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마저도, 이 낡은 골동품 가게 안에서는 묘하게 따뜻하게 들렸다. 지아는 겹겹이 쌓인 시간의 먼지를 뒤집어쓴 진열장 앞을 멍하니 서성였다. 세상의 모든 슬픔과 회한이 이곳에 모여 응고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몹시 무거웠고, 시선은 허공을 헤매는 듯 불안했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떨쳐내고 싶지만 떨쳐낼 수 없는 어떤 잔상이 그녀의 마음을 끈적하게 붙잡고 있었다.
“또 오셨군요, 지아 씨.”
깊은 주름이 새겨진 김 사장님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온화했다. 그는 뜨거운 차 한 잔을 내밀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지아의 얼어붙은 손을 감싸자, 희미한 온기가 돌았다.
“오늘은 또… 어떤 시간을 찾으러 오셨습니까?”
김 사장님의 물음에 지아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찾는 것은 시간이라기보다는, 지워버린 기억, 아니,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기억의 한 조각이었다. 7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 수아. 그녀의 마지막 순간은 지아에게 영원한 후회와 자책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마지막 대화, 그 짧은 몇 마디가 지아의 평생을 짓눌렀다. 수아의 가장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자신은 그때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지아가 찻잔을 내려놓으려는 찰나, 김 사장님의 시선이 카운터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방금 전까지 없었던 듯한, 아주 작은 나무 조각품 하나가 놓여 있었다. 닳고 닳아 윤기가 사라졌지만, 한때는 누군가의 손때로 반질거렸을 법한, 새의 형상을 한 장난감이었다. 어딘가 익숙한, 그러나 결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물건.
지아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떨리는 손으로 그 작은 나무 새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수아가 가장 아끼던 장난감이었다. 낡은 상자 속에 넣어둔 채, 다시는 꺼내볼 용기조차 내지 못했던, 수아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어떻게 이곳에….
“이것이… 여기에 왜…” 지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김 사장님은 그저 잔잔한 눈빛으로 지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오늘 아침, 문을 열어보니 카운터 위에 놓여 있더군요. 아주 희미한… 시간의 잔향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지아는 나무 새를 손에 쥐었다. 차가운 나무 조각에서 미미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가게 안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빗소리마저 멎고, 공기마저 정지된 듯 고요했다. 시간마저 숨을 죽인 것 같았다. 지아의 귀에, 아주 작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 생생했다.
“엄마… 나, 엄마 속상하게 한 거 아니지? 미안해….”
그것은 7년 전 그 날, 수아가 사고가 나기 직전, 자신과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의 순간이었다. 사소한 다툼 후, 지아는 수아에게 잠시 화를 냈었다. 수아는 억울한 표정으로 쭈뼛거리다가 집을 나섰고, 지아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차마 붙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지아의 귀에 박혀 있던 수아의 마지막 말은 그저 흐느낌뿐이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화를 내서 수아가 울었고, 그게 수아의 마지막 기억이라고. 그 끔찍한 생각에 지아는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하지만 지금, 이 나무 새를 통해 들려오는 수아의 목소리는… 달랐다. 자신을 향한 원망이나 슬픔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아를 걱정하고 있었다. 미안해하는 수아의 작은 목소리,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흐느낌 속에서도 놓치지 않았던 한 마디.
“엄마, 사랑해…”
숨겨져 있던 소리, 지아의 격앙된 감정과 슬픔 때문에 듣지 못했던, 혹은 들으려 하지 않았던 수아의 진짜 마지막 말. 수아는 자신에게 화난 것이 아니라, 엄마를 속상하게 했다는 생각에 미안해했고,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작고 여린 마음이 지아를 걱정하고, 지아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지아의 손에서 나무 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작은 나무 조각이 굴러가는 소리가 고요한 가게를 찢는 듯 날카로웠다. 그리고 곧, 지아의 입술에서 참을 수 없는 오열이 터져 나왔다. 7년 동안 쌓아 올린 죄책감의 거대한 벽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이제야 제대로 수아의 마지막 말을 들은 지아는 끊임없이 울었다. 슬픔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안도감이 그녀의 마음속을 훑고 지나갔다. 수아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다. 자신을 사랑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김 사장님은 아무 말 없이 따뜻한 차가 담긴 잔을 다시 주워 지아의 곁에 놓아주었다. 가게 안의 시간은 여전히 멈춘 듯 고요했지만, 지아의 마음속에서는 마침내 7년 전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얼어붙었던 후회의 강물이 녹아내리면서, 이제야 비로소, 수아를 온전히 떠나보낼 준비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 눈물과 함께, 지아의 삶은 과연 어떤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게 될까. 멈췄던 시간은, 과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