다. 키는 컸지만 어딘가 움츠러든 어깨, 창백한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 그리고 언제나 같은 종류의 빵을 집어 드는 조용한 손길. 한 달 전쯤부터 매일같이 찾아오는 은서 씨였다. 그녀는 늘 같은 시각에 들어와 작은 호밀빵 하나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짧은 목례 외에는 어떤 대화도 없이, 마치 빵집의 풍경에 스며들 듯 그렇게 오고 갔다.

지수는 은서 씨를 관찰했다. 초점 없는 눈빛으로 창밖을 응시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깊은 시름을 읽을 수 있었다. 가끔은 미처 다 감추지 못한 눈가의 붉은 기운을 발견하기도 했다. 지수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섣부른 동정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대신, 그녀는 빵으로 말하고 싶었다.

오늘, 지수는 특별히 공들여 만든 작은 하트 모양의 레몬 쿠키를 구웠다. 굽는 내내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향기가 빵집을 가득 채웠다. 은서 씨가 올 시간이 가까워지자, 지수는 은서 씨의 호밀빵을 포장하며 그 옆에 방금 구운 레몬 쿠키 하나를 슬쩍 끼워 넣었다. 조그맣게 ‘오늘의 선물’이라고 적힌 쪽지도 함께였다.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날이었다.

쨍그랑, 문이 열렸다. 어김없이 은서 씨였다. 그녀는 조용히 호밀빵이 놓인 선반 앞으로 가서 망설임 없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계산대 앞으로 온 은서 씨는 지수에게 짧게 고개를 숙였다. 지수는 아무 말 없이 호밀빵을 포장하고, 그 위에 레몬 쿠키가 담긴 작은 봉투를 올렸다.

“이건요?” 은서 씨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처음 보는 작은 변화였다. 그녀의 표정에 얼핏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오늘 막 구운 쿠키예요. 은서 씨께 드리고 싶어서요.” 지수는 잔잔한 미소로 답했다. 그녀의 미소에는 어떤 강요도, 질문도 없었다. 그저 순수한 마음만이 담겨 있었다.

은서 씨는 봉투 속의 작은 쿠키를 내려다보았다. 노랗고 동그란 쿠키 위에 섬세하게 새겨진 하트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작은 선물이 왠지 모르게 낯설고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아주 작고 낮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지수는 그 목소리에서 얼어붙었던 마음에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음을 직감했다.

은서 씨가 돌아간 후에도 지수는 한동안 계산대에 서 있었다. 빵집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은서 씨의 작은 변화가 따뜻한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 레몬 쿠키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지친 마음에 건네는 작은 용기, 혹은 잊고 있었던 희망의 조각 같은 것이었으리라.

해가 저물어갈 무렵, 빵집 문이 다시 열렸다. 지수는 설거지를 하다 고개를 들었다. 은서 씨였다. 그녀는 한 손에는 아까 사간 호밀빵 봉투를, 다른 한 손에는 비어 있는 쿠키 봉투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는… 지수가 처음 보는,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쿠키… 정말 맛있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아침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아주… 상큼하고 달콤했어요. 고맙습니다.”

지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은서 씨의 눈동자가 이제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비록 짧은 몇 마디였지만, 그 속에 담긴 따스함은 빵집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서, 빵 한 조각과 쿠키 하나가 피워낸 작은 기적이었다. 지수는 내일, 은서 씨를 위해 어떤 빵을 구워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잠겼다. 빵집은 그렇게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