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수 이장님의 하루는 늘 새벽 공기처럼 맑고 상쾌했다. 50년 넘게 이 마을을 지켜온 그는, 새벽녘 닭 우는 소리보다 먼저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버릇이 있었다. 오래된 무릎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도, 그 소리마저도 정겹게 느껴지는 나이였다. 창밖으로 아직 어둑한 하늘을 보며 덕수 이장님은 깊이 숨을 들이켰다. 흙냄새 섞인 새벽 공기가 폐 속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영감, 또 일찍 일어났슈? 오늘은 읍내 오일장 가는 날이니께, 따땃한 물에 세수라도 하고 오슈.”
안방에서 부스스 일어난 아내가 무심한 듯 던지는 말 속에는 여전히 깊은 애정이 배어 있었다. 덕수 이장님은 씩 웃으며 마당으로 나섰다. 텃밭을 둘러보고, 새로 돋아나는 싹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일과였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땅은 더 윤기가 돌았고, 고추 모종은 한 뼘 더 자란 듯했다. 그렇게 풀내음 가득한 아침을 맞고 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마을회관으로 향하는 길, 덕수 이장님의 눈은 그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데 바빴다. 골목길 담벼락에 금이 간 곳은 없는지, 혹시 어르신 댁 대문이 덜컥거리는 건 아닌지. 그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마을 어귀에 자리한 박순자 할머니 댁 앞에서 멈춰 섰다.
박순자 할머니는 올해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정정하셨지만, 몇 달 전부터 부쩍 수심이 깊어 보였다. 덕수 이장님은 할머니 댁 마당에 우뚝 선 오래된 감나무를 흘긋 쳐다봤다. 그 감나무는 할머니만큼이나 이 마을의 역사를 아는 나무였다. 어릴 적 이장님도 그 나무에서 떨어지는 홍시를 받아먹으며 자랐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뚫어져라 감나무 위를 올려다보고 계셨다.
“할머니, 좋은 아침이유! 뭐 그리 심각하게 감나무를 보시유?”
덕수 이장님의 목소리에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쭈글쭈글한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졌지만, 그 밑에 깔린 걱정스러운 그림자는 숨겨지지 않았다.
“아이고, 덕수 이장! 여태도 이리 바쁘게 다니는가? 저 감나무 말여. 며칠 전에 비바람이 하도 세게 불더니만, 글쎄 저 가지가 위태위태해 보여서 말이여. 똑 부러지면 어쩌나 싶어서 밤마다 잠이 안 와.”
할머니가 가리킨 곳을 보니, 감나무 몸통에서 가장 굵게 뻗어 나온 가지 하나가 나무껍질이 살짝 벌어져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그 가지 밑에는 할머니가 아끼는 장독대가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는 이따금 아이들이 뛰어노는 작은 마당이 이어졌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고, 그러셨구만. 제가 올라가서 한번 볼까요? 어르신 혼자서 어찌 이리 위험한 걸 감당하시려고….”
덕수 이장님은 할머니의 어깨를 토닥였다.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여, 이장님까지 나설 일은 아니여. 괜히 이장님 다치기라도 하면 워쩐댜. 그냥… 언젠가는 손을 써야 할 텐데, 늙은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사람 부르자니 돈도 만만찮고 해서….”
할머니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 감나무 가지에는 할머니의 젊은 시절 추억이,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약속이, 그리고 이 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터였다. 단순히 위험한 가지 하나가 아니었다. 덕수 이장님은 할머니의 깊은 시름을 단번에 헤아렸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벌써 이 문제를 해결할 묘안이 떠오르고 있었다.
“할머니, 걱정 마시유! 그깟 감나무 가지 하나쯤이야, 우리 마을 사람들이 힘 합치면 뚝딱 해결하지라우. 할머니 혼자 고민하게 둬서 제가 죄송하네. 제가 오늘 오후에 젊은 친구들 몇 명 불러서 딱! 해결해 드릴게유.”
