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수연의 발걸음은 지난번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며칠 전, 선우 씨가 복원해 준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이 그녀의 잠 못 이루는 밤들을 지배했다. 흐릿했던 기억의 파편들이 선명한 이미지 속에서 다시 살아나 심장을 짓누르는 듯했다.
사진관 안은 여전히 아늑한 빛과 오래된 필름 냄새로 가득했다. 선우 씨는 늘 그렇듯 카운터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수연은 조용히 다가가 복원된 사진이 담긴 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봉투 위에는 여전히 어린 수연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젊은 어머니의 모습이 인쇄되어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수연 씨.” 선우 씨는 고개를 들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깊었다. “사진은 잘 보셨습니까?”
수연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네… 잘 봤습니다. 너무나 선명해서, 오히려 꿈을 꾸는 것 같았어요.”
선우 씨는 그녀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은 때때로 스스로를 가둡니다. 하지만 사진은 진실을 숨기지 않죠. 단지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수연은 봉투에서 사진을 꺼내 들었다. 그녀가 가져왔던 원본은 세월의 흔적과 함께 빛바랜 모노톤이었지만, 선우 씨의 손을 거쳐 되살아난 사진은 마치 어제 찍은 것처럼 생생한 색감을 머금고 있었다. 어린 수연의 해맑은 미소,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젊은 어머니의 다소 경직된 표정. 수연은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무심함과 자신을 향한 거리감을 다시금 확인하는 듯했다.
“어머니는 늘 저에게 무심했어요.” 수연은 사진 속 어머니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제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법도 없으셨고, 안아주는 일도 드물었죠. 늘 바쁘거나, 혹은 어딘가 다른 곳을 보고 계셨던 것 같아요.”
선우 씨는 조용히 수연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사진을 들어 올렸다. “수연 씨, 이 사진의 배경을 자세히 보세요.”
수연은 사진 속 배경을 다시 살폈다. 오래된 벽돌담과 그 앞에서 흐릿하게 피어난 작은 풀들.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다.
“그것 말고, 어머니의 손을 보세요. 정확히 말하자면, 어머니의 왼손을요.”
수연은 다시 어머니의 왼손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릴 적 기억 속의 어머니는 늘 깔끔하고 단정한 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진 속 어머니의 왼손은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복원 전에는 그저 흐릿한 그림자에 불과했던 그것이, 이제는 뚜렷한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낡고 해진, 하지만 정성스레 엮어진 작은 실뭉치. 그것은 어릴 적 수연이 가지고 놀던,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준 헝겊 인형의 머리 장식과 똑같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수연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준 인형을 늘 품에 안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인형의 머리 장식이 떨어져 나갔고, 수연은 잃어버린 줄 알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그까짓 것, 다시 만들어 줄게.” 하고 말했지만, 결국 다시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 후로 수연은 그 인형을 다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자신에게 무심하다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증거로 그 기억을 품고 살았었다.
“이… 이게…” 수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사진 속 어머니의 왼손은 그 작은 실뭉치를 너무나 조심스럽게 쥐고 있었다. 마치 잃어버리면 안 될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선우 씨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수연 씨가 잃어버린 그 조각을 소중히 간직하고 계셨던 겁니다. 어쩌면 사진을 찍고 난 후에 다시 고쳐주려 하셨을 수도 있고, 혹은… 이미 고쳐주기엔 너무 늦었지만, 그 작은 조각마저 버리지 못하고 품고 계셨을 수도 있죠.”
수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너무나 오랫동안 그녀의 마음을 짓눌렀던 오해의 덩어리가, 한 장의 사진 속 작은 실뭉치 앞에서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무표정하고 경직된 얼굴이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사진을 찍는 어색함 속에서도, 딸의 작은 추억 조각을 품에 안고 있던 어머니의 마음이 비로소 선명하게 전해져왔다.
그녀는 한 번도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읽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동시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감격으로 목이 메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늘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연을 사랑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따뜻한 말 대신 작은 행동으로, 분명한 표현 대신 조용한 간직함으로.
수연은 흐느끼며 사진을 가슴에 품었다. 이제야 비로소, 사진 속 어머니의 미소가 아니라, 사진 속에 숨겨진 어머니의 진심을 볼 수 있었다. 이 오래된 사진관이 되살려준 것은 단지 빛바랜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이자, 잃어버렸던 사랑의 증거였다.
그녀는 이제 알고 싶었다. 그 인형의 나머지 부분은 어디에 있을까. 어머니는 왜 그 조각을 그토록 소중히 간직하셨을까. 선우 씨가 복원해 준 이 사진은, 단순한 추억의 부활이 아니라, 잊혀진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