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도시의 불빛은 멀리서 희미하게 반짝였지만, 내 방 안은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 고독이 짙게 배어 있었다. 키보드 위에 얹었던 손은 어느새 축 늘어져 있었다. 며칠 밤낮을 붙잡고 있던 원고는 한 줄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있었다. 텅 빈 화면은 마치 내 마음속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 같았다. 막막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였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찬 공기 사이로, 익숙한 그림자가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검은 털이 밤 그림자에 녹아드는 듯한 고양이, 밤이. 벌써 7년째,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내 삶의 곁을 지켜온 나의 침묵하는 벗이었다. 밤은 소리 없이 다가와 내 의자 다리에 몸을 비볐다.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바지 위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내 무릎 위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 무게감은 언제나 내 불안정한 마음에 작은 닻처럼 작용했다.
“밤아,” 나는 속삭였다. “오늘도… 아무것도 쓰지 못했어.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아. 예전엔 이런 적 없었는데. 단어들이 춤추고 문장들이 흐르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저 잿빛 안개만 가득해.”
밤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그르렁’거렸다. 그 소리는 마치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이해한다는 듯, 혹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들렸다. 밤은 무릎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는, 커다란 노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깊고 고요했다. 세상의 모든 복잡함을 관조하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재능을 잃었다고 할 거야. 이대로라면 계약도 끝날 테고, 나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왔던 것 같았다. 쉴 틈 없이 달려왔고, 늘 더 나은 것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정작 내 안의 샘은 말라버린 지 오래였다. 이런 공허함은 처음이 아니었다. 한참 전, 내게 소중했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멀어졌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때도 밤은 이렇게 내 곁에 있었다.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폭우가 쏟아지던 밤이었다.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길 것 같던 날, 나는 상실감에 젖어 잠 못 이루고 있었다. 그때도 밤은 지금처럼 내 무릎에 앉아 있었다. 그저 가만히, 빗소리와 천둥소리 사이에서 나의 불안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가 어둠 속에서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날 밤, 나는 밤에게 말했다. ‘이 비가 그치면, 모든 게 괜찮아질까?’ 밤은 대답 대신, 내 손등을 핥아주었다. 거친 혀의 감촉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다음 날 아침 해가 떴을 때, 나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었다.
“그때는 그랬지,” 나는 밤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넌 늘 내게 말없이 힘을 주곤 했어.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그조차도 버거운 것 같아.”
밤은 내 손길에 맞춰 몸을 비볐다. 가느다란 꼬리가 내 허벅지를 스쳤다. 마치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온기, 그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살아있는 위로였다. 나는 밤의 보드라운 등을 쓰다듬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내 머릿속을 맴돌던 수많은 걱정과 압박감들이 잠시나마 멀어지는 듯했다.
밤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재능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나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외부의 시선에만 맞춰 달려왔던 것은 아닐까. 내 안의 깊은 우물이 말라버린 것은, 내가 그 우물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밤은 언제나 제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었다. 특별한 성과를 요구하지도, 화려한 언변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변함없이 존재해 주었다.
“밤아,”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밤의 노란 눈동자가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너무 애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걸 억지로 쥐어짜내려 했던 것 같아.”
밤은 조용히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리고는 내 무릎 위에서 천천히 몸을 펴고는, 앞발로 내 팔을 꾹꾹 눌렀다. 마치 어리광을 부리듯, 동시에 내가 너무 딱딱하게 굳어있던 어깨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한 동작이었다. 그 작은 발에서 전해지는 압력은 신비롭게도 나의 굳었던 마음을 조금씩 녹이는 것 같았다.
나는 밤을 끌어안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온몸으로 퍼졌다. 이 작은 생명체가 내게 주는 위안은 어떤 인간적인 위로보다도 더 깊고 진실했다. 밤은 나의 고통을 판단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존재할 뿐이었다. 그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치유였다.
그래, 지금 당장 무언가를 써내려 가지 못해도 괜찮아.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 모든 공백도 나의 일부이고, 이 텅 빈 마음도 언젠가는 다시 채워질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어졌다. 비록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더라도, 밤과 함께 이 밤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어쩌면 밤은 내게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잠시 멈춰 서서, 네 안의 고요함을 바라보라’고.
나는 밤의 털에 얼굴을 묻었다. 밤의 온기와 고요한 숨소리가 내 모든 감각을 채웠다.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릴 힘은 없었지만, 적어도 오늘 밤은 더 이상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밤의 노란 눈동자는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이 내게 속삭였다. 괜찮아,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내일은, 또 다른 날이 올 거야.
나는 밤을 품에 안은 채, 고요한 밤의 시간을 오롯이 견디기로 했다.