덕수 이장님은 허허 웃으며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할머니는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지만, 이장님의 굳건한 태도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의 유쾌한 자신감은 언제나 마을 사람들에게 깊은 신뢰를 주곤 했다.
마을회관에 도착한 덕수 이장님은 곧장 전화기를 들었다. 마을의 젊은 일꾼들을 소집하는 일은 그의 오랜 노하우였다. 가장 먼저 철수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을에서 가장 힘이 좋고 손재주도 좋은 철수 씨는 이장님의 부름에 늘 기꺼이 달려오는 인물이었다.
“철수 씨! 오늘 오후에 시간 좀 비워줄 수 있나? 우리 순자 할머니 댁 감나무 가지가 삐끗해서 위험한데, 자네 힘 좀 빌려야겠어.”
“아이고, 이장님! 당연히 가야죠! 그 감나무, 저 어릴 때부터 봤는데! 몇 시쯤 가면 될까요?”
철수 씨는 단번에 승낙했다. 이어서 인근 농기구 수리점에서 일하는 영호 씨, 그리고 튼튼한 밧줄과 톱을 가진 영미 아빠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이장님의 호출에 마을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단순히 일을 돕는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 마을의 일을 함께 해결한다는 공동체 의식의 발현이었다.
점심을 서둘러 먹고 박순자 할머니 댁 마당에 모인 세 명의 젊은 일꾼들과 덕수 이장님은 감나무를 둘러쌌다. 철수 씨가 능숙하게 사다리를 놓고 나무 위로 올라갔고, 영호 씨는 아래에서 안전장비를 점검했다. 영미 아빠는 굵은 밧줄을 능숙하게 다루며 가지를 고정할 준비를 했다.
“철수 씨, 조심해! 아래서 내가 꽉 잡고 있을 테니께!”
덕수 이장님은 아래에서 계속해서 지시를 내리고 안전을 확인했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작업이었지만, 함께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진지함과 유쾌함이 공존했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박순자 할머니는 삐뚤어진 허리로 마당에 나와 앉아 이 모든 과정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할머니의 손에는 방금 따온 듯한 갓 돋아난 쑥 한 움큼이 들려 있었다.
철수 씨가 위태로운 가지를 톱으로 자르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하는 톱질 소리가 정겨운 오후 햇살 아래 울려 퍼졌다. 굵은 가지가 분리될 때마다 나무는 크게 흔들렸고, 그때마다 아래에 있던 영미 아빠와 영호 씨가 밧줄을 단단히 붙잡아 무게중심을 잡아주었다. 마침내 가장 위험했던 가지가 안전하게 잘려 나갔고, 잔가지들을 정리하며 감나무는 다시 안정적인 모습을 되찾았다.
“휴우, 다 됐습니다, 이장님!”
철수 씨가 땀범벅이 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내려왔다. 박순자 할머니는 할 말을 잃은 듯, 한참을 감나무와 젊은이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할머니의 눈가에 주름진 눈물이 고였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이 늙은이 때문에 다들 수고가 많았네. 정말… 정말 고맙네.”
할머니는 쑥을 내려놓고 절뚝이며 마루로 향했다. 잠시 후, 따끈한 쑥떡과 식혜 한 사발이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할머니는 작은 항아리에서 꺼낸, 직접 담근 동동주를 한잔씩 따라주셨다. 고된 작업 뒤에 마시는 시원한 동동주와 쑥떡은 꿀맛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덕수 이장님은 마을 사람들을 배웅하고 박순자 할머니 댁을 나섰다. 할머니는 환한 얼굴로 대문 앞에 서서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더 이상 감나무를 보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짓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에 덕수 이장님의 마음에도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마을 골목길을 걸으며 덕수 이장님은 오늘 하루를 되짚었다. 위험했던 감나무 가지 하나가, 마을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으로 인해 할머니의 큰 시름을 덜어드리고, 또다시 마을의 정을 확인시켜 준 하루였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내일 또 어떤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작은 마을을 지키는 유쾌한 이장님의 하루는 그렇게 또 한 뼘 깊어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마을회관의 작은 불빛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